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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창 / 권준섭

 

1. 타인의 창을 또렷하게 눈에 담은 건 17살 늦봄 때의 일이었다. 그는 전학을 간 학교에서 창가 반대쪽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었고, 나는 교실에서 유일한 빈자리인 그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난 사춘기를 겪고 있는 다른 여자애들과 마찬가지로 남자애 옆에 앉는 것이 다소 신경이 쓰였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은지 나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어디서 왔는지, 지금 어디서 사는지 물어볼 법도 했는데, 하루가 끝날 때까지 말을 걸지도 않고 그저 책상 위를 가만히 보거나 내가 있는 반대편의 벽을 바라볼 뿐이었다. 난 그걸 온종일 의식하며 이따금 몰려든 반 아이들의 이런저런 질문들을 간신히 넘기고 있었다.

오직 그만이 다른 장소에 있는 것만 같았다. 혹은 투명한 철창이 그와 모두를 갈라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랬다. 반의 아이들은, 그리고 선생님들까지 포함해서 누구도 그를 향해 초점을 맞추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주변의 분위기에 혹시나 귀신인가 싶어 섬뜩해지기도 했지만, 이따금 내 오른팔에 맞닿는 그의 옷깃에 그가 실재한다는 건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모두가 작당한 듯 그를 의도적으로 교실 안에서 밀어내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단지 주변의 태도뿐만이 아니라 그 아이 자체도 확실히 이상했다. 그의 왼쪽 눈꺼풀 밑에는 분명히 창이 심겨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걸 덮지 않았다. 덮기는커녕, 누가 뭐라고 하든 간에 얼마든지 보라는 듯이 내놓고 다녔다.

창이 원래 보기 께름칙하다고는 해도 그의 것은 더했다. 물론 다른 사람의 것은 물론이거니와 부모님 것도 본 적 없지만, 적어도 내 창보다는 훨씬 더 새까만 것은 확실했다. 모든 걸 다 삼켜버릴 것만 같다는 느낌. 그게 엄밀한 발화점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 모두가 그를 멀리하는 건 모두를 위협하듯 드러나있는 그의 창 때문이라는 건 확실했다.

창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몸통 위에 머리가 얹어져 있고 몸 안의 장기에게 각자의 제자리가 있듯이, 창 또한 얼굴의 왼쪽 자리에 담담히 있을 뿐이었다. 본래 안구가 들어있었어야 했을지도 모르는 그곳, 부드러운 두 곡선 사이 먹을 부어놓은 듯 채워져있었다. 우리는 작고 동그란 천으로 이런 창을 가린다. 안대라고도 하던데, 정확히는 건이다. 건은 창이 내뿜는 어둠을 틀어막아준다.

내 방 두 번째 서랍에는 여러 색의 건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갈색을 가장 아끼고, 제일 많이 사용했다. 나의 옅은 갈색 머리카락을 의식한 것이었다. 알맞게 내 창을 가릴 수 있는 크기의 건은, 때론 있는 듯 없는 듯싶었다.

처음에는 그가 건을 하고 오는 것을 잊었다거나물론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아니면 잃어버렸다던가, 혹은 망가졌다던가 하는 이유 때문인가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의 창에 건이 덮이는 일은 없었다.

그를 관찰하는 건 내 소소한 일과가 되었다. 창을 덮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저 말 한마디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교실에서 분리되어 있었고, 정작 그는 그런 분위기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모습이었다. 그걸 매일같이 보고 있자니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는 그가 주변으로부터 어떤 시선을 받고 있는지 잊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가 자신은 창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창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바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곁에서 바로잡아줄 사람이 없다면 건을 하고 다니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런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옆 동네에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바보가 바지를 입고 다니지 않는 것은 본 적이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한 지 10초도 되지 않아서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늘 어딘가 의식이 나간 듯 멍하니 있었지만, 그는 평범하게 수업을 들었고 제대로 필기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입을 여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므로 말을 못 하는 바보일 수도 있겠다는 짐작은 넌지시 해보았다.

다음으로는 그가 지독한 반항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럴듯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담배를 피우고 하는 그런 부류의 반항아는 아닐지라도 분명 어딘가 비뚤어진 것만은 분명했다.

이상하게도 그에 대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의 옆자리에 앉아있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집에서 혼자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하다가도 문들 떠오르곤 했다. 이토록 내가 누군가에 대해 호기심을 가져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건은 어쨌어?”

그렇게 물어볼 수 있었던 건 상당히 고심한 뒤였다. 딱히 잘못된 짓을 하는 게 아닌데도 누군가의 눈에 띄면 안 될 것 같아 방과 후 그에게 슬며시 따라붙어서 말을 걸었다. 그는 무척이나 놀란 듯 눈썹을 한껏 치켜세운 표정을 지었지만, 역시 입을 열지는 않았다.

나는 그의 표정을 멀뚱히 지켜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창을 바라보았다. 전에도 느낀 거지만 두려움이 슬며시 뒷덜미를 감쌀 정도로 새까만 색이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의 창도 이런 것인가, 아니면 내 창도 남에게 이렇게 보이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묘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는 나를 보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없이 다시 걸어갔다. 그의 집은 우리 집과 같은 방향에 있는 듯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내가 한참이나 먼저 교실을 나서곤 했으니 몰랐던 사실이다. 몇 번이고 갈림길을 마주할 때마다 그는 내가 가야 할 방향으로 꺾었다. 그러다보니 그를 따라가는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그도 내가 뒤에 졸졸 따라오는 게 거슬렸던지, 흘끔 돌아보고는 순간 멈춰 섰다.

왜 따라오는 거야?”

진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분명 말을 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멀쩡하게 단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말을 할 줄 알았구나.”

?”

그는 아까보다도 더 얼굴을 구겼다. 감정에서 나온 표정이라기보다는 있는 힘껏 불쾌감을 표현하려고 일부러 지은 것 같았다. 아마 그런 표정을 지으면 내가 떨어져 나가리라고 생각했던 것이겠지. 그렇지만 내 눈에는 그저 겁 많은 동물이 으르렁거린다고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도 집이 이쪽이야. 저기 큰길 건너 아파트에 살거든.”

그는 찡그린 표정을 슬며시 누그러뜨렸다. 내 말에 뭔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건 전학 온 첫날 모여든 친구들이 나에게 물었던 것이고, 내가 친절하게 말해준 내용이었다. 그러니 그도 못 들었을 리는 없다. 다만 의식 속에 담아두지 않았었던 것이라고, 나름대로 이유를 떠올려보았다.

그의 표정이 꽤나 볼만했다. 어쩐지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한 표정이었다. 난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처음에 그는 갑작스러운 내 웃음에 어쩔 줄을 몰라 하더니 어느새 얼굴 근육이 풀렸는지 입을 살짝 벌린 채로 어색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야 나오는 주택가에 산다고 했다. 첫날에 짐을 전부 옮기고 잠깐 근처에 가본 적이 있다. 말라붙은 핏빛이 도는 벽돌로 만들어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마치 하나의 거대한 벽처럼 형성되어 있던 곳이었다. 더 들어가 보려고 했지만 그만두었다. 울퉁불퉁한 콘크리트 바닥 감촉도 싫었고 무엇보다도 역한 하수구 냄새가 코를 찔러서 따가울 지경이었던 기억이 살아났다. 하지만 그런 감상을 굳이 말하진 않았다. 자신이 사는 동네에 대해 그런 식의 말을 듣는다면 누구든 썩 유쾌하진 않을 것이었다.

근데 이름이 뭐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네.”

정작 중요한 것을 묻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부를지 한참을 고민하고서야 내가 그의 이름을 모른다는 걸 눈치챘다.

이창.” 그는 말꼬리를 흐렸다.

이름이 창이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그의 굳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뭔가 다양한 감정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이름이 싫다는 감정도 있었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슬픔이나 각오, 그런 것들이 잔뜩 뒤엉켜서 말로는 그려낼 수 없었다.

이름이 창이라니, 멋지네. 난 그렇게 말할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의 감정에 대해 내 생각을 이런 식으로 말해봤자 분명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그를 따라 내 소개를 했다.

내 이름은 경은이야. 장경은.”

그는 다시금 무표정으로 돌아와 나를 힐끗 보았다. 어딘가 그의 기분이 나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차올랐다. 그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은 순간, 나는 맨 처음 거울을 통해 내 창을 제대로 바라보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창은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실재감은 없었다. 검은 얼룩이 거울에 묻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정도로 창은 거울의 상에서 홀로 붕 떠 있었다. 창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저 검은색인 줄만 알았는데 잘 보니 희끄무레한 무늬가 나선처럼 안쪽으로 감겨들어 가고 있었고 조금씩 일렁이기도 했다. 좀 더 자세하게 보고 싶었지만 조금 어지러웠다. 그때의 기분을 경은은 창이를 보며 똑같이 느꼈다.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대신 그 공백을 풍경으로 메웠다. 햇볕이 주변 풍경을 한껏 덮을 만큼 유난했다. 공기는 뜨끈했지만, 골목 사이사이에서 시원한 바람이 슬며시 온도를 낮춰주고 있었다. 여름의 향기가 났다. 선명한 그늘 밑에서 바라본 이름 모를 가로수는 검은빛에 가까운 초록색이었다.

우리 집은 여기야.”

내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인 후에 살짝 손을 들어서 인사를 하곤 옆 골목으로 돌아들어 갔다. 곧바로 모습이 사라졌지만 나는 그가 돌아선 그 모퉁이를 몇 번이고 쳐다봤다. 자꾸만 여운이 남았나 보다. 그의 창이 자꾸만 뇌리에 맴돌았다. 티 하나 없는 완전한 검은색의 창. 그리고 그 창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고 다니는 창이.

학교에서 창이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은 없었다. 물론 나도 창이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건 어쩌면 나를 배려해주는 것이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었다. 난 그걸 존중해주기로 했다. 나 때문에 창이의 일상이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니까. 그도 마찬가지로 자신 때문에 내 학교생활에 문제가 생기길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서로의 생활에 최대한 간섭하지 않으려는 교실에서의 노력이 끝나면, 어김없이 같이 집으로 가곤 했다. ‘같이라기 보다는 그가 학교를 나설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가 그 뒤에 따라붙었을 뿐이긴 했지만. 난 이때마다 야간 자율학습 참여가 재량인 이 학교가 항상 감사했다. 적어도 학교 정규 시간이 끝나면 내가 그와 같이 걷는 것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내가 그의 옆에 슬며시 다가가면 그는 항상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는 기색은 없었다. 단지 익숙지 않은 상황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창에 더는 눈길이 가지 않게 된 건 금방이었다. 처음에는 창이 그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눈이나 입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되었고, 곧 그의 전체 표정하고 몸짓도 시선에 담아냈다. 그것들은 그의 창의 존재감에 묻히기에는 아까운 것들이었다.

자연스레 창을 의식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니었다. 창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전히 그를 바라보는 내 안에 위화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누구에게나 창은 있는 것이고, 창은 사람마다 전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의 창이 어떤 색을 하고 있고 어떤 느낌을 주는지는 중요치 않은 부분이었다. 건을 쓰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는 그저 평범한 남자아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조금은 그의 분위기에 함께할 수 있었다.

하루는 내가 있는 줄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어도 그 아이가 반장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검은색 두꺼운 뿔테 안경에 한껏 머리를 뒤로 묶고 있던 반장은 조심스레 말을 꺼냈지만, 난 그녀가 무엇을 말할지 첫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기 전부터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예상대로 창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의 창이라든지, 교실에서 그가 받는 취급이라든지 하는 이야기를 넌 이제 막 이사 와서 잘 모르겠지만, 이라는 말을 일일이 붙여가며 말했다. 그리곤 나에 대한 소문에 대해서도 머뭇거리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날 이상하게 본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혹시나 창이와 불건전한 관계가 아니냐는 둥의 이야기를, 왜인지 쩔쩔매면서 나한테 해주었다.

듣는 사람에 따라 기분 나빠할 법한 이야기였지만 왠지 굉장히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부터 그래 왔다. 누군가 전혀 엉뚱한 오해를 할 때면 나는 있는 힘껏 웃어젖히곤 했다. 난 그런 오해들을 즐기려 했다.

그 순간도 그랬다. 당연히 대놓고 웃진 않았지만 편안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러냐는 식으로 받아넘겼다. 그들이 뭐라 떠들건 아닌 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남들에게 오해받는 상황임에도 정작 우리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말이다.

그날 오후 집으로 가는 길, 창이에게 반장과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끝까지 이야기를 들은 뒤에 창이는 은근히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혹여나 자신 때문에 내가 반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지에 대해 말이다. 창이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흐름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직접 전해 듣진 않았겠지만 이런 건 의외로 분위기로 간단히 알 수 있는 부분일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내 생각을 간결하면서도 세세하게 말해주었고, 그는 생각 외로 간단하게 내 생각을 이해했다. 이해했달까, 자기 생각과 비슷해서 반갑다는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 난 그게 무척이나 기뻤다.

청소 당번을 끝내고 마지막에 남아 뒷정리를 하던 금요일 오후였다. 털어온 칠판지우개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니 다른 아이들은 벌써 가고 없었다. 집에 가거나 자율학습을 하러 자습실로 향했을 것이다. 짧게 한숨을 쉬며 창밖을 보니 살짝 바랜 파란색의 하늘이 창가를 비추고 있었다. 여름이 가까워지고 있는지 해가 많이 길어져 있었다.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서니 벽에 창이가 기대어 서 있었다. 손에는 교복의 재킷을 들고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고 있었다. 한참 전에 창이가 먼저 교실을 나간 걸 봤기에 오늘은 같이 가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얼마나 기쁘던지, 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환한 웃음이 표정으로 새어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그가 나를 빤히 보는 걸 알고 나서는 이내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나란히 걷는 걸음이 어색했다. 언제나 말을 먼저 걸던 쪽은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술술 말이 나오지 않았다. 횡단보도에 다다라 파란불로 바뀌길 기다리고 있을 때 창이 나를 나직한 목소리로 불렀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게 가.”

청소 당번이라서 그렇지. 다 봐놓고.”

근데 네가 왜 마지막이야?”

글쎄.”

나는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기울였다. 대수롭지 않으려 했다.

뭐라도 먹을래?”

창이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를 올려다보니 그림자가 져서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가 먼저 그렇게 말해주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잠시 들뜬 가슴을 꾹 누르고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게 좋으려나.”

글쎄…….”

우리는 원래 가던 길과는 다른 길로 향했다. 그는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가고 싶은 곳을 정해놓은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더 말이 없었고 나도 그대로 그의 질문을 덮어버렸다. 우린 일정한 리듬을 새기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대로 걸으면 작은 시장이 나온다. 뭘 먹을지 정하지 못했으니 우선 가서 결정하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난 조금 신기해.” 내가 순간 생각나서 말했다.

뭐가?”

어떻게 너랑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지. 처음에 널 봤을 때는 누구하고도 대화를 섞지 않으려 하는 사람인 줄만 알았단 말이야. 그런 모습에 오히려 흥미가 생겨서 말을 걸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네가 날 귀찮아한다고 생각했거든.”

그럴 리가.”

그가 조금 웃었다. 그의 웃음은 무척이나 어른스러웠다. 교실에서의 얼어붙은 모습과는 달리 그는 종종 이렇게 내 앞에서 웃어주었다. 건이 없어서인지 웃는 모습은 더욱 멋졌다. 창을 가리지 않는다는 게 때론 이렇게 좋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는 걸 그를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어째서 다들 그런 걸까.”

내가 말끝을 흐렸다. 어쩐지 해선 안 될 것만 같은 말을 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창이가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길 바랐다. 가능하면 그의 앞에서 교실에서의 분위기를 언급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창을 똑바로 봐준 사람은 너 말고는 없었어.”

침묵이 흘렀다. 내가 무어라 대꾸할 수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그 또한 스스로가 내뱉은 말에 약간 쑥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침묵이 거북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히 우리 둘 사이의 분위기를 감싸주고 있었다.

큰길에서 조금 벗어나니 차 소리보다는 바람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나는 잠시 저 멀리의 저수지를 바라보았다. 근처에 가본 적은 없었지만, 왠지 엄청나게 깊은 것만 같은 인상을 주는 곳이었다. 호수처럼 파란 게 아니라 까만색에 가까운 수면이었다. 군데군데 무너져있는 낮은 콘크리트 담에는 헙수룩하게 제비꽃이 피어서 그 옆을 지나는 내 다리를 간질였다.

난 아무렇지도 않아, 네 창.” 내가 말했다.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도 피하지 않고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어딘가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 감정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창이는 내가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저 저수지.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이야.”

그의 시선은 어느새 담 너머의 저수지로 향해 있었다.

?”

무섭거든.”

그는 의도적으로 말을 뚝뚝 끊어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말을 조금씩 섞어주며 그가 말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뭐가 무서운 걸까.”

저 안을 알 수가 없으니까 그래. 저기에 담겨 있는 게 뭔지도 모르고 깊이도 가늠이 안 되지. 혹시라도 발을 잘못 디디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공포감을 갖고 있어, 다들.”

혹시 누군가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어?”

그는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다른 생각에 빠져 있어서 내 질문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냥. 그 누구도 이젠 저기가 어떤 곳인지 알고 싶어하지 않아. 무섭다고 생각되어 버린 감정은 어쩌면 다시는 바뀌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어.”

근데 나는 한번 가보고 싶다.”

나는 그와 눈을 맞추었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수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나조차도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곧 그게 내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난 이제 막 여기로 이사 와서 그런지 별로 무섭지 않아. 근데 다들 꺼리는 곳이라고 하니까, 왠지 꼭 한 번 가서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보고 싶네.”

그 순간 그의 반응을 보고 싶지 않았다. 조금 내가 한 말에 부끄럽다는 생각을 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는 누가 들어도 억지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웃어냈다. 어쩐지 그의 걸음은 약간 느려져있었다. 간신히 내 발걸음을 쫓을 수 있을 정도였다.

시장 골목은 한산했다. 얼마 전에 상가들이 전체적으로 새 단장을 했는지 재래시장 특유의 비린 냄새는 적었다. 괜히 시끄럽게 소리치는 상인도, 촌스러운 트로트를 틀어놓고 손님을 모으는 마트도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대화의 빈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 틈새를 주변의 작은 웅성거림으로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침묵이 불편하진 않았다. 왜인지 그와 있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가 입을 다물고 있어도, 내가 억지로 공백을 채우려 하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기분이 좋았다.

여기로 가자.”

그가 뒤에서 나를 불러 멈춰 세웠다. 낡은 철제 간판에 사랑 분식이라고 적힌 분식집이었다. 주변의 세련된 가게들에 비해 여기저기서 낡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가게였다.

저 왔어요.”

그가 삐걱거리는 나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쪽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가게 안에 다른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어서 오렴. 어머, 뒤에는 친구니?”

, .” 그가 머쓱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제야 나는 그 가게가 창이네 어머니가 하시는 가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쪽을 향해 있는 힘껏 웃어 보이시는 창이 어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핏기 없고 마른 얼굴, 그리고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 가능하면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만 건 밑이 움푹 파였다는 걸 보여주는 음영까지. 그는 라면 두개와 김밥 두 줄을 시켰다. 어머니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어딘가 불안한 몸짓이었다.

어머니가 하시는 가게였구나.”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 그가 그렇게 말하며 내 앞에 젓가락과 숟가락을 가지런히 놓아주었다. 그 밑에 휴지 한 장을 깔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식탁 앞에서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가 아무 말이 없자 나도 먼저 입을 열기가 조심스러웠다. 음식은 금방 나왔다. 김밥은 터질 것처럼 두꺼웠고 라면에는 달걀이 두 개씩 들어 있었다. 맛있었지만 익숙해질 수는 없는 맛이었다.

조금은 창이의 어머니에 대해 머릿속에서 굴렸다. 어떤 느낌이었냐고 하면, 나를 불편해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닐 것이었다. 가게 벽에 걸려 있는 텔레비전을 보는 척하면서 그의 어머니를 보았다. 그러다 한 번은 눈이 마주쳤는데, 아주머니는 서둘러 내 시선을 피하셨다. 어쩌면,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엄마는 말이야, 창이 없어.”

가게를 나서서 한참을 걷고서야 그가 첫마디를 떼었지만, 그런 뒤에도 잠시 간격을 두었다. 평소와는 다른 호흡이었다. 조금 말하기를 주저하고 있을지도 몰랐기에, 나는 대꾸 없이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아빠라는 인간이 때려서 뭉개 버렸거든. 밥그릇 밑으로 찍어서. 바로 옆 구석에서 지켜보던 나는 난생처음으로 창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어. 엄마가 쓰러지는 것도 처음 봤고. 그게 아빠를 본 마지막 날이었어. 이후로 집에 돌아오지 않으셨으니까.”

술이라도 드셨던 거야?”

그는 어딘가 불편한 모습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완전히 멀쩡한 정신이셨지. 우발적으로 싸우시다가 그런 것도 아니야. 그저 엄마의 창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뿐이야. 우리 엄마도 그 때까지만 해도 건을 하지 않으셨거든.”

난 묻고 싶었다. 네가 건을 하지 않는 건 너희 어머니 때문인 거냐고. 하지만 그렇게 물을 필요도 없었다. 창이는 내가 궁금해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난 창을 가리지 않아. 뭉개지기 전 엄마의 창은 나랑 똑 닮아 있었다고 기억해. 물론 그래서 아빠란 작자도 나를 혐오했고. 하지만 말이야, 나는 이게 그렇게나 잘못된 건지 잘 모르겠어. 우리 모두 창을 가지고 있는데, 왜 건이라는 걸로 가려야 하는 걸까. 그렇게 부끄러운 건가?”

괴로운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본 그 어떤 표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색을 띠고 있었다. 저런 색을 본 적이 있다. 그의 창에서, 그리고 아까 지나갔던 저수지의 색이었다.

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직접 이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누구에게서 들어본 적도 없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창을 지니고 있었고 늘 건으로 창을 가려왔다. 희미하게 머릿속 한켠에 있는 가장 처음의 기억에서도 나에겐 건이 매여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주변 친구들도 예외가 없었다. 옷으로 알몸을 가리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창이는 이런 의문을 품으려 하는 것일까. 그 누구에게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왜 그는 스스로 자처해서 영문을 알 수 없는 의문 속에서 헤어 나오려 하지 않으려 하는지 난 알 수 없었다. 너무도 슬프고 외로워 보였다. 표정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다. 난 그의 창을 통해서 그의 감정을 읽어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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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까지 괴로워지게 되는 것이 겁이 났다. 그래서 그를 힘껏 안았다. 창이의 표정이 보이지 않게. 그리고 내 표정도 그에게 보이지 않게. 나는 아마 그의 질문에 답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창이나 건이 대체 무엇인지, 그런 건 영원히 그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고 싶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든 난 그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나누어 느껴야만 했다. 왜냐면 나는 그의 창을 똑바로 보았으니까. 단지 그뿐이다.

그와 함께 곁에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깊은 물속에 담겨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돈 것처럼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의 몸을 한껏 껴안았던 순간,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따스한 잔잔함에 한껏 젖을 수 있었다. 여전히 교실에서의 우리의 모습은 그대로 서로의 생활을 지켜나갔지만, 학교가 끝나면 우리는 전보다도 더 확실하게 서로가 이어져 있음을 느꼈다.

누가 그러자고 하지도 않았지만 어느 날 나는 그의 집에 가게 되었다. 그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곳은 3층짜리 연립주택의 반지하였다. 그날만큼은 울퉁불퉁한 골목길도, 부패하는 하수구 냄새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것들은 전부 자연스레 그곳에 있어야 할 것들이었고 그걸 받아들이는 건 더는 어렵지 않았다. 해질 무렵 창이의 집에서 그의 그늘에 안겼을 땐, 나는 우리가 부드러운 살과 따뜻한 체온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의 창에 대해서도 감사를 잊지 않았다. 이 모든 게 그 검은 무언가의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 아닌가 싶었다.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내 창을 보여준 건 처음이었다. 그는 내 작은 창을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관찰했다. 기분 나빠하는 내색 없이 그저 소중한 것을 가능하면 머릿속에 담아두려는 듯 보였다. 입을 조금 벌리고, 미간의 근육을 미세하게 모은 채로.

신기하게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그도 나에게 모든 걸 보여주었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써가 아니라 온전히 내 의지로 내보이고 싶었다. 그의 마음에 이끌린 것이려나.

그의 왼팔에 기대어 선명하게 보이는 창을 중지와 약지 끝으로 사근사근 어루만졌다. 여전히 주변이 삼켜져 버릴 듯한 까만색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끌어들이는 힘이 거기엔 있었다.

난 내 창을 좋아해. 처음으로 거울에 비친 걸 봤을 때도 그랬고, 엄마가 창을 잃기 직전까지 내 앞에서 빛내던 그 창도 내 기억 속에서는 아름다우니까. 그러니까 부끄러워하지도, 감추지도 않을 거야.”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고 가까워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창이지만, 지금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창이 내 시야 가득 들어오는 것도 이젠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왠지 나도 내 창이 좋아질 것만 같아.”

네 창, 정말 예뻐. 난 이미 좋아해.”

그의 말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누가 타인의 창을 보고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확신했다.

어쩌면 잘못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반장에게도 창이가 건을 쓰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다를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나는 그걸 결코 제외해선 안 되었다. 그는 특별했고, 그가 창을 가리지 않는 것을 특별하게 여겼어야 했다. 평범하다고 해버리기엔 그의 모습에 담겨있는 특별함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 분명 그는 자신의 특별함에 당당해지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난 결코 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롯이 창을 드러낸 채로 고요히 자신을 외칠 수 있는 건 오직 창이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아마 건을 벗어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래도 그건 너무도 무서운 일이니까. 하지만 내 창을 부끄러워할 일은 분명 없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나를 한껏 빠져들게 했던 그 계절, 내가 그에게서 배운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2. 창이와 나는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의 창을 자연스럽게 여기며 함께 시간을 견뎠다. 가끔은 이 세계에 그와 나 둘만 남겨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깔끔하게 쪼개진 교실 안에서 난 결국 창이의 손을 잡았기에, 그를 따라 그곳에서 분리되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느꼈다. 야트막한 관계보다는 제대로 나를 품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곳으로 몸을 맡긴 것뿐이었으니.

때론 아무 이유 없이 두려워지곤 했다. 이렇게나 누군가를 마음에 담아본 적이 처음이라서일까. 천천히 증발해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혹은 사막 한가운데에 지어놓은 모래성이 바람에 흩어져가는 것만 같은. 나는 그런 기분을 맛볼 때마다 그를 쓰다듬고 끌어안고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면 그와 함께 견딜 수 있으리라 믿었다.

가을의 향기가 나기 시작할 무렵, 그의 집 앞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오가게 되었다. 온통 새카만 색에 등에 희끗거리는 무늬가 섞인 무척 작은 고양이로, 아마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했다. 다른 고양이들과 다른 점이라고 하면, 오른쪽 앞다리가 유난히 짧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로 그 작은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창이가 껍질을 깐 밤을 던져주었다. 그러자 움찔거리며 다가와 냄새를 맡은 뒤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제야 이 아이가 엄마도, 주인도 없이 홀로 겨울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게 계기가 되어 고양이는 매일같이 창이의 집 앞을 기웃거렸다. 그러면 우리는 그 아이에게 가능한 한 제대로 된 식사를 주곤 했다. 창이는 나보다 더 고양이를 귀여워했다. 고양이도 그를 몹시 잘 따랐다. 고양이가 골목 구석 잡초가 무성한 곳에 앉은 조그만 날벌레를 땅에 엎드려 가만히 바라보다가 틈을 노려 덮치려 하는 모습을, 그는 종종 흐뭇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는 몸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인지 거의 벌레를 잡지 못했고, 그럴 때면 그는 귀여운지 즐겁게 웃어보였다.

그와 고양이 사이에는 무언가 통하는 것이 있는 것만 같았다. 때론 그 고양이가 창이와 정말로 닮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쓰다듬으려 하면 별로 내키지 않는지 창이의 품으로 들어가 버려서, 그때마다 서운해하는 내 기분을 그가 풀어주곤 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정말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달 정도가 지난 어느 날, 고양이가 매일 있던 장소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하루 종일 교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온 골목을 샅샅이 뒤졌다.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좁은 건물 틈새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자동차 밑도 샅샅이 뒤졌지만 고양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름을 불러보려 했지만, 그제야 우리가 여태껏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는 걸 알아챘다.

해가 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찾아다니면서, 난 어째서인지 이젠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길고양이라 곧 다시 오겠지 싶었지만, 이후 고양이가 다시 모습을 보이는 일은 없었다.

이제 그럴 때가 온 거겠지.”

내가 멀리 가지 못했을 거라 분명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올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그는 더는 고양이를 볼 수 없다는 걸 깨끗이 받아들였다. 조금 외로워 보이긴 했지만 귀여워했던 것치고는 상당히 냉정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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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와의 연애는 일 년이 채 지나기 전에 끝이 났다. 2학년에 올라가면서 반이 갈렸고, 우리 둘 다 그걸 핑계로 서로를 마주하는 일을 줄여나갔다. 나는 그의 마음의 경과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예상컨대 그의 마음은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을 것이었고, 그가 나와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을 것이라고, 왜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창이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만나서 조용히 짧은 대화를 나눴고, 슬픔을 내비치는 것조차 없이 헤어졌다. 단 몇 마디의 대화 속에서 나는 그의 창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내가 있었고, 내 창이 깃들어 있었다. 그게 이유였다. 누구도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역시 창을 받아들인다는 건 타인의 것이든 자신의 것이든, 어렸던 우리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우리 왜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을까? 그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어떤 대답을 듣든 간에 지금의 기분을 나아지게 해주지 못할 것이었다. 그저 조금 후회했다. 그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줄 걸 그랬다고.

돌아서기 직전, 창이는 다시금 예전의 어른스러운 미소를 희미하게 지어 보였다. 예전에 그가 보여준 것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요전까지만 해도 어른스럽게만 보이던 그 미소에서, 나는 그의 연약한 내면을 읽어냈다. 그는 나와 다르게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창이는 나와 어느 무엇 하나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 지금까지 소중하게 여기던 갈색 건을 쓰레기통의 깊숙한 곳에 버렸다. 어쩐지 한껏 물을 먹은 듯 부풀어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너무 보기 싫어서 다른 쓰레기들에 묻혀 보이지 않게 꾹꾹 짓눌렀다. 그리곤 거울을 바라보았다. , 역시나. 내 창도 마찬가지였다. 그제야 나는 한참을 울었다. 이제는 그만 이 눈물을 타고 그가 흘러나오기를 바라며.

이쯤에서 인정하면 죄악감이 덜 하려나. 그의 창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순간 이후 한순간도 무거운 마음 없이 그를 순수하게 사랑할 수는 없었다는 것을. 창이와 나는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다. 단단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어느 순간 부서질 수도 있는 사람, 그게 우리들이었다. 우린 빠르게 서로에게 빠져들었지만 제대로 섞이지 못했고, 마지막까지도 각자의 안에서 위태롭게 넘치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붕 뜬 것들을 분리해내야만 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우리 가족은 그 동네를 떠났다. 그리 먼 곳은 아니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하지만 다시 그곳에 찾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단 그저 내 눈앞의 일들에 치여 그 동네를 떠올리지 못했을 뿐이었다.

난 서울의 한 대학에 들어갔다. 거기서 독문학을 전공했고, 단 한 번의 휴학도 없이 4년 만에 대학을 졸업해 괜찮은 직장에서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했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직장에서 한 남자를 만나 연애를 했다. 애인은 까무잡잡한 얼굴에 키가 컸고, 무엇보다 나에게 다정했다. 특이할 것 없는 사람이었다. 그 또한 어김없이 얼굴 왼쪽에 어두운 남색 건을 하고 다녔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 새삼스럽게도 내가 서있는 이곳은 십 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기억이 희석되어 제 색을 찾아가고 있을 즈음, 난 다시 그 동네를 찾았다. 살았던 아파트를 지나쳐 창이와 함께 걸었던 골목길을 지금의 애인과 함께 걸었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창이가 살았던 집은 나오지 않았다. 힘든 기색의 애인을 최대한 외면하며, 몇 번을 반복해서 같은 길을 걸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선선한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잠시 벽에 기대어 쉬는 동안, 그는 내 뒷덜미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있었다. 손으로 부채질을 해 주면서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눈을 감고 흩어져버린 머릿속 생각들을 한데 모으고 있었는데, 갑자기 작은 탄성이 들렸다. 가만히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니 쭈그려앉은 애인의 앞에는 아주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위태롭게 서 있었다. 처음에는 검은색인가 했던 털은 자세히 보니 짙은 회색이었다. 예전 창이와 함께 했었던 이름 없던 그 작은 검정고양이가 떠올랐다. 겉모습이 많이 닮아 있어서 혹시나 그 아이인가 싶었지만, 이내 가라앉아있던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그런 느낌은 금세 사라졌다. 내가 그의 앞에 얌전히 앉아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려 조심스레 손을 내밀자 고양이는 순식간에 멀찍이 달아나 버렸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터져서, 내밀었던 손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거푸 닦아냈다. 애인이 당황해하며 내 등을 다독여주었지만,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시야와 함께 모든 것들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이제 그럴 때가 온 거겠지.

창이의 목소리가 스몄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가 말한 그럴 때라는 건 대체 어떤 때를 말하는 걸까. 내가 만일 창이처럼 건을 벗어버렸다면 그럴 때라는 건 오지 않았을까. 그리고 우린 온전히 서로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더는 만날 수 없는 고양이에게, 난 말을 걸었다.

어쩌면 그러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

나는 잠시 검은색 실크 건을 걷어내고 고요히 머물고 있는 창을 가만히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손가락 틈새 사이로 사근한 바람이 스쳐갔다. 그 계절의 향기였다.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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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에 걸려 허덕이던 중에 연락을 받았다. 기쁜 것도 잠시, 현기증이 심해서 다시 잠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땀에 흠뻑 젖어 깼다. 그리고 지금 컴퓨터를 켜서 멍한 머리로 당선 소감을 적어나가고 있다. 어쩌면 지금 이게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기침을 할 때마다 찢어질듯 아픈 목이 꿈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어 한편으론 안심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살아온 세월의 반 이상을 소설과 함께 해온 것 같다. 그냥 형제처럼 같이 걸어왔을 뿐인데 어느새 소설은 나 자신이 되어 있었다. 그게 지금은 이렇게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을 쓸 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큰 힘을 주었던 은주와 원영이형, 그리고 응원해준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하고 싶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이 소설을 좋아해준 신가영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해야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부족한 작가에게 과분한 자리를 마련해주신 전북일보 심사위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더 발전하고 싶다. 내가 쓰는 글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아직 잘 알 수 없다. 다만 한 문장씩 써나가는 순간마다 위안을 받는다. 그러니 내가 쓰는 소설은 나 자신을 위한 소설일 거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내 소설을 읽고 무뎌져 가는 자신의 감정을 선명히 마주할 수 있었으면 한다.


  ● 1997년 서울 출생.

  ● 중앙대 기계공학부 재학 중.


 

  <심사평>


  "감추며 이야기하기의 매력 잘 살려내"


신춘문예 계절이 돌아오면 많은 사람들은 설렘과 기대로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신춘문예에 대한 기대는 참신한 신인과 새로운 작품에 대한 소망이다. 이러한 소망은 심사위원들의 마음 또한 뒤눕게 한다.

이번 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 가운데, 예심을 거친 7편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서커스 유람마차’ ‘더듬이’ ‘너의 아름다운 곳’ ‘앤드’ ‘등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더듬이는 첨단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생산을 정부가 통제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시대 파악 시각이 돋보인다. 그러나 소설적 구체화는 아직 더 수련을 거쳐야 하리라고 본다.

앤드는 출산이 인공적으로 통제될 수 있는 첨단과학시대,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문제를 추구한 작품이다. 현실성을 더 살려야 작품으로서 값을 인정받을 수 있을 걸로 본다. ‘너의 아름다운 곳은 현대적 환경에서 다문화적 삶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플롯을 엮어가는 소설적 논리에 관심을 더 가질 것을 권한다. ‘서커스 유람마차는 생활을 위해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소녀가 채팅에서 만난 남자와 사귀면서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는, 현실감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안정된 문장으로 사건을 전개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주제를 형상화하는 사유의 치열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 작은 흠이다.

논의를 거쳐 당선작으로 결정한 작품은 이었다. 이 작품은 이라는 트라우마를 공유하는 작중인물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면서 가까워지는 과정을 빈틈없이 그리고 있다. 만나고, 가까워지고, 그리고 사랑으로 맺어지기까지, 그리고 다시 멀어지고 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섬세한 문체로 그려져 있다. 플롯을 전개하는 데 이라는 도구를 설정하고 있는 게 상징성을 띰으로서 주제와 연관성을 밀도있게 드러낸다. ‘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열린 구멍인데, 은 누구나 으로 가리고 생활한다. ‘은 곧 인간의 열림닫힘을 상징하는데 그 이 걷히고 완전한 창으로 통할 때 완전한 만남이고, 사랑이라는 설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가 본질을 드러냈을 때, 그것은 다시 모양을 달리한 건이 되어 의 본상을 감추게 되고 인간관계는 파탄을 겪게 된다. 인간관계 형성의 본질을 감춤과 드러냄의 변증논리로 그린 수작으로 보아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 작품에서는 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건 운명일 수도 있고, 인간 존재의 모순적 상황일 수도 있다. 따라서 설명이 안 되는 영역이다. 이를 명징하게 밝히려고 모든 걸 사실로 드러낸다면 삶의 본질로서의 은폐성은 특질을 상실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감추며 드러내기의 기법적 특장을 잘 살렸다고 본다.

이번에 투고한 모든 분들의 분투를 빌며, 당선자의 문학적 앞길에 큰 성취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심사위원 : 송하춘, 우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