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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꽃

이민주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작은 소녀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오른쪽 팔을 압박붕대로 칭칭 감은 소녀의 얼굴 피부가 유난히 하얗다. 갈색 웨이브진 긴 머리가 휠체어의 움직임에 따라 미세하게 출렁거렸다. 퍼머를 한 지가 몇 개월 지났는지 웨이브가 중간 부분부터 살아 있었다. 낮은 코가 아니었다면 미국 혼혈아로 착각할 것 같았다. 아이를 쳐다보는 엄마의 눈길이 난로처럼 따뜻해 보였다. 병원 복도를 오가다 가끔 마주치는 모녀였다. 나는 편하게 좁은 복도를 지나갈 수 있도록 벽 쪽으로 다가섰다. 눈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지는 모녀들을 따라갔다. 엄마의 아랫배 옆모습이 두리뭉실하였다. 순간적으로 내 손은 움푹한 배꼽 주위를 쓰다듬었다. 그들은 병원 맞은편에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소녀의 머리 위로 능금빛 햇살이 내렸다. 나는 이제야 생각난 것처럼 병실로 들어섰다.

봉례씨는 나리병원 로고가 새긴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봉례씨의 바지를 벗기고 궁둥이를 추켜올렸다. 어젯밤 늦게 채워둔 펄프 기저귀를 익숙한 손놀림으로 벗겼다. 갇혀있던 오물 냄새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일 년이 지나서 익숙할 법도 한데 역겹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가 내뿜었다. 손놀림은 계속되었다. 순간 울컥 솟구치는 샛노란 빈혈같은 어지럼을 삼켰다. 목젖이 아파졌다. 나는 마른 허벅지에 걸려 있는 봉례씨의 팬티를 올려 사타구니를 가려주었다. 아기집이 자리한 아랫배는 패이거나 무분별하게 주름이 잡혀 있어 보기에 사나웠다. 그곳은 마치 가을에 말려 둔 곶감처럼 쪼그라졌다. 하긴 생명이 자라고 호흡하면서 얼마나 생쥐같이 갉아 댔을까. 벗긴 삶은 감자처럼 뽀얀 살로 덮여 있다면 나는 오히려 경악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때 우주의 꽃을 피워내고 키운 경건한 성소인 자궁부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젊다는 것은 싱싱한 자궁을 가졌다는 것이 아닐까. 나는 노인에 비하면 싱싱한 자궁부위를 만졌다. 팔딱거리는 싱싱한 젊음의 호흡이 느껴졌다. 단 한 번의 생명밖에 키워보지 못한 아랫배는 여전히 탱탱했다. 하지만, 자연의 흐름을 거슬러버린 몸체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거쳐내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면 봉례씨는 생성과정을 거쳐내고 서서히 소멸되어 가고 있었다. 태어나서 자라고 번식하라는 자연의 뜻을 아는 봉례씨가 문득 존경스러웠다. 아들 하나와 딸 셋 그리고 손자들을 거느린 그녀가 아프리카 밀림의 족장처럼 느껴졌다. 나는 한 명의 아이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죄책감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기저귀를 들고 화장실로 뛰어들었다. 오줌을 한껏 흡수한 종이 기저귀를 들고 무당벌레같이 동그랗게 몸을 오그려 앉았다. 사람의 체온을 흡수한 기저귀는 아직 뜨뜻했다. 다음 행동 단계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인데 매번 이 부분에서 몸의 표면적을 줄이고 앉는 버릇이 있었다. 때로는 먹먹해진 가슴을 두드리기도 했다.

딸아이!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밤이면 꼭 기저귀를 차고 잤다. 네 살 때부터 한글을 깨우친 똑똑한 아이인데 밤이면 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병원에 데리고 가보라는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소아과를 찾아 갔다. 은테 안경을 자꾸 위로 추켜올리는 습관을 가진 여의사는 야뇨증이라고 했다. 아이들한테 흔히 있는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무심하게 말했다. 크면 저절로 낫을 수 있다나. 아침이면 일어나기가 바쁘게 아이 방으로 달려갔다. 기저귀를 벗겨주기 위해서였다. 유치원에 다니는 다섯 살 아이의 마음을 다칠까봐 몰래 처리하고 싶었다. 가만히 이불을 들추고 한두 번은 실례했을 기저귀를 뺐다. 어떤 날은 밤에 채워준 게 그대로일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은 뽀송뽀송한 기저귀가 너무 좋아서 살짝 엉덩이를 두드려 주었다.

유치원 가려면 그만 일어나야지.”

엄마! 잠이 과자처럼 맛있어. 조금만!”

아이는 눈을 감은 채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면서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 올렸다. 손가락 두 개는 2분만 더 자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제 아빠의 버릇을 그대로 흉내 내는 아이를 보고 그만 쿡쿡 웃고 말았다. 기분이 좋아서 5분을 더 얹어 주면 바로 곤한 잠에 빠졌다. 얼마간의 잠을 채운 후 아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조그맣게 주먹을 쥐고 한껏 기지개를 켰다. 더 이상 잠투정을 부리지 않는 아이를 칭찬하면서 헝클어진 긴 퍼머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는 치약을 묻힌 칫솔을 들고 긴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나는 노인을 봉례씨라고 이름을 불렀다. 이름을 자주 부르면서 그녀의 잊어버린 실체를 일깨워 주려고 노력을 했다. 내가 일부러 이름을 물어보기라도 하면 생긋 웃으면서 낭랑하게 대답을 하였다.

내 성은 경주 김씨이고, 울 아버지가 내 이름을 받들 봉자에 예도 례자로 지어줬다우.”

자신의 존재는 잊어버릴 때는 있지만 아버지가 무릎에 앉혀놓고 가르쳐주었다던 성명은 똑똑히 기억을 하고 있었다. 젊었을 때는 사리분별이 정확했을 사람이 어눌한 목소리로 여기가 어디냐고 물을 때면 나는 이름은 김봉례고 여기는 나리 병원인데 아파서 치료하러 왔다고 친절히 일러주었다. 그러면 봉례씨는 듬성듬성한 긴 앞니를 드러내놓고 초등학교 일학년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를 분별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똥을 치우고 나면 꼭 내 손을 잡아주곤 했다.

어머니를 잘 부탁드립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베드를 가렸던 커텐을 열자 세면과 칫솔질을 끝낸 남자가 출근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금방 면도를 한 듯 턱 아래쪽이 파르스름했다. 그 때문인지 얼굴이 정갈해 보였다. 남자는 어젯밤 나와 교대를 했던 것이다. 이틀에 한 번씩은 남자가 봉례씨 옆에서 밤을 보냈다. 대학 연구실에서 밤샘을 다반사로 한 이력을 가진 남자라 그런지 얼굴은 초췌하지 않아 보였다. 내가 날마다 병원에 있는 것은 곤란하다고 하자 처음부터 그렇게 약조를 했다.

봉례씨 옆에서 이틀에 한 번씩 밤을 지새우는 일은 아들인 남자의 몫이었다. 일 년이 넘는 동안 단 한 번도 집안 식구 누구와 교대를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봉례씨 같은 족장들의 존재가 땅으로 추락해 있는 현실을 이해하면서도 남자 이외의 가족들이 미워졌다. 일가를 이루고 소임을 다한 족장이 소멸해 가고 있는데 아들뿐 아니라 후예들은 지켜봐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지방에서 교편생활을 하는 두 딸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서울에 있는 딸과 며느리는 하룻밤이라도 어머니와 시간을 공유해야 마땅한 도리였다. 푹신한 침대에 길들여진 부유한 자신들의 몸을 한번이라도 철제 침대에 눕히고 어머니의 고통을 나누어야 했다. 키워준 공을 추켜세우며 사위어 가는 목숨의 심지를 돋우어야 되지 않을까. 그네들은 명품 핸드백을 어깨에 메고 봉례씨에게 몇 마디 의무적인 말을 건네다가 돌아갔다. 그것도 어쩌다 손님처럼 왔다 갈 뿐이었다. 남자가 딸들 사이에서 봉례씨 사랑을 독차지 했다지만 그럴 수 있을까? 마치 어머니를 두고 자식들이 손익계산서를 쓰고 있는 꼴이었다.

남자가 링거를 걸어두는 T자형 솟대에서 벗어둔 카키색 자켓을 내렸다. 두 팔을 소매에 집어넣고 나서 크게 한번 들썩였다. 그 바람에 남자에게서 로즈마리향 같은 스킨 냄새가 날아와 나의 코끝을 후볐다. 노트북 가방을 챙겨 든 남자는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눈빛을 거두고 병실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목례를 가볍게 하였다.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할머니가 밤새 고생했다며 걸쭉한 목소리로 어서 가보라고 손사래를 쳤다. 가만히 있어도 근육이 떨리는데 손사래를 치는 팔이 불안정해 보였다. 대인관계가 무덤덤한 봉례씨 대신 남성성이 강한 파킨슨 할머니가 교수님이라며 늘 남자를 호들갑스럽게 맞이하고 배웅을 하였다. 남자가 큰 키의 등을 내보이며 출입문을 밀고 나갔다. 벌어진 문틈 사이로 청진기를 목에 건 분주한 의료진들의 모습이 보였다. 복도에 시선이 머문 나는 의사들과 함께 문 뒤로 사라지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자켓 칼라가 안으로 조금 접혀져 있었다. 급히 뒤따라가 바르게 고쳐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괜한 짓이야. 남자의 사라지는 뒷모습에 남편의 얼굴이 겹쳐졌다. 나는 갑자기 엎어질 것처럼 몸이 기우뚱거렸다. 침대 난간을 붙잡고 자세를 겨우 고정 시켰다. 휘청거리는 이유가 오늘 아침 일 때문이라는 것을 구태여 토해내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어젯밤에 교대해주면서 천천히 와도 된다는 남자의 말이 생각나 마음이 조금 여유로웠다. 나는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등산화를 신고 아파트 사거리를 지나 야트막한 언덕길을 향해 걸었다. 새벽 등산가는 아저씨를 뒤늦게 발견한 승용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는지 끼익하는 금속성 날카로운 소리가 새벽 공기를 찢었다. 급한 걸음으로 언덕을 올랐다. 산에 오를 때마다 늘 정지하던 정확한 지점에 섰다. 이팝나무들이 회색빛 어둠의 휘장을 걷어내고 눈부신 모습을 점차 드러냈다. 한꺼번에 하르르 졌을 꽃잎들이 상처를 입고 땅에 뒹굴고 있었다. 꽃잎을 밟고 걷다 말고 나도 모르게 으흑 하는 울음과도 같은 기이한 소리가 끝내 흘러 나왔다. 새살 돋듯 새로 피어난 이팝꽃을 손으로 쓸었다. 아이 피부처럼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졌다. 꽃으로 생명을 받아 다시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줌의 가루가 된 딸아이를 집에서 가까운 산자락 이팝나무 밑에 묻었다. 자주 올 수 있어 무섭지 않을 거라며 나무 그루터기를 잡고 오열을 하던 3년 전 내 모습이 흔들리면서 다가왔다. 늘 쉬는 날이면 이른 새벽에 아이의 환영을 안고 산에 올랐다. 남편에게는 말을 하지 못했다. 마음을 닫아버린 상태에서 사실을 말한다는 것은 변명일 뿐이었다. 서서히 밝아오는 태양 아래 이팝꽃들이 눈부신 자태를 드러냈다. 아이를 깨우듯 가만가만 꽃잎을 어루만지다가 등산객들에 섞여 산을 내려왔다.

땀에 흥건히 젖은 몸을 씻고 화장대 앞에 앉았다.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수분크림으로 마무리를 했다. 굳이 분첩을 두드리지 않아도 살빛이 좋은 얼굴은 거울 속에서 희부윰했다. 화장대에서 일어나 의자에 걸린 숄더백을 둘러멘 뒤 발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으헉! 비명 소리로만 모든 아픔을 표현한 나는 문설주에 머리를 찧고 기우뚱거리다가 겨우 제자리를 찾아 몸을 곧추 세웠다.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었다. 평정을 찾고 숄더백을 다시 어깨에 멨다. 개 같은 년! 가래침같이 독하게 말을 뱉은 남편은 길게 뻗은 다리를 삽시간에 접고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몸을 모로 움직인다면 빼꼼하게 열린 문틈으로 충분히 기어 들어올 수 있었다. 아이를 어이없게 떠나보낸 뒤부터 남편은 패악스러워져 있었다. 나는 사마귀 뱃속에서 기어 나온 연가시를 본 것처럼 몸을 움추렸다.

허리에 기브스를 대고 휠체어에 앉은 봉례씨의 고개가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일 년이 지났어도 허리에 기브스를 대지 않으면 휠체어를 탈 수 없었다. 이른 저녁을 먹은 포만감에 잠이 든 모양이었다. 나는 노인의 고개를 반듯하게 눕혔다. 주름 자글자글한 봉례씨의 얼굴이 노을 속에 평화로웠다.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가는 저녁 무렵을 봉례씨는 매우 좋아했다. 한낮의 부산함이 가라앉은 저녁 무렵은 차분한 기운이 감돌아서 좋았다. 그래서 봉례씨도 좋아하는 걸까. 저녁 산책은 빼놓을 수 없는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지금 뭐가 제일 예뻐요?”

내 물음에 그녀는 지평선에 걸린 석양을 가리키며 여섯살 아이의 억양으로 라고 불분명하게 발음을 했다. 사실 떠오르는 태양보다 지는 해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새 오늘 하루도 목숨처럼 저물어 가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저물지 않는 것이 어디 있을까. 어스름이 깔린 하늘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하늘에 큐빅 같은 별이 박혀 있었다. 별이 없는 밤하늘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세상에는 스스로 빛나는 게 하나도 없다. 별이 있기에 어두운 하늘의 존재가 아름답고 더 가치가 있다. 환자가 있기 때문에 의사의 존재 가치도 빛난다. 내 가치는 얼마나 될까. 나의 잊고 있던 자괴감이 고개를 들었다. 찌그러진 양은냄비같이 구겨진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가치를 매긴다는 자체가 우스웠다. 긴 상념에서 깨어난 나는 휠체어를 급하게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바퀴가 문턱에 걸리자 봉례씨가 눈을 뜨고 두리번거렸다.

놀라셨죠. 이젠 괜찮아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성공한 나는 노인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한 마음에 봉례씨의 뺨을 어루만졌다. 일 년 넘게 병원 안에서 생활 한 노인의 살결이 아기처럼 보드라웠다. 봉례씨는 미소를 띠고 내 눈을 따스하게 바라보며 아주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다. 목욕탕에서 넘어져 언어를 관장하는 뇌가 손상을 받았는지 말이 어눌했다. 표정으로 모든 감정을 대신 했다. 눈빛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었다. 늘 봉례씨의 눈은 믿고 의지할 사람은 당신뿐이라는 뜻으로 해석을 달고 있다. 그런 눈빛을 보면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에 희열이 느껴졌다. 병원은 나에게 존재 가치를 인정해주는 유일한 곳이 되었다. 삶의 의미를 되돌려준 곳이라고나 할까. 삶의 희망을 되찾은 곳이 고통스러움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모인 병원이라니.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희망 없이 간병인의 길을 택했는데. 처음과는 달리 이젠 이 길을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간병인이라는 직업이 천성적으로 잘 맞는지도 몰랐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있어야 할 곳에 있을 때 빛나지 않는가.

방목된 어둠이 무작위로 병실까지 침범해 왔다. 나는 창문을 무겁게 닫았다. 어둠이 세상을 잠식하고 있는 밖을 바라보며 버티컬마저 내렸다. 출입문 쪽 천식 환자의 배설물 냄새를 참고 맡아야 했는데 환기를 시키니 역겨운 냄새가 어느 정도 가신 것 같았다. 한동안 열어둔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깥의 맑고 차가운 공기가 실내 분위기는 물론 사람의 기분까지 바꾸어 놓았다. 배설물 때문이 아니더라도 냄새에 민감한 나는 창문을 자주 열고 닫았다. 버티컬까지 완전하게 내리자 누더기가 된 한낮의 시간들이 어둠을 피해 안으로 응집해 왔다. 창밖과 안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삶과 죽음. 창문 하나 사이로 두 개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공존한 이중 구조는 그리 멀지 않았다. 삶과 죽음의 거리가 얼마나 멀던가. 나는 가끔씩 죽음과 삶이 혼돈스러워질 때가 있었다. 꿈에서 봤음직한 낯익은 일이 눈앞에 펼쳐질 때면 정신세계가 몽환 속에 갇혀있는 것 같아 일부러 우우 소리를 냈다. 어둡고 깊은 잠을 자고 있는 환자를 볼 때나 병원 복도에서 어디서 본 것 같은 환자를 만날 때 그런 현상을 느꼈다. 지금 꿈길을 걷고 있는지 몰라. 죽어 있는데 누가 내 라이프 스타일을 필름으로 저장해서 거꾸로 돌리고 있는 걸 거야.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도 삶과 죽음의 문제를 천착해 본 적이 없었다. 간병인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병원에 스며들기 전까지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냈다. 투명한 유리컵에 따라 전자렌지에 넣고 우유 데우기 버튼을 눌렀다. 저녁 9시면 어김없이 봉례씨에게 따뜻한 우유를 먹였다. 렌지에서 우유를 꺼내면 벌써 봉례씨는 파블로스 개처럼 혀로 입술을 닦았다. 천천히 씹으면서 삼키라는 주문이 없어도 이젠 노인은 우유를 한 모금씩 입안에 모아 혀로 핥으면서 목안으로 넘긴다. 꿀꺽 삼키는 소리가 나면 잘했다고 칭찬을 해줬다. 목안으로 넘어간 칼슘과 단백질은 노인의 세포에 활력을 불어넣고 생명을 돋을 것이었다. 봉례씨는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즐겨 먹었다. 아니 그렇게 길들여 놓았다. 생각해 보면 내 아이도 얼마나 따뜻한 우유를 즐겨 마셨던가.

나는 아이를 뱃속에 갖고부터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다. 우유처럼 피부가 하얀 딸을 낳고 싶었다. 이미 태몽으로 딸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유명한 L이라는 소설가로부터 능소화 한 송이를 받았다. L소설가의 강연회에 갔다가 싸인을 받았는데 그 종이가 능소화 꽃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능소화는 보통 연한 주황빛을 품고 있는데 나의 손에 들어온 순간 빨간 꽃으로 변했다. 예쁘다고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꽃을 품에 안고 잠에서 깨었다. 결혼 한 지 5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어 모든 것을 체념하려던 참이었다. 태몽에서 붉은 꽃은 여자애라는 통념을 받아들였다. 하얀 피부를 가진 아이가 나오도록 날마다 500밀리 우유를 신청해서 마셨다. 새벽이면 우유가 현관문 투입구를 통해 배달되었다. 신선한 우유를 깨끗한 유리컵에 따라 잘 소화해서 흡수 되도록 혀를 돌려가며 씹어서 삼켰다. 피부가 우유 빛깔인 아이를 상상하고, 잡지를 보다가 예쁜 아이가 나오면 그림을 오려서 벽에 붙였다. 벽에는 온통 작은 요정들로 가득했다.

태아가 거꾸로 앉아 난산을 한 데다 출혈이 심해 고생을 했지만 아이를 본 순간 모든 걸 보상받은 기분이 들었다. 생명 그 자체를 보듬는 것만으로도 온 세상을 얻은 희열과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이었다. 아이 낳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켜본 남편은 첫돌이 지나자 정관 수술을 자청해서 했다. 다행이 나의 바람대로 아이는 피부가 우유처럼 희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공원으로 산책 나갔을 때 지나가던 코가 큰 외국인이 원더풀을 연속해서 외쳤다. 돌이 지나도록 모유를 먹였는데 자라서 우유를 좋아했다. 유치원 가기 전 아침이면 계란을 입힌 부드러운 토스트에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질리지 않고 잘 먹었다. 입가에 온통 하얀 액체를 묻혀가며 맛있게 먹었다. 쳐다보고 있는 나의 입에서 침이 넘어갈 정도였다.

더 주세요.”

아이는 다 마신 빈 컵을 내 앞에 내밀며 혀끝으로 우유가 묻은 자국을 닦았다.

가끔씩 병원에서 아이의 환청을 듣곤 했다. 봉례씨가 다 마시고 빈 우유 컵을 내밀면 더 주세요라는 소리가 들려 한 잔 따라 주었다. 노인이 그만 먹는다고 손을 내젓고 컵을 받지 않을 때야 퍼뜩 제 정신이 들었다. 아이의 목소리를 환청으로 듣고 나면 접신을 끝내고 난 것처럼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그럴 땐 비실한 몸을 일으켜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봉례씨의 얼굴을 닦아주고 베개를 바로 배어주었다. 영문을 모르는 노인의 얼굴은 편안했다. 나는 아주 달고 맛있는 과일을 먹다가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환청의 여운을 이어 보려고 노력을 하였다. 환청이 아니라 분명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판단했다. 아니 착각을 했어도 좋았다. 아이의 음성을 들을 수만 있다면 목숨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었다.

서랍 속에서 색종이를 꺼냈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게 하는 비법은 종이 접기가 최고다. 색종이를 접어 빨간 튤립을 만들었다. 튤립꽃은 몇 번만 접으면 완성이라 쉬웠다. 무료한 시간이면 아이와 종이 접기 놀이를 즐기곤 했다. 아이도 따라 접으면서 즐거워했다. 먼저 튤립꽃을 접어서 보여주면 꼭 나비가 날아와 앉을 것 같다며 박수를 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 진짜 꽃같이 생겼네라는 아이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그래!그래!’를 반복하다가 내 목소리에 스스로 놀라 현실로 돌아왔다. 봉례씨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안하고 미안해진 나는 색종이를 접다말고 일어나 노인의 머리를 쓸어주고 이불을 목 언저리까지 덮어주었다. 그러자 노인이 안심을 하는 눈빛이었다. 봉례씨도 내가 색종이를 접고 있으면 좋아했다. 튤립꽃을 만들어 손에 쥐어주면 눈꺼풀이 내려와 작아진 눈이 탱글탱글해 보였다. 반지도 만들어 봉례씨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세수하고 목욕할 때마다 손가락에서 빼느라 색종이 반지는 쉽게 구겨지고 찢어졌다. 그러면 또 만들어 주었다. 봉례씨도 아이처럼 작품이 만들어질 때마다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종이 접기를 하다 말고 기운을 소진한 나는 보호자용 의자에 누웠다.

9시 뉴스가 끝나자 파란색 병원 로고가 찍힌 옷을 입은 환자들이 침대에 하나 둘 눕기 시작했다. 뉴스가 끝나면 환자들은 잠을 잘 태세로 본능처럼 드러누웠다. 따뜻한 우유를 마신 봉례씨도 슬그머니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사실 환자들은 거의 누워 있을 때가 많았다. 저녁 취침시간에는 소등이 되어 일시에 눕기는 하지만 평소에 앉아 있는 것은 잠시였다. 몸을 혼자서 니은자로 만들어 앉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병원에 와서야 알았다. 기본적인 동작이 맘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처음엔 낯선 세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남의 불행을 보면서 내 행복 크기가 커지는 것도 경악스럽다. 간병인으로 오기 전까지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온갖 불행을 혼자 짊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를 낮추어보니 각자 주어진 고통의 분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환자들 앞에서 미안스러웠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병실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환자들이 모두 잠든 다음 전깃불을 끄는 일을 맡아서 하였다. 봉례씨에게 더욱 마음을 쏟는 것도 옆 환자들에게 말 한 마디 하는 것도 신경을 썼다.

환자들과 생활하다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환자인지 간병인인지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누가 환자고 누가 간병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간병인들이 환자들보다 더 깊은 병을 앓고 있지 않을까. 멀거니 앉아 있으면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몸이 불편한 환자 곁에서 덤으로 자신도 치료하는 것 같았다. 모두 환자이고 간병인이라는 동일시 현상에 빠져들었다. 아니 어쩌면 모든 세상 사람들은 환자인지도 모른다. 지구는 거대한 병원이고 넘쳐나는 환자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나는 머리를 흔들면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생각을 털어냈다.

머리를 감기고 세수를 시킨 봉례씨의 얼굴이 뽀얗다. 좌판에서 산 큐빅 핀으로 머리를 이마 위로 고정시켰더니 꼭 소녀처럼 보였다. 파마기가 없는 생머리는 눈썹을 덮고 눈을 찔렀다. 생각해보니 머리를 자른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아무래도 목욕을 시키면서 머리를 잘라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머리를 감아서 개운한지 표정은 밝았다. 하지만 생각이 없는 듯한 시선으로 벽에 기대고 앉아 티비를 쳐다보고 있었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눈만 티비 모니터에 고정시켰을 뿐 기억은 소녀 시절 언저리를 맴도는 것일까. 자운영꽃 가득한 밭에서 친구와 보랏빛 향기로 뒹굴던 흑백 사진에 의식이 꽂혔을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혼자만의 세계에서 행복한가 보다. 리모컨 되감기 버튼을 누르고 과거의 시간을 불러와 웃음 짓고 있는 봉례씨의 세계를 나는 훼방하고 싶지 않았다. 젊은 날의 고뇌와 고통은 큰물에 휩쓸려 간 지 오래인 모양이었다. 앞니 두 개를 비죽이 내놓고 웃는 날이 많은 것만 보아도 기억의 동산에는 달디 단 과일만이 주렁주렁 열렸다. 탐스럽고 잘 익은 사과 한 개를 따먹은 듯 볼이 빨갛다. 뱀의 꼬임에 넘어간 이브 같기도 했다. 나는 아담의 이브였던 적이 언제였던가. 창가에 앉아 고개를 가로 저었다. 창밖의 어둠이 나를 깊은 동굴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애써 동굴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허우적댈수록 침몰 되어 갔다. 어둠의 나락 깊은 곳으로 떨어졌다. 아악! 몸서리가 쳤다. 그 때 교통사고. 기억이 떠올려질 때마다 입을 벌리고 경악을 하곤 한다.

연례행사처럼 시골 친정집에서 김장을 하였다. 김장 김치를 싣고 집으로 가는 길에 중앙선을 침범한 화물차를 피하려고 급히 핸들을 꺾다가 그만 갓길 콘크리벽을 들이받고 말았다. 나는 유리창이 박살나도록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정신을 잃고 깨어나자마자 아이먼저 찾았다가 다시 까물쳐졌다. 불행에 관련된 모든 수식 용어들이 나를 음습한 동굴 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사고 후 사흘 만에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남편은 아이를 잃은 충격과 하반신 마비라는 진단에 링거호스를 잡아 뜯고 바닥에 뒹굴었다. 집으로 가자고 악을 쓰는 남편을 앰블런스에 싣고 왔다. 그는 미지의 세계가 어떻게 펼쳐질지 두려움에 떠는 나를 향해 동공의 면적을 최대한 넓혀 쏘아보다가 옆에 있던 가습기를 던졌다. 남편은 사고를 낸 뒤부터 모든 것을 거부 했다. 섹스도 정상적인 의식마저도. 기물을 부수고 악을 쓰면서 나를 학대하는 것만은 거부하지 않았다. 거실에 놔둔 산세베리아를 시작으로 베란다 화분까지 모두 동강이가 났다. 할 수만 있다면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은 물론 나까지 깨부수고 싶다는 패욕이 얼굴에 그려져 있었다.

! 갑자기 예사롭지 않은 둔탁한 소리에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창가 쪽을 바라보았다. 팔을 떠는 파킨슨병 할머니 옆에서 약봉지를 들고 서있던 오십이 넘어 보이는 간병인이 얼굴을 감싸 쥐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병실 사람들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듯 잠시 쳐다보다가 얼굴을 돌렸다. 중저가 브랜드 좌판대서 샀다며 늘 곰이 그려진 후드 티를 입고 있는 간병인이었다. 나는 누워있는 옷을 사지요. 그럴 때 나도 맞장구를 치곤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누워 있는 옷도 비싸서 못 사고 동네 중저가 가게 좌판대서 일 년이 지난 균일가 상품만 고르거든요. 그렇게 마음을 교감한 적이 있는 병실에서 낯을 익힌 간병인이었다. 나는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기랄! 할망구가 어디다 대고 함부로 손찌검이야, 그런 소릴 내심 기대했다. 간병인은 내 기대를 저버리고 얼굴을 숙여 그냥 땅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쩌면 못 가진 자의 슬픔을 두껍게 씹고 있는지도 몰랐다. 삼분의 일 쯤 세워진 침대에서 약을 뱉어놓은 채 두 눈을 치켜뜨고 있던 파킨슨 병 할머니와 간병인을 나는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파킨슨 할머니는 머리에 보라색 금박이 물린 화려한 두건 쓰기를 좋아했다. 늙은이가 요즘 유행하는 컨셉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헝겊에 지나지 않은 두건은 가진 자의 머리에서 제왕의 왕관처럼 위엄을 품고 있었다. 칠십 노인 같지 않은 희고 맑은 피부가 더 부티나 보였다. 군데군데 검버섯이 있긴 하지만. 그래서일까. 간호사들이 미스월드라고 닉 네임을 붙여 주었다. 파킨슨 할머니는 가끔씩 그런 억지스런 난동을 부리면서 생명에 대한 애착을 부여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간병인 주제에 환자의 이름을 봉례씨라고 건방지게 부른다고 악다구니를 쓰던 일이 떠올라 살그머니 외면을 했다. 사실 악다구니를 쓰고 난동을 부리면서 자신의 생명을 확인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때 나는 이름을 기억해 주려고 좋은 뜻으로 부른다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진땀을 흘려야 했다. 가만히 있어도 근육이 떨려오는 증상이 심해진 파킨슨 할머니가 죽고 싶다며 발악을 하면서 병원으로 실려 왔을 때, 사실은 살고 싶어 하는 생의 몸부림이 겹쳐있었다. 내가 고통 속에서도 생명의 끈을 꽉 쥐고 있는 것은 살고자 하는 욕망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병실은 목숨이 치열하게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었다. 다섯 평 남짓한 병실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생명들이 급박하게 시간을 쟀다. 링거호스 같은 가느다란 생명줄이 금방 사라질 것 같아 마음을 졸기도 했다. 느릿하게 한 방울씩 떨어지는 수액을 보면서 희망의 끈을 단단히 쥐는 환자들을 보면 나도 새롭게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었다. 봉례씨는 이슬을 먹고 탱탱해진 이파리처럼 생기가 있어 보이다가도 어떤 날은 숟가락 들 힘도 없어 보였다. 신은 아픔을 견딜만하게 주는 걸까. 환자들이 의연하게 잘 견디는 걸 보면. 삶과 죽음의 수레바퀴가 동시에 굴러가는 병원 공간이 때론 섬뜩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 편안한 곳이었다. 나는 봉례씨를 간호하는 게 아니라 우묵하게 패인 내 상처를 치료받고 있었다. 시지프스 바위 같은 고통을 슬기롭게 잘 이겨내고 퇴원하는 환자들은 달고 깊은 환희를 맛볼 것이었다. 굳은 의지와 상관없이 안타깝게 저버리는 생명을 보면 종일 헐거워진 나사를 조이듯 마음을 다잡았다. 사위어가는 젊음만이 안타까운 줄 알았던 철모르던 마음속에는 어느새 바다가 들어서 있었다. 모든 생물들을 껴안으면서 거기다 성난 파도마저 포용할 수 있는 드넓은 바다. 그래서 사디즘으로 치닫는 그의 행태까지 받아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이해하면 용서를 할 수 있었다.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는 봉례씨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요즘 들어 봉례씨의 안구 움직임이 달라지고 과거만 기억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늘 고요해서 병실 사람들이 비구니라고 불렀는데 과거사를 이야기하는 일이 많아졌다. 종합해 보면 앞뒤가 맞지 않아 여기 꿰매고 저기 꿰매야 줄거리가 잡혔다. 나는 참을성 있게 들어주었다.

그래서요? ! 그랬어요.”

맞장구를 쳐주면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소리내어 웃었다. 현재의 기억은 몇 분 안 되었다. 도통 현재의 기억이 저장되지 않고 몽땅 도둑을 맞았다. 시간과 공간이 혼돈 상태에 휩싸였다. 과거의 사실이 현재로 둔갑을 하고 현재의 사실이 없어져 버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해야 했다. 나는 인내의 한계를 느끼기도 하지만 결코 화를 내지 않았다. 기억의 체계에 비상이 걸린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사람도 병실도 새로운 세계 사람이라 그럴까. 동공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나에게도 가끔씩 묻기도 했다. 누구시냐고. 봉례씨를 처음 맞닥뜨렸을 때 천진난만하게 히죽이 웃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의 미소에 전율을 느꼈다. 온몸 세포의 돌기가 빨라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봉례씨의 얼굴에서 아이의 맑은 웃음을 찾아냈다.

봉례씨는 어둠이 짙어지면 자신의 존재를 자주 물었다. 남이 느낄 정도가 되면 상당히 깊다는 의사의 말이 생각이 났다. 길을 잃은 자아와 그것을 수습하려는 자아가 부딪쳐 혼돈 속에 갇혔다. 내가 누구냐고. 왜 이곳에 있느냐고. 죽은 지 십여 년이 넘은 영감 밥해주러 집에 가야 된다며 침대를 내려올 때는 참 난감했다. 그럴 때 눈망울은 허방을 짚고 있었다.

쟁반에 검정콩과 노란 콩을 봉례씨에게 갖다 주었다. 색깔대로 고르라 했다. 하루에 몇 번씩 하는데도 새로운 일처럼 콩 고르는 놀이를 반겼다. 망각의 편리함을 이용한 게 조금 가슴이 아팠다. 똑같은 것만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해서 궁리를 하다가 실타래를 사다 주었다. 노인은 실타래를 내 양손에 걸고 실꾸리를 감았다. 척추뼈가 온전치 못한 상태인데도 콩 고르기와 실 감는 일을 하고 있는 동안은 아픔을 인지하지 못했다. 봉례씨는 온순하고 차분한 성격이었다. 내가 늙으면 저렇게 모나지 않게 성격을 둥글게 굴릴 수 있을까.

! 한 달 전 12시가 넘은 시각에 어둠을 부수고 어떤 물체가 병실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벽에 붙은 전등 스위치를 켰다. 다른 간병인들도 자기 담당 환자를 살폈다. 세상에! 봉례씨였다. 더 놀라운 건 봉례씨의 모습이었다. 색종이로 튤립꽃을 만들어서 자신의 귀 양쪽 머리에 꽂아놓았다. 침으로 발랐는지 이마에도 붙어 있었고 환자복 웃옷 단추 사이에도 울긋불긋한 종이꽃들이 끼워져 있었다. 손으로 뜯었는지 가위로 오렸는지 분별이 가지 않았지만 분명 내가 만들었던 튤립꽃을 따라 만든 것 같았다. 봉례씨의 침대는 온통 종이꽃과 색종이 가루가 수북하게 뿌려져 있어 화려했다. 마치 꽃상여처럼 보였다. 봉례씨가 타고 갈 상여 같다는 생각을 그 와중에 왜 했을까? 색종이는 내 머리와 이불에도 조각조각 묻어 있었다. 병실 바닥에 흩어진 색종이 가루가 불빛을 받아 화려하게 빛났다. 만든 종이꽃을 뿌리려다가 침대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나는 갑작스러운 사태에 간호원을 부르고 바닥에 누운 봉례씨를 일으켜 안았다. 놀라서 부들부들 떨어야 할 봉례씨가 내 품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안듯이 노인을 꼭 껴안았다. 무척 가볍게 느껴졌다. 손에는 미처 못 뿌린 색종이 가루가 한 움큼 쥐여 있었다. 봉례씨의 이마에서 종이꽃 한 개가 톡 떨어졌다.

봉례씨가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고 남자가 놀란 얼굴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연구실에서 왔는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점퍼 차림에 하얀 조깅화를 신었는데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다. 대학 연구실은 입원실 복도에서 까치발을 하지 않더라도 전면이 보였다. 남자는 누워있는 봉례씨를 천천히 내려다 보았다. 쳐다보는 눈빛이 안타까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봉례씨는 손에 쥐고 있던 튤립꽃 한 송이를 남자에게 내밀었다. 꽃을 받아 든 남자의 얼굴이 미묘한 감정의 물결로 출렁거렸다. 남자는 종이꽃을 만지작거리다가 내 눈길이 닿는 서랍장 위에 올려 놓았다. 굵고 매끄러운 남자의 손끝이 작은 파동을 일으켰다.

간호사는 남자의 동의를 얻어 봉례씨가 잠들 때만 침대 양 옆을 길다란 널빤지로 막아 놓았다. 나는 한 번씩 밤중에 일어나서 우리에 갇힌 봉례씨를 들여다보았다. 숨소리가 평온했다. 최근 들어서 맑은 의식으로 돌아오면 봉례씨는 빨리 죽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이다.

김봉례 씨!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데요.”

나는 화가 나 언성을 높여 말할 때는 성씨 김을 붙여서 김봉례씨라고 불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봉례씨는 종이처럼 꽉 쥐면 바스락거릴 것 같이 말라간다. 살이 마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입술이 말랐다. 아침부터 감정 낭비를 한 것 같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 봉례씨의 눈썹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겼다. 노인의 눈자위가 벌겋다. 봉례씨를 아이 안듯이 꼭 안았다. 서랍을 열고 손수건을 꺼내 노인의 눈 주위를 눌러주었다. 그리고 헤어핀 두 개를 꺼내 양쪽으로 머리를 고정 시켰다.

오늘은 머리를 꼭 잘라야 되겠어요.”

나는 봉례씨를 휠체어에 태웠다. 머리를 자르고 목욕을 하려면 1층에 있는 샤워실로 내려가야 했다. 천천히 휠체어를 밀었다. 봉례씨가 환자복 웃옷 호주머니에서 빨간 종이꽃을 꺼냈다. 구겨진 꽃 한 송이를 들고 천진하게 웃고 있는 봉례씨를 내려다보며 엘리베이터 있는 곳으로 방향을 돌렸다. 비집고 들어온 노을을 받아 은색 바퀴가 반짝 거렸다. 병실복도를 구르는 두 개의 고무바퀴 소리가 어둠을 살살 털어내고 있었다.

 

 

<당선소감>


소설을 쓴다는 것은 내 생명을 확인하는 일

 

눈송이가 하얀 나비처럼 날리던 저녁 무렵, 오랜만에 가슴 벅찬 기쁜 소식을 들었다. 순간, 신춘문예에 투고 해놓고 절망했던 시간들을 한꺼번에 보상받은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외로움의 정체가 바람처럼 영혼을 후비고 다니면서 삶의 의미를 잃은 적이 있었다. 그 정체를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소설을 쓰면서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늘 읽거나 쓰지 않으면 허기가 돈다. 물론 허기를 채워주는 것이 소설이다. 이젠 소설을 쓴다는 것은 내 생명을 확인하는 일이다. 소설은 지독한 고통 속에서 피어난 귀한 꽃이다. 고통스러운 만큼 느끼는 희열 또한 크다.

미흡한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전북도민일보의 무궁한 발전을 빈다. 척박한 땅에 소설의 씨앗을 뿌려주신 생오지 문교수님께 감사드리고, 내 문학의 멘토인 극작가 K선생님, 문우JJ교감선생님, 동화작가 O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소설을 연인처럼 대하는 아내를 묵묵히 바라보며 외로운 시간을 견디었을 남편과 자식이 곧 신앙인 엄마와 이 영광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 늦게 시작한 만큼 더 열심히 치열하게 쓰겠다.

 

 

<심사평>


 

삶과 죽은의 경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

 

소설다움이란 무엇일까? 이번 전북도민일보의 신춘문예에 응모된 소설을 읽는 동안 줄곧 나를 붙잡고 늘어진 화두였다. 소설이 인물들의 벌이는 사건을 촘촘히 구성하여 엮어낸 문학예술의 창조물이라면 인물이나 사건, 구성이나 문장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점들을 꼼꼼히 살피면서 읽은 결과 박이선의 동물원의 원숭이와 김만성의 나를 보다’, 김은혜의 양각과 음각’, 이민주의 종이꽃4작품이 남게 되었다.

동물원 원숭이는 잘 짜여진 구성에도 불구하고 인물들 사이의 소통이랄지 사건 연결이 매끄럽지 못했으며, ‘나를 보다는 잘 읽히는 문장이 돋보였지만 중요한 인물인 미스강의 역할이 애매하였으며 화장실 낙서와 나의 심리적 갈등을 제대로 엮어내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양각과 음각은 자로 잰듯한 구성과 유려한 문장이 눈길을 끌었지만 말벌에 쏘여 죽은 큰어머니나 말벌을 이용하여 이복형제인 장애인 형을 죽이려는 나의 행동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였으며 여자의 역할이 너무 억지스러웠다.

종이꽃은 간병사인 주인공의 눈을 통하여 본 병실의 풍경과 환자들의 모습을 담담하면서도 긴장감이 느껴지도록 그려낸 필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결국,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서 종이꽃처럼 말라가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물들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 낸 종이꽃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소설쓰기가 주인공 간병사의 삶보다 훨씬 고난의 길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작가가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 최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