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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 청둥오리 / 김윤


지축을 뒤흔드는 수만 개 북 두드린다
오색 깃발 나부끼는 천수만 대형 스크린 
지고 온 바이칼호의 눈발 털어놓는 오리 떼

아무르강 창공 넘어 돌아온 지친 목청
오랜 허기 채워 줄 볍씨 한 톨 아쉬운데
해 짧아 어두운 지구 먼 별빛만 성글어

민들레 솜털 가슴 그래도 활짝 열고 
야윈 목 길게 뽑아 힘겹게 활개 치며
살얼음 찰랑 가르고 화살처럼 날아든다

 

 



[당선소감]“윤금초 교수님·가족·문우님들에 감사”

네? 당선 통보를 접하는 순간 온 몸에 힘이 빠져 한 동안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아끼는 친구들, 스승님, 가족, 문우들의 얼굴이 다가오고 등단의 몫을 할 좋은 시조를 잘 쓸 수 있을 까 하는 두려움에.운동장 한 복판에서 손 난로 하나 품고 사는 듯한 몸과 맘, 그 떨쳐 버리지 못한 허허로움에… 한 편의 시조를 쓰느라 분리 수거함에 버려지는 수 많은 폐지속 의 나. 종가의 종부로서 시하층층 신경 쓸 곳도 많고 문학에 대한 선망 또한 작파 할 수 없는… 응집된 정형시에 매료되어 접신했던 죄(?)가 해를 거듭 할 수록 지칠 줄이야! 대학 때 희곡전공을 택하고 살 내렸던 그 때보다 어렵고 힘든 것이 시조수업이 아닌가? “그러게 편히 사시지, 왜 시조는 쓰시느라…” 동정 어린 핀잔을 주던 가족, 그러면서도 옥편을 찾아주는 고마움. 체감온도가 영하 10℃, 뒷 베란다 세탁기가 얼어 녹일 더운 물을 챙길때면 겨울은 깊어가고 감기몸살로 언 길을 건너 병원을 찾곤 하는데 올해도 신열 속에서 응모작품을 다듬었다.

시조의 길에 들어서 헤맬 때 무언의 등불을 달아 주신 스승, 열린시조학회 윤금초 교수님, 선후배 문우들에게 감사 드리며 설익은 과실을 따 열매로 올려 주신 심사위원님께 큰절 올립니다.

김윤 약력
- 1958년 서울출생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 민족시 열린시조학회 회원
- 서울시 주관 여성백일장 산문부 장원


[심사평]서정시조의 새변화…천수만의 언어 풍경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31명, 118편이었다. 이 가운데 최종심에 오른 작품으로는 <눈뜨는 청동기와> <벌초> <동박새의 아침> <藥달이는 봄> <선지국을 먹다가> <아라크네의 달력> <천수만 청둥오리>등 이였다. 

예년 같으면 거론된 일곱 편 모두 당선작으로 뽑아도 될 만큼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현대시조로서의 탄탄한 구성과 미학적 성취가 돋보이는 해였다. 앞의 세 작품이 제외되고 마지막으로 남은 작품은 <선지국을 먹다가> <아라크네의 달력> <천수만 청둥오리>였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탄력있는 언어 구사와 균형있는 감성 전개로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현상을 보는 것 같아 반가웠다. 

그러나 아쉽게도 <선지국을 먹다가>의 경우 ‘사레들린 형광등이 초승달로 기울 때’와 <아라크네의 달력>은 ‘날개를 퇴화시킨 건 한 줌의 모이였으리’와 같은 무리한 표현이 작품의 전체 분위기에 결정적인 흠이 되었다. 모든 시는 투명한 비유와 심도 있는 상징 그리고 정확한 언어 선택에서 완성도가 결정된다. 

<천수만 청둥오리>의 첫째 수와 셋째 수에서의 밀도 있는 표현과 뛰어난 언어감각은 <천수만 청둥오리>떼가 눈앞에서 한 폭의 진경산수처럼 펼쳐졌다. 새로운 언어에 대한 인식과 자기 나름의 시적 개성에 충실 한다면 앞으로 우리시의 영역확대에 당선자의 역할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심사위원 유재영 약력
- 시조시인
- 동학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