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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나나 / 류시은

 

그 장면은 오래 생각하고 그린 마지막 컷 같았어. 난간에 앉은 나나의 뒷모습을 보는데 차마 내려오라고 할 수 없었지. 물탱크 옆 수도관에 걸터앉아 기다렸어. 발아래 엉켜 있는 것이 식물 줄기인지 전선인지도 구분되지 않던 캄캄한 밤이었어. 한참 먼 곳을 바라보던 나나가 한숨을 내쉬는데 입에서 말풍선이 나오는 것 같더라. 천천히 흩어져 옅어진 숨 위로 몇 글자가 선명하게 떠올랐어.

나나를 잘 돌봐야 해.

그러니까 나는 그 말을 눈으로 본 셈이지. 나나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는지 확인해야 했어.

잘 돌보라니, 어떻게?

나나가 가만히 고개를 돌리고 나를 보더라. 표정이 어땠는지는 미처 살피지 못했어. 들어야 할 대답이 있었거든. 몰아붙였어. 내가 때마다 주사기로 사료를 먹이고 항문을 닦아 주고 병원도 데리고 다녔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잘 돌보라는 말이냐며, 가끔 캔이나 던져 주던 인간이 할 말이냐며 언성을 높였어. 나나가 이미 뛰어내린 줄도 모르고 소리를 질러댔네.

그날 밤 나는 무얼 했느냐고 물었지. 말리지 않고 대체 뭘 했느냐고. 글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게 재우쳐 묻는다면 방관이란 것을 했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구나. 다만 눈을 감고 서서 중얼거렸어.

끝났구나, 드디어.

빈 난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어. 차가운 수도관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거든. 깊게 들이마신 숨을 다시 내쉬는데 아주 홀가분하더라. 같은 지점에서 뛰면 나는 추락하지 않고 가뿐히 착지할 수 있겠다는 착각에 휩싸였지. 아마 나나도 그랬을 거야. 분명 그 순간에는 그런 기분으로 나를 버렸을 거라 생각해. 마른 가지에서 떨어져 나간 나뭇잎 같은 마음.

나나를 처음 본 날이 언제였을까, 나나가 퇴원한 지 얼마 안 되던 날이었으니 계절은 아마 이맘때쯤이었을 텐데. 담당의가 나나에게 꼭 햇빛을 보여 줘야 한다기에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던 중이었어. 늘 그렇듯 한 손으로 나나의 축축한 손을 잡고, 괜찮아? 좀 어때? 같은 말을 수시로 건네며 나나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지.

기분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아.

조금만 걸었으니 그렇지.

나는 땀이 나도록 걸어야 효과가 있을 거라고 말하며 나나의 손을 잡아끌었어. 마지못해 걸음의 속도를 따라 높이던 나나가 돌연 내 손을 쳐내더니 파란 트럭 앞에 쪼그려 앉더라. 주차된 트럭 아래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어. 머리를 까딱까딱 흔들며 우리를 올려다보는 새끼고양이가 부스러진 낙엽을 깔고 앉아 있었지.

연주야, 이 애 좀 봐.

온몸이 풍성한 흰 털인데 꼬리만 고등어 비늘 무늬인 머그컵만 한 짐승. 보드라운 솜뭉치에 미꾸라지가 머리를 박고 있는 것 같았지. 그건 단순한 생김의 문제가 아닌 듯했어. 유기된 품종 묘와 길고양이 사이에서 태어났을까. 네 발이 고사리처럼 안으로 꺾여 있고 머리를 잘 가누지 못했거든. 한 눈에도 어떤 심각한 병에 걸려 어미에게 버려진 것 같았지. 나나는 내가 챙겨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주제에 그 병든 짐승을 집으로 데려가자고 조르더라. 무려 입양이라는 말을 쓰면서 말이야.

얘는 이제 네 동생이야.

나나는 밝게 웃었지만 나는 따라 웃을 수 없었어. 입양이란 말을 쉽게 입에 올리는 모습에 마음이 상했거든. 길에서 짐승을 데려오는 일에 우리 일을 빗대어 말하는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지. 무엇보다 나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어. 지민이 너도 알잖아. 네 이모가 꼬리 달린 것은 다 징그러워했던 거. 나는 모른 척하려 했어. 그런데 그 요망한 짐승이 나를 빤히 보더구나. 마치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바짝 젖히더라고. 꺼림칙했어. 그 뿌연 겨울 아침 하늘 같은 두 눈동자가, 징그러울 만큼 매끄럽고 윤기 나는 꼬리가, 자동차 대시보드에 붙인 플라스틱 인형처럼 까딱까딱 흔들흔들. 한 걸음 떨어져 그냥 알겠다고 했어.

그러자, 그렇게 하자.

언젠가부터 나는 알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으니 그날의 알겠다가 특별한 알겠다는 아니었지. 당장 감당할 일이 짐작되더라도 기분이 끝없이 가라앉더라도 우선 받아들이는 쪽을 택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으니까.

나나는 그 새끼고양이에게 자기 이름을 붙이고는 바로 내게 떠맡겨 버렸어. 충분히 각오한 일이었는데도 어쩔 줄 모르겠더라. 그 작은 나나는 쉼 없이 머리를 움직이는 탓에 스스로 물도 마시지 못했거든. 병원에 데려가서 뇌성마비라는 진단을 받았어. 습식사료를 오래 불려 끼니때마다 주사기로 입에 넣어 주고 대소변도 매번 닦아 줘야 한다고. 지금껏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의아할 만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 마치 네 이모 나나처럼 말이야. 장난감 같은 바늘 없는 주사기와 사료 한 포대를 사 들고 집으로 오는데 헛웃음이 나오더라. 그 모든 번거로운 과정은 내 몫이었으니까. 나나와 또 다른 나나. 나에게는 돌보아야 할 것이 둘이 되어 버린 거야. 귀찮은 것이 둘.

지민아, 그런데 그 나나가 죽었어.

이제야 나는 둘 모두에게서 벗어나게 된 거야. 나나와 함께 살던 아파트는 법적 양자인 내 소유가 되었고, 여관방을 전전하며 죽을 날만 기다리던 나의 생모는 이 집으로 데려오게 되었지. 평생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엄마와 함께 지내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 노인은 손 갈 일이 없어 견딜 만해. 오히려 내가 돌봄을 받는 쪽이 되었지. 책장으로 둘러싸인 작은 방에 종일 누워 있으면 노인이 끼니때마다 쟁반에 음식을 담아 오거든. 오랫동안 술집 주방에만 있어서인지 하나같이 싸구려 안줏거리 같지만 그래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야. 나는 고양이 나나를 돌보는 일만 신경 쓰면 되었어. 그런데 그 꺼림칙한 짐승이 죽어 버린 거야.

집에 쌓여 있던 만화책을 헌책방에 모두 처분한 날이었어. 돌아와 보니 나나가 빈 책장 맨 아래 칸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더라. 여느 고양이들처럼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얌전히 있기에 오히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지. 작은 몸통을 집어 드는데 뻣뻣한 개의 몸 같더라. , 개를 만져 본 적 없었으니 플라스틱 인형에 더 가까웠다고 해야 할까. 스프링이 망가진 고양이 흔들인형 말이야. 손가락으로 더는 움직이지 않는 머리를 툭 건드려 봤어. 섬유탈취제 냄새가 올라오더라. 털이 군데군데 젖어 있었지. 축축한 몸뚱이를 안고 방을 나갔더니 개 사료 봉투를 뜯고 있던 노인이 먼저 말을 꺼냈어.

그 병신, 장 보고 와 보니 죽어 있더라.

죽은 식물과 병든 동물은 집에 들이는 것이 아니라고 떠들어 오던 노인이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어.

설마 내가 죽였다고 생각하니?

대꾸 없이 거실을 가로지르는데 갈색 개가 꼬리를 말고 소파 밑으로 들어가더라. 이 집에 온 첫날부터 배변을 가리던 영민한 개, 뾰족한 주둥이로 사료를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던 건강한 개. 노인이 술집을 나올 때 몰래 들고 온 유일한 짐. 그 개는 나나만 보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지. 나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어. 나나의 털을 헤집어 개 이빨자국 따위를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지. 어쩌다 나나를 죽이고 피를 씻어내고 섬유탈취제를 뿌리게 되었는지 따져 물을 여력이 없었거든. 여력이 없으니 궁금증도 일지 않더라. 나나를 안은 채 현관문을 열고 나왔어.

이것은 자연사다. 책의 맨 마지막 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우울한 결말 같은 것이다. 고양이가 되어 높은 곳에 올라갈 능력이 없다면, 몸을 피할 수 있는 곳이 겨우 책장 맨 아래 칸일 뿐이라면, 자연사나 다름없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그렇게 중얼중얼 되뇌었어. 그리고 그날을 생각했지. 나나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고. 자연사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결말이었다고. 깊게 잠겨 바람만 겨우 새어 나오는 칼칼한 목으로 중얼거렸어. 몸이 떠오르는 듯한 기분 탓일까. 엘리베이터에 올랐는데 자연스레 20층 버튼으로 손이 향하더라. 어디가 되었든 꼭대기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으로 옥상에 내렸어.

늘 지니고 다니던 옥상 열쇠 복사본이 자물쇠 구멍에 그대로 들어맞더라. 사람들은 참 나태하기도 하지. 그런 재수 없는 사건이 있었는데도 자물쇠를 바꾸지 않고 두다니. 그렇게 나는 모든 나나가 떠난 뒤에야 처음 다시 그곳에 올라가게 된 거야. 난간에 기대어 한동안 둘러보았지. 특정한 지점을 본 것은 아니고 그냥 여기저기를. 멀리 뿌옇게 내다보이는 빌딩과 앙상한 나무들이 서 있는 뒷산과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는 놀이터, 그 옆의 좁다란 공터를…… 느닷없이 궁금해지더라.

나나를 잘 돌봐야 해.

나나가 왜 그런 하나 마나 한 말을 던지고 떠났는지 알고 싶어지더라고. 너도 아마 그랬겠지. 몸이 아프도록 궁금증이 일었으니 그렇게 무섭게 쏘아댔겠지.

지민아, 만화에는 홈통이라는 개념이 있어. 칸과 칸 사이를 띄어 놓아 생겨난 흰 공간, 그러니까 어떤 칸에서 다음 칸에 이르기까지 상상으로 뛰어넘어야 하는 시간의 틈 말이야. 알다시피 네 이모와 내가 함께 지낸 시간은 삼십 년에 가까워. 네가 살아온 시간보다 더 긴 기간이지. 나의 떠오르는 모든 기억을 털어놓는다 하더라도 홈통의 면적이 더 넓을 수밖에 없어. 네 멋대로 상상하게 될 몫이 생각보다 더 비대할 거라는 의미야. 자신이 없었어. 너에게 신뢰를 쌓지 못했으니까. 너의 물음에 어떤 그림을 그려서 내밀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더라. 아무리 세심하게 정지된 순간을 배열한다 하더라도 나나와 나의 시간들을, 그리고 우리의 홈통을 엉망으로 만들 것 같았지. 그때는 그게 싫었어. 내키지 않았지. 이상하게도 네 앞에서는 입이 떨어지지 않더라.

그래서인가, 장례를 치르는 동안 네가 쏟아낸 물음에 도무지 제대로 대답한 것이 없었어. 스스로를 방어해야 했거든. 나나를 빼닮은 네 입에서 쉼 없이 떠오르는 말풍선을 바늘로 터뜨리듯 소리를 질렀지. 몰랐어, 나는 몰랐다고! 누군가 다가와 내 어깨를 흔들어 말릴 때까지 몰랐다는 말만 반복했어. 물론 무얼 몰랐다는 것인지 생각하고 말한 것은 아니었어. 네 의혹에 대한 적절한 대답도 아니었고 사실도 아니었지. 변명하자면 나는 네 엄마와 외삼촌, 경찰 같은 껄끄러운 이들에게 우리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묘사를 몇 번이나 되풀이한 상태였거든. 고단하고 두렵고 괴로워 어서 그 장소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지.

다시 옥상에 올라와 서성이는데 네가 했던 말들이 떠오르더라. 하나하나 고스란히 되살아나 눈앞에 어른거리더라고. 네 말대로 이 아파트 옥상은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어. 드러나지 않는 곳에 있다 보니 정리가 되지 않아 어수선하기도 하지. 낮 외출도 쉽지 않은 나나가 그 밤에 난간까지 넘어간다? 분명 혼자 계획했다고 상상하기 어렵겠지. 자물쇠로 잠겨 있는 옥상 문을 따고 나무도 차도 없는 공터로 정확히 뛰어내린 행동은 사전답사 없이 했다고 믿기 힘들 거야. 무엇보다 내가 늘 나나 옆에 붙어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몰랐다는 변명이 더 미심쩍게 느껴졌겠지.

다 맞는 얘기야. 충동적인 행동이었다면 그냥 베란다에서 뛰었을 거야. 하지만 나나는 옥상을 택했어. 나는 몇 번이나 동행했지. 나나의 부탁으로 열쇠를 구해 복사한 것도 내가 한 짓이 맞아. 다만 처음 그곳에 간 것은 나무를 심기 위해서였어. 나나라는 이름의 나무를. 믿기지 않겠지만 그랬지.

연주야, 우리 옥상에 나무 한 그루만 심고 오자.

나무?

, 나무. 내 이름이 들어간 나무가 있더라.

뭔데 그런 나무가 있어?



유칼립투스. 유칼립투스 중에 나나라는 종이 있더라. 그래서 유칼립투스 나나. 나나 나무.

나는 심호흡을 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어.

……, 나나야, 알겠어. 잘 알겠는데. 옥상은 우리 소유가 아니야. 여기는 아파트잖아.

딱 한 그루만 심고 오자. 그럼 다 괜찮아질 것 같거든. 잠도 잘 자고 네 말도 잘 듣고 이상한 소리도 안 하고, ? ?

나나는 어린애처럼 졸라대기 시작했어. 20층 아파트 옥상에 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도저히 실현 가능한 일로 다가오지 않았지만 그냥 알겠다고 해 버렸어.

그러자, 그렇게 하자.

병든 고양이를 내게 떠넘긴 것과 비슷한 행동 중 하나라고 여겼지. 집에 들인 화분이 하나둘 죽어 갈 때마다 나나의 상태가 어떻게 악화됐는지 지켜봐 왔으니 그런 기행도 해 볼 만하겠다 싶었거든. 높은 곳에서 해를 받고, 창문을 열어 주지 않아도 바람을 쐴 수 있다면, 그래서 그 나나라는 이름의 유칼립투스가 죽지 않고 잎을 무성하게 틔워만 준다면, 보는 것만으로도 무력감에 젖게 하는 병든 고양이 나나보다는 낫지 않을까…… 어처구니없게도 내가 그런 식으로 자신을 설득하고 있더라고.

옥상의 구조는 너도 봐서 알겠지만 물탱크와 굵은 파이프, 난간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군데군데 세워놓은 합판, 그 밖에도 알 수 없는 시설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두어 번 그곳을 답사하고서야 흙을 채울 만한 곳을 찾았지. 어쩌다 마감이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배수구를 근처에 둔 오목한 공간이 마침 눈에 들어오더라. 뿌리가 제법 묵직한 유칼립투스 나나 묘목과 흙 포대를 어깨에 이고 옥상에 올라갔던 밤이었어. 나나가 좁은 난간에 기대어 바깥을 내다보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구나.

여기서 같이 뛰면 되겠다.

?

내가 반응을 보이자 나나는 곧 뒤를 돌아보며 동의를 구하듯 물었지.

어때, 손잡고 뛰면 끝내주겠지?

해맑게 웃으며 양팔을 휘젓더라. 뛰어내리는 시늉을 하는 거였지. 나는 들고 있던 유칼립투스 묘목을 바닥에 던져 버렸어. 양손으로 불그스름한 나무줄기를 주워서 부러뜨렸지. 잔가지도 손에 잡히는 대로 잡아 뜯고 얇은 포트 화분도 생수병 찌그러뜨리듯 마구 밟아버렸어. 그리고 나나를 엘리베이터까지 끌고 왔지. 화를 내려 했어. 못된 버릇이 든 아이를 훈육하듯 아주 엄하게. 마음을 약해지게 만든 그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분명 그럴 생각이었지. 그런데 나나가 쪼그리고 앉아 부러진 나뭇가지를 쓰다듬더라. 나뭇가지의 단면에서 배어 나온 수액이 자신의 몸에서 흐른 체액이라도 되는 듯 아프고 쓸쓸한 얼굴로. 결국 나는 나나를 안아 일으키며 늘 하던 말을 뱉을 수밖에 없었어.

알겠어, 그러자. 그렇게 하자, 우리.

오해는 마. 말만 그렇게 내뱉은 것일 뿐이니까. 그날 나나는 얌전히 집으로 내려갔고, 오랜만에 뜨거운 물로 목욕도 했어. 야식으로 만들어 준 콩국수 한 그릇을 비운 뒤엔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삼키고 금세 잠이 들었지. 다음 날 해가 뜨면 먼저 산책이라도 가자고 할 듯 컨디션이 좋아 보였단 말이야.

다만 나나가 일하는 것을 오랫동안 보지 못해 한 가지 놓친 것이 있었어.

너도 알겠지만 스크립트를 쓸 땐 정확한 상을 머릿속에 지녀야 해. 만화가가 바로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문장으로 묘사해 줘야 하거든. 나나는 이야기를 구상하기 전에 꼭 사전답사를 했어. 외출을 그렇게 귀찮아하면서도 그때만큼은 분주하게 움직였지. 매번 나들이라는 핑계로 나를 어딘가 데려가곤 했는데, 나는 출판된 만화책을 접하고 나서야 그 나들이가 사전답사였다는 것을 알게 되곤 했지. , 우리 나나 정말 대단하네, 거기서 언제 그런 생각을 했어? 내가 만화를 보고 놀라는 순간을 나나는 즐겨 기다렸던 것 같아.

그러니까 나나는 유칼립투스 나나를 심겠다는 말로 나의 주의를 흩뜨려놓고는 자신의 다음 할 일을 구상했던 거야. 어느 지점에서 뛰면 차와 나무가 없는 시멘트 바닥으로 정확히 떨어질 수 있을지 구조를 살펴본 것이지. 구체적인 그림을 머릿속에 스케치한 다음엔 궁금해했어. 같이 뛰어내리자고 했을 때 나라는 캐릭터가 내보일 반응을. 그 뿌연 겨울 아침 하늘 같은 눈동자에 내가 무심코 짓는 표정을 담으려 했지.

네가 그랬지. 이모들은 말하는 것이 꼭 스무 살짜리 애들 같다고. 세상과 고립된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리숙해졌다고. 틀린 말은 아니지. 나나와 나는 어느 시점에 중요한 것을 놓친 채로 몸만 늙어 버렸으니까. 만년필과 스크린 톤을 쓰던 때였으니 지나치게 오래전이긴 하지만, 우리에게도 관대했던 시절이 없지 않았어.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우리가 이렇게까지 오래 살 줄 몰랐던 걸까. 그때의 스토리작가는 고용인의 개념이었어. 출판 만화의 호시절이었고, 어쨌든 나나에게 일이 꾸준히 들어왔으니 이름을 드러내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여겼지. 요즘 애들은 만화가를 그작’, 스토리작가를 스작이라고도 하더구나. ‘스작의 이름을 올리는 일이 당연해졌잖아. 진작 당연해야 할 일이 이제야 당연해졌지만 나나는 당연해진 세계에 적응하지 못했지.

일이 완전히 끊기고 몇 해쯤 지났을까. 나나가 엉뚱한 말을 하더라. 자꾸 돈이 사라진다고, 누군가 통장에서 야금야금 돈을 빼돌리고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의 리스트를 뽑았다는데, 옆집 할머니와 경비 아저씨, 상가의 약국 아르바이트생을 열거하는 거야. 당황했지만 차분히 상황을 읊어 줬어. 돈이 왜 사라지냐고? 우리가 쓰기 때문이잖아. 버는 것 없이 쓰기만 하기 때문이잖아.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돈은 사라져. 하지만 나나는 내 설명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지. 말 배우는 어린애처럼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오래전 함께 작업했던 만화가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난감한 말을 해댔어. 우리 돈을 어디로 빼돌렸느냐고.

내가 떠나겠다는 말을 습관처럼 뱉던 무렵이었을까. 커다란 여행 가방을 챙겨 현관 앞으로 끌고 가면 나나는 달려와 무릎 꿇고 빌었어.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며 빌었지. 떠나겠다는 말이 괜찮은 협박이 된다는 걸 알게 되자 끊을 수가 없더라.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나면 며칠은 지낼 만했으니까. 잘 먹고, 잘 자고, 이상한 말로 날 괴롭히지 않고……. 그 시기에 나나가 입양을 제안한 거야. 내가 자신보다 한 살 어리니까 가능할 거라고, 조건이 되더라고, 어느 레즈비언 커플이 그런 방식으로 가족이 되는 것을 봤다며 우리도 그렇게 하자더라고. 자신이 병원치료를 받기 전에 우리는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만 한다고.

연주야, 이제 엄마가 말 잘 들을게.

한동안 나나는 나를 딸이라고 부르며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어. 나나의 상식으로 가족은 끊을 수 있는 무엇이 아니었거든. 그래서 나의 과거를 상기하기 전까지만 간신히 괜찮을 수 있었던 거지. 사실 난 가족을 떠나기 위해 만화를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었어. 열아홉에 만년필 한 자루만 들고 집을 뛰쳐나온 뒤로 한 번도 그들을 찾지 않았으니까. 출판사에서 마련해 준 문하생 숙소, 나나를 처음 만나게 된 그 연남동 벽돌집이 내게는 쉼터 같은 역할을 했던 거야. 나나는 불현듯 그 사실을 기억해 내고는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졌어. 상태도 더 악화되어 가까운 외출도 어렵게 됐지.

그런데 그 와중에 내 가족을 찾아내더라. 병원에 가는 일조차 녹록지 않은 몸으로 기어이 그들의 근황을 알아내더라고. 몇 해 전 병으로 죽은 아빠와 사기죄로 교도소에 복역 중인 오빠, 여관방을 전전하며 살고 있는 엄마에 대한 소식을 그 바람에 전해 듣게 되었지. 칸과 칸 사이, 홈통에 두어야 마땅했을 것들을 기어이 그림 칸 안으로 끄집어낸 거야. 나나는 나의 엄마였던 노인에게 안부랍시고 전화를 걸기 시작했어. 내가 듣는 앞에서 우리에 대해 함부로 떠들어댔지. 우리의 과거, 현재, 또 그 이후의 일어나지 않을 이야기까지 마구잡이로 늘어놓았어. 무료했던 노인은 다른 이들처럼 전화를 차단하지 않았으니 그 행위는 지속해서 이어질 수 있었고. 변명하자면 노인은 내가 부른 것이 아니라 그 계기로 아파트까지 들어오게 된 거야.

짚어 보면 그날, 나는 침대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깨닫고 다급히 1층으로 내려갔어. 너는 내가 곧장 놀이터로 향한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했지만, 이렇게 얘기하면 설명이 될까. 놀이터에서는 나나가 떨어진 지점이 보여. 그때의 시점이니 떨어질 지점이라고 해야겠지. 주차된 차도 없고 나무도 풀도 없는 그 좁다란 공터 말이야. 나나가 말없이 밤에 사라진 건 처음이었으니 본능적으로 발이 그리로 향했지. 105동과 106동 사이,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그 시멘트 바닥을 망연히 보고 서 있는데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린 거야.

내 딸, 잠시 이리로 와 줄래?

그 캄캄한 밤에 20층 옥상에서 어떻게 나를 발견했는지 그렇게 말하더구나.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옥상으로 올라갔어.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나나가 있을 거라고 짐작되는 곳으로 넘어갔지. 나나의 뒷모습을 봤어. 난간 밖으로 다리를 내놓고 앉아서 둥그스름한 등만 보이는 그 장면을. 막상 각오해 온 순간을 마주하자 단단한 자갈로 들어차 있던 마음이 모래알처럼 부스러지더라. 꼭 움켜쥐고 있던 어떤 알맹이가 푸슬푸슬 흩어지더라고. 그러자 나나가 작은 칸 속 그림처럼 느껴졌어. 마치 제목 아래 (완결)이라고 적힌 만화책을 펼친 듯했지. 지겹도록 오래 연재한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 말이야.

나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어. 물탱크 옆 수도관에 걸터앉았지. 서늘한 관 아래로 물의 흐름이 느껴지더라. 20층 아래 칸칸이 들어찬 영혼들을 먹이고 씻길 물이 하반신 아래로 흐르고 있었지. 그 자분자분한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의 오랜 연인을 관망했어. 말하자면 방관. 어쩌면 기다렸다는 말로 내 행동을 순화해서 표현할 수도 있을 거야. 스스로 내려오기를 기다렸다고, 가까이 다가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거리를 두고 지켜봤다고. 하지만 기다린다는 행위는 관망과 다를 것이 없고 관망은 곧 방관과 한 몸이라는 사실을 그 순간에도 나는 인지하고 있었어. 다만 그런 나 자신을 모른 척했지. 그때 그 말풍선을 보게 된 거야.

나나를 잘 돌봐야 해.

그 별것 아닌 텍스트가 흐릿하게 새겨진 말풍선을. 나는 여전히 그 말이 환각으로 머릿속에 각인된 문장인지 귀로 들은 현실 속 음성이었는지 확신이 안 돼. 그 하나 마나 한 부탁이 나나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더라면, ‘내 딸, 잠시 이리로 와 줄래?’가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 되겠지. 이제 와 그것을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싶지만 그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이 불쑥 궁금해질 때면 온몸이 부스러질 듯 아파져 와.

오래전 그 비슷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지. 처음 같이 살 집을 구하고 반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나. 마감을 앞둔 나나가 샌드위치를 먹고 싶다기에 삶은 감자와 달걀을 으깨고 절인 양파를 다져 넣어 마요네즈에 버무리고 있었어. 그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나가 그 말을 꺼내더라.

나는 돈을 벌고, 너는 날 돌봐 줘.

새삼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지. 이미 그렇게 분담해서 살고 있는데 무슨 그런 노골적인 말을 하느냐고. 그러자 그냥 이렇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더라고. 나는 그 말을 청혼 비슷한 것으로 받아들였어. , 삼십 년 전의 연인들은 대체로 그렇게 살았으니, 우리도 그렇고 그렇게 흘러가나 보다, 막연히 생각했지.

덕분에 나는 더 이상 만화 그리는 시늉을 하지 않아도 되었어. 나나가 다른 이름 있는 만화가들과 공동 작업을 해 나가는 동안, 맞은편 책상에서 꾸역꾸역 출판사 투고용 그림을 준비하는 일을 그만두어도 되었지. 아주 시원하더라. 나는 출판 만화의 호황기에 능력을 증명하지 못했고, 그걸 만회할 의지나 열정도 부족했으니까. 무엇보다 내가 없으면 과자로 끼니를 때우다 죽을 수도 있는 나의 연인이 자신을 돌봐 달라는데, 만화를 그만둘 명분으로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싶었지.

네 키가 내 허리를 넘을 무렵이었나. 거실 벽에 붙어 있던 일러스트 기억하니? 처음 둘이 살게 된 빌라에는 욕실에 남향으로 작은 창이 나 있었어. 낮에 불을 켜지 않아도 창으로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나나는 샤워할 때 문을 활짝 여는 버릇이 있었어. 언젠가 나나가 비누칠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욕조에 걸터앉은 뒷모습이 문득 섬뜩하게 느껴지더라. 척추를 따라 미끄러지는 하얀 비누거품 때문이었을까. 습관적인 불안인지 곁눈으로 미래를 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덜컥 겁이 났어. 그래서 불렀지. 가라앉으려는 목소리를 겨우 끌어 올려 소리를 질렀어.

나나야!

뒤늦게 돌아본 나나는 입에 물을 가득 머금은 채 웃더라.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샤워기 헤드를 입에 가져다 대고서. 돌이켜 보면 그때 처음으로 말풍선 비슷한 것을 본 것 같네.

괜찮아 연주야, 우리는 오래 괜찮을 거야.

입을 꼭 다문 채 그렇게 말하더라고. 주저앉아 가슴을 쓸어내렸어. 도토리를 가득 문 다람쥐 같은 나나의 양 볼을 바라보면서. 그 장면을 잃고 싶지 않아 몰래 다람쥐 한 마리를 스케치해 놓았는데…… 나나가 어디서 찾았는지 그걸 거실 벽에 붙이고, 신기하게도 네가 그걸 알아보았지.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네가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어.

우리 이모를 왜 저렇게 만들었어요?

같은 음식을 먹고, 한 침대를 쓰고, 만화가 친구들을 초대하고, 누군가 우리에 대해 물어보면 늘 유연하게 넘기곤 했는데, 나는 왜 그 별것도 아닌 질문에 허둥댔을까. 대충 둘러대도 됐을 일에 왜 못 들은 척 화제를 돌렸을까. 너는 그런 나를 빤히 올려다봤어. 대답을 기다리는 얼굴은 아니었지. 다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어. 위축되더라. 그 일러스트는 내가 오랜만에 만년필을 쥐고 그려 본 것이었거든. 그 다람쥐를 꿰뚫어 본 유일한 사람이 일곱 살의 너였지.

집으로 놀러 와 종일 만화책을 보던 나나의 조카들이 스물이 되고 서른이 되고, 어느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우리보다 더 나이가 들어 버렸네. 네 엄마와 미처 정리하지 못한 문제로 짧은 대화를 나누다 우연히 네 소식을 듣게 되었어. 학원을 차렸다고. 미술로 유학까지 다녀온 네가 학원을 차렸다기에 당연히 미술학원일 거라 생각했는데 영어학원이라 하더라. 제대로 들은 건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고, 주제넘은 행동인 것 같아 되묻는 것을 참고 넘겼어. 전화를 끊고 한숨 돌리는데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오르더라.

오래전 네가 건우와 유민이와 둘러앉아 그림을 그렸던 적 있지 않니. 그때 내가 그 애들만 집요하게 칭찬했던 일을 기억하니? 나나는 조카들 중 너를 제일 예뻐했어. ‘지민이가 나중에 만화를 그리게 된다면……으로 시작되는 말을 몇 번이나 늘어놓던지. 스토리작가는 자신이 만든 세계를 만화가에게 전달해야 해. 그 자체로 온전한 결과물이 될 수는 없지. 그 나머지를 내가 채워 줄 수 있을 거라 자만하던 시절이 있었어. 하나의 작품을 둘이서 습작하던 시절 말이야.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칸과 칸 사이, 흰 공간에 몰두하던 파트너였어. 드러내지 않은 표정과 꺼내지 못한 말과 저 아래로 흘러온 각각의 시간들, 칸보다는 홈통을 디자인하는 문제로 밤새 머리를 맞대고 놀았지. 그 꾹 눌러둔 장면이 너를 매개로 소환될 줄은 몰랐던 거야.

이제 와 고백하건대 그 애들 그림은 네 것에 비하면 낙서 수준이었어. 네 그림이 비교도 안 되게 좋았지. 나는 네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거실 구석에서 우는 것을 못 본 척했어. 빨갛게 충혈된 아이의 물 고인 눈을 외면했지. 나의 유치한 질투와 철없는 마음으로 네가 그림에 관심 갖지 않기를, 만화를 꿈꾸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어. 언젠가 한 번은 고백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늦어질 줄은 몰랐네. 늦어도 너무 늦어 버렸지.

지민아, 나는 요즘 병원치료를 그만뒀어. 지금은 필요시약을 먹고 간신히 기운을 차렸네. 그래서 이 주절거림이 헛소리가 될 수 있다는 걸 잘 알아. 내가 늘어놓은 모든 말을 홈통으로 처리해야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쩌겠니. 나는 이미 네 물음에 능력껏 응하기로 마음먹었고, 너는 재량껏 걸러 들을 수밖에. 다만 이 산만한 주절거림 속에서 어떤 장면을 선별할지, 단순 자살로 마무리된 그 일을 어떻게 해석할지, 각각의 페이지당 칸은 몇 개로 구성할 것이며 어떤 그림체로 표현할지는 모두 네 몫으로 떠넘길 생각이야. 물론 듣지 않고 그 자리에서 폐기하는 것도 네 선택지에 있지.

그날, 죽은 나나를 안고 다시 옥상에 올라갔던 날, 나는 기분 나쁜 홀가분함에 사로잡혀 있었어. 네 이모가 눈앞에서 사라진 날처럼 이상하게 몸이 가벼웠지. 이대로 난간에서 뛰면 나뭇잎처럼 바람을 타고 가다 고통 없는 곳에 사뿐히 착지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나나도 그런 마음으로 나를 떠났을까? 알고 싶어지더라. 견딜 수 없을 만큼 궁금해지더라. 써늘한 바닥에 굳어 가는 고양이를 내려 두고 난간에 올라가 앉았어. 105동과 106동 사이, 누군가 물을 뿌려 청소해야 했던 나무도 차도 없는 공터를 내려다보았네. 난간에 손을 짚고 몸을 한껏 밖으로 기울였어. 눈을 감지 않았지. 눈이 아프게 시려 와도 깜빡이지 않고 아래를 보았어.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더라. 무게중심이 넘어가려던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드는 거야.

나는 돈을 벌고, 너는 날 돌봐 줘.

그 음성은 우리가 오래전 놓쳐 버린 어떤 중요한 것에 대해 다급히 알리려는 듯했어. 그건 어리고 어리석은 두 영혼이 불안에 사로잡혀 필수적인 것을 도려내 버린 사건이었다고. 스스로 서는 데 꼭 지녀야 할 기능을 하나씩 거세해 버린 불우한 계약이었다고. 말하자면 우리가 우습게 여겨 온 어떤 것, 이를테면 많은 이들이 의심 없이 받아들여 왔던 일반의 방식 같은 것, 그 어색하고 불완전한 틀을 우리 관계에 빌려 온 탓이었다고. 자신이 성급히 꺼낸 그 말이 우리를 완전히 고립시켰다고,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결국 나는 떨어졌어. 다만 끝없이 떨어져 내렸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난간 안이었지. 누운 채 고개를 돌리니 죽은 나나가 눈에 들어오더라. 앞발도 뒤틀지 않고 머리도 흔들지 않으니 건강하게 살다 간 고양이와 다를 바 없어 보이더라. 사방이 어두컴컴해서 어느 부위가 흰 털이고 어느 부위가 검은 털인지 잘 구분되지 않아서일까. 내 도움 없이 물 한 모금 제대로 못 마시던 그 가엾은 짐승은 여기에 없더구나. 여전히 부드러운 털을 가만히 쓰다듬는데 어렴풋이 알겠더라. 고양이 따위 안중에도 없던 인간이 왜 그런 말을 남기고 갔는지.

나나는 분명 알고 있었어. 언제나 다 알고 있다는 눈으로 나를 지켜봐 왔지. 나는 나나가 나 없이는 살 수 없는 불구라고 여겨 왔는데, 나도 다르지 않았던 거야. 나나는 내가 알아채길 바라지 않았지. 그래서 쉼 없이 손 가는 것들을 내 곁에 두고 내가 아프지 않기를 바랐어. 파란 트럭 아래 기우뚱 앉아 있던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에도, 나를 떠나기 위해 유칼립투스를 데려오던 날에도, 나나는 알고 있었어. 나나를 잘 돌봐야 한다는 마지막 말풍선은 나의 안위에 대한 당부였던 거야. 나나를 몇 번이나 잃고서야 나는 가까스로 알게 되었네.

얇은 외투를 벗어 나나의 몸을 덮었어. 자그마한 네 발을 흐트러지지 않게 돌돌 감았지. 그리고 배수구 근처의 오목한 공간, 우리가 유칼립투스 나나를 심기로 했던 조그마한 웅덩이에 나나를 눕혔어. 화단에서 흙을 한가득 퍼와 그 위에 덮었네. 한 겹 덮고 다지고, 한 겹 덮고 다지고…… 몇 차례 반복하다 보니 멀리 빌딩 너머로 동이 터 오더라. 빛은 조그마한 봉분 위로 금세 와닿았지. 아름다웠어. 그 볼록한 갈색 봉분이 물을 머금은 누군가의 다람쥐 같은 볼을 연상시켰거든. 지민이 네가 그 장면을 봤어야 했어. 너라면 분명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봐 주었을 테니까.




  <당선소감>


   "나나를 좋은 곳으로 보낸 것 같은 믿음"

당선 전화를 받고 눈앞에 한 사람을 떠올렸다. 어려운 고비마다 나를 다잡아 준 온화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그 마음을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 하성란 선생님께 깊은 존경과 사랑을 전합니다.

지난겨울 우울한 신년에 나나를 구상했다. 첫 장면도 끝 장면도 아팠던 소설이었다. 그사이 동계올림픽이 지나갔고, 겨울이 끝나갈 무렵 초고를 썼다. 추운 옥상에 머물러 있던 나나를 꺼내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나나를 좋은 곳으로 보내 주었다고 믿을 수 있게 되었다. 흰 눈밭 같은, 미끄러지는 빙판 같은 빈 문서 앞에서, 그 믿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른다. 한 작품, 한 작품, 온 마음을 다해 빚어 가는 소설가가 되겠다.

곧 인쇄될 글에 짧은 각오를 더한다.

오십 년.

적어도 50년은 쓰고 죽을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힘이 되어 준 선영과 승희, 어디선가 이 모습을 봐 주고 있을 은하, 고독을 함께해 온 글쓰기 친구들, 고생 많이 한 김종기, 엄마 류진하, 아빠 정태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모두 평안하고 건강하기를 늘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쳐 가던 마음에 숨을 불어넣어 준 나의 나무 올리브와 어린 식물들, 책상 위의 씨앗 유칼립투스 나나에게도 기쁨과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 류시은(본명 정시은).

  ● 1982년 서울 출생.

  ●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심사평>


  "섬세한 심리 묘사…음영·여운 잘 전달"


예심을 통해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총 9편이었다. 소설의 전면에 제시된 것이 지나치게 선명하고 분명해서 오히려 진실함과 절실함이 의심쩍게 느껴지는 작품이 많았다. 그럼에도 여러 차례에 걸친 반복된 독서 후에까지 우리 삶과 존재처럼 불가해한 느낌을 주면서 의미 있는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눈에 띄어 반가웠다.

첫 번째 눈과 사라진 발자국은 유려한 스타일과 안정적인 문장이 돋보였으나 밖으로 드러난 폭력성이 다소 과도하게 느껴졌다. ‘케렌시아로는 오랜 시간 공들인 솜씨가 엿보이는 작품이었는데, 전반적으로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서술이 걸렸다. ‘사계는 문장과 구성이 안정적이고 나무랄 데 없었으나 다루는 세계가 지나치게 협소해 보편적 의미로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당선 여부를 두고 집중적으로 논의한 작품은 양수 씨를 보는 일나나였다. ‘양수 씨를 보는 일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편견이라는 문제를 시의적절하고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 공정과 정의, 진실함을 대놓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기실 얼마나 속물적이고 기만적인지를 잘 그려낸 작품이나 양수--기준이라는 인물 유형이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전형적이며 소설 창작을 매개로 진정성 운운하는 장면이 주는 기시감이 너무 컸다.

나나는 섬세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인간관계의 형질 변화를 양육과 부양 같은 현실적 문제로 잘 드러냄으로써 자칫 감상적으로 치우칠 수 있는 서사를 균형감 있게 안착시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애틋함, 의무가 끝났을 때의 후련함, 남겨진 자의 고통 등 내면의 파동을 가늠할 줄 알고, 말할 수 있는 것과 이미 말해진 것, 말해지지 않은 것을 세밀히 조율해 음영과 여운을 잘 전달한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아쉽게 다음을 기약하게 된 분들의 건필을 바란다.

 

심사위원 : 편혜영, 성석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