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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

오늘, 나는 혼자 복숭아 통조림을 먹었다. 멀리서 들려오던 사이렌 소리가 창 밑으로 가까워졌다. 이 소리는 늘 빛과 함께 나타난다. 어두운 옥탑방에 붉은빛이 안개처럼 가라앉는다. 바닥이 붉게 흔들린다. 나는 무릎을 세우고 앉는다. 등이 차가운 벽에 닿는 순간, 깊고 날카로운 통증이 오른손 중지를 관통한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입김이 손을 데운다. 나는 손에 담긴 복숭아 향을 맡는다. 통증이 더 심해진다. 손목이 아릴 때마다 나는 수연에게 팔을 내밀곤 했었다.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그녀는 내 손목을 정성스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우리는 늘 두 손을 맞잡은 채 잠들었다. 사이렌 소리가 덜컹대는 차바퀴 소리와 함께 창 밑을 지나간다. 쇳소리가 귀를 긁자 손가락의 아픔이 사그라진다. 한 달째, 나는 방을 떠나지 않았다.

*

-이 방이라 두 달이나 살 수 있었던 거예요.

방의 전 주인이었던 여자가 말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수연의 등 뒤로 숨었다. 여자는 왼쪽 목선이 오른쪽보다 길었다. 꼭 한쪽만 늘어진 고무밴드 같았다. 그녀는 도시를 떠나면 바로 병원부터 갈 거라며 목을 쓰다듬었다. 여자는 내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수연과 대화했다.

-반지하는 질식해 죽어요. 여기는 여자 둘 살기 딱 좋죠.

물이 번진 듯, 검은 얼룩이 방구석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옮는 거 아닐까. 수연이 내 손목을 끌어당겼다.

-옆으로 와, 왜 그래?

그녀는 작게 말하는 법이 없었다. 나는 얼굴을 조금 붉혔다. 수연의 곁에 다가서며 여자의 목덜미를 힐끔거렸다. 나는 생각했다. 정말 괜찮을까. 그때 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 만에 그렇게 된 거예요?

수연도 여자의 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수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툭, 쳤다.

-그거요.

여자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소매를 더 세게 잡아당겼다. 여자가 이마를 찌푸리더니 헛웃음을 터뜨렸다. 두 달 전부터 이상했다고, 그녀는 대답해 주었다. 고개가 바로 서지 않으니 몸 전체가 뒤틀리고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강의 듣는 학생처럼 수연은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조심해서 살라고, 많이 벌어 일찍 떠나라고 여자는 덧붙였다. 나는 여자에게서 시선을 돌려 창 너머를 보았다. 검은 연기가 구름처럼 하늘을 덮고 있었다. 오후 3시였지만, 도시는 한밤중 같았다.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수연이 아니었다.

-저거 쓸 만한데 살래요?

여자는 냉장고를 가리키며 웃었다. 문을 열어본 수연은 새것도 아니고, 냄새도 난다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여자의 목이 왼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졌다.

-그냥 두고 가요. 싫으면 가져가든지.

여자가 눈썹을 찡그렸다. 여기 와서 큰 맘 먹고 장만한 건데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수연이 대답했다.

-그럼 가져가셔야겠네.

우리는 냉장고가 있는 방에서 도시의 삶을 시작했다. 수연은 멀쩡한 냉장고를 공짜로 얻었다고 좋아했다. 7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야 한다는 여자는 냉장고를 가지고 갈 수 없었다. 여자는 방을 나가며 수연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기울어진 목 때문에 장난을 거는 것처럼 보였다. 훔쳐보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여자의 성난 눈이 나에게 향했다. 모른 척 나는 창 밖을 보았다.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구름이 지상에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으로 만져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각오하고 들어서긴 했지만, 빛이 사라지는 건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어둡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나는 저녁이나 안개 낀 새벽을 상상했다. 도시로 들어서는 경계선을 넘는 순간, 낮보다 조금 어둡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빛은 갑자기 사라졌다. 긴 터널에 들어온 듯, 버스는 헤드라이트를 켠 채 오랜 시간을 달렸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며 형체들이 어렴풋이 보였지만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버스에는 수연과 나 이외에도 5명의 지원자가 타고 있었다.

나는 창에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수연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여자가 신경 쓰이느냐고 했다.

-네가 그러는 건 이유가 있겠지.

사실이었다. 나였다면 엉겁결에 돈을 더 얹어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히려 신경 쓰고 있는 건 수연이었다. 수연은 계속 그 여자에 대해 말했다. 긴 목과 얼굴 옆의 점.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지저분한 방. 수연은 특히 화장실이 끔찍하다고 했다. , 라는 내 질문에 수연은 고개만 흔들었다. 나는 화장실 문을 열었다. 불을 켜자 검은 곰팡이로 가득한 천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작고 둥근 곰팡이들이 천장을 별자리처럼 채우고 있었다. 나는 입을 벌렸다. 수연이 웃기 시작했다. 나는 이마를 찌푸리고 자리에 앉았다. 수연은 이런 방이니 냉장고를 받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였다.

-그 목,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던데.

우리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수연이 일어나 수도꼭지를 비틀었다. 물이 흐르며 싱크대를 두드렸다. 수연은 그 물을 컵에 담아 천천히 다 마셨다. 나는 다시 이마를 찌푸렸다. 수연은 수돗물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다. 나는 박스를 뒤져 주전자를 찾아냈다.

-우린 괜찮아.

수연이 말했다. 도시에 오는 걸 무서워한 나를 설득한 건 그녀였다. 전염과 부패, 부식과 오염 같은 단어들이 도시를 설명했다. ‘위험하지 않다.’ 증명은 거듭되고 매일 새로운 발표가 나왔지만 믿는 사람은 적었다. 도시가 폭발하는 영상을 모두가 지켜본 후였다.

풍선이 터지는 것처럼 도시는 폭발했다. 굉음은 땅 깊은 곳에서부터 들려왔다. 건물이 무너지고 공장이 찌그러졌다. 다리가 무너지고 하천이 넘쳐 흘렀다. 가라앉은 땅 위로 검은 액체가 흘렀다. 액체에서 빠져나온 증기가 하늘에 구름을 만들었다. 그 구름은 조금씩 바닥으로 내려앉고 있다고 했다. 도시는 망가졌다.

수연과 나는 그걸 길거리에서 보았다. 전자상가 안의 텔레비전은 폭발장면을 반복하는 뉴스채널에 고정되어 있었다. 쓰러지는 블록처럼 건물이 망가지고, 땅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는 걸 보며 우리는 손을 잡았다. 땅이 검은 진액을 토사물처럼 뱉어내는 걸 보고 나는 수연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가 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토닥였다. 고개를 들었을 때, 도시는 온통 까맣게 색칠되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상들을 지우려 애썼다. 고시원 반지하에는 창이 없었다. 눅눅한 냄새가 가득한 방안에서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비규환, 지저분한 거리, 부러진 전봇대와 가라앉은 건물들, 죽음. 시체. 어둠. 누군가의 살 내음을 맡고 싶었다. 수연을 껴안고, 그녀의 어깨에 코를 묻은 채 바닥을 구르고 싶었다. 나는 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인아.’ 수연의 목소리는 너무 작았다. 내 숨소리를 낮추고서야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수연은 공장직원 3명과 한방에서 지냈다. 다른 방 사람들 때문에 복도에서도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우리는 속삭였다. 무서워. 내일. 주말 같은 단어들을. 옆방에서 벽을 똑똑 두드렸다. 나는 말을 멈췄다.

넉 달 전 도시의 인력을 모집하는 공고가 났다. 수연은 가자, 라고 말했다. 나는 가면?, 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뭔가를 빽빽하게 적은 에이포 종이를 건네며 말했다.

-돈이 생기잖아. 같이 살자.

정부가 제시한 금액은 내가 한 달 동안 버는 돈의 다섯 배였다. 주거지가 피해지역에서 멀어 안전하다고 했다. 종이는 수연의 계획서였다. 글을 읽고 있는 내게 수연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우리가 살게 될 방이라고 했다. 방을 발음할 때 그녀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지금의 저축으로는 생각도 못할, 큰 창이 여러 개 있는 전셋집이었다. 나는 도시락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다. 주문을 받고 판매하는 일이었지만, 일손이 모자라면 도시락을 만들고 때로는 배달도 했다. 항상 밤 10시를 훌쩍 넘곤 했다. 수연은 일이 고되기는 어차피 마찬가지라며 나를 설득했다.

같이 살자. 수연의 그 말이 입안에서 계속 맴돌았다. 창이 있는 방으로 가려면 2년은 넘게 걸릴 것 같았다. 전화비 때문에 통화도 하루에 5분 이상을 하지 못했고, 여관에 가면 두 시간 안에 나와야 했다. 동거할 생각을 처음 한 건 아니었다. 늘 저축이 문제였다. 조건이 좋지 않은 반지하 정도는 구할 수 있었다. 그건 수연이 싫다고 했다. 그녀는 좋은 곳에서 시작하고 싶어 했다.

그날 수연은 얇은 목티에 오래된 파카를 입고 있었다. 돈을 다 써서 극장에도 여관에도 가지 못했다. 우리는 거리를 두 시간 정도 쏘다니다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하나씩 먹었다. 고시원 앞에서 수연이 내 손을 한 번 잡았다 놓았다. 파카 때문에 그녀는 눈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수연이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뒤를 몇 번 돌아보며 내게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그녀의 등은 점점 멀어져 작은 점이 되었다. 나는 두세 걸음 앞으로 걸었다. 하얀 파카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의 등은 다시 점이 되었고, 멀어졌다. 나는 수연이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걸 보고 있었다. 멀어졌다 싶을 때마다 나는 몇 걸음을 더 걸었다. 수연은 건널목을 지나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갔다. 추웠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동차 불빛과 가로등이 없다면 이곳 역시 어두울 것이다. 고시원에 돌아간 나는 전셋집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방은 따뜻해 보였다. 다음날 나는 수연에게 가겠다고, 도시로 가자고 말했다.

도시의 열기는 40도를 웃돌았다. 나는 건물의 잔해를 옮기고 부수는 일을 했다. 일을 시작하고 반 시간이 지나면 마스크와 모자가 땀에 젖어 축축해졌다. 녹아내린 신발 밑창 때문에 걷기가 고역스러웠다. 거북함은 일주일 만에 익숙해졌다. 그래야 했다. 삼일이 더 지나자, 일에도 익숙해졌다. 치우고 담고 묶고 버릴 것. 동작이 빨라지고 눈치가 늘었다.

한 달이 되던 날, 나는 수연보다 일찍 일어났다. 수연은 얼굴을 베개에 묻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수도꼭지를 반만 열어 물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도록 했다. 세숫대야에 손바닥을 대고 물이 손목까지 차오르기를 기다렸다. 석회 때문에 물이 희부연했다. 나는 쭈그리고 앉은 채 대야의 물을 몸에 뿌렸다. 몸에 희끗한 무늬가 생겼다.

수연은 여전히 누워 있었다. 나는 수연의 얼굴로 다가갔다. 숨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나는 수연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일어나야지.

수연이 끙, 하는 신음을 내며 몸을 돌렸다. 몸이 무거워. 그녀는 그 말을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보다 늦게 일어났다며, 창피하다고 했다. 목소리에는 기운이 없었다. 놀란 나는 전등을 켰다. 몸을 반쯤 일으킨 수연이 불빛에 눈을 찌푸렸다. 나는 그녀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열은 없었다. 수연이 내 손을 부드럽게 밀었다. 그녀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괜찮아.

수연의 입술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상했다. 수연이 내 어깨를 슬며시 밀었다. 또 농담을 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말했다.

-너 진짜 피곤해 보여. 입술색 너무 어둡다.

수연이 고개를 한 바퀴 돌렸다. 목뼈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나는 수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그 괜찮다는 말 좀 그만 하라고 쏘아붙이고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근육이 뭉친 수연의 어깨는 납덩이처럼 딱딱하고 무거웠다. 나는 손가락 끝에 힘을 잔뜩 주고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듯 문질렀다. 단단한 어깨는 쉽게 풀어질 것 같지 않았다. 수연은 아프다는 소리조차 하지 않았다. 텅 빈 벽면을 바라보며 주무르고 있는 거 맞아?’ 라든지 약간 시원하다.’ 라는 말을 낮게 내뱉을 뿐이었다. 그녀의 몸이 이렇게 굳는 동안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이 무안했다. 나는 손가락을 등뼈를 따라 아래로 움직였다. 그녀가 등을 곧게 펴도록 누르고 주물렀다. 손가락이 내려갈 때마다 그녀는 나지막하게 신음했다. 열기가 천천히 몸에 퍼지고 살결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나는 그녀를 엎드리게 했다.

-?

-다리도 해줄게.

수연은 시계를 보고 잠시 고민하더니, 뛰어가지 뭐. 라고 말하고는 바닥에 엎드렸다. 나는 그녀의 허리와 다리를 덮고 있는 이불을 걷어냈다. 나는 그녀의 종아리를 보았다.

-.

그녀가 바닥에 댄 얼굴을 들며 무슨 일인지 물어왔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안마 안 해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양손을 수연의 종아리에 올렸다. 수연의 종아리는 평소보다 부어 있었다. 정체 모를 이물질이 단단히 뭉쳐 있는 듯한 촉감이 느껴졌다. 나는 수연의 종아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제법 힘을 줬는데도 수연은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제대로 주무르고 있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웃으며 그렇다고, 정성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며 그녀의 종아리를 힘껏 문질렀다. 피부 아래 팽팽히 부푼 검푸른 혈관이 만져졌다. 혹여 터져버리는 건 아닌지, 나는 손에서 힘을 뺐다. 조심스레 주무르는 사이 끔찍한 상상은 곧 사라졌다. 단단한 어깨 근육이 풀렸던 것처럼 그녀의 다리도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매일 밤 해주겠다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다 사라졌다. 부끄러워서였다. 베개에 얼굴을 묻은 수연이 간지럽다며 웃었다. 문득, 수연이 말했다.

-, 목마르다.

수연이 일어나 냉장고를 열었다. 끓인 물이 떨어졌는지 수연은 컵에 수돗물을 따랐다. 수돗물을 삼키는 수연의 목울대가 큰 소리를 냈다. 나는 다가가 컵을 빼앗았다.

-끓여 먹기로 했잖아.

수연은 대답 대신 시계를 가리켰다. 출근 시간이 거의 가까워져 있었다. 우리는 옷을 챙겨 입고 장갑과 마스크를 찾았다. 장화를 신자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수연이 계단을 두 칸씩 뛰어 내려갔다. 나는 수연의 뒤를 쫓아 밤길 같은 골목을 달렸다. 뜨거운 바람이 이마에 달라붙었다. 우리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 나아갔다. 조금 떨어진 앞에서 희미한 빛이 어른거렸다. 골목이 끝나는 곳이었다. 우리는 더 속도를 냈다. 골목이 사라지고 사거리가 나타났다. 발을 디딘 바닥에서 아지랑이 같은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폐허나 다름없는 도시의 몸 일부가 눈앞에 드러났다. 트럭 3대가 도로를 지나갔다. 몇 대는 길가에 서 있었다. 건너편에서 트럭 한 대가 길게 경적을 울렸다. 수연이 그 트럭을 향해 뛰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내가 탈 트럭을 찾았다. 오른편에서 익숙한 트럭이 덜덜거리며 달려왔다. 나는 수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트럭에 올라탄 수연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기계가 건물을 무너뜨리는 동안, 나는 팀장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임시 가로등 불빛에 흙먼지가 비쳤다. 콘크리트와 벽돌, 나뭇조각이 뒤섞여 흩어졌다. 건물은 고철이 되어 바닥에 주저앉았다. 기계가 마무리 작업을 끝내자 팀장이 손을 들었다. 나는 건물의 잔해로 다가갔다. 불결한 것들의 무덤. 일꾼들은 이곳을 그렇게 불렀다. 나무와 콘크리트, 벽돌, 철근과 녹슨 못들이 검은 진액에 엉겨 있었다. 나는 약품으로 타르를 닦아내고 고철을 분리했다. 수작업이 아니면 처리할 수 없는 과정들이라고 했다. 땀이 흐르는 걸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약 냄새도 막을 수 없었다. 일하다 보면 타르의 냄새와 약품의 냄새가 구분되지 않았다.

얼룩으로 덮인 자재들을 치우고 나자 타르로 덮인 바닥이 보였다. 타르는 열기에 녹아 끈적했고, 용암처럼 끓고 있었다. 타르는 내가 붙인 이름이었다. 아무도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것은 크고 작은 기포를 터뜨리며 일렁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눈꺼풀 사이로 뜨거운 가스가 스며들었다. 나는 실눈을 떴다. 모두가 바닥에 약품을 뿌리기 시작했다. 타르가 조금씩 굳었다. 몇 시간 동안 계속 손을 쓴 탓인지 손목이 저릿하게 아팠다. 나는 일어나 손목을 주물렀다. 일꾼들을 살피던 팀장의 눈이 내게 멈췄다. 그가 내 전신을 훑어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마스크를 눈 아래까지 당겨쓰고 검은 땅으로 다시 몸을 숙였다.

돌아오며 슈퍼에 들렀다. 도시에 들어온 후 우리는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버는 만큼 먹자는 거였다. 수연은 도시에서의 삶이 우리가 시작한 새로운 삶의 출발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첫날 우리는 두 배 가격을 주고 산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다. 고기는 질기고 맛이 없었지만, 수연은 좋아했다. 그래도 꽤 느끼했는지 그녀는 주전자의 물을 모두 마셨다. 수연은 곰팡이가 핀 화장실을 밤새 들락거리며 민망한 듯 웃었다.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는 소리가 졸졸,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때야 나는 우리가 함께 있다는 걸 실감했다. 화장실을 마지막으로 다녀온 뒤 수연은 말했다.

-계속 이렇게 먹는 거야.

우리는 한동안 닭고기나 마른오징어 같은 음식들도 사 먹었다. 가끔은 조리된 소고기를 먹기도 했고, 슬라이스 치즈와 빵을 사와 샌드위치를 만들기도 했다. 대부분 밀폐된 용기에 개별 포장된 비싸고 평범한 질의 음식들이었지만 수연은 기뻐했다. 나도 좋았다. 수연의 말대로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장조림과 햄을 고른 후 슈퍼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한쪽에는 도시 밖에서 들여온 비싼 식재료 코너가 있었다. 밖에서 들여오는데다가 유통기한까지 짧은 야채는 너무 비쌌다. 거의 들어오지 않는 과일은 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수연과 나는 아주 가끔 야채를 샀다. 지난주에 먹은 야채를 또 사도 되는지, 나는 매장을 세 바퀴나 돌며 계속 생각했다. 잡지를 보고 있던 주인이 내 장바구니를 흘겼다. 나는 한 바퀴 더 슈퍼를 돌았다. 잔뜩 부어 있던 수연의 다리가 계속 생각났다. 나는 야채 코너 앞에서 서성였다. 버는 만큼 먹기로 했으니까. 그래도 나는 계속 망설였고, 매장을 한 바퀴 더 돌았다. 주인이 신경질적으로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한 남자가 슈퍼로 들어왔다. 그는 비듬이 심했다. 걸을 때마다 눈이 날리는 것처럼 하얀 비듬이 떨어져 내렸다. 그는 슈퍼 안을 둘러보지 않았다. 라면 한 박스를 찾더니 계산을 마치고 곧장 나갔다. 그 남자가 걸어간 자리에 비늘처럼 희끗희끗한 조각들이 남아 반짝였다. 나는 야채코너에서 오이와 상추를 집어 들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수돗물을 컵에 따라 마시는 수연이 보였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수연은 입가의 물을 닦고 다가와 봉지를 거들어 주었다. 수연은 오이와 상추를 보고 좋아했다.

-그래, 야채를 먹어야 잘 사는 거지.

수연은 배가 고픈지 오래 기다리지 못했다. 나는 햄을 굽고 오이와 상추를 씻어 상을 차렸다. 수연은 햄과 야채를 조금 집어 먹고는 계속 물을 마셨다. 나는 물을 끓여주겠다고 했지만 뜨거운 건 싫다고 했다. 수연은 아침마다 물 2리터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갔다. 한동안은 밤에 물을 끓이기도 했는데, 방안을 데우는 열기를 참기 힘들었다. 결국, 조금씩 물을 사 마시거나 수돗물을 마시는 수밖에 없었다. 갈증이 심해지면서 수연은 점점 물을 많이 마셨다.

밥을 다 먹은 수연이 벽에 등을 기댔다. 여전히 몸이 불편한 듯했지만 물컵을 내려놓지 않았다. 나는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수연이 도우려는 듯 몸을 일으켰다.

-?

수연의 중얼거림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수연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내 시선과 마주친 수연이 민망한 듯 웃었다.

-너무 많이 먹었나 봐.

수연은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리가 꿈쩍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내가 치울게. 좀 누워.

설거지를 끝낸 후 나는 수연의 곁에 가 누웠다. 물이 가득 찬 수연의 배가 부드럽게 출렁였다. 나는 그녀의 배를 눌렀다. 뱃속에서 물이 찰랑대는 소리가 들렸다. 수연이 몸을 기울일 때마다 그 소리가 났고, 나는 웃음이 나서 잠들 수 없었다. 문득, 그녀가 중얼거렸다.

-복숭아 먹고 싶다.

나는 돌아가면 황도 한 박스를 사주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회색입술을 벌려 웃었다. 그녀는 종일 복숭아만 먹자고 대꾸했다. 방에서 안 나갈 거야. 이어 그녀는 손을 들더니 복숭아를 쥔 자세를 취했다. 입을 벌리고 복숭아를 베어 무는 시늉을 했다.

-이때 즙이 흐르는 거야.

수연이 내 손을 잡았다. 수연은 내 손목을 주무르며 계속 복숭아에 대해 떠들었다. 우리는 곧 잠들었다.

새벽녘, 수연이 싱크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는 모습이 잠결에 흐릿하게 보였다. 수연의 다리는 마치 코끼리 다리처럼 크고 단단하고, 무거워 보였다. 꿈인가. 나는 곧 다시 잠이 들었다.

-입맛이 없네.

밥을 먹다 말고 수연이 말했다. 수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계속 갈증만 나.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연이어 물 두 컵을 마시고 누웠다.

-우리 얼마나 모았지?

그녀가 물었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방구석 상자로 다가갔다. 상자 맨 아래에 통장 두 개가 있었다. 나는 수연이 모은 돈과 내가 모은 돈 액수를 차례로 불렀다. 지하나 옥탑이 아닌 방을 구할 만큼의 액수였다. 일주일 뒤면 우리가 점찍어 둔 집을 구할 돈이 마련될 거였다. 수연이 웃었다. 이런 날이 오긴 하는구나. 수연은 기쁜 듯 말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나는 가방에서 통조림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 기념이야. 수연이 피식 웃으며 일어났다. 통조림이었지만, 황도의 진한 향은 남아 있었다. 탁자로 다가온 수연이 손으로 복숭아 조각을 집었다. 나는 그녀가 복숭아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기대에 차 있던 표정은 기묘하게 일그러졌고, 뭔가 알 수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나는 통조림의 유통기한을 확인해 보았다. 기한은 한참 남아 있었다. 다시 수연을 보았을 때 그녀는 탁자에 놓인 음식들과 복숭아 그릇을 굳은 얼굴로 보고 있었다.

-이상해. 맛이 없어.

나는 복숭아 조각을 입에 넣었다. 달큼하고 부드러운 과육이 입안에서 으깨졌다. 복숭아 향이 입안을 휘젓고 과육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보고 수연이 말했다.

-물컹하기만 해. 맛을 모르겠어.

나는 수연이 피곤해서 그렇다고 위로했다. 사실이었다. 보름 동안 세 번이나 일을 쉴 정도로 수연은 피곤해했다. 그리고 이건 싸구려니까. 나는 통조림을 옆으로 치우며 말했다. 수연이 통조림을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우리 한 달만 더 일할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연의 얼굴은 조각상처럼 하얗고 단단해 보였다. 수연은 또 물을 마셨다. 갈증이 멈추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싫어?

-아니, 모르겠어.

나는 선택을 잘하지 못했다. 뭔가를 선택하고, 삶을 만들어가는 일이 나는 어려웠다. 내가 택한 일들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 같았다. 반면에 수연은 늘 그런 선택들을 단숨에 해버리곤 했다. 수연의 곁에 있으면 특별히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괜찮아. 수연이 말했다. 돌아가서 작은 카페를 차리자. 수연이 또 물을 마셨다. 전세금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우리는 도시에 석 달을 더 머물렀다.

수연의 두 다리가 건물기둥처럼 크고 단단하게 부풀어 있었다. 오랜만에 도시 밖에 나가 외식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수연은 나갈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겨우 날짜를 맞춰 받은 휴일이라 나도 아까웠다. 수연은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를 입고 옥탑방 계단을 내려갔다. 그녀는 열 걸음도 걷지 못하고 심하게 지쳤다.

-못 가겠어, 목이 너무 말라.

수연의 허벅지는 바위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나는 수연을 부축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수연의 치마를 걷었다. 그녀의 다리는 아침보다 더 부풀어 있었다. 손바닥으로 종아리를 쓸어보자 하얀 가루가 묻어 나왔다.

-못 움직이겠어. 무거워.

그녀는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나는 수연의 다리를 손바닥으로 때려 보았다. 수연의 얼굴이 더욱 굳었다. 아프지 않다고 했다.

-더 세게 때려봐.

그녀의 종아리를 나는 주먹으로 두드렸다. 그녀는 계속 말했다. 더 세게. 조금 더 세게 때려봐. 나는 주먹을 공중에 높이 들었다. 기계가 건물을 무너뜨릴 때처럼, 나는 손에 무게를 실었다. 주먹이 수연의 다리와 부딪히며 진동했다. 손목이 부러질 듯한 아픔이 팔 전체를 흔들었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렸다. 수연이 내게 손을 뻗는 게 느껴졌다. 그녀의 손은 내게 닿지 못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허리까지 딱딱하게 굳어 몸을 굽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왜 난 안 아파?

나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때야 수연은 내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었다. 내 품 안에서 수연은 조금씩 더 부풀고 있었다. 나는 팔에 힘을 주었다. 깍지 낀 손이 서서히 풀리며 손가락 끝이 겨우 맞닿았다. 바닥에 나무껍질 같은 하얀 조각들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돌아가자는 나를 수연이 설득했다.

-조금만 버티면 정말 카페를 할 수 있어.

그녀는 병원에 가면 된다고 말했다. 수연은 완강했다. 그녀는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방 위에 서 있었다. 그녀는 내 손을 주무르며 괜찮다고 말했다. 나으면 되지. 나을 수 있어. 내 손을 수연이 잡았다. 수연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는 항상 설득력이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뭐든지 할 수 있고, 말대로 될 것 같은 이상한 착각을 불러오곤 했다. 나는 우리가 살게 될 따뜻하고 넓은 방을 생각했다. 돌아가면 우리는 그 방에서 함께 살게 될 것이다. 같이 아침을 먹고 같이 잠드는, 이곳보다 밝고 따뜻한 그 방에서. 울음이 고인 가슴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함께 노력하면 정말로 카페나 작은 옷 가게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내 어깨를 어루만지는 수연의 손이 점점 딱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건물의 무덤들이 늘어났다. 폐허 위를 비둘기 몇 마리가 돌아다녔다. 도시의 비둘기는 더는 새라고 할 수 없었다. 몸은 강아지만 하고 다리는 비정상적으로 컸다. 발가락 끝에는 야생짐승처럼 날카로운 발톱이 자랐다. 그들은 그것으로 타르 속을 파헤치고 쓰레기 더미를 뒤졌다. 무엇보다 그들은 날지 못했다. 타르와 먼지가 엉겨 붙은 날개가 배에 달라붙어 있었다. 만일 그들이 날 수 있었다면 진작 이 도시를 떠났을 것이다. 거리 한가운데서 비닐봉지를 든 채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봉지를 가슴에 끌어안고 걸었다. 팀장에게 신청해 받은 구급약과 소화제, 위장약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팀장은 무슨 약을 이렇게 많이 신청하느냐며 눈을 가늘게 떴다.

-재인 씨, 어디 아파?

그냥 준비해 두려 한다고, 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막연히 수연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염증약이나 소염제 같은 것들을 얻고 싶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다. 전염병이 돈다는 소문이 일꾼들 사이에 퍼져 있었다. 일꾼들은 눈을 흘기며 주변 사람을 살폈다. 몇 명은 일을 그만두고 도시를 떠났다. 소염제라도 말을 해볼까. 눈치를 보던 내게 팀장이 말했다.

-재인 씨, 일 하나 더 할래?

그는 손을 비비며 내게 눈을 찡긋했다. 세 배는 더 벌 수 있어. 그의 턱에 검은 반점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나는 눈길을 돌리며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기회라며 말을 흐렸다.

세 배. 봉지를 끌어안고 나는 중얼거렸다. 열흘은 단축될 것 같았다. 수연은 얼굴을 제외한 몸 전체가 암석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그녀는 오직 물만을 마셨다. 나는 돌아가자는 말을 몇 번이나 했지만 수연은 조금만 더, 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억울하잖아.

그녀 말대로 저축이 모자랐다. 아무런 대비 없이 돌아가서 돈을 생활비로 다 쓰게 될지도 몰랐다. 좋은 집이라 유지비도 많이 들 거야. 그 말을 할 때 수연의 목이 그늘의 진흙처럼 굳어갔다. 나는 매일 아침 대야에 물을 가득 받았다. 가느다란 호스를 그녀의 입술에 물려주고 집을 나섰다. 그녀는 그렇게 선 채 나를 배웅했다. 일터로 가는 트럭 안에서 나는 줄어드는 날짜를 세었다. 하루는 길었고 숫자는 느리게 줄어들었다. 초조함은 불안을 불렀다. 목이 늘어난 여자가 떠오를 때가 있었다. 나는 다리를 떨었다.

생각을 그만두고 앞으로 걸었다. 길바닥은 끈끈해서 걸을 때마다 신발이 붙었다 떨어졌다. 마스크와 모자를 쓴 사람들이 몸을 웅크리고 걸었다. 나도 똑같은 자세였다. 옆에서 쓰레기통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썩였다. 비둘기다. 직감한 나는 옆으로 자리를 피했다. 타르가 묻은 비둘기가 쓰레기통에서 푸드덕 튀어나왔다. 비둘기의 붉은 눈이 나를 응시했다. 나는 모른 척 고개를 숙였다. 비둘기가 날개를 펼치고 입을 벌렸다. 날개 틈에서 붉은 핏물이 타르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발톱이 타르를 할퀴듯 파고들었다. 봉지를 든 내 손에 땀이 찼다. 비둘기가 한 걸음 더 다가오고 나는 뒷걸음질쳤다. 비둘기 발밑에 검은 덩어리가 실 뭉치처럼 엉켜 있었다.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따라오던 비둘기가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머리에 타르를 뒤집어쓴 비둘기는 눈을 뜨지 못했다. 나는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비둘기가 부리 속 새카만 혀를 떨며 울고 있었다.

방에 돌아오니 수연이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대야의 물은 모두 줄어 있었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서 호스를 빼냈다.

-목 말라.

나는 수연의 얼굴을 감쌌다. 그녀는 턱까지 돌처럼 굳어 있었다. 대야에 물을 담았다. 흐르는 물에 손을 가져가자, 손등이 지느러미처럼 흔들렸다. 등 뒤에서 수연의 마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호스를 들고 일어났다.

-조금만, 조금만 참으면 돼.

수연이 입술을 겨우 움직였다. 두 배로 부푼 몸은 바위처럼 단단하고 무거웠다. 따뜻했던 살결은 차가웠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수연이 물을 삼키는 소리만이 방안에 가득 찼다. 벽에 등을 기대고 그 소리를 들었다. 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후 대야의 물을 한 번 더 채웠다. 넘칠 듯한 수면을 본 후, 나는 팀장에게 연락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팀장이 눈을 흘겼다. 그가 내민 손을 잡고 트럭에 올라탔다. 그가 자신의 몸을 내 몸에 붙여 왔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때 트럭이 돌을 밟으며 덜컹대는 바람에 팀장은 옆으로 밀려났다. 트럭에 탄 사람들이 욕설을 내뱉었다. 다시 평지를 달리는지 승차감이 편해졌다. 팀장은 조금 전보다 몸을 더 붙여 왔다. 나는 손을 허공으로 올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빈 어둠뿐이었다.

트럭이 멈추고 얼굴에 빛이 쏟아졌다. 나는 갑작스러운 빛을 손으로 가리며 트럭에서 내렸다. 누군가 인원을 세는 소리가 들렸다. 그 뒤로 내가 타고 온 트럭보다 세 배는 큰 화물 트럭이 보였다.

인원을 센 남자가 명령하자 화물트럭도 움직였다. 일꾼들은 줄을 지어 트럭의 뒤를 따랐다. 마지막 사람 뒤로 손전등을 든 남자가 따라붙었다. 산기슭을 걷는 것 같았다. 누구도 질문하지 않았다. 도시에서보다 더 매캐하고 독한 냄새가 마스크를 통과해 들어왔다. 뒷사람이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냄새는 점점 더 지독해졌다. 귓가와 눈두덩에 물기가 느껴졌다. 안갯속을 헤엄치듯 나는 천천히 걸었다. 몇 분 뒤 움직임을 멈추라는 신호가 왔다. 나는 숨을 낮게 뱉었다.

모두에게 삽 한 자루를 주었다. 나는 손전등을 쥔 남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나는 할 일을 금방 눈치챘다. 트럭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 어딘가에 묻는 것이다. 흐린 불빛을 따라 다른 인부들을 찾았다. 그들은 사람 키보다 훨씬 깊은 구덩이에 들어가 있었다. 갑자기 손목이 저려왔다. 손전등을 든 남자가 시작하라고 소리쳤다. 트럭에서 물건이 빠르게 내려왔다. 나는 자루에 싸인 그것을 움켜잡았다. 따뜻했다. 그것은 떨어지면서 공기가 빠지는 풍선 같은 소리를 냈다. 나는 자루를 계속 받았다. 소리는 똑같지 않았다. 둔탁하게 부딪히는 것들도 있었고, 가벼워서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일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손목 저림이 심해졌다. 칼날로 찍는 듯한 통증이 손가락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마지막 물건이 넘어왔다. 나는 서둘러 자루 끝을 잡았지만 바들거리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다. 허둥대며 나는 다시 자루를 끌어안았다. 내 품속에서 그것은 살아 있는 것처럼 가볍고 부드럽게 진동했다. 손전등이 당황한 내 얼굴을 비쳤다.

-빨리 안 던져?

나는 머리 위로 자루를 힘껏 던졌다. 공중에서 자루가 꿈틀, 움직이는가 싶더니 구덩이 바깥으로 날아갔다. 내게 욕설이 날아왔고 트럭의 불빛들이 구덩이 근처를 훑었다. 빛이 내게 가까이 오며 발아래를 비추었다. 그 순간 나는 많은 것을 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뼈마디. 다리가 길거나 짧은 기형적인 몸들. 코가 없는 사람과 입이 없는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나는 빠르게 움직이던 눈동자를 바닥 한 곳에 고정했다. 엉켜 있는 두 형체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사람의 형태였는데 아이처럼 작았다.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 나는 눈을 감았다.

일이 끝난 후, 팀장이 내게 봉투를 주었다. 돈은 제법 많았지만, 팀장이 말한 액수보다는 적었다.

-남은 돈은요?

그가 봉투를 쥔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그대로 있었다. 그의 표정이 점점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세워 내 팔꿈치를 따라 올라갔다. 그의 손이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그때 그의 눈가로 검은 반점들이 자잘하게 번졌다. 반점들은 그의 턱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검은 반점이 곰팡이처럼 그의 얼굴 전체에 피어올랐다. 나는 귓불을 만지는 그의 손을 부드럽게 밀쳐냈다. 그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나는 그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 그를 지나쳐 앞으로 걸었다. 그가 내 이름을 몇 번 부르더니 소리를 질렀다.

-! 너 남은 돈은?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수연이 보고 싶었다.

문을 열었다. 어스름한 형광등 불빛이 방안을 밝혔다. 오래된 전구 속에 쌓인 먼지 때문에 빛 사이에 그늘이 졌다. 수연이 방안에 우뚝 서 있었다. 나는 수연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이마와 머리카락은 아직 매끄러웠다. 그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숨을 멈추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크기의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돌아가자.

대답 대신 그녀의 입김이 목덜미에 와 닿았다. 나는 다시 말했다.

-가자.

-안돼, 조금만 더 참자.

칼로 저민 듯, 다시 손가락이 아팠다. 중지 한 가운데 검은 선이 나 있었다. 가늘고 긴 벌레가 움직이듯 검은 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수연의 볼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를 끌어안은 팔을 풀었다. 하얀 석회가 나무껍질처럼 그녀의 얼굴을 천천히 덮어가고 있었다. 석회는 그녀의 입술을 덮고 코를 덮었다. 그녀의 눈에 곧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이 고였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순간, 석회가 그녀의 얼굴을 모두 덮었다. 머리카락이 끊어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그녀의 가슴에 귀를 기울였다. 딱딱한 바위 안에 그녀의 심장이 아직 뛰고 있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그녀의 심장을 짚었다. 벌레처럼 움직이던 손가락이 반으로 쩍, 갈라졌다. 수연의 몸 안에서 울음 같은 소리가 길게 들려왔다.

 

다음 날, 도시에 봉쇄령이 내렸다. 아침저녁으로 트럭들이 돌아다니며 도시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을 잡아 태웠다. 전염병 때문이라고 했다. 트럭의 사이렌 소리가 도시를 끊임없이 울렸다.

*

창문을 조금 연다. 밖의 차갑고 매캐한 공기가 콧속으로 빨려 들어온다. 문을 더 열자 양쪽의 어둠이 순식간에 섞인다. 나는 손으로 벽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찾는다. 낡은 전구가 비추는 방안은 새벽녘처럼 흐릿하다. 이 불빛 아래서 수연과 끌어안고 있으면 꼭 안개를 덮고 있는 기분이었다. 수연은 그 자리에 여전히 서 있다. 나는 그 옆에 앉아 있기로 했다. 큰 컵에 수돗물을 한가득 따른다. 그녀의 다리에 몸을 기대고 앉는다. 차가운 촉감이 볼을 문지른다. 그녀의 숨소리가 들린다. 불안한 듯 급하고 거칠다. 나는 손으로 그녀의 다리를 토닥인다. 괜찮아. 그리고 나는 물을 천천히 모두 마신다. 씁쓸한 맛이 혀끝에 남는다. 나는 다시 그녀의 다리에 머리를 기댄다. 전구가 마지막 빛을 발하는 모양이다. 소음을 내며 깜빡인다. 전구 옆까지 검은 곰팡이가 번졌다. 다리가 무겁다. 갈라진 손가락이 뱀처럼 똬리를 튼다. 전구가 끊긴다. 어두워진다.

 

<당선소감>


타자 누르는 손가락 늘 무겁게 할터

 

첫 문장을 쓰는 일이 늘 어렵다.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몇 시간을 보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떠오르는 오만가지 생각 중 하나를 간신히 잡고 나면, 그 다음이 더 어렵다. 타자를 누르는 손가락이 점점 무거워지는 기분이 든다.

내가 보는 것들은 세상의 미세한 부분일 뿐이다. 그 부분을 글자로 옮기는 일들이 감사하고 소중하다.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않는다. 다만,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있는 순간 배어나오는 감정들에 대해 쓰고 싶다. 그 감정의 관계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감사한 분들이 정말 많다. 황지우 선생님, 김경욱 선생님, 서창과 친구들. 밤새 함께 글을 쓰고, 보여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들 덕분에 덜 외로웠다. 부족한 글에 기회를 주신 경향신문사와 심사위원 선생님들에게도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항상 응원을 아끼지 않은 가족들. 부모님을 만난 일이야말로 내가 가진 최고의 행운이었다. 사랑한다. 두 분을. 소설에서는 한번쯤 써본 이 말을 두 분께 해 드린 적이 없다.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나보다 더 깊고 넓은 세계를 가진 이들을 많이 알고 있다. 이번에는 내가 운을 약간 더 지녔던 것 같다.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손가락을 늘 무겁게 하겠다. 다시, 첫 문장이다.

 

1986년 전북 전주 출생 전북대 국문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전문사 졸업 예정(2)

 

 

<심사평>


 

주제 장악하는 힘, 꾸밈 없는 인물과 주제 탐구 돋보여

 

소설에서 장식적인 요소는 언제나 작가 자신에게 재앙이다. 많을수록 더 큰 재앙이 된다. 더구나 삶과 인간에 대한 탐구가 결여된 채로 꾸미는 데 열중하는 것은 아주 좋지 않은 습관이다. 멋을 부린 문장이나 부적절한 비유 같은 것으로 생각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본심에 오른 스물세 편 가운데에는 상식적 수준에서 시작되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로 끝나고 마는 작품이 적지 않았다. 불필요하게 이국적 배경이나 소재를 끌어들인 작품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파쿠르’ ‘출구’ ‘이었다. 각기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모두 어떤 점은 새롭고 어떤 점은 낯익었다. 야마카시(고층건물 사이를 옮겨다니는 익스트림 스포츠)나 디스토피아, 실직과 해고 같은 이야기들, 영화를 통해 소설을 통해 무척 자주 마주치게 되는 소재다. 그것을 통해 어떻게 작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는가, 그 지점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드러났다.

파쿠르는 독사와 전갈의 관계를 포함하여 재미있게 이야기를 펼쳐나간 점은 돋보였으나 작가 자신의 생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출구는 단정한 문장으로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섬세하게 그리고 있었으나 이야기가 끝내 평범한 지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주제를 장악하는 힘, 꾸밈 없이, 흔들리지 않고 인물과 주제를 탐구해나간 점에서 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는 오랜 논의가 필요치 않았다 !

심사위원 : 황석영·최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