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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놀이

강성오

 

1.

!

죽비로 내리치는 듯한 짧고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천장에 매달린 중앙 조명에 불이 들어온다. 바라, , 대금으로 연주한 곡이 흘러나온다. 무대 오른쪽 구석에 서 있는 만석중인형 옆으로 연희자가 잔뜩 고개를 숙이고 느릿느릿 등장한다. 양손에, 분홍색 종이 연꽃을 든 연희자가 조명 아래 다소곳하게 자리를 잡는다. 눈부시게 밝은 빛줄기가 무겁게 연희자를 짓누른다. 마치 정수리에 물 폭포를 맞는 사람처럼 고개를 내리 꺾고 서 있다. 연희자는 하얀 장삼에, 가슴에서 엉덩이에 이르는 폭넓은 붉은 띠를 두르고 노랑, 파랑, 녹색 대령을 목에 걸쳤다. 연꽃이 그려진 각진 고깔을 머리에 썼다. 연희자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아니, 저분은? 아버지다. 입술에 붉은 립스틱을 두툼하게 바르고 얼굴에 광대처럼 짙은 화장을 했지만, 틀림없는 아버지다. 그림자놀이에 평생을 바친 아버지는 주로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했지, 무대에 오른 적은 없었다. 공연 때면 전문 춤꾼을 초빙하곤 했다. 그런데 직접 무대에 오르다니. 나는 떨떠름한 시선으로 아버지를 응시한다. 아버지는 아직 움직이지 않는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감정이 북받치기라도 한단 말인가.

마지막이라는 말에는 묘한 힘이 있다. 사람을 필요 이상으로 조심스럽게 만들고 감정의 날을 무디게 한다. 잔인하고 냉소적인 논리를 펼칠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측은지심마저 솟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지막이라는 말을 핑곗거리로 악용하거나 책이나 노래 제목에서처럼 전략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흔히들 궁지에 몰리면 마지막이라는 말로 동정표를 얻으려 하듯 아버지도 그랬을지 모르겠다. 마지막이라고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예 얼굴도 내비치지 않았을 테니까.

"전시관이라도 짓나 보죠?"

나는 좀 삐딱한 어조로 J에게 물었다. J는 그림자놀이의 모든 것을 전수받아 뒤를 이을 속셈으로 10년 전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마흔이 훌쩍 넘었음에도 아직 미혼이다. 일부러 결혼하지 않았다고 큰소리쳤지만 내가 보기에는 하지 못한 게 분명하다. 입고 있는 흰색 개량 한복도 촌스럽기 그지없고, 검정 리본으로 질끈 묶은 꽁지머리도 백 킬로그램이 넘는 큰 덩치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벌이가 시원치 않다. 나는 그런 J가 한심스러워 볼 때마다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아버지는 전시관이 완공되면 J에게 운영권을 넘기겠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전시관은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애초에는 그림자놀이 박물관을 꿈꿨지만 여러 여건상 전시관으로 바꿨다. J는 황급히 일어서서 아버지를 향해 허리께까지 고개를 숙여, 정중히 예를 표하고 난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니네."

"그럼요?"

"나도 이유를 몰라 답답하네. 지난 일요일 밤에 갑자기 보자고 하시더군.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에게 모든 것을 맡아서 하라는 거야. 군사정권의 모진 탄압도 꿋꿋하게 버텼던 분인데 말이야.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나는 한참 후에야 그 이유를 물었네. 헌데 아무리 물어도 대답하지 않으신 거야. 혹시 요즈막 자네와 어떤 일이 있었던 건 아닌가?"

나는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다. 딱히 짚이는 건 없었다.

 

"일이요? 아무 일도 없었거든요?"

나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핀다. 이십여 가구가 사는 마을 옆 공터에 설치한 가설무대는 그지없이 초라하다. 1m 높이의 무대는 3.5m가량의 파란 천막으로 빙 둘러쳐졌다. 무대 뒤 은막도 흔해빠진 얇디얇은 광목으로 만들었다. 머리 위 세 개의 팽팽한 밧줄에는 수십 개의 연등이 주렁주렁 달렸다. 객석의 의자는 달랑 두 개뿐이다. 그걸 나와 J가 차지하고 앉아 있다. 아무리 그림자극이 시대에 밀렸다손 치더라도, 호기심 많은 아이나 하릴없는 노인 한두 명은 구경 올 법한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앉아 있다는 자체가 창피할 지경이다. 더군다나 이 마을은 한때 우리가 살았던 곳이다. 인사치레로 누군가는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오지 못하게 막았거나 협조를 구했을 리도 없다. 무대 설치와 여러 스태프를 부리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지출했을 테니까. 거저 일손을 보태주는 세상은 아니지 않은가. 변변한 벌이가 없는 아버지가 어떻게 돈을 마련했는지 따위는 중요치 않다. 이런 공연을 위해 돈을 쓰다니. 마지막으로 자신의 춤을 선보이겠다는 속셈인지는 몰라도 이건 아니지 싶다. 이런 돈이 있으면 창고나 하나 빌리지. 그럼 어머니가 최소한 집안에서 휠체어라도 마음대로 타고 다닐 수 있을 거 아닌가. 나는 힐난의 시선을 무대로 던진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사람을 필요 이상으로 조심스럽게 만들고 감정의 날을 무디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지막이라는 말을 핑곗거리로 악용하거나 전략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웅숭깊고도 처량한 대금 소리가 까무레한 허공에 퍼진다. 아버지가 양팔을 어깨높이로 들어 올린다. 넓고 긴 소매가 바닥에 닿는다. 대금 소리가 끊기고, 6박의 도드리장단과 함께 염불이 흐른다. 아버지는 팔을 든 채 오른쪽으로 구십 도쯤 돌았다가, 왼쪽으로 느리게 한 바퀴 돈다. 서서히 무릎을 꿇는다. 상체만을 깊숙이 숙여 머리를 바닥에 조아린다. 마치 객석을 향해 양팔을 벌리고 큰절을 하는 모양새다. J는 맞절하듯 아버지를 향해 깊이 고개를 꺾는다. 나는 고개조차 까딱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느릿느릿 상체를 세워 뒤로 한껏 젖힌 뒤, 다시 머리를 바닥에 조아린다. 물론 무릎을 꿇은 자세다. 다시 상체를 한껏 뒤로 제쳤다가 앞으로 머리를 숙이더니, 전과는 달리, 두 손을 모으고 상체를 왼쪽으로 틀어 오른쪽으로 움직인 다음 조금씩 일어난다. 양팔을 머리 위로 올렸다가, 어깨높이로 내리고서 제자리에서 사뿐사뿐 돈다. 왼손을 오른 가슴에 얹고 오른팔로 왼손을 감싸 안으며 살포시 앉았다가 일어선다. 조용하고 느린 동작으로 회전한다. 연습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단아하면서도 절제된 발놀림 같지는 않다. 다만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모습은 역력하다. 아버지는 팔을 든 채 제자리에서 몸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틀고, 한 바퀴 돈 후, 객석을 향해 다시금 큰절한다. 십 분이 넘게 연기를 하면서 절하는 동작을 다섯 번이나 반복했다. 마음을 청아하게 만드는 잔잔한 염불과 처연한 모습으로 자꾸만 절을 반복하는 모습에 내 마음은 심란하게 뒤엉켰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미안함을 나타내려고 일부러 무대를 꾸몄다 이건가.

"나비춤의 일종인 운심게작법이라네. 우리네 삶이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좁다란 공간 속을 헤맬 뿐이며, 허망하고 무한한 욕심도 결국 허울 좋은 거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춤이라네."

절을 하려는 게 아니라 좁다란 공간을 헤매는 것을 표현한 것뿐이라고? 그럼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려는 게 아니잖아? 쓴웃음이 터져 나왔다. J는 작법이 스님들의 춤이라고 보충설명 한다. 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공연을 마친 아버지는 무대 왼편 가장자리로 가서 다소곳한 자세로 섰다. 음악이 멈추고, 무대 조명도, 무대 뒤에서 은막을 비추던 파이어 조명도 꺼졌다. 암전. 암흑은 어떤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어둠만 눈에 가득할 뿐이다. 눈을 감고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하천을 흐르는 물소리가 미약하게 들린다. 귀뚜라미의 요란한 아카펠라에 심경을 집중한다. 누구의 지휘에 따라 노래할까. 제각각 울어대는 것 같은데도 화음이 조화롭다. 한참 감상한 후에, 눈을 뜬다. 이제야 망막이 어둠에 익숙해졌다. 아버지는 아직도 무대를 내려가지 않고 그대로 서 있다.

 

2.

아버지가 그림자놀이에 미친 건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는 어디서 구했는지 '조선연극사' 한 권을 들고 집에 들어왔다. 틈만 나면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들여다보았다. 아주 특별한 책이라며 애지중지했다. 보물섬의 위치라도 기록해 놓은 책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저자인 김재철 선생을 신처럼 숭배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책 속에 나와 있는-일제강점기 때 강요에 의해 맥이 끊겨버렸다는-그림자놀이를 복원하겠다며 사표를 썼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9급 공무원이었다.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 하더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뀌어 깊은 한숨만 토해놓았다. 농밀한 단내가 집안 가득 번졌다. 사실 그 당시에는 어머니가 그렇게까지 반응한다는 게 의아했다. 전통놀이를 복원하고 보급하려는 아버지가 멋있게 보였다. 게다가 다음 해에는 올림픽도 앞두고 있었다. 아버지는 수시로 올림픽을 들먹였다. 아버지가 올림픽 때 어떤 큰 역할을 할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 편에 섰다.

아버지와 나는 안방에서 불을 꺼놓고 자주 놀았다. 아버지는 손전등을 벽을 향해 켜 놓고 한 손이나 양손으로 각종 모양을 만들어 손전등 앞에 갖다 대곤 했다. 벽에는 개, 독수리, 나비, 타조 머리, 박쥐 모양 등이 나타났다. 나는 그런 신비로운 그림자를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빛의 각도와 거리 및 방향에 따라 그림자의 크기와 모습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실연을 통해 증명해 보였다. 더 나아가 아버지는 두꺼운 마분지로 십장생 모양을 본떠 테두리를 제외하고 오려낸 다음 그 공간에 물들인 한지를 붙여 손전등으로 벽에 비춰보았다. 나는 벽에 나타난 컬러 그림자를 보고 양손을 치켜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아버지는 그림자놀이에 대해 자주 말했다. 고려 시대 때 사월초파일을 맞아 연등회에 참관한 고관대작을 위해 탄생한 그림자놀이가 어떻게 만석중놀이로 발전하게 된 줄 알아. 그건 민중들이 저잣거리에서 여러 가지 시대 현실을 담아서 공연했기 때문이여. 그림자로 현실을 풍자하기 얼마나 좋아. 하지만 그림자만으로는 부족하지 싶어 사람 닮은 인형을 만든 거여. 그것이 만석중이여. 민중들 사이에서 그림자놀이가 성행했기에 불교를 억압했던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도 명맥이 끊기지 않았던 것이여. 일본 놈들이 그렇게 그림자놀이를 막으려 했던 것도 민중의식을 담았기 때문이 아니겠어? 아버지는 틈만 나면 민중의식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집회 장소에서 만석중을 앞세워 그림자공연을 하려고 기를 썼다. 그림자놀이를 복원하려는 자가 마땅히 해야 할 당위성이라고 역설했다.

공연 때, 아버지가 특히 공을 들인 건 용과 잉어가 여의주를 놓고 다투는 장면이었다. 연등놀이가 진행되다가 딱, 소리가 나면 연등 행렬이 사라지고 은막 왼쪽에서는 용이, 오른쪽에서는 잉어가 등장했다. 용은 머리에 뾰족한 뿔이 두 개, 턱에 두 가닥의 굵고 긴 수염이 있었다. 네 발 달린 용의 길이는 거지반 삼 미터가량 돼 보였다.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를 바짝 세우고 눈알이 부리부리한 잉어는 족히 일 미터가 넘어 보였다. 은빛 비늘 그림자의 용과 잉어는 마치 자신들의 용태를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좌우를 유유자적하게 노닐었다. 용이 위로 향하면 잉어는 밑으로 향하고, 용이 밑을 향하면 잉어는 위를 향해 움직였다. 빠른 동작임에도 둘이 엉키지 않았다. 그러다 용과 잉어가 서로 눈높이를 맞춰, 마주 보고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연인처럼 보였다.

그러다 딱, 소리가 나면 은막 오른쪽에서 태극문양의 둥그런 여의주가 서서히 등장했다. 용과 잉어의 시선이 동시에 여의주를 향했다. 여의주가 은막 중앙 부분에 다다르자 갑자기 용과 잉어가 빠르게 움직이며 여의주를 물려고 했다. 여의주는 왼쪽, 오른쪽, , 아래로 황급히 움직이며 피해 다녔다. 급기야 용과 잉어는 서로 격렬하게 싸웠다. 용이 여의주를 물려고 하면 잉어가 잽싸게 다가가 아가미로 용의 머리를 거칠게 밀어냈다. 잉어가 여의주를 물라치면 용이 꼬리를 휘둘러 잉어를 멀리 쫓아냈다. 그 틈에 여의주는 용과 잉어의 머리에서 점차 멀어졌다. 그때까지의 그림자극 중에서 가장 동적인 장면이었다. 다시 딱, 소리가 났다. 여의주가 은막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움직이지 않았다. 용은 은막 왼쪽 밖으로 꼬리 부분이 반쯤 벗어난 채 시선을 여의주를 향하고 있었다. 잉어 또한 오른쪽에서 여의주를 똑바로 바라보는 자세였다. 그러니까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용과 잉어가 서로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림자는 한동안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침묵만 가득했다. 아버지도 그때만큼은 무겁게 침묵을 지켰다.

아버지는 그림자놀이와 관련된 옛 물품들을 찾고 수집하는 데 열을 올렸다. 횃불, 등잔불, 촛불을 밝힐 수 있는 조명 도구, 각종 연등, 범종, 법복, 송낙, 장삼, 목탁, 장고, , , 민화가 그려진 갖가지 병풍을 비롯해 무구인 언월도, 삼지창, 신칼, 바라, 방울, 작두, 부채에 심지어는 크고 작은 솥뚜껑까지 집에 들여놓았다. 급기야 거실은 물론 안방과 내 방까지 수집품들로 넘쳐났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집에 들어갈 때마다 마치 고물상이나 무당집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집을 나가버리고 싶었다. 어머니는 골동품을 사들이느라 바닥난 살림살이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기 일쑤였다. 아버지는 딱 한 번 얼이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집중 호우로 하천을 범람한 물이 집안을 덮쳤다. 우리는 겨우 몸을 피했다. 홍수는 수집품들을 죄다 쓸어 가버렸다. 만석중이 물에 떠내려가는 모습에 아버지는 발을 동동 구르며 통곡했다. 손을 훠이훠이 저으며 하천으로 걸어갔다. 물에 뛰어들려는 아버지를 막기 위해 어머니는 온몸으로 아버지 앞을 가로막고 막고 나섰다. 나도 아버지 허리춤을 붙잡고 매달렸다. 아버지는 결국 포기했다. 그 후, 아버지는 미친 사람처럼 산발한 모습으로 여러 날 누워 있었다. 땟국이 잘잘 흐르는 얼굴에 눈물 이랑이 가시지 않았다. 눈앞에서 떠내려가는 자식을 구하지 못해 심하게 자학하며 괴로워하는 그런 부모의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삶을 포기한 듯했다. 어머니가 정성껏 쑨 죽과 쌈짓돈을 털어 조제한 보약을 한사코 거절했다. 하루가 다르게 초췌한 몰골로 변해갔다. 허구한 날 이불 속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퀭한 눈과 어쩌다 시선이 마주치면 오소소 소름이 끼쳐,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다. 귀신을 보는 느낌이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눈물바람으로 나섰다.

"이대로 가실 거요? 죽도록 고생했는데 전시관이라도 남겨야 할 거 아니요?"

"……."

아버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정책 탓에 정부 관계자들의 발이 묶여 있으니, 민간인들이 나서서 작은 물꼬라도 터야 한다고 말했잖소?"

"……."

"남북문예교류의 선봉에 서고 싶다고 하셨잖소? 단정된 민간 교류의 노둣돌이 되겠다고 하셨잖소? 그 말이 모두 허풍이었다 이거요?"

"……."

"기운 내세요. 만석중놀이가 연희되었다는 개성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하셨잖아요? 일어나야 노둣돌도 되고, 개성도 가 볼 수 있을 거 아니요?"

그제야 아버지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는 기력을 회복하자마자 다시 그림자놀이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러 전국을 쏘다녔다. 물품을 수집하는 일에 이전보다 몇 갑절 힘을 쏟았다. 자료에 대한 정보를 치밀하게 조사해 간단한 기록을 곁들였다. 예컨대, 오십 센티미터쯤 되는 범종에 '조선 시대, 학서암, 대형 범종으로 교체 후 담준 스님께서 기증'이라는 메모를 부착해 놓았다. 집안은 다시 예전처럼 그림자놀이 관련 물품 창고로 변했다. 집안에 가득한 골동품을 피해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도 아버지는 흐뭇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마을이 재개발된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우리는 이사 가야 했다. 당시 전세로 살고 있었는데 주인이 집을 팔았기 때문이었다. 이삿짐센터의 차를 타고 떠나기 직전, 아버지는 무연한 시선으로 마을 앞 하천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떠내려간 만석중을 생각한 듯, 결국 너를 찾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구나, 하고 비탄에 잠긴 어조로 웅얼거렸다.

마음을 다잡은 아버지는 방북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만석중놀이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밤늦도록 개성에서 만날 사람과 채집할 자료를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혹시 고장이 날까 봐 녹취를 위한 초소형 녹음기도 두 대나 준비했다. 방북 신청도 각별히 신경 썼다. 간혹 관계자와 밤새 술을 마시고 동틀 무렵에야 집에 들어왔다. 긍정적인 언질을 받았던지 술에 찌들어 초췌한 얼굴에도 미소가 흘렀다. 하지만 통일부에서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시간만 끌어오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최근까지 전시관 건립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만석중놀이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해 자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및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을 발이 부르트도록 찾아다녔다. 그러던 참이었는데 마지막이라니.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직도 무대에서 내려가지 않는다. 앙상한 몸피에 광대뼈가 불거진 노구의 몸으로 삼십 분이 넘도록 그 자세 그대로 서 있다. 한 자리에 붙박아 놓은 만석중인형처럼.

그림자놀이가 만석중놀이로 발전한 것은 민중들이 저잣거리에서 시대 현실을 담아서 공연했기 때문이여

일본 놈들이 그렇게 막으려 했던 것도 민중의식을 담았기 때문이 아니겠어? 아버지는 틈만 나면 강조했다.

 

3.

나는 홈쇼핑 벤더 업체에 근무하는 벤더다. 나는 은밀하게 홈쇼핑 MD와 생산업체를 연결해주곤 했다. MD(merchandiser-상품기획자)의 주요 임무는 숨은 보석을 발굴하듯 대박 상품을 발굴하는 일이다. MD가 대박을 예감한 상품은 모든 걸 비밀리에 추진하기 마련이다. 치열한 경쟁사회이지 않은가. MD가 직접 나서서 생산업체를 들락거리거나 관련자를 만나면 경쟁업체에 정보가 누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MD는 대리인을 내세우곤 하는데, 나는 그런 대리인 노릇을 줄곧 해왔다. 나는 지난달까지 일본 삿포로에 있었다. 고등어 전용 선별장이었다. 나는 값비싼 갈치 대신 고등어가 한국 식탁에 중점적으로 오를 것으로 내다본 모 MD의 지시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거였다. MD는 우리나라 고등어 어획량이 급감한 탓에 안정적인 물량 확보를 위해 혈안이었다. 나는 선별장에서 크기와 선도가 좋은 고등어를 고르는 것을 관리 감독했다. 고등어 선별장은 농밀한 비린내가 둥둥 떠다녔다. 생경하고도 역겨웠다. 그럼에도 품질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리를 오랫동안 비울 수는 없었다. 나는 코를 틀어쥐고 선별장을 수없이 들락거렸다. 일이 끝나면 샤워를 몇 번이나 했지만 몸에서 비린내가 떠나지 않았다. 고등어라면 이가 갈릴 정도로 거부감이 일었다. 그런 고등어를 세끼 반찬으로 반드시 먹어야 했다. 우리나라 소비자 입맛에 맞는지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저녁이면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았다. 지상파는 물론 케이블의 예능 프로까지 섭렵했다. 특히나 젊은이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나 시트콤, 최근 유행한 프로그램은 빼먹지 않았다. 그러다 필이 꽂히는 의류가 나오면 서둘러 인터넷을 검색하여 젊은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한번은 최근 인기 있는 드라마를 보는데 남자 주인공이 입고 있는 옷이 눈에 확 들어왔다. 고어텍스 소재의 검정 점퍼에 모자가 달린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젊은 층에 먹힐 것 같았다. 다음 날 나는 눈을 뜨자마자 그 점퍼를 제작한 업체를 수소문하여 찾아갔다. 그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의류전문 업체였다. 영세했다. 모든 제품을 꼼꼼히 살폈다. 디자인은 물론 가격 면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확신이 섰다. MD에게 소개하기보다는 직접 백화점에 매장을 열어 판매하고 싶었다. 물론 영세한 업체에서 만든 의류라 백화점에 입점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게다가 예상 매출 산출이 어려워 마진율 정하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극복할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자본이 문제였다. 땡전 한 푼 보태줄 수 없는 집안에 모아놓은 돈마저 없었으니 잠시의 꿈으로 만족했다. 나는 내 생각을 홈쇼핑 차 MD에게 전했다. 그는 직장에 사표를 내고 '티캐스트'라는 매장을 내어 내가 섭외한 업체에서 만든 상품을 중점적으로 판매했다. 유행이 젊은 층에서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일 년도 안 되어 매장을 열 곳이 넘게 오픈했다. 나는 차 MD'티캐스트'가 빠르게 늘어가는 추세를 보며 쓴웃음만 지었다. 날이 갈수록 매장이 자주 눈에 띄었다.

 

두 달 전이었다. 나는 얼굴 한쪽에 '지렁이 크림'을 잔뜩 발랐다. 지렁이 크림을 미국에서는 '바르는 보톡스'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아주머니들에게 좋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니 주름살이 많은 여성들이 ''이 갈 만한 상품이었다. 그러나 홈쇼핑에서 판매하기에는 가격이 턱없이 비쌌다. 가격을 낮출 필요가 있었다. MD는 그 제품을 태국 업체를 골라 대량생산할 요량이었다. 나는 신 MD를 대신했다.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전에 민감성 피부를 소유한 분들을 섭외해 실험에 들어갔다. 나도 실험에 참가한 것은 당연했다. 소문대로 효과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바르지 않은 쪽과 비교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보며 화장품을 발랐다. 어떤 이는 신상품을 가장 먼저 써본다고 부러워할지 모르나 그건 그렇지 않다. 나는 얼굴에 반갑지 않은 트러블이 생겨 열흘 넘게 병원에 다녀야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지 않은 트러블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화장품을 계속 발랐다. 단점을 해결할 때까지. 나는 극심한 가려움과 따가움으로 얼마나 얼굴을 박박 긁었는지 모른다. 나는 도중에 포기하고도 싶었으나 입도 빵끗 못했다. 왠지 벤더 업체에서 도태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밀려왔다. 나는 얼굴을 후벼 파며 단점을 보완할 때까지 바르고 또 발랐다. 덕분에 첫 방송에서 준비한 모든 물량이 동났고 매출이 십억을 훌쩍 넘었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건 극히 미미했다. 반면, MD는 수천만 원의 보너스에 특진까지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임무와 나를 철저히 숨겨야 하는 일에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손님으로 바글거리는 티캐스트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왜 그걸 포기했을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리라 예상해놓고. 아버지가 그림자놀이에 쏟아 부은 돈의 절반만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 생각은 늘 거기서 멈췄다. 그림자놀이에 밀려났다는 생각이 들면 저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뒷목이 뻣뻣해지고 근육이 팽팽히 조여들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웠다가 벌떡벌떡 일어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쉬이 잠들지 못한 나는 약과 수면제 사이에서 갈등했다. 정신없이 술을 마시면, 술이 나를 혼미하게 지배하면, 그러면 불면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부스스한 얼굴로 출근해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거리기 일쑤였다.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오늘도 심부름꾼이 되어야 하는가. 지긋지긋한 이 생활을 언제나 청산할래? 딱히 방법이 없잖아? 그랬다. 나를 필요로 하는 더 나은 곳은 없었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일을 그만둘 수도 없어 마지못해 문을 열고 들어가곤 했다. 나는 5년 동안 한결같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오늘 만남에서 이야기가 잘 되면 기회를 잡을지도 모른다. 신경은 온통 민 MD와의 만남에 쏠려 있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925. 11시에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까지는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가는 시간 30분을 제외하고라도 말이다. 전화라도 해 볼까. MD930분에 시작될 방송 때문에 지금쯤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이다. 상품이 잘 팔려야 기분 좋게 만날 수 있을 텐데. MD가 기획한 상품이 대박 나기를 진심으로 빈다.

고개를 돌려 J의 표정을 살핀다. J는 돌부처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입을 앙다문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나를 붙잡아두는 임무라도 부여받은 듯하다.

"왜 내려가지 않는데요?"

볼멘소리로 J에게 물었다.

"글쎄, 자네에게 무슨 메시지라도 전하려는 게 아닐까?"

J가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반문했다.

"메시지라고요? 입 놔두고 뭔 메시지요? 마지막이라 미련이 남았나 보죠 뭐."

나는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가버리면 아버지는 어떡하라고."

J가 내 팔을 강하게 끌어당겨 앉힌다.

"삼촌, 메시지를 전달하시겠다면 아버지가 사십 분이 넘도록 서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마지막이라는 구실로 왠지 나를 조롱하는 것 같네요."

빈정거리는 어투로 쏘아붙였다. J에게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튀어나왔다. 나는 J의 팔을 힘껏 뿌리쳤다. J가 다시 팔을 잡고 말을 잇는다.

"왜 이렇게 뜬금없이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지 그 이유는 알아야 할 게 아닌가? 조금만 더 기다려 보게나."

나는 J의 팔을 뿌리칠 수가 없어 다시 앉았다. 아직은 시간 여유가 있으니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을지 싶다. 다만 헛되이 시간을 보내기는 싫다.

그동안 연습이라도 할 요량으로 가방에서 마리오네트를 꺼냈다. 30인 원목 인형이 발 앞에 섰다. 고인이 되어버린 가수 '마이클 잭슨'을 빼다 박았다. 나는 다시 가방을 뒤져 중절모를 꺼내 마리오네트에 씌웠다. 아버지 맞은편에 서 있는, 만석중보다 훨씬 멋져 보인다. 밋밋한 두상, 장승 눈처럼 툭 불거진 눈, 한껏 과장된 코, 처진 귀, 토인처럼 뒤집어진 듯한 도톰한 입술의 만석중. 가슴과 배에 뚫린 구멍에 연결된 줄을 당기면 고작, 이마나 가슴밖에 치지 못하는 인형. 그런 인형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나는 '버랭기'라 불리는 두 개의 조종막대를 잡고 일어섰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숱하게 들었던 일연 스님의 화청을 웅얼거리며 줄을 조종했다.

 

"걸청걸청 지심걸청 걸랑걸랑 두어두고 일심봉청 오늘날에 저므도록 지금까지 종찰하시고 분별허든 제도감 스님은 어딜가시고 종두대사는 법당안에 금일재자를 인도하여 모셔놓고 다과진수를 탁자 위에다 진설허시고."

 

 

 

마리오네트는 오른손으로 배꼽을 잡고 몸을 떨었다.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모습을 흉내 냈다. 나는 중절모 대신 가발을 마리오네트에 씌웠다. 마리오네트는 손가락을 머리 위로 올리고 빙글빙글 돌렸다. 손으로 가슴을 툭툭 치고, 허공에다 힘차게 헛발질했다. 많이 늘었네. 나는 나를 칭찬했다. 눈썹과 입술을 달싹일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일주일 동안 연습한 것치고는 괄목할 만한 발전이다. 하지만 이걸로 만족할 수는 없다. 퍼펫티어(연희자)가 출연을 어기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나는 그것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손가락을 더욱 분주히 움직인다. 어쩐지 마리오네트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나중에 일본 전통인형극에 사용하는 조종 기구인 '에이트'로도 연습해봐야겠다.

아버지가 그림자놀이에 쏟아 부은 돈의 절반만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 생각은 늘 거기서 멈췄다.

모다깃 비가 우산을 뚫을 듯한 기세로 쏟아지던 2년 전 어느 여름날, 우리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갔다.

 

4.

"이제 가봐야겠네요."

나는 J에게 단호하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아버지가 자칫하면 쓰러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한 시간 넘게 서 있는 분을 저대로 두고 기어코 가겠다, 이건가? 자네, 아들 맞아?"

자신이 우상처럼 받드는 대상을 함부로 깔아뭉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J가 어미에 힘을 주었다. 자식이라면 이럴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모다깃 비가 우산을 뚫을 듯한 기세로 쏟아지던 2년 전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날 우리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갔다. 어머니가 분식집의 습하고 비좁은 주방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설거지해서 장만한, 손바닥만 한 아파트였다. 아버지는 수년 전에 한강 둔치에서 치르려 했던 통일문화축전이 갑자기 쏟아진 집중호우로 취소된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고 둘러댔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행사가 행사이니만큼 정부에서 당연히 지원이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 푼도 받지 못했노라고 했다. 한 술 더 떠서, 그나마 그렇게라도 취소되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훨씬 이전에 거덜 났을 거라고 탄식했다. 예정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면 족히 세 배는 더 들어갔을 거라며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버지의 구차한 모습에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그깟 이유로 아버지를 경멸한 것은 아니다.

집을 비워줘야 한다는 사실에 어머니는 끝내 쓰러졌다. 그리고 결국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되어 휠체어에 의지하는 신세가 되었다. 우리는 셋방을 얻어 이사했다. 더 작은 집으로. 휠체어가 겨우 드나들 만한 집이었다. 아버지는 그 많은 그림자놀이 용품을 죄다 가지고 갔다. 그나마도 좁아터진 집에 층층이 들어선 용품이 휠체어 이동을 방해했다. 큰 방에 화장실이 딸리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볼 일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 얼굴을 마주하기 싫었다. 그대로 가다가는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집을 나왔다. 동료 집에 얹혀사는 신세가 되었다.

"아들이 맞냐고요? 저는 언제나 골동품보다 못했거든요. 돈이 생기면 우선적으로 소품을 사들이기에 급급했거든요? 학용품도, 먹고 싶은 것도, 입고 싶은 옷이 있어도, 늘 만석중이보다 뒷전이라 말도 못 꺼냈거든요? 만석중에는 구멍이 세 개뿐이지만 제 가슴에는 수없이 많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거든요? 얼마나 가슴 시렸는지 아세요? 얼마나 서러운 세월을 살았는지 아세요? 삼촌, 저 무대 위를 보세요. 아버지의 시선이 지금도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머니를 산송장으로 만들어버린 사람이 제정신인지, 차라리 아버지에게 물어보시지 그래요?"

어머니 생각에 울화통이 터져있던 터라, 나는 눈을 부라리며 따지듯 말했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하다. 만석중을 부숴버리고 싶은 격렬한 기운이 머리끝에서 솟구친다. 나에게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아버지의 시선이 줄곧 만석중을 향해 있기에, 마치 아버지에게 마지막까지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버지가 고개를 내리 꺾고 있긴 하지만, 그럴 수야 없지 않은가.

 

당찬 기세에 눌린 J가 물끄러미 아버지를 바라보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당신은 자네에게 자긍심은 심어주지 못할망정, 증오의 대상으로 기억되거나 평생 씨잘데기 없는 일에 정열을 낭비한 아버지로 기억되는 걸 원치 않으셨네. 전시관이라도 세워놓으면 자네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시고 더욱 힘을 내곤 하셨지. 그랬던 분이 갑자기 모든 걸 포기한 것은 자네 때문이 아닐까. 정말 아무 일도 없었는가?"

J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니다. 호소하는 듯한 표정이다. 나는 어쨌든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하기에 다시 기억을 되작거린다. 혹시 마리오네트와 관련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보름 전, 우연히 대학로에서 열리는 마리오네트 공연을 보게 되었다. 해질 무렵이었다. 각각의 관절이 미세하게 분리된 사람 모양의 작은 인형이, 한 개의 버랭기 조종막대와 세 개의 조종대에 연결된 끈을 조종하는 퍼펫티어의 의도에 따라 춤을 추고, 떼를 쓰고,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울고불고, 앙탈을 부리는 등의 여러 가지 동작을 선보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걸음을 멈추고 신기한 표정으로 구경했다. 마리오네트를 홈쇼핑에서 판매하면 틀림없이 대박이 날 것 같았다. 수지침 연구자가 아니라도 손가락을 움직이면 이점이 많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아이들은 두뇌계발이 되고, 노인들은 치매가 예방된다지 않던가. 부모와 자식이 머리를 맞대고 마리오네트를 조종한다면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데도 적잖이 도움이 될 것이었다. 게다가 연희자의 집중력도 배가되고, 미술이나 만화지망생들에게는 데생의 모델이 되고, 의상디자이너들은 연습 삼아 옷을 지어 입힐 수도 있고,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사용하는 등 마리오네트의 장점은 차고 넘쳐 보였다. 나는 부푼 가슴을 애써 억누르며 구체적인 판매 전략을 세워나갔다. MD와 자주 만나 의사를 조율해왔고, 오늘 만나 최종결정하기로 했다. 내 예상대로만 된다면 갑과 을의 관계보다는 동등한 관계가 될 것 같았다.

나는 지난 토요일 저녁에 아버지를 만났다. 두 번 다시 아버지를 보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이 집으로 찾아갔다. 아버지, 만석중을 이틀만 빌려 갈게요.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용건부터 말했다. 어디에 쓰려고? 몰라보게 야윈 아버지가 물었다. 모처럼 만난 탓인지 아니면 처음으로 만석중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인지 아버지 표정은 무척 밝아 보였다. 마리오네트를 팔 때 끼워주려고요. 홈쇼핑에서 덤이 없으면 말이 안 되잖아요? 아버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덤으로? 그리고는 곧바로 쏘아붙였다. 고작 그따위 이유로 만석중을 써먹는다는 거야? 아버지가 버럭 소리쳤다. 기껏해야 가슴팍이나 머리밖에 치지 못하잖아요? 나 역시 턱 끝을 바짝 치켜들고 기세등등하게 대거리했다. 뭐라고? 기껏해야? 안 빌려 주실 거면 마세요. 사진을 보여주고 그대로 이천 개 만들어달라고 주문까지 해 놓았으니까요! 아버지와 더는 말을 섞기 싫어, 툭 쏘아붙인 뒤 집을 나와 버렸다. 등 뒤에서 그게 아니라 어쩌고저쩌고하는 말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귀에 담지 않았다. 업자는 사진만 보고도 인형을 제작하는데 그리 큰 어려움은 없다고 했었으니까.

그래 그거야! 만석중이가 단순히 서 있는 게 아니라 소리로 그림자들을 총 감독하는 것.

그러니까 만석중이 소리로 신호를 보낸다 이거지. 나는 조금 들뜬 어조로 말했다.

 

5.

나는 아버지에게 고개를 돌린다. 아버지는 아직도 고개를 들지 않고 있다. 만석중은 고개를 곧추세운 자세다. 만석중을 향해 고개를 내리 꺾고 있는 아버지 모습이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지청구를 듣고 있는 모습처럼 느껴진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동그란 형체만이 어슴푸레한 연등 사이로 형형하게 빛나는 별들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까만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을 감상하고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한다. 열 시 이십오 분. 늦지 않게 약속 장소에 가려면 최소한 열 시 반에는 출발해야 한다. 그전에는 아버지를 무대에서 내려야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나.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간간이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고 하천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가깝게 들린다. 귀뚜라미는 목청도 좋다. 저렇게 노래를 불러도 소리가 하나도 갈리지 않는다.

한 시간 반 이상 무대에 붙박이처럼 서 있는 아버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필시 만석중과 관계있을 것이다. 내가 만석중을 홀대해서 대신 용서를 빌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나를 민중의식이 부족한 놈으로 키웠음을 뉘우친다는 것일까. 어쨌든 그것은 아니지 싶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나에게 집회 참석이나 그림자놀이에 한 번쯤 가보라고 말했을 텐데, 그런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만석중만 생각하면 이가 갈릴 정도로 싫었다. 아버지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와의 감정 정리는 다음 일이다. 곧장 자리를 떠나야 하지만, 어쨌든 아버지를 무대에서 내려오게 하는 게 급선무다. 나는 눈을 감고 무대의 진행을 처음부터 회상해보았다.

, 웅숭깊은 범종 소리가 울리자 순간 깜깜해졌다. , 다시 범종 소리가 들리고 만석중을 집중적으로 비추던 조명이 꺼졌다. 무대 뒤 은막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 은막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연등 그림자가 하나씩 등장했다. () 자가 쓰인 연등과 각등에 이어 연꽃 문양의 그림자와 탑등 그림자가 연이어 등장하고 그 뒤를 또 다른 연꽃, 각등, 연등의 그림자가 따랐다. 은막 중앙의 탑등 좌우로 연꽃, 각등, 연등 그림자가 데칼코마니처럼 대칭적으로 자리 잡고 움직이지 않았다. 십 초나 흘렀을까. 등장한 역순으로 연등이 퇴장하고 나자 은막의 조명이 서서히 암전되었다. , 다시 은막에 조명이 켜졌다. 화청이 흘렀다. 은막에는 해를 형상화한 그림자가 오른쪽에서 서서히 등장했다. 그 뒤를 이어 구름이 약간 걸쳐진 보름과 성난 파도의 윗부분을 연상케 하는 물, 시커멓게 포개진 바위, 흔하디흔한 뭉게구름, 잎이 무성한 소나무, 수국을 닮은 듯한 불로초, 꼬리를 치켜든 거북이, 양 날개를 활짝 편 학, 사슴 닮은 노루가 차례로 나타났다. 십장생이었다. 등장한 그림자는 각각의 특성에 맞게 높이를 맞춰 자리를 잡았다. , 구름, 달은 소나무보다 높게, 학은 소나무 옆에, 노루와 바위 그리고 거북이와 물과 불로초는 소나무보다 낮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광대들이 연습을 많이 했는지 그림자들의 위치가 어수선하지 않았다. 마치 한 폭의 십장생 병풍처럼 조화로웠다. 노루와 학과 거북이는 두 마리가 쌍을 이루었고, 구름과 불로초는 각각 세 개씩 모여 있었다. 만석중은 이들을 향해 바라보는 자세였다.

 

, 십장생 그림자가 하나씩 사라졌다. 화청은 계속 흘렀다. , 소리에 연등 행렬이 사라지고 용과 잉어가 등장해 여의주를 서로 차지하려고 했다. 나는 그 대목에서 잠시 생각했다. 용과 잉어가 여의주를 서로 차지하려 했지만 결국 아무도 차지하지 못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언컨대 여의주처럼 큰 이권을 놓고 나는 아버지와 다툰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여의주를 혹시 어머니로 형상화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것도 아닌 듯하다. 집을 나오고 나서 나는 아버지에게 꼭 전할 필요가 있으면 직접 말을 건네는 대신 어머니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곤 했다. 아버지도 그랬다. 하지만 어머니를 서로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림자가 던지는 메시지를 나와 연관 지어 해석해보려 했다. 무언가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왕족이 권좌를 서로 차지하려는 막후의 싸움만 떠오를 뿐이다. 다시 공연의 진행 과정을 더듬었다.

, 무대 천장 가운데 매달린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바라, , 대금 등으로 연주한 곡이 흘러나올 때 아버지가 등장해 연기를 마치고, 내려가지 않았다. 내가 본 공연은 그게 전부였다.

아버지는 만석중의 역할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스쳤다. 만석중에 도통 관심이 없는 나에게 만석중이 다리로 가슴을 치고 손으로 머리를 치는 것이 깨달음만을 나타내기 위한 단순한 행위가 아님을 보여주려는 의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 이상의 역할이 있음을 알아보라고 무연하게 서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 이상의 역할은 무엇이란 말인가. 머릿속에 황사 먼지가 가득 들어찬 것처럼 혼탁하다. 무언가가 잡힐 듯하면서도 아리송하다. 나는 양손 중지로 관자놀이를 지압하며 정신을 집중한다. 멀리서 개 한 마리가 컹컹 짖는다. 여기저기서 개들이 따라 짖는다. 개 짖는 소리에, 얼음 밑을 흐르는 산골짜기 계곡물로 뇌를 말끔히 씻은 기분이 든다. 그래 그거야! 만석중이가 단순히 서 있는 게 아니라 소리로 그림자들을 총 감독하는 것. 그러니까 만석중이 소리로 신호를 보낸다 이거지. 나는 조금 들뜬 어조로 말했다.

"삼촌, 파이어조명이나 손전등 있나요?"

"파이어조명은 없고 손전등은 있는데, ?"

J가 손전등을 가지고 왔다.

"삼촌, 제가 주문한 만석중이를 전시관 오픈할 때 방문객들에게 줄 계획이라고 아버지께 좀 전해주세요. 그리고요? 당사자가 직접 나서면 다 잇속 때문이라고 곡해할지 모르잖아요? 전시관을 만들고 싶으면, 아버지가 나서는 것보다 저명한 국문과 교수님들더러 앞장서 달라고 호소해야 효과가 더 빠를 거라고도 전해주세요."

나는 나지막하게 말하고, J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J의 시선이 나와 엉킨다. 내 그림자가 은막 중앙에 비칠 수 있도록 각도와 거리를 맞춰달라고 하고선, 의자 옆에서 만석중처럼 섰다. J는 손전등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림자 위치를 조절한다. 내 측면 그림자가 은막 중앙에 고정되었다. 나는 잠시 아버지를 힐끗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호흡을 멈춘다. 그리고 만석중처럼 오른손으로 가슴을 있는 힘껏 쳤다. ! <>

 

*이 소설은 김기종의'만석중놀이'를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당선소감>


형언할 수 없는 가르침에 보답할 터

 

내가 보고 싶은 곳은 어디였을까. 유년시절, 나는 친구들과 함께 '깃대봉'에 가끔 올랐다. 완도군 생일도에 있는 해발 483m의 백운산 정상이었다. 우리는 말하곤 했다. 누구라도 잘 되면 깃대봉에 깃발을 꼽자고. 어떤 기준도 정해놓지 않은 채 우리는 저마다 먼저 깃발을 꼽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나는 틈틈이 시선을 돌려 한라산을 바라보았다. 해무 위에 올라타 있는 한라산이 눈에 들어오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언젠가는 정상을 한 번 밟아보리라 다짐했지만 아직까지 가슴 속에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당선 소식은 순식간에 나를 한라산 정상에 올려놓았다. 수면에 이는 잔물결을 뚫고 물속을 바라보는 것처럼 사물이 흐릿하게 보인 까닭은 강한 바람 때문일 것. 그랬다. 전화를 끊고 나니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모든 게 희부옇게 보였으나 머릿속에는 선명하게 떠오른 게 있었다. 소설을 끝까지 물고 늘어질 수 있게, 맑고 고귀한 채찍과 사랑을 아끼지 않으신 '타오르는 강'의 저자 문순태 교수님이었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가르침에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가닥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연이어 생오지 문학회, 고마리 소설 모임, 방송대 국문과 선후배님들, 가족과 친구 등 나를 아는 모든 분들이 다투어 떠올랐다. 한라일보와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특히원고를 읽고 또 읽어준 사랑하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또한 이 글이 '만석중놀이'의 저자 김기종 님을 비롯해 만석중놀이의 명맥을 잇기 위해 노력하신 모든 분께 힘이 되었으면 한다.

 

1968년 전남 완도 출생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

 

 

<심사평>


 

진지한 탐색과 안정된 구성 돋보여

 

이번 2012 한라신춘문예에 응모된 작품은 약 80편이었다. 그 중에서 우수한 작품이 그리 많이 눈에 띄진 않았지만, 예심 과정에서 '골든 비치'(이서안), '비스카투아르'(김간언), '그림자놀이'(강성오), ''(김만성), '제비꽃 무덤'(정혜리), '경계 위에 서다'(이석례), '서출기'(탁목영) 7편을 1차로 골라내었다. 이 작품들 가운데 이서안·김간언·강성오의 작품들을 당선 후보작으로 재차 추려냈다.

이서안의 '골든 비치'52층 쌍둥이 건물인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연이어 발생하는 자살사건을 아르바이트 대학생의 눈으로 포착한 작품이다. 서두에서 치열한 현실인식이 자못 기대되었지만, 문제의 구체적인 실상에 접근하는 데는 실패함으로써 힘을 잃어버린 점이 돌이킬 수 없는 한계로 남았다.

김간언의 '비스카투아르'는 실제 지도상에서 찾을 수 없는 기밀 지역인 비스카투아르를 소설에 등장시켜 호기심과 욕망의 문제 혹은 진실과 거짓의 혼돈에 대해 집요하게 추적한 작품으로 신선한 소재가 돋보이는 충분히 주목할 만한 문제작이었다. 그러나 상황 설정의 작위성이 끝내 마음에 걸렸다.

강성오의 '그림자놀이'는 그림자놀이(만석중놀이)의 복원 작업에 반평생을 바친 아버지와 벤더로서 홈쇼핑 관련 업체에 근무하는 아들 간의 갈등과 화해를 차분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제재에 대한 치밀한 탐색을 통해 절대자본주의시대의 전통 계승 문제를 참신하고 진지하게 접근한 점이 돋보였으며 이야기의 전개 솜씨도 퍽 안정적이었다. 다소 안이한 결말이 흠결로 지적될 수는 있지만, 작가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되어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우리 문단의 참신하고 역량 있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 김동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