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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재봉사

김민철

 

수련 꽃잎을 꿰매는 이것은 별이 움트는 소리만큼 아름답다

공기의 현을 뜯는 이것은 금세 녹아내리는 봄눈 혹은

물푸레나무 뿌리의 날숨을 타고 오는 하얀 달일까

 

오늘도 공기가 휘어질 듯하게 풍경을 박음질하는

장마전선은 하늘이 먹줄을 튕겨놓고 간 봉제선이다

댐은 수문을 활짝 열어 태풍의 눈에 강줄기를 엮어준다

 

때마침 장맛비는 굵어지고, 난 그걸 풍경 재봉사라 부른다

오솔길에 둘러싸인 호수가 성장통을 앓기 전,

빗방울이 호수 가슴둘레를 재고 수면 옷감 위에 재봉질한다

소금쟁이들이 시침핀을 들고 가장자리를 단단히 고정시킨다

 

흙빛 물줄기들은 보푸라기의 옷으로 갈아입고

버드나무 가지에서 밤새 뭉친 실밥무늬가 비치기도 했고

꾸벅 졸다가 삐끗한 실밥이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그것은 풍경 재봉사의 마지막 바느질이 아닐까

 

주먹을 꽉 쥐려던 수련의 얼굴로 톡 떨어지는 물방울

 

수련꽃이 활짝 피어 호수의 브로치가 되었다

 

<당선소감>

몸속 깊숙한 곳 비어있는 의 공간 채워갈 것

유난히 올해는 제 글이 한없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원고를 투고했습니다. 내년에 다시 시작하자, 라는 마음으로 연말을 보내던 때였습니다. 지방에 갔다가 북부간선도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요일, 묵직한 소식을 받았습니다.

많은 인연들이 제 머릿속을 앞서 나가다가 멀어졌습니다. 붙잡지 못한 인연과 아직까지 손 놓지 못한 인연 사이에서 제가 달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를 지켜주신 분들이 있어 제가 한 줄기 빛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성실함의 아버지, 기원의 어머니, 의지의 형, 우리 가족에게 제가 받은 이 빛을 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제가 시를 계속 쓸 수 있도록 언제나 힘을 실어주신 이사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열어주신 김미도 선생님, 항상 따뜻하게 저의 일을 챙겨주신 신연우 선생님, 시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신 최서림 선생님, 삶의 큰 틀을 보게 해주신 박정규 선생님, 제 고민을 많이 들어주셨던 박영준 선생님, 우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선생님들께 무한한 빚을 졌습니다. 이번 당선 소식을 자기 일처럼 기뻐해준 친구, 이병일에게 감사합니다. 그와 함께 꿈꿨던 일이 훗날 일어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첫 만남 이후, 핸드폰에 행운의 여신으로 저장되어 있는 그녀. 곁에 머물러 버거울 정도의 행운을 주어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황동규 선생님, 정호승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몸속에 깊숙하게 비어 있는 시의 공간과 시간을 채워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김민철이 되겠습니다.

1981년 서울 출생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재학 중

 

<심사평>

유행·시류 벗어난 우아한 아름다움 돋보여

예심을 거친 20명의 작품 중에서 최종심까지 올라온 작품은 이해존의 안락한 변화’, 유정용의 ‘IN 1914 네루다’, 안대근의 샌드위치 인생’, 김민철의 풍경 재봉사4편이었다.

안락한 변화‘IN 1914 네루다는 사실성이 두드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 전체가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점에서 먼저 탈락되었다.

정말 좋은 시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어야 하는데 지나친 모호성이 해석의 다양한 물꼬를 막았다.

샌드위치 인생벽돌의 무게를 짊어지는 사람의 등은 벽돌보다 벌겋지라는 첫 행에서부터 개성적 면모가 두드러졌으나 결국 희망이 상실된 어두운 심상으로 시가 종결되고 말았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무엇보다도 제목을 정하는 능력이 약했다. 제목도 시의 일부이므로 시 전체를 관류할 수 있는 제목이 요구되나 그렇지 못했다.

더군다나 같은 시를 제목만 바꾸어 중복 투고해 성실성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풍경 재봉사는 신선하고 아름답다. 유행과 시류에서 벗어난 점이 무엇보다 장점이다.

호수에 떨어지는 장맛비를 풍경 재봉사로 인식하는 형상화 과정 하나하나가 자상하고 섬세하다. 전체적으로 우아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 점은 오늘의 한국시가 근래 들어 잃고 있는 부분이다. 바로 이 아름다움이 앞으로 이 시인의 큰 덕목이 될 것이다.

심사위원 : 황동규·정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