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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티카

정의권

 

1

날이 희붐히 밝아오자 수조 속이 한눈에 들어왔다. 죽은 광어들이 수조 가운데 서 있는 환수기둥에 가득 들러붙었다. 어젯밤에 예상했던 폐사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저녁에 사료를 주고 나서 수조의 물을 환수시킬 때면 다음날 광어가 얼마쯤 죽었을지 쉽사리 감이 왔다. 먹이를 잘못 먹었거나,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은 녀석들이 빠르게 헤엄쳐 다녔다. 이른바 회유(回遊)였다. 건강한 광어는 거의 돌아다니지 않는다. 양식업자들도 놈들이 그저 수조바닥에 엎드려 있길 바랐다. 회유란 광어에게 어떤 병이 서서히 퍼져온다는 불길한 신호였다.

뜰채를 이용해 폐사 한 마리를 건져 올렸다. 하얀 뱃바닥에는 부항을 뜬 모양새로 둥근 피멍이 울룩불룩 돋아났다. 골프공 크기로 촘촘히 구멍을 뚫어놓은 환수기둥에 몸이 휘감긴 채 온밤을 보낸 탓이다. 얼룩덜룩한 주검얼룩도 등 곳곳에 돋아났다. 뒷지느러미 옆으로 메추리 알만한 내장까지 쑥 튀어나와 있었다. 등에 동전 크기의 궤양이 생겨 표피가 허옇게 헌 놈, 농양으로 몸 여기저기서 고름이 흐르는 놈들을 뜰채로 휙휙 들쑤시며 환수기둥에서 건져냈다.

폐사를 다 떼어내고 수조에서 돌아 나오려는데 저만치서 광어 두 마리가 물 위로 정신없이 오르락내리락거렸다. 스쿠티카 기생충이 뇌를 갉아 먹는 탓에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나는 놈들을 낚아채려 수조 끝을 향해 걸어갔다. 방수복을 입은 터라 걸음걸이가 쉽지 않았다. 눈알까지 썩어가는 두 놈을 멀찍이서 뜰채로 낚아챘다. 발 근처에 엎드린 광어를 재미삼아 쿡 짓밟았다. 엷은 피를 토해내며 부리나케 내빼는 녀석을 보자 히쭉 웃음이 새어나왔다. 평소처럼 광어 몇 놈의 대가리를 장화 굽으로 콱콱 내리밟고서 물 밖으로 올라왔다. 통로에 놓인 폐사통 여남은 개를 손수레에 내싣고 사육동에서 느릿느릿 걸어 나오다 마당 가운데 서 있던 오소장과 그만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희수 오늘 일 안 나온댔수꽈?”

김반장이 잰걸음으로 오소장에게 다가갔다.

폐사했소.”

오소장이 짧게 대답했다. 무단결근이란 뜻이다. 애써 피해 다녔지만 소장은 나를 계속 눈빗질했나 보다. 도끼눈을 지릅뜬 채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무척 매서웠다. 매사 철두철미한 그가 희수의 무단결근을 여태 모를 리 없다. 벌써 사육동을 샅샅이 뒤집어 보고 다녔겠지. 물론 녀석이 일을 관뒀음을 모른 채. 험상궂은 얼굴로 줄곧 나를 쏘아보았지만 아무런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과음한 탓에 속이 미식거렸다. 일하는 게 너무 귀찮아졌다.

이녁, 어제 희수랑 밤새 술 먹었쩌?”

오소장의 눈치를 살피던 김반장이 잽싸게 나를 다그쳤다. 손수레에서 폐사통을 내리던 나는 그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양식장 꼴 참 잘 돌아간다, 잘 돌아가. 에라 이.”

제 성질을 못 이긴 오소장이 대뜸 폐사통을 걷어찼다. 폐사통 하나가 팩 나동그라지더니 미끈한 점액질과 함께 광어 예닐곱 마리가 땅바닥으로 쭉 미끄러졌다. 썩은 내가 코를 찔러왔다.

, 조성룡이. 그 새끼랑 얼마나 퍼마셨길래 여태 일을 안 나와?”

 

 

직원들도 가시눈을 뜨고서 나를 흘겨보았다. 간밤에 술집 여급까지 숙실로 데려와 술판을 벌린 게 영 못마땅하다는 기색이었다.

정말 혼자 소주 한 병 마시고 잤다니까요.”

여전히 나는 의아하다는 몸짓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술도 덜 깬 얼굴에다 입에는 역한 술내까지 풍겨댔지만 오히려 능청스러우리만큼 태연해졌다. 오소장이 나를 믿건 말건 이제 그 따위는 전혀 대수롭지 않았다. 끝까지 우기고 들면 다들 어쩔 거야. 오로지 내 머릿속에는 어젯밤 희수의 그 섬뜩한 눈빛만 계속 맴돌았다. 그때 좀 전에 넘어진 폐사통 안에서 광어 두 마리가 불쑥 튀어나와 파다닥거렸다. 스쿠티카에 걸려 눈알이 썩어 비어져 나온 채 물 위를 어지러이 맴돌던 놈들이었다.

야 임마, 한두 번 말해! 숨 붙었다 싶으면 병어(病魚)수조에 넣어두랬잖아!”

병어수조까지 걸어가기 귀찮아서 놈을 폐사통 밑바닥에 감춰 나온 게 화근이었다. 나를 노려보는 오소장의 퉁방울눈이 또 한 번 희번덕거렸다. 그곳에 넣어두더라도 이삼일도 더 못살 놈이었다. 하긴 어병이 심해지자 수시로 활어차가 들락날락거렸다. 병이 들었지만 조금이라도 숨이 붙은 광어는 폐기처분치 않고 헐값으로 떠넘긴다.

김반장, D사육동에도 폐사가 이리 많소? 병 심한 수조부터 빨리 팔아치워야지 원.”

너무 신경 쓰지 마우다. 다른 양식장에도 스쿠티카가 많이 돕서…….”

내가 바닥에 흐트러진 폐사를 줍는 사이 오소장이 김반장에게 뭔가를 거듭 되물었다. 나는 직원들의 폐사통을 슬쩍 쳐다보았다. 죽은 광어들이 평소보다 곱으로 많았다. 독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병만 점점 더 심해져갔다.

진작 임파실린 먹였으면 이 꼴 안 났지. 희수가 이 개자식, 니가 결국 요 따위로 개긴단 말이지. 제기랄, 성질 같아선 그 새끼 입에다 임파실린 한 통을 통째로 부어버릴 판인데. 다들 뭣들 하고 섰어! 치어동부터 임파실린 급이할 거니까 약사료 만들 준비나 해. 성룡이 너는 성어동 물 빠지는 대로 얼른 다 포르말린 약욕(藥浴)시켜!” 오소장의 얼굴색이 연신 붉으락푸르락거렸다. 포르말린을 놓아둔 창고로 들어서려는데 그가 내 뒤통수에 대고 연이어 잔소리를 날렸다. “임마, 너도 술 좀 그만 처마셔.”

희수가 결근해 이렇듯 일손이 바쁘니 오늘은 그냥 넘어가겠다는 말투였다. 그간 내가 그와 한 조가 되어 군소리 없이 일해 온 점도 참작했겠지. 하지만 나도 이젠 양식장 일이 슬슬 지겨워졌다. 오소장의 질책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약욕이고 뭐고 모두 다 귀찮아졌다. 까짓 광어가 회유를 좀 한들 어쨌단 말이냐. 나는 간밤 술자리에서 희수가 거침없이 내뱉던 냉소만 자꾸 떠올랐다. 임파실린이 영심이표 매독이란 의뭉스런 비유와 함께였다.

 

2

이 자식아. 수조 좀 똑바로 내려다보지 마라. 이젠 귀에 못이 박힐 정도잖아.” 어느새 등 뒤로 다가온 희수가 내 팔을 와락 잡아끌었다. 사료박스를 손수레에 싣고 치어사육동에서 돌아 나오다 무심결에 수조 안으로 고개를 쭉 내밀던 참이었다. 어린애 손바닥만한 광어들이 부챗살 펴지듯 달아났다. 이내 꼬물꼬물 몰려다니며 허연 뱃바닥을 엎치락뒤치락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무심코 내딛는 발자국 소리에도 스트레스 받아 병 생긴댔잖냐. 수면 위로 들락날락대는 놈들 좀 봐라, .”

술병이 난 탓인지 그는 손으로 연신 가슴을 훑어 내렸다. 나는 수조에서 몇 자국 떨어져 조심스레 안을 들여다보았다. 광어 몇 마리가 물 위로 정신없이 고개를 치밀며 맴돌았다.

눈깔이 뻘겋게 튀어나온 저 놈?”

그래. 기생충이 안구까지 퍼져 눈이 썩어가는 거다. 뇌도 야금야금 파 먹혀 망사꼴 났겠지. 스쿠티카 이게 양식장에선 엄청 골치 아픈 병이야.”

희수는 한쪽 다리를 남 보기에 불편할 정도로 떨었다. 더구나 녀석은 두 손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말 내내 사료주걱을 이손 저손 옮겨 쥐길 반복하더니 돌연 눈을 빗뜬 채 나를 쳐다보았다.

마땅한 치료방법이 정말 없어?”

저렇게 증상이 눈에 보이면 치료는 아예 물 건너갔다. 날 때부터 감염돼 잠복했거든. 일단 발병하면 뒤늦게 치료한답시며 설쳐대도 실은 내성만 잔뜩 키울 뿐이지.”

희수는 버릇처럼 입술을 비쭉 말아 올리며 콧숨을 휙 내쉬었다. 여전히 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눌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녀석은 일 하나만큼은 딱 부러졌다. 양식장에서 치어사육을 전담하려면 최소한 칠팔 년은 경력을 쌓아야 했다. 치어는 그만큼 폐사율이 높아 노련한 관리가 필요한 거였다. 다들 희수는 양식장 일이 천직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는 일을 마치면 어김없이 술에 절어들었다. 술이 취하면 꼭 혼자서 뭔가를 중얼거리며 돌아다녔다. 나이 많은 직원들에게도 예사로 하대하니 그들과 잘 섞이지 못하고 늘 외돌았다.

, 오소장이 내일 치어동부터 임파실린 먹이겠다던데.”

뭐야? 소장놈이 그예 약 갈아버렸어?”

, 아침나절에 나랑 같이……

얼결에 내뱉은 말이 화근이었다. 이 약을 두고 2주전부터 그는 오소장과 신경전을 벌려 왔었다.

지랄, 어딴 놈이 또 그 약 쓰자고 자꾸 부추겼나 보네.”

때마침 오소장과 직원 몇몇이 성어사육동에서 걸어 나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희수가 그들을 빤히 쳐다보며 씨우적거렸다.

부추기긴 누가 부추겨. 스쿠티카 확 퍼져버리면 누가 다 책임지나.”

오소장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대꾸했다.

병 나돌아 골 아파 죽겠는데 그딴 내성이 뭔 대수라고.”

야야, 너 고생이야 잘 안다만 이번엔 오소장님 시키는 대로 해.”

그래. 제발 좀 적당히 설쳐대라. 매사 왜 그리 복잡하게 굴어.”

다른 직원들도 하나같이 오소장을 거들고 나섰다. 그러거나 말거나 희수는 얼빠진 놈 마냥 입술을 비죽대며 오소장을 노려보았다. 뭔가를 꺼내려는지 한쪽 손을 바지주머니에 넣고 한참이나 주물럭거렸다.

다들 뭣들하고 섰어. 사료 언제 다 먹일 거야!”

오소장은 직원들에게 사료급이가 더디다며 괜한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가 관리책임자라하나 실은 희수가 양식장을 도맡아 관리하는 형편이었다. 치어관리는 물론 약 뿌릴 시기와 광어에게 먹일 사료량, 출하계획까지 그가 알아서 일일이 직원을 부려대니 오소장으로서는 제 일거리를 거의 다 덜은 셈이었다.

오소장이 사무실로 급히 들어가버리자 희수와 나는 냉동고에서 사료박스를 꺼내 손수레에 실었다. 두 수레만 더 뿌리면 오늘 급이도 모두 끝이라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둘은 수레를 하나씩 끌고 치어사육동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침착하게 변해 있었다. 고기들이 놀라지 않게 발걸음을 조심조심 내딛으며 사료를 집어 들었다.

늘 말하지만 사료 줄 땐 골고루 흩뿌리는 게 제일 중요해. 서로 받아먹으려고 다투지 않게 최대한 넓게 퍼뜨려야 한다. 사료찌꺼기가 바닥에 쌓이면 꼭 병이 생기니 항상 양 신경 써서 골고루 먹이고. 저렇게 고기 많이 몰린 곳엔 좀 더 뿌려주는 식으로.”

희수의 손놀림은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웠다. 양식장에서 꽤나 인이 박힌 사람조차 그의 솜씨를 따라가지 못했다. 사료주걱을 한 손에 쥐고 탁구 드라이버 날리듯 휙 뿌려대면 사료가 투망 퍼지듯 쫙 흩어지며 수면 위로 사르르 내려앉았다. 그 큰 양식수조 절반이 한 번에 덮어졌다. 나 같으면 네댓 번을 뿌려도 못 따라갈 만큼 기막힌 솜씨였다. 어딘가 정신을 놓아버린 듯하다가도 일을 할 때면 사람이 달라졌다. 더구나 다른 직원과 달리 자신의 말을 조금도 어김없이 그대로 실천했다. 늘 술에 절어 사는 인간에게서 어떻게 저런 성실함이 나오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어느새 사육동 주위로 차차 어둠이 내려앉았다. 급이를 마친 직원들이 마당에 모여 사료박스를 물세척했다. 희수와 나는 씻어놓은 사료박스를 물기가 빠지게끔 냉동창고 벽을 따라 세워나갔다. 반시간 쯤 지나 뒷정리가 모두 끝나자 다들 부랴부랴 사옥식당으로 들어섰다. 식탁에 둘러앉아서 저마다 소주를 맥주컵 가득 채웠다. 밥이 나오기 전에 한 잔 쭉 비워내면 꽁꽁 얼붙은 몸이 하루의 피곤과 함께 노근노근 녹아내렸다. 온몸에 잔뜩 밴 비린내가 후끈한 콧숨 밖으로 사라지고, 기분이 멍하니 좋아져 저녁이면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어라. 한강 상수원에 포르말린 무단방출로 구속이라고?”

뉴스를 보던 직원 하나가 까짓 포르말린을 얼마나 방출했다고 구속까지 됐냐며 비웃어댔다.

한강에다 약욕시키고 물 안 갈아줘서 잡혀부렸냐? 하긴 제때 새 물 안 틀면 한강 고기 허벌나게 뒤집어질껄, 허허.”

옆에 앉아 있던 직원 역시 우스갯소리로 떠들어댔다.

, 광어가 웃다 뒤집어지겠다. 놈들에게 밤낮없이 포르말린 뿌려대면서.”

빈 소주잔을 내려놓는 희수의 손이 어느새 떨리지 않았다. 다시 소주를 컵 가득 부어 단숨에 들이켰다.

일주일이면 독기 대충 빠진다는데 뭐 어때? 우리 먹을 것도 아닌데. 아닌 말로 고기만 안 자빠지면 그만이지. 백 번을 치던 이백 번을 치던.”

그럼 실험실 포르말린에 쩌려 놓은 물고기나 회쳐 매일 술안주 하시지.”

희수는 습관적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말고 오소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무엇을 꺼낼 듯 오른손을 바지주머니에 계속 집어넣은 채였다.

암만 그래도 임파실린 회보단 낫겠지. 흐흐.”

누군가 농담조로 임파실린을 거들먹거리자 희수의 눈빛이 순간 험해졌다. 이내 바지주머니에서 흰색 알약을 한 주먹이나 꺼내 식탁에 쏟아 부었다.

다들 술안주로 하나씩 씹어 먹지 그래. 이 만병통치약을 물고기에게 다 주긴 너무 아깝잖아.”

이 자식이, 보자보자 하니까 못하는 짓이 없어. 누가 임파실린 함부로 들고 다니랬나.”

오소장이 실눈을 뜬 채 호통을 쳤다. 숟가락까지 식탁에다 세차게 내려놓자 이에 지지 않고 희수도 거칠게 대거리했다.

우선 소장님부터 네댓 알 맛보시라고.”

그는 알약 몇 개를 소장의 밥그릇 앞으로 밀어 올렸다.

니기미. 니가 광어 애비애미냐! 고기 다 자빠지면 니가 몽땅 책임질 꺼야!”

오소장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다짜고짜 밥그릇을 바닥에다 내동댕이쳤다. 희수도 그를 매섭게 노려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들더니 소장에게 내던져버렸다. 만원권 지폐 예닐곱 장이 밥상 위로 파라랑 흩어졌다. 밥을 먹다말고 모두들 그것에 눈길이 쏠렸다.

좋소. 누가 진짜 약발 받나 두고 봅시다. 두고 봐.”

희수는 식당문을 발로 홱 걷어차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씨불씨불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 저 싸가지 없는 늠이. 소장님한테 하는 말버릇 좀 보주게. 늬귀 앞에서 대가릴 빠딱 쳐들어, 나참.”

털털대는 식당문에 눈길을 두던 김반장이 얼붙은 분위기를 녹이려 뒤늦게 눙치듯 나섰다.

골 빈 새끼. 여태 정신 못 차렸군. 남들 다 임파실린 치는데 지 혼자 사육환경개선이니 어쩌니 떠들다 고기 다 쥑여버리고선 어디 와서 또 말아먹을 작정이야.”

잘난 친환경양식장 만들어보려 그랬다잖아. 대학물 먹은 놈들은 저래서 안 된다니까.”

재빨리 돈을 주워 간추리던 직원 둘이 오소장의 험한 인상을 살피며 이에 맞장구쳤다. 가만히 돈을 받아 쥐던 그가 지폐 한 장을 탁자 위에다 툭 내려놓았다.

겉멋만 잔뜩 든 새끼 같으니라구. 부러 지놈 하는 대로 좀 내버려뒀더니 이젠 아예 누굴 가르치려 들어. 자자, 이 돈으로 다들 간단히 소주나 한잔 더 하도록 해. 지놈 보너스인데 안 받겠다면 그만이지, .”

오소장 또한 식사를 관둔 채 식당에서 나가버렸다. 여느 때처럼 화를 애써 삭이며 한발짝 물러선 거였다. 직원들은 그가 남기고 간 돈으로 소주를 잔뜩 사와 왁자지껄 술을 마셨다. 나는 식사를 대충 마치자마자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양식동 뒷마당에 위치한 숙실로 돌아왔다. 2층과 마찬가지로 방이 모두 세 개였지만 두 곳은 잡다한 자재를 쌓아놓았다. 나머지 하나를 희수와 내가 공동으로 썼다.

나는 비린내가 잔뜩 밴 작업복을 벗지도 않고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뜨거운 난방열에 등이 흐물흐물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를 찾아 인근 술집으로 가보려했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잠시 눈을 붙이려다 내리 두 시간이나 자버렸다.

, 샌님. 여태 잔 거야? 오늘 임파실린 간다고 고생 좀 했을 걸. 어서 목이나 달래라. 히힛.”

막 잠에서 깰 무렵 희수가 방문을 열어 젖혔다. 그의 손에는 검은 봉지가 하나 들려있었다. 술집 여급으로 보이는 아가씨도 뒤따라 들어왔다. 허리까지 늘어지는 긴 생머리에다 짧은 가죽치마 차림이었는데, 글래머에 가까운 몸매에다 얼굴 또한 상당한 축이었다. 어쩐지 계면쩍어진 나는 짐짓 눈을 비비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인사해라. 감로다 단란주점 영심이다. 광어 스무 마리나 팔아도 요년 육회 한 점 맛볼까 말까지.”

희수가 그녀의 사타구니를 쓰다듬으며 힐쭉거렸다. 소장이 임파실린을 쓰겠다고 말할 때부터 녀석은 난데없을 만큼 사람이 달라져버렸다.

요새 영심이 땜에 양식장 사내들 등골 다 빠질 판이야. 고기 몰래 훔쳐내느라고.”

그새 또 단란주점에 갔었어?”

오냐, 접대 받으러. 소장놈 앞으로 달고 일찌감치 이차 데리고 나왔다. 따따블 주고.”

소장 앞으로 달았다구? 같이 있었던 거야?”

그 자식 활어차놈과 짜고 무게 속이다 나한테 걸렸었지. 입막음조로 찔러주던 돈 아까 몽땅 되돌려줬잖냐. 대신 아가씨 한번 데리고 놀겠다는데 지놈이 어쩌겠어. 크크큭.”

그건 그렇고 아까 왜 그리 열불을 냈어? 임파실린이 대체 뭔데 그래? 아침에 소장과 같이 믹서로 갈았는데 목이 어찌나 가렵던지 여태 가래가 끓어.”

짜식아. 영심이에게 직접 물어봐라. 양식장 놈들이 영심이 진가를 몰라서 함부로 설쳐대지. 흐흥.”

희수는 그녀의 옆구리를 손으로 쿡 찌르며 거듭 의뭉을 떨었다.

오빠 정말 몰라서 물어? 악성 매독치료에나 쓰이는 지독한 항생제잖아.”

영심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껌을 쫙쫙 씹어댔다.

두 알이면 영심이 거시기도 숫처녀보다 깨끗해질 걸.”

희수가 그녀의 치마를 살짝 들치며 말했다.

아냐. 완전 내성이야. 이젠 두 알론 어림도 없다니까. 호호홋.”

앉은 자세를 바꾸려 영심은 한쪽 다리를 치켜세웠다. 은빛 망사팬티가 유난히 내 눈을 자극했다.

하긴 사람 거시기인들 내성이 안 붙겠어.”

희수의 말에 따르면 이 약은 내성을 극대화시키는 부작용이 항상 뒤따른다고 했다. 광어가 더 죽어나가기 전에 이런저런 위험을 감수하며 잠시 병세를 지연시킬 마지막 극약처방인데, 양을 조금만 잘못 계산해도 독기를 못 견뎌 물고기가 죽어버리는 탓에 마리수와 무게를 따져 정확한 용량을 지켜야 한다면서.

술이 몇 순배 돌 무렵 나는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걸어 나가려는데 눈앞에 위치한 D사육동에서 인기척소리가 들려왔다. 사육동 출입문이 반쯤 열렸고 그 안에서 손전등 불빛이 간간이 새어나왔다.

아래위로 다 해처먹는군. 이젠 또 저놈들이 설쳐대니.”

희수가 바지춤을 추스르며 내 뒤로 다가왔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육동에서 직원 둘이서 집어상자를 마주 들고 부랴부랴 걸어 나왔다.

이봐, 그리 서둘지 말어. 오소장 그놈 지금 계집질에 정신없을 테니.”

희수가 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난데없이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화들짝 놀라 상자를 바닥에다 떨어뜨려버렸다. 둘 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댔다. 곧 직원 하나가 우리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왔다.

희수 너 언제 들어왔냐? 술 한창 퍼마실 시간 아냐?”

그가 겸연쩍은 낯빛을 감추며 물어왔다.

고깟 한 상자 훔쳐서 어느 년 육횔 맛보겠어. 모텔 잡아놓고 두 놈들끼리 비역질이나 한 번 하고 나오면 끝이겠군 그래.”

희수는 팔짱을 끼고 서서 둘을 응시했다.

육회는 무슨. 오소장이 소주값만 주고 안주값은 안 주고 가서 말이지. 헤헤헤.”

그는 방문 앞에 놓인 여자 구두를 내려다보며 빈 웃음을 지어보였다. 뭔가 더 말을 하려다 말고 손을 두어 번 흔들며 서둘러 돌아섰다.

그럼 우리도 회나 한 마리 처 먹어볼까.”

그들이 양식장 밖으로 사라지자 희수도 뜰채를 쥐어들었다. 사육동으로 들어가더니 한참 후에야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길쭉한 접시 하나가 들려있었다. 나는 생각 없이 젓가락을 쥐어들다 그만 놀라버렸다. 두 줄로 가지런히 담긴 회 가장자리에 광어의 머리가 놓였던 게다. 놈은 아직도 주둥이를 뻐끔뻐끔거렸다. 그 사이로 작은 물거품이 일다 사라졌다. 검붉게 썩은 눈알이 핏기를 머금은 걸쭉한 점액질에 뒤덮인 채 주둥이까지 비어 나와 간댕거렸다.

아이잉, 이게 뭐야. 징그럽게.”

나 못지않게 영심 또한 무척 당황한 얼굴이었다.

, 먹어봐라. 이게 바로 스쿠티카 회다. 신선한 기생충까지 덤으로 회쳐 먹는. 영심이 망사팬티 좀 봐라. 이놈도 뇌에 바람구멍이 숭숭 나버렸잖냐.”

희수는 우리의 뜨악한 시선에 아랑곳 않고 젓가락 가득 회를 집어 들고 질겅질겅 씹어댔다. 나는 살아서 팔닥팔닥거리는 광어의 대가리를 짓씹은 듯 구역질이 치밀었다.

오빠는 여기서 얼마나 일했대?”

영심은 벌렸던 다리를 모으며 내 쪽으로 돌렸다. 나 역시 접시에서 급히 눈길을 거두고 그녀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이틀 뒤면 두 달이지. 근데 그딴 건 왜 물어?”

다들 두세 달을 못 견디고 관두니까 그러지. 양식장 사내들도 우리처럼 달첩질한다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왔겠어. 호호홋.”

하긴 그새 전임소장을 시작으로 네 놈이 일을 관뒀군.”

내가 양식장에 들어온 첫날에 직원들이 서로 입을 맞춘 양 건네던 말이 있었다. 여기서 얼마나 일할 거냐? 한두 달 일하려면 내일이라도 당장 관둬라. 그렇게 말하던 자들이 벌써 반이나 떠나갔다. 그들 역시 기껏 몇 달을 버티다 오간단 말도 없이 `회유'해버린 꼴이었다. 하긴 사장부터 면세유 도용에다 불법 매립, 분식회계로 돈을 빼돌렸지 않았나. 수시로 바뀌는 직원을 핑계 삼아 늘 정원에서 한두 명씩 적게 고용했다. 그렇게 챙긴 돈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뒷돈을 대다 적발돼 감옥에 가버렸다. 다급해지자 이유 없이 전임소장을 해임시키고 친척인 오소장을 부랴부랴 불러들였다.

왜 다들 한곳에 진득하니 못 붙어 있고 그리 떠도는 거야?”

정말 몰라서 물어?” 희수가 나를 한참이나 노려보았다. 계속 가래를 킁킁 끓더니 사이 뜨게 대답했다. “내성 탓에 부단히 회유하는 꼴이지. 그렇다고 양식장서 뛰쳐나간 놈들이 다른 일 할 것 같아? 이 지역에 양식장만 몇 백 개가 넘는다. 그러니 열에 아홉은 다시 양식장으로 달첩질하러 기들어 가지. 어딜 가더라도 별 어려움 없이 바로 작업할 수 있잖냐. 수차례 양식장 떠돌다보니 이 일엔 아주 판수익었거든.”

에이, 오빠들. 일 얘긴 그만하고 어서 한잔들 해. 이러다 밤시간 다 날리겠네. 포르말린과 항생제 따위가 뭔 대수야. 그딴 건 요놈처럼 골 다 파 먹힌 광어도 안단 얘긴데 뭘.”

줄담배를 피워대던 영심이 광어 머리에다 꽁초를 눌러 껐다. 미간에 주금이 잔뜩 잡힌 채였다. 희수는 그런 그녀에게 군눈조차 돌리지 않고 말을 내리엮었다.

흐흥, 오소장 그 능구렁이 같은 새끼가 우리 머리 위에서 펄펄 날고 있단 말이야. 어디 지놈부터 영심이표 매독 한번 단단히 맛봐라지.”

오늘따라 녀석은 뜻 모를 비웃음을 유별스레 자아냈다. 사실 소장이 지난 몇 주 동안 스쿠티카를 잡으려고 한 일은 치료가 아니라 단지 항생제 쏟아 붓기에 불과했다. 한 양식장에서 병이 생기면 그곳의 고기 배설물이나 먹이 찌꺼기가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이 바닷물을 끌어다 쓰는 다른 양식장에도 덩달아 병이 옮겨진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양식장마다 비슷비슷한 병이 나돈다. 그러면 또 너도나도 항생제를 뿌리는 일이 반복되기 마련이었다.

영심이표 매독과 매한가지야. 차차 병 옮고 옮기다보면, 흐흥.”

영심이표 매독?”

임마, 임파실린 말이야.”

희수는 얼이 빠진 듯 멍하니 빈 잔을 내려다보았다. 어쩐 일인지 까닭 없이 실실 웃어대다가 또 화내기를 반복했다.

아까는 임파실린 쓰면 안 된다더니 지금은 또 무슨 소리야? 스쿠티카 땜에 너 요즘 너무 과민반응하는 거 몰라? 까짓 임파실린은 또 뭐라고. 그 일로 양식장 문 닫았다더니 그래서 그런 거야?”

어느 새끼가 그러던? 김반장 또 그놈이이야! 약 안 쓰겠다고 똥고집 부리다가 거덜 났다고. 오냐, 논 팔고 집 팔고 빚까지 내서 양식장 차렸다 이 년도 못가서 다 말아 처먹었다. ? 너도 내가 우습게 보이냐? 그래 니놈도 실컷 비웃어라.”

그는 회접시에다 가래를 탁 내뱉더니 혼잣말을 계속 더 중얼거렸다. 내가 불쾌한 얼굴색으로 꿍하게 앉아 있자 이내 타이르듯 말해왔다.

근데 술 다 떨어졌잖아. , 나가자. 나가서 술 한잔 더 빨아야지.”

이제 그만 마시자. 내일 또 일해야 하잖아.”

임마, 폐사통에서 뭔 일을 해. 아가씨도 특별히 불러 앉혔는데 뽕을 뽑아야지. 영심이 넌 이 인간 어떻게든 꿰차고 나가서 골을 쏙 빼먹어버려라.”

 

3

포르말린을 채운 말통 예닐곱 개를 성어사육동으로 모두 옮기는 사이 성어수조마다 물이 발목까지 빠졌다. 나는 빈 말통에다 포르말린을 반쯤 담고서 급히 수조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말통에다 물을 가득 담아 골고루 섞었다. 이를 바가지에 한 가득 퍼 담아 수조 위로 조심스레 흩뿌렸다. 그리 주의를 기울였건만 나도 몰래 포르말린 희석액이 눈에 한 방울 튀어들었다. 눈알이 화끈화끈 달아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기름에 달달 볶은 고춧가루를 눈에다 휙 부어버린 느낌이었다.

니기미, 오늘 밤 잠 또 다 잤네.”

나는 급한 마음에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뭔가 손에 걸려 재빨리 꺼내보니 민망하게도 여성팬티였다. 영심의 망사팬티가 왜 내 주머니에 들었는지 의아스러웠지만 앞뒤 따질 겨를이 없었다. 이를 움켜쥐고 눈 주위를 살며시 닦아냈다. 자칫 손으로 비벼댔다간 병든 광어처럼 눈이 시뻘겋게 충혈될 뿐만 아니라 바늘로 눈알을 쿡쿡 쑤셔대는 듯한 고통까지 밤새도록 당해야 했다.

애꾸눈으로 어렵사리 성어동에서 약욕을 마치자 벌써 점심때가 가까워졌다. 직원들은 소장이 아침나절 만들어놓은 임파실린사료를 손수레에 가득 싣고서 저마다 분주히 급이하고 있었다. 희수가 결근한 탓에 다들 가외로 떠맡은 수조가 두세 개씩 더 늘어났다. 점심식사에 늦지 않으려면 발바닥에 약내가 날 정도로 빨리 움직여야 빠듯이 끝낼 터였다.

다들 사료 주지 말어!”

냉동고에서 사료를 꺼내 손수레에 툭툭 싣는데 별안간 발자국 소리가 요란스레 들려왔다.

야야야. 사료 주지 말란 말이야!”

누군가 다급히 사육동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외쳤다. 사육동 안에선 절대 뛰어다니면 안 되잖아. 나는 입버릇처럼 이 말을 외며 뒤를 돌아보았다. 직원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내게로 달려왔다.

큰일 났다. 약 잘못됐는지 치어 다 나자빠진다.”

나는 사료박스를 내팽개치고 치어사육동으로 뛰어갔다. 직원들이 죄다 그리로 모여들었다. 치어들이 수조 곳곳에서 배를 허옇게 뒤집은 채 죽어 있었다. 아직 숨이 붙은 놈들이 그 사이로 힘없이 헤엄쳐 다녔다. 잠시 뒤 수조 가운데서부터 치어들이 도미노 무너지듯 와르르 뒤집혔다. 분명 임파실린 양이 과했던 게다.

뭘 보고 있어! 빨리 물 틀어 환수시켜. 환수. 어서, 이 자식들아!”

오소장이 직원들을 향해 다급히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미 늦었음을 다들 잘 알았다. 이건 약욕이 아니다. 새로 물을 갈아서 독한 포르말린을 빼내는 일과는 전혀 달랐다. 이미 고기가 약을 먹어버렸는데 이제서 어쩌란 말인가. 치어가 거의 다 죽어버렸다. 요행히 살아남은 녀석들도 독한 약기운에 찌들려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치어수조 모두가 온통 폐사통으로 변해버린 꼴이었다.

뭣들 해! 어서 뜰채 가져와, 뜰채. 산 놈이라도 건져내란 말이야!”

오소장의 입에서 목멘 소리가 연신 튀어나왔다. 치어 수십 마리가 물위로 날면들면 주둥이를 치켜들고 맴돌았다. 그때였다. 놈들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스쿠티카에 걸린 광어는 먼저 눈부터 점점 번들거린다. 해가 져 수조 속이 차차 어두워지면 녀석들의 눈알은 식인상어만큼이나 예리한 빛을 뿜어댔다. 순간 나는 어젯밤 희수가 나에게 내보이던 눈빛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 임파실린이나 쭉쭉 뿌려대라, 히힛. 개새끼들, 어차피 치료할 놈도 치료 받을 놈도 없잖냐. 아예 싹부터 몽땅 쓸어버려야 할 판이지. 어디 양식장 한 곳만 유독 병이 심하겠어.”

나는 희수를 이끌고 양식장으로 되돌아가려 했다. 물론 녀석은 끝내 되돌아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또또 그 얘기. 이제 그만 양식장으로 들어가자니깐.”

지랄, 너나 폐사통에 처박혀 천년만년 폐사나 건져내고 살아라. 이 새끼야. 출근해 봤자 난 내일부턴 할 일도 없어.”

내 말에 아랑곳 않고 희수는 계속 술을 마시려 들었다. 술기운에 금방이라도 머리꼭지가 팩 돌 지경인 나는 혼자서라도 술집을 나서려 했다. 그러자 녀석도 덩달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술값 내버려두랬잖아. 요년이나 데리고 나가고.”

희수가 영심의 어깨를 떠밀며 출입문 쪽으로 휘청휘청 걸어왔다. 내가 카운터에 계산서를 내려놓고 보란 듯이 지갑을 꺼내들자 녀석이 갈퀴눈을 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 너 이 새끼. 니가 왜 계산하려 해? 오라, 광어 훔쳐 판 돈으로 술 처먹고 계집 주무르긴 역겹다 이 말이야!”

이건 다만 술기운을 못 이겨 내보이는 행동이 아니었다. 나에 대한 불신이 가슴 가득 끓어오르는 지 몹시 사나운 얼굴이었다.

저쪽에서 임파실린 써버리면 내성 탓에 이쪽에선 암만 고길 잘 관리해 왔어도 한순간에 물거품 돼버리는데..... 이 자식, 지금 감히 날 비웃는 거야? 골 나간 새끼. 사람들 회유가 뭐 어째!”

돌연 그의 눈이 번쩍거렸다. 영심이를 어깨에다 훌러덩 엎쳐 매더니 팬티를 쭉 벗겨냈다. 그녀를 땅에 도로 내려놓기 무섭게 은색 망사팬티를 내 머리 위에다 너무도 능수능란하게 덮어씌워버렸다.

누구야? 어느 새끼가 어제 갈아놓았던 약통에 손댔어? 어느 놈이 임파실린 건드렸냐구!”

오소장이 쇳소리에 가까운 절규를 내지르며 치어수조로 텀벙 뛰어들었다. 미친 듯이 두 손을 휘적거리며 고기들을 건져 올렸다. 직원들도 덩달아 그를 뒤따랐다. 다들 고개를 들었다 숙였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정신없이 설쳐대는 꼴이 스쿠티카에 걸려 물 위로 수시로 머리를 내미는 저놈들과 너무나 흡사했다.

어느새 내 눈은 병든 광어를 바라보는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바닥에 나뒹구는 뜰채를 냅다 주워들고 습관적으로 손을 힘껏 움켜쥐었다. 급히 일어선 탓인지 머리가 핑 돌았다. 두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며 뱃가죽을 드러낸 채 몸이 붕 떠오르는 듯했다. 숙취에다 실내를 가득 감도는 강한 약냄새 탓도 있었다. 포르말린으로 눈이 팅팅 부어 앞이 점점 더 가물거렸다. 급기야 다리가 휘청거려 손에 쥔 뜰채를 수조 아래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방향감각을 잃은 듯 몸이 앞뒤로 자꾸만 흔들렸다. 누군가 되레 나를 휙 낚아챌 것만 같았다. 겁결에 나는 앞뒤 따질 겨를도 없이 다른 직원들처럼 수조 속으로 허겁지겁 뛰어내렸다. 죽은 고기들에 휩싸인 채 내 몸도 그들과 같이 위아래로 심히 요동치는 거였다.

 

<당선소감>

겨우 복권 살 돈 마련했을 뿐, 당첨 될지는 두고봐야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소설로 쓰자면 장편 열두 권도 넘을 거라는 이들이 주위에 더러 있을 터이다. 물론 그들만의 신산한 아픔이 넘쳐나겠지만 대개 우리는 얼마 듣지 않고도 그저 그렇고 그런 이야기쯤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오랜 습작기를 거쳐 오는 동안, 내 당선소감을 단편소설로 쓰면 열두 편도 넘겠다며 빈말을 흘리곤 했다. 하지만 이런 내 핍진한 감정도 위의 경우와 마찬가지리라. 그래서 어느 소설 구절로 이를 대신하고자 한다. “이제 겨우 복권 살 돈을 마련했을 뿐이다. 당첨이 될지 안 될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함께 복을 나누고픈 분들이 자꾸자꾸 떠오르는 건 인지상정인가 보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굴하지 않고 시인으로 당당히 살아가고자 했던 선친과 그런 분을 한평생 힘겹게 뒷바라지하느라 애간장 다 타버리신 어머니께 먼저 이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고모 및 고모부, 큰형 내외, 작은형, 지호, 나아가 50명이 넘는 우리 대가족에게도. 또한 나를 두고 흐뭇해하실 선생님, 사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내 주위의 많은 친구들, 한백 99학번에게 늘 미안해 왔음을 이번 기회에 꼭 말하고 싶다. 사랑하는 문우 및 `종각역 글벗들'에게도. 첫눈에 반한다는 사실을 지난 12년간이나 내내 각인시켜준 H에게도 이 기쁨을 전하고 싶다. 문학을 만나지 않았다면 못 만났을 너인데, 소설 쓰기를 관두지 못하게 된 지금은 또 어떻게 널 짝사랑해 갈는지.

 

정의권(35)계명대 행정학 및 문예창작학과 졸업

 

<심사평>


 

생생한 현장감 속 절실하고 입체적인 삶의 풍경 제시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 중에 `주름버섯', `사라연', `직박구리가 사는 은행나무', `김밥천국', `타작', `스쿠티카'가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이 여섯 편의 응모작은 모두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다.

전반적으로 문장력과 구성력에서 성실함과 진지함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경쟁이 치열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우리는 특히 `타작', `스쿠티카'에 주목했다. `타작'은 무엇보다도 정교하게 짜인 이야기의 틀이 돋보였다. 서술과 묘사에서 이야기꾼으로서의 자기 통제력도 뛰어났고, 소설 말미에 중심인물의 내면이 분출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우리 삶의 복잡한 정황을 너무 단순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으며, 그 점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거기에 비해 `스쿠티카'는 생생한 현장감을 바탕으로 하여 절실하고 입체적인 삶의 풍경을 제시하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 강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을 적절히 활용한 점도 큰 장점인데, 마치 작가가 뛰어난 용병술을 발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더욱이 기생충, 항생제, 내성, 성병으로 이어지는 상징적인 연결 고리는 이야기의 흡인력을 더욱 강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우리는 이 작가가 앞으로도 강력한 서사를 갖춘 작품들을 써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심사위원 : 오정희, 최수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