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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황경란

 

금령은 예나 지금이나 봄이 되면 차밭에 올라 찻잎을 딴다. 지금에야 산 중턱에 정자도 세우고 바위가 닳아 의자 구실을 하고 있지만, 금령이 젊었을 때만 해도 녹차밭에는 마땅히 쉴 만한 곳이 없었다. 금령이 힘겹게 차밭에 오른다고 했을 때 마을 사람들은 감나무를 심어 곶감을 만들어 팔라고 권했다. 하지만 금령은 산에 올라 찻잎을 땄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멀리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차밭이 좋았다. 찻잎을 따는 봄이 가면, 또 봄을 기다렸다. 겨울은 길고 무서웠다. 더욱이 녹차나무가 눈에 뒤덮일 때마다 금령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 마주하는 것 같았다.

 

 이틀 만에 방문을 나서는 오늘 새벽, 금령은 어릴 적 기억을 밀어내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다미 넉장 크기의 나무로 지은 막사. 빛조차 들지 않는 방.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 요강을 비우기 위해 밖으로 나왔지만 금령을 괴롭히는 기억이 다시 찾아왔다. 마당으로 내려온 금령은 반쯤 열린 대문을 보자 리엔을 떠올렸다. 리엔은 하루에 한번씩 금령을 찾아와 금령의 이름을 불렀다. 할머니금령 할머니. 그렇게 이름만 부르다 돌아간 리엔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금령을 찾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금령은 리엔을 생각하며 대문을 활짝 열었다. 리엔은 지난주부터 오늘을 기다렸다. 오늘 있을 수업을 위해 여러편의 시를 지었다며 금령을 볼 때마다 자랑을 늘어놓았다. 금령은 요강을 마당에 내려놓고 그 위에 돌을 올렸다. 안을 비워야 했지만 빈속에 오줌 냄새를 맡고 싶지 않았다. 이틀 동안 금령이 먹은 거라고는 물과 간장에 비빈 밥 한공기가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모든 냄새가 역했다. 금령은 마당의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씻었다. 리엔이 오려면 서너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그전에 차밭에 갔다 와도 늦지 않을 것이다. 금령은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챙겼다. 책과 공책을 가방에 넣고, 필통을 열어 세자루의 연필과 지우개를 확인했다. 가방을 양어깨에 둘러메자 거울 속으로 금령의 가방이 보였다. 이제 아무리 허리를 펴려고 해도 금령은 허리를 펼 수가 없다. 마루에 걸터앉은 금령의 발이 고무신코를 건드리자 고무신이 제자리에서 갈팡질팡 흔들렸다. 금령은 천천히 발을 넣었다. 밖으로 나오자 바람이 찼다. 여밀 옷깃이 없자 낡은 스웨터의 보풀만 애써 떼어냈다. 마을은 조용했다. 말하고 있는 건 새벽 공기와 꺾어 신은 고무신이 땅을 끄는 소리였다. 귀 밝은 개가 멀리서 짖었다. 한녀석이 짖기 시작했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짖어댈 것이다. 금령은 고무신을 바로 신었다. 마을을 벗어나자 자갈이 많은 물소리가 났다. 깊지 않은 냇가를 따라 걷다 보면 거짓말처럼 강이 시작된다.

금령은 마을에서 차밭까지 늘 걸어 다녔다. 다원에서 이동차량을 보내 주는 날도 있었지만 어차피 찻잎을 따는 날은 날씨가 좋은 날이다. 금령은 좋은 날, 이 강을 만나기 위해서 걸었다. 강이 끝나자 바위틈에서 자란 야생차나무가 밭으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 차밭의 뒤로 또 다른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 산이, 산을 품었다. 금령은 굽은 허리를 펴 가며 자신이 오를 차밭을 가늠했다. 하지만 금령의 굽은 허리는 하늘도, 산을 품고 있는 또 다른 산도, 올려다보지 못했다. 밭에는 금령 외에 아무도 없었다. 곡우도 넘기고 오월 중순이 코앞이니, 첫물차도 아니고 새벽이슬까지 생각해 가며 잎을 따낼 사람은 없었다. 금령이 서둘지 않았어도 사람들은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에야 차밭에 올랐을 것이다. 금령은 녹차나무 앞에 섰다. 찻잎의 머리가 금령의 무릎에 닿았다. 금령은 마디가 굵은 손가락으로 찻잎을 쓸었다. 살아 있는 것들은 거칠지만 따뜻하다. 생기였다. 금령이 한잎 한잎 찻잎을 따내자 녹차나무가 작게 흔들렸다. 금령은 찻잎을 따다 말고 멈춘, 그래서 죽은 듯 보이는 강물을 마주 보았다. 강물 위에는 작은 물결이 일렁이고 있을 것이다. 물결은 바람을 따라 오고 가고, 또 가고 왔다. 그렇게 조금씩 제자리에서 벗어나는 강물을 금령은 육십년이 넘게 바라보고 있다.

 

 한달 전, 금령이 작은 목소리로 육십년이라고 리엔에게 말해 주었을 때, 리엔은 엄마야! 하며 몸을 뒤로 젖혔다. 정말이에요? 라고 리엔이 되물었을 때, 금령은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짓말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거짓말. 그건 사실이었다. 금령은 자신이 이 마을에 온 지, 육십년 하고 이년이 지났는지 삼년이 지났는지 헤아리지 못했다. 금령 할머니 그래서 서울 가요? 라고 리엔이 되물었을 때, 무슨, 그래서 가나. 볼일이 있어서 가지, 라고 금령이 말했다. 리엔은 금령의 말이 끝나자마자 금령 할머니 서울 간대요. 라고 외쳤다. 찻잎을 따던 사람들이 일제히 금령을 쳐다보았다. 그날 이후 마을 사람들은 금령의 볼일을 알아내기 위해 그녀의 주위를 맴돌았다. 금령의 외출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금령이 리엔과 한글을 배우기 위해 읍내에 간다고 했을 때에도 마을 사람들은 금령의 주위를 맴돌았다. 누군가 금령의 과거를 기억해내려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젊은 금령이 했던 말들 대신 자신들이 물었던 질문을 떠올렸다. 고아? 그럼, 결혼은? 금령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고아는 아니었고, 남편이 없어도 결혼은 했었다. 아무것도 없는 현재였지만 금령의 과거는 복잡했다. 사실 위안부라는 말도 금령은 몇년 전 TV를 보고 알았다. 그전까지 금령은 자신이 누구였는지 정리하지 못했다. 돈을 벌겠다고 집을 나간 어린 금령이었는지, 하루에 스무명이 넘는 남자를 상대해야 했던 기막힌 금령이었는지, 부모한테 버림받은 젊은 금령이었는지, 이제는 늙어 죽을 날 기다리는 늙은 금령인지, 자신도 알고 싶었다. 어쨌든 금령은 죽고 싶은 순간이 많고 적음이 살아 있는 명줄과 상관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오래전의 질문들이 금령에게 쏟아졌다. 작은 파문이었다. 왜 서울에 가는데? 서울에 누가 있나? 금령은 다시 침묵했다. 그렇게 유난을 떨던 마을 사람들은 정작 금령이 언제 서울에 가는지 묻지 않았다. 리엔이, 그런데 언제 가요. 서울? 하고 물었을 때에야 그러게 언제 가는데 서울? 하고 물었다. 금령은 또다시 침묵했다. 없었던 일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길은 침묵이었다. 금령의 서울 나들이는 이틀 만에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금령은 마을 사람들이 조용해진 후에야 기억을 더듬었다. 서울이 초행길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청계천. 청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개천이라는 말에 가슴이 뛰었다. 개천을 보러 간다고? 마을 사람들 틈에서 금령이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를 냈다. 그럼 나도 갈란다. 서울. 며칠 후 마을에 버스가 왔다. 서울로 가는 버스였다. 산 너머로는 처음이었다. 금령은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산 너머에 개천이 없을 리 없겠지만, 있다는 생각을 잊고 살았다. 금령은 용기를 냈다. 흰 자갈 위에 빨래를 말리던 곳, 강둑 바위에 앉아 소꿉놀이를 하던 곳. 그런 개천을 그렸다. 그런 곳이 서울 한복판에 있다니. 버스는 빨랐지만 금령의 마음을 따라잡지 못했다. 마음이 세월을 거슬러 갔다. 어린 금령이 돈을 벌겠다며 집을 떠났다. 그것은 손에 들린 작은 보따리만큼 간단한 일이었다. 너무 추워 가족과 헤어지는 일이 슬픈지도 몰랐다. 희망에 속았는지도 모른다. 어린 금령은 이틀 동안 기차를 탔다.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는 금령의 손이 빨갛게 얼었다. 나무로 지은 막사에 도착한 어린 금령은 어째서 사람이 사는 일이 이리 간단치 않은가, 묻고 또 물었다. 그러다 어째서 사람이 죽는 일은 이리 간단치 않은가, 를 늙은 금령은 반복해서 묻고 있다.

버스가 청계천이라며 문을 열자, 젊은 여자가 버스에 올랐다. 여자 가이드는 친절했다. 제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게 이걸 목에 걸어 주세요. 마을 사람들은 가이드가 건네는 명찰을 목에 걸었다. 마을 사람들이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그냥 물길이었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서울이 한양이 되기 전부터 청계천은 있어 왔다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원래는 도성 안의 쓰레기를 배출하는 하수도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일제 때 청계천을 중심으로 이쪽은 한국인, 저쪽은 일본인이 살았다고 덧붙였다. 이쪽도 저쪽도 이제는 모두 높은 건물들뿐이다. 마을 사람 누구도 가이드의 설명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복개된 계천을 다시 파헤친 누군가의 거대한 힘이었다. 가이드가 힘주어 말하는 것도 그것이었다. 이제는 옛날과 달리 깨끗한 물이 흐른다고. 그래서 직장인들은 물론 여행객들에게도 휴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세상에나 서울이 달리 좋은 게 아니네. 물 나와라 하면 물 나오고, 차 나와라 하면 차 나오고. 누군가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다가오는 차를 보며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금령도 신기했다. 이어 물길 위로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들렸다. 직장인들을 위한 음악회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음악 소리에 묻혔다. 하나둘 거리의 사람들이 음악회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금령은 귀를 막았다. 가이드가 물길을 따라 걸어 보라고 했지만, 금령도 마을 사람들도 음악 소리와 멀어지기 위해 뒤돌아 걸었다. 청계천에는 물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사람보다 건물이 더 많았다. 건물보다 차가 더 많았다. 그래서 시끄러웠다. 서울은 건물과 사람과 차로 이루어진 도시였다. 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여기 말고 더 좋은 데를 찾았다. 물과 사람과 건물과 꼬리를 잇는 차 말고, 시끄러운 악기 소리 말고, 다른 곳. 가이드는 청계천을 중심으로 두세군데 더 돌아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을 태운 버스가 붉은색 건물 앞에 섰다. 가이드가 손짓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 맞은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일본 대사관입니다. 수요일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여서 집회를 하고 있지요. 가이드의 설명대로 건물 앞에는 노인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금령처럼 나이 든 여자들이었다. 그 뒤로는 교복을 입은 어린 여학생들이 서 있었다. 학생들 머리 위로 커다랗게 새겨진 글자들이 흰색의 천 위에서 깃발처럼 펄럭였다. 노인 한분이 마이크를 쥐고 큰소리로 외쳤다.

 일본은 위안부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라.”

 버스 안으로 노인들의 목소리가 새어들었다. 사죄하라. 사죄하라. 금령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금령이 육십년 넘게 숨기며 살아온 일들이 소리 내고 있었다. 금령은 하늘 아래 이런 곳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과 그런 곳이 있었다. 금령의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

 난 군인들이 방에 들어오면 눈을 감아. 얼굴을 안 보면 낫지 않을까. 너는? 난 절대로 눈을 감지 않아. 똑바로 봐야지. 그래야 길을 가다 만나도 때려 줄 거 아니야. 그러니까 너도 눈을 감지 마. 아니, 난 그렇지 않아. 내가 그 사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면 그 사람도 날 기억 못할 거 아냐. 내가 여기 있는 거 아무도 몰라야 해.

날이 새면, 해가 지면, 어린 금령은 아이들과 이런 이야기를 했다. 밖에 나가 살 궁리였다. 그러면 심장이 뛰었고, 기분이 좋아졌다. 고향에서 보던 꽃도 보고, 물도 보고, 엄마도 아빠도 어린 동생들도 보고 싶었다. 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어린 금령은, 금령처럼 어린 아이들은, 견뎌내기 위해 눈을 감아도 보고, 눈을 떠서 기억하려고도 해 보았다.

 마을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금령은 대사관 앞에서 본 노인들 중 누가 자신처럼 눈을 감으려 했는지 알고 싶었다. 아니면 누가 눈을 뜨려 했는지 궁금했다. 그러기 위해선 말을, 글을 배워야 할 것 같았다. 상처를 드러내기 위해서 말을 배워야 할 것 같았고,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글을 배워야 할 것 같았다.

 다시 갈 수 있을까? 서울. 서울을 다녀온 이후 금령은 다시 그곳에 가고 싶었다. 리엔만이 금령을 믿어 주었다. 서울, 나도 가 봤어요. 서울에서 오빠 만났어요. 그 다음날 여기 왔어요. 오빠랑. 리엔은 제 나이보다 갑절이 많은 남편을 그렇게 불렀다. 리엔은 요즘 들어 남편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신의 배 위에 손을 올렸다. 리엔이 산부인과에 다녀온 지 보름이 지난 뒤였다. 리엔, 배가 나오려면 아직은 더 있어야 해. 금령이 리엔의 손을 잡아 내리며 말했다. 그럴수록 리엔은 금령을 향해 배를 내밀었다. 아니에요. 배 나왔어요. 보세요. 이만큼 나왔어요. 리엔이 크게 웃자 리엔의 고르지 않은 치아가 드러났다. 금령도 리엔을 따라 웃었다. 리엔이 임신했을 때 제일 기뻐한 사람은 리엔의 남편이었다. 신작로를 들어설 때부터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이 마을 전체를 밝힐 듯 했다. 그날 이후 리엔은 남편과 같이 걷는 일이 잦았다. 남편이 앞서 걸으면 리엔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러다 리엔이 성큼 다가가 남편의 손을 잡았다. 갑작스런 리엔의 행동에 볼이 벌게진 남편은 주변을 둘러보며 리엔의 손을 조심스럽게 놓았다. 리엔이 입을 샐쭉거렸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리엔은 다시 다가가 남편의 손을 잡았다. 잡고, 뿌리치기를 반복하는 두사람의 뒷모습에선 갑절이라는 나이 차이도, 리엔이 바다 건너 피부색이 다른 나라에서 왔다는 것도, 드러나지 않았다. 금령은 두사람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이렇게 말해 주었다. 그렇게 살아.

 임신을 한 후 리엔은 다원에서 보내 주는 버스를 타고 차밭에 올랐다. 그러다 혼자 길을 걷는 금령을 보면 차에서 내렸다. 할머니. 같이 가요. 리엔은 금령의 손에 들린 걸망을 제 어깨에 멨다. 말이 서툰 리엔은 자주 웃었다. 긴 질문이나 대화에는 ’, ‘아니오로 짧게 대답했고, 시간이 지나자 사랑해요좋아해요를 자주 넣어 말했다. 드라마, 한국 드라마, 너무 좋아요. 금령도 가끔 리엔에게 말했다. 그래 리엔, 나도 네가 좋아. 서울에 가면 너한테만은 꼭 말해 줄게. 하지만 금령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틀 전 새벽, 금령은 무작정 집을 나섰다. 한시간을 넘게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금령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좋은 생각만 하자던 마음이 기어코 사라졌다. 청계천을 처음 보던 날, 금령은 대사관 앞에서 노인들이 소리치는 소리를 들었다. 마이크가 이 사람 손에서 저 사람 손으로 옮겨질 때마다 소리는 점점 커졌다. 하지만 거리의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눈으로 보세요. 노인들 머리 위로 금령이 읽지 못하는 글자들이 흰색의 천 위에서 흔들렸다. 빨강, 파랑, 검정의 글자들은 금령에게 그림이었다. 느끼고 싶어도 느낄 수 없는 것이 글자였다고 금령은 리엔에게 말했다. 그래서? 금령 할머니도 리엔이랑 같이? 리엔이 오빠와 아이를 위해서 한글을 배우겠다고 했을 때 금령은 리엔에게 같이 배우자고 말했다. 그래, 나도 같이. 그렇게 금령과 리엔은 한글을 배웠다. 한글, 베트남말보다 쉬워요. 그러니까 한글 예쁜 떡 같아요. 수업 첫날 리엔이 한글이 맛있게 생겼다고 말하자, 맛있게 생겼으니 많이 먹고 빨리 배우라는 선생님의 농담에 모두가 웃었다. 금령은 모든 게 신기했다. 책상도 의자도 네모반듯한 교실도. 칠판을 보고 앉은 금령은 예뻤다. 주름이 펴지고, 눈동자가 커졌다. 하지만 금령은 제 얼굴을 보지 못했다. 칠판에 그려지는 자음과 모음이 헛갈렸지만, 금령은 그리고 또 그렸다. 자음과 모음은 언제나 헷갈렸다. 어째서 자음이 모음보다 많은가? 금령이 물었다. 지나가던 선생님이 금령의 옆에 앉았다. 그건 자음이 자식이고 모음이 엄마라서 그래요. 엄마가 자식을 낳잖아요. 많이. 많이 낳을 수도, 적게 낳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 모음은 자식을 많이 낳았어요. 그래서 자음이 많아요. 모음보다. 교실 안이 조용해졌다. 자음과 모음이 엄마와 자식간이었다니. 글자는 귀한 것이었다. 함부로 그려서도 함부로 배워서도 안 되는. 하지만 리엔에게 자음과 모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편지 쓸 거예요. 오빠한테. 술 먹지 말라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리엔은 빨리 한글을 배워 자신보다 나이가 갑절이 많은 남편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했다. 그리고, 말만 할 줄 알면 안된대요. 오빠가 그러는데 글을 알아야 아이를 가르칠 수 있대요. 저는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싶어요. 지금 쓸 수 있는 글자는 제 이름과 오빠 이름밖에 없다는 리엔은 오개월이 지나자 복도에 걸린 다문화 가정을 위한 방안이라는 글자를 읽어냈다. 그런데, 저런 거 싫어요. 이제 여기가 제 고향이에요. 그래서 저런 거 싫어요. 금령은 리엔의 뜬금없는 말에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리엔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엄마가 그랬는데, 아이 낳고 살면 거기가 고향이랬어요. 그러니까 우리도 한국사람들이랑 똑같이 해 주면 돼요. 왜냐하면이제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니까요. 말을 마치고 힘차게 교실로 들어가는 리엔이었지만 금령은 분명 리엔의 목소리가 떨려 오는 것을 느꼈다.

 

먼저 들어간 리엔이 생글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금령이 옆에 앉자 리엔이 서둘러 말했다. 그러니까, 문장. 선생님이 오늘부터 문장을 배운댔어요. 그날 금령과 리엔이 문장을 짓기 위해 배운 단어는 모래와 모레였다. 녹차밭 아래로 흐르는 강에는 모래가 많았다. 밤이면 외지 사람들이 모래를 훔쳐 갔다. 군청에서 모래를 지키기 시작했다. 셀 수도 없는 모래를 사람들이 지켰다. 금령은 모래가 모레보다는 나은 글자라고 생각했다. 모레는. 금령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금령은 다다미 넉장 크기의 방에서 살았다. 나무로 지은 막사는 열다섯개의 좁은 방이 붙어 있었다. 엉성하게 짜 맞춘 나무 틈으로 신음 소리가 새어들었다. 아이들의 신음 소리는 앙칼지지 못했다. 낮게 그러다 끙끙 앓는 소리로 변했다. 그 소리를 관통하며 눌러대는 또 다른 소리가 있었다. 남자들이 내는 신음 소리였다. 금령이 누운 방바닥까지 들썩이게 만드는 소리. 귀를 막을 수도, 입을 다물 수도 없는 상황을 금령은 견뎌냈다. 그리고 밤마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다다미방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빙그르 방이 방의 꼬리를 잡았다. 그 순간 아이들이 방에 불을 붙였다. 활활 타오르는 불 속으로 아이들이 뛰어들었다. 그렇게라도 죽을 수 있다면 죽고 싶었다. 꿈에서 깬 방은 어두웠다. 너무 어두워 방이 좁은 줄도 잊었다. 날이 밝으면 죽을 거야. 그렇게 다짐하며 새벽을 기다렸지만 날이 밝자마자 일본 군인이 거칠게 문을 열었다. 죽을 시간도 없었다. 어쩌면 죽어 있던 시절이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금령은, 살아 있는 아이들은, 살아가야 할 이유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게 모레가 아니었을까? 내일이 아닌 모레는 집에 갈 수 있다는. 금령은 칠판에 적힌 모레를 공책에 그려 넣었다. 칸이 작아서 밖으로 비껴 나갔다. ‘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말할 때는 똑같이 들리지만 적을 때는 다르게 적어야 하는 것들이 있어요. 라는 말과 함께 밑에 다시 적혔다. 금령에게는 의미 없는 글들이었다. ‘를 옮겨 적은 공책을 내려다보며 금령은 제집으로 가는 길을 생각했다. 저렇게 곧장 걷다가 중간에 골목으로 들어가면 내 집인데. 그렇다면 는 작은 시냇물. 냇가 밑으로 저렇게 물이 흐르지. 도대체 말과 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말하는 모든 것을 적어내는 게 글이라면, 이런 글을 아무나 배워도 되는 것일까. 금령은 등을 꼿꼿이 펴고 앉아 있는 리엔을 쳐다보았다. 리엔이 웃고 있었다. 리엔은 저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서울 가는 기차시각이라고 금령에게 적어 주었다. 금령이 천천히 눈으로 읽었다. 서울 가는 기차가 하루에 여섯번.

 며칠 후,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선 이틀 전 수요일. 청계천은 여전했다. 금령은 기억을 더듬었다. 다른 건 몰라도 잔디가 깔린 광장은 기억났다. 나무도 처마도 없는 잔디밭을 사람들은 광장이라고 불렀다. 금령은 잔디밭을 가로질렀다. 금령의 고무신이 잔디밭에 파묻혔다. 고무신을 감싼 잔디가 금령의 발목을 간질였다. 일본 대사관에 갔다 온 이후, 금령은 노인들이 들고 있는 글자를 읽고 싶어 리엔과 한글을 배웠다. 금령은 서둘러 걸었다. 잔디밭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나무 사이를 걸었다. 바람이 불었고, 이마에 땀이 맺혔다. 금령의 손이 가늘게 떨렸지만 누구도 그녀가 위안부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금령은 택시를 잡았다. 택시는 사람들을 지나 차들을 지나 건물들을 지나 일본 대사관 앞에 섰다. 금령은 걸음을 멈췄다. 지난번처럼 노인들이 마이크를 손에 쥐고 소리치지 않았다. 대신 노인들 머리 위로 선명하게 새겨진 글자들이 흔들렸다. 글이, 소리가 되어 금령에게 말했다.

 

 우리는 쉽게 죽지 않는다.

 

말이, 글이, 사라진 순간을 금령은 잘 알고 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이 들려왔을 때, 어린 금령은 겁에 질렸다. 이틀 동안 기차를 탔으니 먼 곳이라고는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 나라 말이 사라질 정도로 먼 곳일 줄은 몰랐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은 수수께끼였고, 근심이었고, 치욕이었다. 일본 군인들이 무슨 말을 하던지 금령은 웃어야 했고,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그렇게 웃고, 고개를 끄덕이길 반복한 탓일까. 어린 금령은 죽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이래로 여전히 금령은 살아 있다.

 금령은 일본 대사관 앞을 뒷걸음질로 돌아 나왔다. 이내 주변이 조용해졌다. 금령은 택시가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 걸었다. 사람들이 광장이라고 부르는 잔디밭으로 돌아온 금령은 눈 위에 찍힌 제 발자국을 찾아 걷듯 어정어정 걸었다. 여전히 거리의 누구도 금령이 위안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두둑, 두둑. 잔디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이미 하늘은 잿빛이었다. 사람들이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 금령도 비를 피해야 했다. 하지만 숨을 곳이 없었다. 광장은 나무도 그늘도 처마도 없었다. 그런 곳이 광장이었다.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들 어디로 도망친 것일까? 금령도 숨고 싶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금령처럼 그곳에는 숨을 곳이 없었다. 비에 흠뻑 젖은 금령의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축 처진 젖가슴이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금령이 자신의 봉긋한 가슴을 억세게 주무르던 손길을 생각한 건 그 순간이었다. 금령의 젖가슴도 한때는 예뻤다. 드러누워도 탐스럽게 솟는 가슴이었다. 그 가슴이 늘어져 볼품없는 가죽으로 남을 동안 금령은 하나도 얻은 게 없다. 얻은 게 있다면 자신을 버린 가족과 셈할 수 없는 제 나이이다. 금령이 횡단보도 앞에 서자 빗줄기가 더욱 거세졌다. 순식간에 사라진 사람들이 어느새 금령의 옆으로 다가와 섰다. 하지만 누구도 금령에게 우산을 받쳐 주지 않았다. 금령은 일본 대사관 앞에서 본 글을 떠올렸다. 소리가 되어 다가온 글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어째서 글이 를 구분해야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글은 자신의 개 같은 과거를 대신해야 했고, 젖가슴을 주물러대던 거친 군인들의 손길도 표현해야 했다. 또한 귀국선을 타러 가던 날 죽은 일본 군인의 얼굴을 짓이겨대던 자신의 마음도 기록해야 했다. 피 묻은 손으로 남자의 얼굴을 짓이겼을 때 군인은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죽었고, 금령은 살아 있었다. 어째서 이 사람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아픔을 모르는가. 이건 너무 불공평했다. 금령은 울고 또 울었다. 끝이라고 생각하니 좋아서 울었고, 왜 군인처럼 죽지 못했는가를 생각하니 슬퍼서 울었다. 금령은 자신이 기억하는 것이 글이 되고, 글이 소리가 되는 상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마을에 도착하자, 젖은 몸이 마르기 전에 다시 비가 내렸다. 녹차밭을 지나 강 길을 따라 걸었다. 집에 들어선 금령은 이틀 동안 방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밤이면 어두운 방이었고, 해가 뜨면 환한 방이었다. 어둠 속에서의 방은 좁았고, 빛이 들어오는 방은 컸다. 금령은 알고 있었다. 좁고 초라한 것은 방이 아닌 금령이 먹어 가는 나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의 금령은, 기억해 내고 싶지 않은 시절의 금령은, 죽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서는 싫었다. 나무로 지은 다다미 넉장 크기의 방에서는 싫었다. 그래서 다시 새벽을 맞은 어린 금령은 어떤 날은 방이 너무 커서, 어떤 날은 방이 너무 작아서 죽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어떤 날은 막사 입구에 걸린 간판의 글씨가 예뻐서이기도 했다. 금령은 일본 군인과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기 전 금령은 화장실에 앉아 있었다. 문틈으로 간판의 반쪽이 보였다. 부드럽게 휘어진 글자의 곡선을 따라 금령의 시선이 밑으로 내려갔다. 그때였다. 거칠게 화장실 문이 열리고 일본 군인들이 금령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금령의 굳은 얼굴이었는지, 쪼그려 앉은 어린 금령의 밑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순간 금령은 움직일 수 없었다. 겁에 질린 금령은 저를 보고 있는 군인들을 따라 웃었다. 군인 하나가 금령의 손을 잡아끌었다. 밖으로 끌려 나온 금령은, 저고리만 입은 채 거웃이 그대로 드러난 금령은, 그렇게 사진에 찍혔다.

 집으로 돌아온 금령은 일본 대사관 앞에서 깃발처럼 펄럭이던 글자를 떠올렸다. 그런 글을 짓고 싶었다. 금령은 엄마와 자식간이라는 자음과 모음을 떠올렸다. 자음과 모음이 만나 글이 되고, 글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생명이 되는.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는 글이어야 했다.

 

아침 햇살이 산 능선에 이끼처럼 자란 녹차밭을 훑고 내려왔다. 이내 금령의 등을 따뜻하게 감쌌다. 금령은 닳아 의자가 되어 버린 바위에 앉았다. 바위틈으로 올록볼록 솟은 녹차나무가 서로를 의지하고 있다. 금령은 녹차나무의 잎들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가까이 맞닿은 나무를 연결하자 모음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자음 차례였다. 자음은 복잡했다. 많게는 여섯그루의 나무가 필요했다. 금령은 여러개의 녹차나무를 이어 선을 만들었다. 서서히 금령이 써 내려간 글자들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서 녹차밭을 훤히 비추는, 그래서 있는 그대로 초록빛을 내는 글자들이었다. 금령은 자신이 써 내려간 글자를 소리 내어 읽었다.

 

 이제 눈이 와도 너는 자유란다.

 

 금령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침 해가 녹차밭을 비추기 시작했으니, 리엔이 금령의 집에 들렀을 것이다. 리엔은 금령보다 한글을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드라마, 한국 드라마 리엔 많이 봐서 그래요. 금령은 지난주에 배운 글자를 떠올렸다. 지난주에는 생선가게에 갔다. 가게에서 게를 샀고, 오는 길에 개를 만났다. 금령은 개와 게의 차이를 이해했다. 금령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때였다. 멀리 강을 등지고 리엔이 올라오고 있었다. 녹차밭의 이랑을 오를 때마다 리엔의 몸이 강물에서 솟아올랐다. 리엔이 걸음을 빨리했다. 리엔도 금령을 알아본 듯했다. 리엔이 한손을 치켜들고 흔들었다. 안녕. 들리지 않아도 금령은 들었다. 금령도 손을 들었다. 안녕. 리엔이 멈춰 서서 금령의 위치를 확인했다. 리엔이 길을 바꾸자 둘은 일직선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걸었다. 강물을 등지고 걷는 리엔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금령은 리엔을 향해 천천히, 천천히, 라고 말했다. 리엔이 걸음을 멈추고 양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섰다. 이제는 멀리서도 리엔의 불룩한 배가 보였다. 금령과 리엔이 정자 앞에서 만났다. 금령 할머니서울 갔었어요? 리엔이 물었다. 금령은 리엔의 팔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엔은 금령의 얼굴을 오래도록 쳐다볼 뿐, 서울에 대해서도 이틀 동안 무엇을 했는지도 묻지 않았다. 집에 불이 꺼져 있어 서울에 간 줄 알았다고 그렇게만 말했다. 금령과 리엔이 나란히 산을 내려갔다.

베트남에도 차밭 많아요. 여기보다 훨씬 커요. 리엔은 할 말이 없을 때마다 고향의 차밭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높아요. 여기보다 훨씬 높아요. 하지만 저기처럼 물은 없어요. 거긴 비가 많이 오거든요. 리엔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고향의 넓은 차밭을 자랑하는 리엔이었지만 찻잎을 따는 리엔의 손놀림은 느렸다. 베트남에선 천천히 따요. 여기는 너무 빨라요. 얘들도 아파요. 그래서 천천히 따야 해요.

 차밭을 알리는 다원의 푯말을 지나자 강의 입구가 시작됐다. 리엔은 오늘 읽을 시를 보여 주겠다며 걸음을 멈췄다. 리엔의 가방에도 금령처럼 책과 공책과 필통이 들어 있다. 리엔이 공책을 꺼내 한장 한장 넘기기 시작했다. 리엔이 한글을 떡 같다고 한 이유도 공책의 칸에 있었다. 베트남에선 이렇게 네모난 공책 없어요. 긴 줄. 그 위에 글 써요. 한국 공책. 한국 떡 같아요. 그날 이후 금령도 떡에 속을 집어넣듯 글씨를 썼다. 맛있는 생각이었다. 공책을 뒤지는 리엔을 뒤로하고 금령은 강물의 물결이 밀려올까 제 키만큼 떨어져 걸었다. 리엔이 금령의 옆에 다가와 섰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당신도 나를 사랑하지요.’ 리엔의 시였다. 리엔이 다시 읽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당신도 나를 사랑하지요.

 

 묻지 않아도 리엔이 누구를 생각하며 지었는지 금령은 알았다. 금령은 글이 소리를 달았다며, 리엔의 손을 잡아 주었다.

 

 

<당선소감>


제 글 읽으려 한글 배운 엄마 사랑해요

 

그날,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누웠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고 싶었지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곧 일어나 상추에 밥을 싸 먹었습니다. 최대한 입을 크게 벌리고, 최대한 많은 밥을 덜어 상추에 올렸습니다. 상을 물리고 두통약을 먹었습니다. 다시 침대에 누워 제 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책상 위에 올려진 노트북과 그 옆으로 미완성의 소설들. 한때 소설을 써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며 많은 날들을 방황했습니다. 그러다, 소설(小雪) 같은 소설(?)이 되겠다는 당신을 만났습니다. 저 또한 감히 그러고 싶어졌습니다. 이 사명감의 밑거름이 되어 주신 당신의 부모님. 그분들이 가꾸는 논과 밭이 제가 소설을 쓰는 동안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임을 압니다.

이런 다짐을 공책에 적으며 수상소감을 쓰던 그날, 그날은 당선소식을 접하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정을 넘겨 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쓴 글을 읽기 위해 한글을 배우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 보여 주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 같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나의 엄마와, 소설을 사랑하게 해 준 사랑하는 내 당신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당신도 나를 사랑하지요.”

 마지막으로 부족한 제 글을 예쁘게 봐 주신 박상우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성란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황경란 1972년 경기 오산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휴학중

 

 

<심사평>

 

소설에 개입하고 싶은 욕망 절제 돋보여

 

신문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쓴 까닭일까, 본심에 올라온 열두편의 소설들은 자연스럽게 두흐름으로 나눌 수 있었다. 귀농의 어려움과 구제역·자유무역협정(FTA) 등 농촌 현실을 다룬 소설. 젖소와 닭들이 무자비하게 살처분되는 광경은 기성 작가들의 소설들에서도 눈에 띄고 있는 바이다. 그럼에도 <낯선 겨울>에서처럼 죽어 나간 젖소를 몰래 끌어다가 묻는 장면은 기존의 이야기와는 다른 감동이 있었다. 조금 더 실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소재주의로만 그치지 않는 소설들을 많이 써 주셨으면 좋겠다.

 <균을 위한 발라드 댄스>는 귀촌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남편의 삐딱한 시선이 신선하다. 농촌을 삽시간에 곤경에 빠뜨리는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AI)와 같은 균들에 대치되어 농민들을 살리는 표고버섯균을 소재로 한 것이 읽는 이들로 하여금 잠시라도 한시름 놓게 한다. 하지만 밭을 싫어하는 남편의 이유가 단지 지렁이라니, 그 순간 급작스레 무게감을 잃는다.

 어렵지 않게 <그날 이후로>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작품은 위안부 출신의 한 노인과 농촌으로 결혼해 이주해 온 외국인 신부와의 교감과 우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 속에 개입해 큰 목소리를 내고 싶은 욕망을 잘 누르고 시종일관 거리감을 유지한 것이 이 소설의 큰 미덕이다. 그 때문에 이 작품의 울림은 소설이 끝났을 때부터 시작된다.

 당선자뿐 아니라 모든 응모자들께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독자로서 즐거운 날들이었다.

심사위원 : 박상우<소설가하성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