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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이

 

 

난다 냄새 난다 나는 내가 긁어 부스럼이라 냄새 난다 나는 나를 날린 셈인데 냄새 나는 나는 나는 새에게도 냄새 난다 냄새는 냄새를 전이시켜 새똥 싼 내 하늘도 냄새 난다 냄새는 자꾸 가려워 구름을 비벼대는 것이어서 충혈 된 내 먹구름도 냄새 난다 소나기 한 줄금 쏟아내면 냄새가 사라질 것이란 기대는 금물 사납게 짖어대는 내 번개가 아직도 그 속에 눈이 번쩍 도사리고 있어 크릉크릉 냄새 난다 아귀를 맞추어 장미꽃을 밀어 올리던 내 거미줄에도 말 달리며 방방 뛰던 꽃물이 남아 있기는 마찬가지 옹헤야 냄새 난다 어절씨구 냄새 난다 소리 높여 노래 부르기는 시기상조 이제는 내가 나를 더불고 슬금슬금 거문고를 타야 할 때 내가 나를 데리고 묵상에 들어야 할 시간 소리 없이 냄새 나고 냄새 없이 냄새 난다 내가 나를 산책한 냄새 한 무더기 내 안을 단단히 버티어 간다.

 

 

 

 

 

 

◇ 당선소감

 

이름 : 박주용(1961년생)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건양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건양대학교병설 건양고등학교 교사

 

얇은 귀에 물고기를 통째로 날염했는지 핸드폰에서 냄새가 났습니다. 마중 나가던 손이 너무 떨려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두려움과 설렘의 안테나 잘게 썰어 부재중 너머의 소리에 주파수를 맞춰 보았습니다. 순간 새들이 날아오르고, 지난 사월 아버지 곁에 벚꽃으로 가신 어머니가 오늘은 내게 눈꽃으로 오시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그립고 반가운 소식을 가지고 말입니다. 새들도 찔끔 눈물을 내려놓고 날아갑니다.

저는 시를 쓰며 그동안 낙엽수였습니다. 내 나무는 숨이 깊었던 달빛이 자꾸 흐릿해지고 뻐꾸기 울음도 등뼈를 슬슬 빠져나가 강물이 시나브로 말라갔습니다. 그 증상은 날로 심해져 습했던 속눈썹도 어리둥절해지고 점점 가벼워져 작은 바람에도 염기 없이 실실 웃었습니다. 숨 가쁘게 살아도 자꾸 주눅이 들어 옆으로 드러눕게 되고 가끔은 자신을 마셔버린 취객처럼 지그재그로 걸으며 구름 발자국을 찍어댔습니다. 앞으로도 이 증상은 계속 되겠지만 이제 든든한 뿌리 하나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겨울만 되면 고개 떨구던 나무를 믿고 응원해 준 사랑하는 사람과 딸 누리, 아들 한솔에게 먼저 고마움을 전합니다. 형 동생 내외를 비롯한 가족 분들, 특히 나뭇잎 신발로도 고향 청산을 지키고 계신 작은아버지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제자들을 비롯하여 몸을 담고 있는 건양학원의 가족들, 하현달로 용기를 준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동기와 시목동인들, 옥천문인협회, 테니스동호인, 한우물 친구들 모두 고맙습니다.  

반으로 접히는 나이에 한창나이로 날개를 달아주신 심사위원님과 매일신문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치열한 산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정진하겠습니다.

 

 

◇심사평…작가 나이 앞지른 시적 미덕

 

예심을 통과한 새로운 작품들을 읽는다는 것은 우선 즐거움에 가깝다. 우리 시단의 시적 근경인 난삽하고 편협한 가독성은 현저히 줄어들었고, 일상과 사유가 시의 그물망에 들어왔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투고한 분들의 연령층이 높다는 것은 곤혹스럽다. 등단 연령의 상승은 신춘문예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적인 현상이 아닌가. 이십 대에 등단한다는 희망은 이제 사치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우리는 박주용 씨의 작품을 선택하는 하나의 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당선작은 박주용 씨가 투고한 세 작품, ‘나뭇잎 신발’, ‘데칼코마니’, ‘옹이’에서 가려야만 했다. 당선작인 ‘옹이’는 옹이를 소재로 섬세한 개성을 뽐내고 있다. 작품‘옹이’는 옹이를 기의로, 냄새를 기표로 하되, 냄새라는 독특한 흔적만으로 시적 의도를 정치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옹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면 “나무에 박힌 가지의 그루터기. 또는 그것이 난 자리” 이면서 “굳은살”이거나 또는 “귀에 박힌 말이나 가슴에 맺힌 감정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작품 ‘옹이’의 배후는“귀에 박힌 말이나 가슴에 맺힌 감정 따위”에 해당되겠다. 가슴에 맺힌 개별적 감정을 옹이/냄새가 주술적 공간과 서정적 공간을 통과하면서 자기 심화에 도달하게 되는 발화 과정이 노래말로 엮어졌다. 우리말의 리듬에 기댄 이 냄새의 상상력은 낯설지만 기시감에 가깝고, 재빠르지만 부박하지 않다. 해설도 분석도 필요없이 감각으로 다가오는 시적 속도감은 ‘옹이’의 매혹이다. 박주용 씨의 ‘옹이’를 당선작으로 미는데 심사위원 두 사람이 합의했지만 씨의 연령이 오십대라는 걸 우려했다는 점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어쩌랴, 시적 미덕이 나이를 앞질렀다.

  다음에 거론된 분들의 작품도 몇 번이나 읽어야만 했다. 우선 이명우의 ‘실직’과 ‘척추’, 특히 ‘실직’에는 “햇빛에 나무가 더 가늘게 깍이고 있다”라는 시선이 있고, ‘척추’에는 “골조건물에 길게 세운 철근 몇 가닥 / 바람을 빼내지 못한 인부들의 허리를 갉아먹는다”라는 쓸쓸함이 있다. 조유희의 ‘앵무새의 난독증’과 김재연의 ‘슬리퍼(Sleeper)’도 우리가 주저한 작품이었다. “슬리퍼라는 단어가 / 영원히 잠든 사람들의 발자국, / 이라고 생각해보자”라는 ‘슬리퍼(Sleeper)’의 첫 연은 이후에도 두고두고 생각나는 구절이었다. 이 분들 역시 시인이 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다고 믿어진다.  

 

문인수(시인)·송재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