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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요셉의 꿈

 

 

자욱한 시름으로 촛불을 켜는 저녁

결 따라 매긴 먹줄 말씀으로 되살아나

한 꺼풀 옹이 박힌 업죄를 벗겨가는 목수여



길은 어디 있는가 죄 없는 이 바라보며

성전(聖殿)의 둥근 기둥을 내리치는 손바닥엔

먼 훗날 가슴을 적실 뜨거운 피가 흐른다



톱밥 대팻밥에 묻어 있는 생명의 빛

고결한 숨소리가 당신 곁에 머물러

종소리 가득한 사랑이 온 누리에 퍼지고



품삯이야 김이 나는 식탁이면 넉넉하고

기도소리 새는 창가 성가처럼 별이 내려

거룩한 날이 열고 저무는 환한 집을 짓는다

 

 

 

당선소감

 

말의 홍수 속에서 살면서도 수상 연락을 알려주신 반가운 전화에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말문이 막혀왔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늦은 나이에 시조창작을 시작해 얻는 신춘의 영광이 너무 크고 벅차, 그저 받을 수밖에 없는 감사한 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직 생활 20년이 지나면서 특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이켜 가장 재미있었던 학교 일은 문예 지도라 생각하던 차에 부산시조시인협회 주관 교사시조창작직무연수라는 공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연수를 받고 운명처럼 시조창작에 불꽃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름 숲 한 장 풀이파리 같이 흔하고 작은 시심에 가치를 담아 주시고, 때로는 따끔하게 때로는 다정하게 흔들리는 붓끝을 꼭 잡아 방향을 잡아 주신 선생님께 가장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함께 공부한 수정시조 동인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문예창작 활동에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한 제가 재직하고 있는 가야고등학교 교장 선생님 이하 동료와 학생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이성(理性)이 아닌 마음으로 이해해 주고, 귀하게 아껴준 남편과 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전하고 싶은 나의 이야기가 비록 외롭고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내가 선택한 가장 정제된 문학 형식, 우리 민족의 노래인'시조(時調)'에 가슴 온도를 높여 주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말을 부려 마음의 영역을 넓혀가겠습니다. 그래서 내 목소리로, 내 이야기로 현실과 대화할 수 있는 오늘의 문학작품 창작을 위해 노력하는 시인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약력 1963년 부산 출생. 지난해 5월 제27회 전국시조백일장 장원(부산시조문학회 주관). 수정시조 동인. 현재 가야고 국어교사.

 

 

심사평

 

금년도 응모 작품들은 양적으로 많이 증가했고, 질적인 면에서도 높은 수준들을 지니고 있었다. 시조의 정형미학을 잘 체득하여 시적 성취를 이룬 작품들이 많아 현대시조의 지평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현대시조의 두 가지 난제가 있다면 첫째는 시조의 형식을 고수하다가 시조 속의 시를 놓치는 경우이고, 둘째는 시성을 추구하다가 형식을 깨뜨리는 우를 범하는 경우다. 바람직한 현대시조는 형식과 시성을 함께 아울러 성공한 새로운 작품을 말한다.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이동명의 '겨울 을숙도(乙淑島)', 권예하의 '점촌장날', 유외순의 '섬', 이양순의 '목수 요셉의 꿈' 등이었다. 

'겨울 을숙도'는 시의 형상화 과정이 범수가 아니었으나 시인이 많이 취급한 제재이므로 신선감이 부족했고, 마지막 수의 종장 처리에서는 시조율격에 대한 컨트롤이 조금 미진했다. '점촌장날'은 대형마트에 밀려나는 영세 상인들의 현실적 삶을 잘 반영했으면서도 "곡간 땀 풀어놓고 푸른 바다 퍼덕이고"와 같은 이미지의 병치가 미숙한 게 흠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작품인 '섬'과 '목수 요셉의 꿈'이 경합하면서 심사위원들은 토의를 거듭했다. '섬'은 시의 소재로서 새롭지는 못하지만, 시적 감성이 신선하고 외로움과 그리움의 정서를 섬세한 이미지로 조형한 기법이 수승했다. 이에 비해 '목수 요셉의 꿈'은 섬보다 시어 선택이 투박하지만, 이미지 속에 내재한 시의 메시지가 강렬하게 전달되는 강점을 지닌다. 이 두 작품을 놓고 긴 논의 끝에 '목수 요셉의 꿈'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미래지향적인 건강한 시의 문맥 속에 노정된 밝음의 세계에 대한 믿음과 인류 구원문제에 사유의 광맥이 닿아 있어 이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양순이 응모한 나머지 네 편도 당선권에 드는 신뢰가 가는 작품들이었다. 

심사위원 정해송 전일희(이상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