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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김진규

 

메마른 나무옹이에 새 한 마리가 구겨져있다

다물어지지 않는 부리 위를 기어 다니는 어두운 벌레들

작은 구멍에 다 들어가지 않는 꺾인 날개가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들의 그림자를 쓰다듬고 있다

누군가가 억지로 밀어 넣은 새의 몸을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나도 분명 그런 적이 있었을 것이다

어울리지 않았던 것들의 속을 채워보기 위해

아귀가 맞지 않는 열쇠를 한 번 밀어 넣어 보듯이

혼자 날아가지도 못할 말들을 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둥근 머리통을 한참 보다가 눈이 마주친다

이쪽의 눈과 저쪽에 있는 새의 눈이 마주치자,

여태껏 맞아본 적 없는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머리통이 간지러워져서,

나도 어딘가 머리를 드밀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방에서 방으로 옮겨갈 때의 걸음을 생각해보니

나는 언제나 이곳과 저곳의 국경을 넘는 사람인 거 같아

누워있는 사람의 말을 대신 전할 때

구겨진 새의 몸을 손으로 감싸서 누구한테 내밀 듯

나도 어떤 말인지 모를 말들을 했던 것 같아

새의 부리가 날보고 웅얼거리는 것 같아서

내 귀가 어쩌면, 파닥거리다가 날아갈 것 같아서

나무옹이를 나뭇가지로 쑤신다 

좀 더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라고

삼키지 못할 것들을 밀어 넣듯이 밀어 넣는다

 

 

 

 

 

 

 

 

[한국일보 2014 신춘문예 - 시 부문] 김진규 당선소감

착한 척 하며 숨지 않고 시로 아직 옮기지 못한 많은 것들에 말 걸겠습니다

 

별 하나 뜨지 않은 새벽에 조용한 방안에서 전화를 끊고 난 뒤는, 담담하다 못해 암담했습니다.

베란다에 가끔 기타만한 갈매기가 앉아 한참을 울다갑니다. 밤길에는 라쿤들이 구석에 모여 자기 그림자를 빚습니다. 시로 아직 옮기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캐나다에서도 봅니다. 앞으로 더 많은 것들에게 말 걸어보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나쁜 역할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빠서 주목받느니 착하게 뒤에 숨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주 착한 척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나에게만 나쁜 역할을 주어볼까 합니다. 착한 척, 거짓으로 사는 걸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못난 저에게 많은 걸 알려주신 김용범 선생님, 이윤학선생님, 홍우계 선생님, 윤한로 선생님, 조동범 선생님, 박주택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안양예고 문창과와 경희대 국문과 선후배 동기, 왓 형님들, 오록당 멤버들, JJ 덕분에 살고 있습니다. 경희 문예창작단 식구들 앞으로도 계속 같이 가고 싶습니다. 무뚝뚝한 아들 때문에 힘드셨을 부모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 어설픈 저에게 기회를 주신 세 분의 심사위원 선생님 감사 드립니다.

 

◆김진규 / 1989년 경기 안산 출생. 안양예고 문예창작과 졸업. 경희대 국문과 4학년 재학 중.

 

 

 

[한국일보 2014 신춘문예 - 시 부문] 심사평

세심한 관찰력… 광경이 감각적인 성찰로 진화

 

응모자는 884명이었다. 이분들의 시 4,000여 편을 예심해서 우선 30여 편을 추렸다. 이 시들에는 소위 '미래파'가 많았다. 기존 시단의 미래파가 예비 시인들에게 여전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징표일 테다. 최종 본심에 김동수('새가 그려준 지도'외 2편), 이재근('토르소' 외 5편), 김진규('나무라기엔' 외 2편)를 올렸다. 다른 분들이 최종 본심에 못 든 이유는 2%가 모자라서다. 미래파건 전통파건, 앞의 '유행'에 젖은 뒤 그것을 돌파해야 하는데, 강력한 경향이랄지 추세에 흔들렸다. '영향에 대한 불안'이 부족해 보였다. 휘둘리지 말고 돌파해야 한다.

이재근의 '토르소'는 시적 논리가 이미지의 다양성을 제압할 만큼 탄탄하고 스케일이 큰 시다. 우리 삶에 대한 긍정적, 남성적 힘이 있다. 그런데 굳이 흠을 잡자면 논리가 과해서 이미지를 밀어낸다. 이 부분을 해결하면 뚝심 있는 큰 시인이 되리라. 김동수는 시를 상당히 많이 써 본 솜씨다. 이미지 전개가 조화롭고 참신하다. 기발하면서도 튀지 않는 시어들로 논리와 이미지 사이가 친근하다. 그런데 전하는 바가 또렷하지 않다. 물론 좋은 시는 해석의 지평이 열려 있게 마련이지만, 시에 허용되는 '모호함'에도 한계가 있다. 두 분 시 모두 이만하게 쓰기 쉽지 않아 아쉽지만, 한 편만 뽑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기회가 주어지리라 믿는다.
김진규의 '대화'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메마른 나무옹이에 새 한 마리 구겨져 있다', 죽은 새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 고통을 '구겨진 새의 몸을 감싸서 누구한테 내밀듯' '좀 더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라고' 같은 시구가 달래준다. 김진규는 관찰력이 뛰어난 시인이다. 세심한 관찰로 잡아낸 광경이 감각적인 성찰로 전화(轉化)한다. 아마도 죽음을 아는 게 성년이리라. '비성년' 이미지에서 시작해 '비성년'을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하는 고통스런 움직임이 고통스러우리만큼 집요하게 그려져 있다. 당선을 축하 드린다. 새로 태어나는 시인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