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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리셋 / 김변호

 

리셋은 세상의 구원이다.

영국의 생물학자 시드니 브레너, 존 설스톤, 로버트 호비츠, 이들 셋은 꼬마선충을 이용해 세포자살을 규명하고 200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세포들이 수명을 다하기도 전에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현상에 관한 것이었다.

*

세포 자살은 효용성을 상실한 세포,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 자가 면역 세포 등과 같이 불필요하거나 위험한 세포들에 해당된다. 세포가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는 자신이 죽는 것이 전체 개체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 자신을 던져 전체를 살리는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것이다. , 에이즈, 치매, 류머티즘성 관절염 등은 세포자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발병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는 팀으로 일하며 세포자살의 숭고한 자기희생이 사회 시스템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돕는다. 회사를 통해 의뢰가 들어오면 먼저 그 사람의 프로필을 살핀다. 대부분 사회적 가치가 크게 손상되어 효용성을 잃은 자들이다. 아주 가끔은 우리가 자살을 돕기도 전에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는 진정한 자기정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럴 땐 오히려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직은 우리 사회가 살아갈 만한 곳이라는 방증이니까. 팀원은 상황에 따라 건 당 2명에서 5명까지 짜인다. 작업은 사전 준비기간까지 합쳐 빠르면 일주일, 늦어도 한 달 안에 마무리된다. 그 이상의 인원이나 기간은 오히려 독이다. 짧고 간명하게 끝내는 게 원칙이다.

세포는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게 손상되면 그 스스로 리셋한다. 하지만 결정의 순간 때를 놓친 문제의 세포는 암으로 변해 전체 개체를 파괴한다. 그때는 더 이상 자기희생을 기대할 수 없다. 이때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자연살해세포'이다. 이 세포는 세포자살을 돕거나 유도하는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한다. 스스로 자살하지 못할 때 자살을 도와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와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자살을 돕는 것은 전체의 이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며 인간 진화의 법칙에도 적용된다. 손상되고 훼손된 개체가 전체를 파괴하기 전에 스스로 자살하도록 돕는 게 가장 큰 목적이므로 모든 결과는 자살로 마무리된다.

자살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뇌리에 가장 흔하게 떠오르는 게 베르테르 효과다. 유명인이나 자신이 좋아하던 사람이 자살한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이다. 동조자살 또는 모방자살이라고도 한다. 이런 현상을 이용하면 자살을 돕는 일을 진행하는 게 좀 더 수월해진다. 그래서 가끔 이런 연구자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4년 전 한 여중생이 장애인 어머니를 죽이고 시체에 이불을 덮어 놓은 뒤 PC방에서 12시간 동안 채팅을 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 전날 유명 아이돌 그룹의 리더가 자살했다. 다음날 그 아이는 자신의 방에서 목을 매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방은 온통 자살한 아이돌 그룹 리더의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물론 급조된 사진이었다. 하지만 의심할 여지없는 베르테르 효과였다. 그 정도의 연관성만으로도 사건이 마무리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사실 그 날 여중생이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지만 않았어도 생각을 달리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눈물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람들은 왜 결정적인 순간에 눈물로 반성하는가. 그건 죽음의 순간에 온몸을 꿈틀대고 요동치는 벌레의 모습이다.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잃은 형편없는 모습이다. 여중생은 소멸되어 마땅했다.

나는 그 사건으로 수습 딱지를 떼고 회사의 정식 사원이 되었다. 나는 일을 배우며 생각보다 사회 구석구석에 소멸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걸 알면서도 스스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쓸데없는 고민과 좌절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측은하다.

오늘 밤은 바람이 심하다. 창밖의 나뭇가지에 매달린 잎새들이 위태롭게 이리저리 흔들거린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마지막 발악이 안쓰럽다. 소파에 앉아 TV를 튼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범죄 수사극이다. 그들은 일반인이 느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공감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재미없는 이야기다. 채널을 돌린다. 개그맨들이 무대 위로 나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껄인다. 갑자기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한다. 억지스러운 설정이다. 방청석에서 사람들이 웃는다. 시청료가 아깝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왜 웃는 걸까. 채널을 돌린다. 곤충의 진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곤충은 지구 역사상 가장 오래된 종족이며 세계 어느 곳에나 분포해 있다. 남극에서 북극, 바다에서 산꼭대기까지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곳은 없다. 이들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이지만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지구의 정복자는 인간이 아닌 곤충이다.

나는 곤충의 존재를 할아버지로부터 처음 알게 되었다. 버러지 같은 놈. 할아버지에 의하면 나의 부모도 버러지였으므로 그 자식인 나도 버러지였다. 집안에서 나는 항상 버러지 같은 놈으로 불렸다. 버러지 같은 놈의 자식이 밥을 먹고 학교를 가고 똥을 누었다. 어차피 할아버지는 내가 아니었어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었다. 침대 위에 누워 거동도 불편한 상태였으니까. 검은 비닐봉지를 할아버지의 얼굴에 씌우자 숨은 금세 끊어졌다. 그때 난 효용성 잃은 생명이 얼마나 가볍고 하찮은 것인지 깨달았다. 그래도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귓가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버리지 같은 놈, 버러지 같은 놈.

수면제 두 알을 삼켰더니 스르르 눈이 감긴다. 처음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았을 때는 한 알 만으로도 정신이 몽롱해졌는데 내성이 생기자 두세 알로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번에 의사가 처방해준 새 약은 효과가 빠른 만큼 중독성도 강하다고 했다. 의사는 야채를 많이 먹고 운동을 하라고 했다. 또한 스트레스를 줄이고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빤한 말을 반복해 강조했다. 사람들의 리셋을 돕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집중력과 에너지 소모를 필요로 했다. 나는 작업 전날 밤 머릿속으로 다음날 수행될 작업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매번 비슷하지만 결코 똑같지 않은 일들이었다. 상상 속에서 되풀이되는 작업 중 하나라도 오류가 발견되면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작은 디테일 하나가 일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아오기 일쑤였다. 그런 생활 패턴이 유일한 리듬이라면 리듬이었다. 일이 완벽하게 마무리되고 긴장이 풀려도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럴 때면 처방받아놓은 수면제가 유용했다. 한동안 내성 때문에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새 약은 어떨지 기대가 된다. 정신이 조금씩 흐려진다. 창밖으로 울리는 바람소리가 귓가에서 조금씩 잦아든다. 내일 아침까지 살아남은 나뭇잎은 몇 개나 될까.

*

세포자살의 예는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목욕탕에서 벗겨내는 때도 표피 자살의 결과이고 나무도 나뭇잎을 떨궈 몸통의 살 길을 찾는다. 곤충의 탈피나 뱀의 허물, 올챙이의 꼬리 역시 마찬가지다. 태아의 손가락사이 세포도 자살해 없어지면서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분리된다.

임신 9주였던 여신도 뱃속의 태아 손가락도 다섯 개로 분리되는 중이었다. 우리의 다음 타깃이었던 목사는 여신도를 여러 차례 성폭행하고 살해해 한강에 시체를 유기했다. 보충 자료로 목사가 여신도를 성추행하는 동영상 USB가 서류봉투에 담겨 왔다. 목사의 책상 두 번째 서랍 밑바닥에 권총이 있다는 정보도 함께였다. 사건은 목사의 권총 자살로 마무리되었다. 자기 방 책상에 앉은 채였다. 바닥에는 권총 한 자루와 머리가 터지면서 흘러내린 피가 고여 있었다. 책상 위 컴퓨터 화면에는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이 열려 있었고 내가 올려놓은 목사의 성추행 동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목사를 의자에 앉히고 컴퓨터를 켜 동영상을 클릭한 다음 권총으로 목사의 머리에 구멍을 냈다. 총은 목사의 지문을 묻혀 바닥에 내려놓았다. 파트너인 J선배는 동네 CCTV의 위치를 파악해 알려주었고 나의 움직임을 뒤따르며 혹시 있을지 모를 수상한 목격자까지 모두 체크했다. 법의 사각지대에 교묘하게 숨어있던 또 하나의 개체가 자기희생을 통해 정화되었다. 인간이 자살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다.

산을 오르는 길에는 여러 갈래의 코스가 있다. 진화된 현대 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인간 행동은 패턴화되고 예측 가능해진다. 하지만 어쩌다 한번 불쑥 패턴에서 빠져나갈 때, 예기치 못한 행동을 보일 때, 그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는 게 가능할까. 인간은 언제나 어떤 결과가 나타나면 원인부터 찾으려 들지만 우리 주변은 원인 미상의 일들로 넘쳐난다. 다만 수많은 시간 동안 잠복하며 그 일이 일어날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 일이 일어난 것일 뿐.

10년간 같은 등산로를 오르내리던 치과의사 L이 평소에는 가지 않던 다른 험준한 코스에서 자살했다. 핸드폰 메모장에 남겨진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한 줄 유서가 자살의 증거로 제시되었다. 물론 핸드폰 액정에는 L의 지문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가족들은 오열했지만 아내의 반대로 부검은 실시되지 않았다. 일주일 뒤 L의 내연녀도 그 산으로부터 250km 떨어진 저수지 바닥에서 발견되었다. 아마 할 수만 있다면 아내는, 비행기를 태워서라도 둘 사이를 더 멀리 떼어놓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문득 목사실 벽에 걸려 있던 예수 십자가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맞이한 것은 인간들을 향한 하나의 메시지다. 예수의 희생정신은 세포자살과 닮아 있다. 자기 정화를 통한 리셋이 세상의 유일한 구원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매한 인간들은 언제쯤 자신들 신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까.

검찰 발표에 의하면 최근 5년간 주요 미제 사건 3200여 건 중 해결된 것은 329건에 불과하다. 미제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될 확률이 급격히 떨어진다. 일단 미제 사건으로 분류되고 나면 10건 중 9건은 영원히 물음표로 남는 것이다. 가스폭발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온도, 압력, 가스와 공기의 일정한 혼합비율 등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 시점에 점화 요인까지 추가되어야 한다. 밀폐된 공간에서 작심하고 실험을 해도 단번에 폭발이 이뤄지기 힘든 이유이다. 현실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우연의 일치가 만들어낸 미제 사건에 원인불명 사건을 하나 더 추가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물론 누군가는 의문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의 치안이 그리 허술한가라고.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우리나라의 원인불명 사망률은 OECD 주요국 중 1위이다. 2018년 사망원인 통계자료를 보면 원인 미상의 기타 급사를 포함해 사망자 267221명 중 약 10%28838명의 사인이 불명확했다. 이런 불명확성에 기대 무임승차하듯 리셋을 실행한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얼마 전 뉴스에서 보도되었듯 전국 기차역의 CCTV 98%가 얼굴 식별이 불가능하다. 해상도가 낮고 노후되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하루 평균 344만 명이 이용하는 공공의 시설물 안에서도 치안시설이 이렇다면 건물 바깥은 말할 것도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는 소멸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뭔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끈 풀린 풍선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나는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CCTV에는 찍히지 않는 살아 있는 표정들을 살핀다. 표정은 제각각이지만 결국 두 부류로 나뉜다. 진화될 사람과 소멸될 사람. 인류의 딜레마는 이들이 한데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진화는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단지 효용성을 기준으로 소멸될 것들을 걸러낼 뿐이다. 자연계의 가장 신비하고 놀라운 법칙인 자연정화는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나타난다. 세포에서 발견된 특성처럼 스스로 소멸하는 자기희생이다. 불개미는 수개미의 생식기가 암개미의 생식기 안에서 폭발하면서 짝짓기를 한다. 암개미에게 일생 동안 필요한 700만 개의 정자를 한 번에 전달한 뒤 장렬히 전사하는 것이다. 붉은등거미도 마찬가지이다. 짝짓기 후 암거미가 수거미를 잡아먹는데 수거미는 아무런 반항도 않는다. 물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값진 희생도 있다. 무리를 지어 삶을 일구는 곤충들은 집단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다. 땅벌은 기생충이 자신의 몸에 알을 낳으면 벌집에서 멀리 떠난다. 벌집 안에 기생충의 유충이 퍼지는 것을 스스로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벌집을 떠난 벌은 생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명백한 자살이라 할 수 있다. 건기가 되면 먹이를 찾아 나서는 야생 얼룩말의 무리에서도 희생적 죽음을 볼 수 있다. 여정 내내 무리를 지휘하는 우두머리 얼룩말은 악어가 득실거리는 강물을 만나면 맨 먼저 뛰어든다. 당연히 잡아먹힐 확률이 높다. 그가 기꺼이 악어의 먹이를 자처하며 주의를 끄는 동안 나머지 무리는 한층 안전하게 물을 건널 기회가 생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세포나 동물에 비해 훨씬 이기적이어서 자기희생을 위한 자살은 극히 드물다.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물론 자살을 돕는 과정에서 복잡한 뒤처리와 무시할 수 없는 비용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자연정화라는 대전제 앞에서는 세포든 동물이든 혹은 인간이든 내게는 모두 같은 의미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교실로 날아든 땅벌을 밟아 죽인 적이 있다. 왠지 그때 이후로 내게 말을 거는 친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중학교 3학년 때는 반 아이가 3층 화장실에 뛰어내렸다. 녀석의 주머니에서 꺼낸 유서에서 내 이름이 나왔다. 죽지 못한 녀석은 6개월 뒤 깁스를 풀었지만 다니던 학교로 다시 돌아오진 않았다. 나는 학교 이사장인 할아버지를 둔 덕에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었다. 나는 녀석의 입속에 녀석의 시험지를 쑤셔 넣고 삼키게 했었다. 녀석은 울면서 그것을 씹어 삼켰다. 우리 반 평균을 깎아 먹고 반석차를 꼴찌로 만든 시험지였다. 녀석은 전체를 위해 스스로 소멸해야만 했다. 자기희생이 필요했지만 망설이고 있었으므로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내 행동을 할아버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할아버지가 리셋되어야만 하는 이유였다.

전기충격기와 수술용 장갑과 밧줄을 챙겨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선다. 파트너 J선배는 오늘 초등학생 아들의 공개수업에 가야 한다고 했다. 만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맞고 들어와 속상하다고 했던 그 아들이었다. 마침 그 일로 선생님과의 면담도 잡혀 있다고 했다. 선배는 이혼 후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이 일이 선배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선배는 종종 감성적이 되어서 날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치과의사 L을 기껏 벼랑까지 끌고 가 놓고 살짝 미는 것조차 눈빛이 흔들리며 망설였다. 재빠르게 내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우리 모두가 한꺼번에 위험에 빠질 뻔했다. 처음 내게 일을 가르쳐 줄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점점 효용성을 잃어가는 선배가 안타깝다. 미안하다는 선배의 문자에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답장을 보냈다. 사실 나는 며칠 전 회사에 정식으로 현 상황을 보고하고 파트너 교체 요청서를 올렸다. 아직 답신은 없다. 점점 자기 역할을 못하고 버러지가 돼가는 선배의 모습을 아무렇지 않은 척 지켜보는 것도 고역이다.

한바탕 퍼붓던 빗줄기는 어느새 그쳤지만 거리는 아직 물기로 질척하다. 백화점에 들러 지하 식품매장을 찾았다. 푸드코드 옆 수제 초콜릿 전문 매장으로 들어갔다. 카카오 함량이 가장 많은 초콜릿 한 통을 골랐다. 작은 유리병 안에 별과 하트 모양의 초콜릿들이 들어 있었다. '천상의 맛, 달콤한 떨림' 이란 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한 층을 올라가 손님이 가장 많이 붐비는 스포츠 매장에서 270 사이즈의 러닝화를 사 신었다. 직원이 신상품을 추천했지만 평범하고 가장 많이 팔린 스테디셀러 상품으로 골랐다.

높은 담이 사방을 둘러싼 양옥 주택이었다. 철제 대문 위로 CCTV가 보여 본능적으로 모자를 눌러썼다. 벨을 누르고 등기라고 말하자 한참 후 남자가 철제문을 열었다. 머리가 벗어지고 배가 많이 나온 전형적인 중년 남성이었다. 전기충격기가 몸을 스치자 남자는 무기력하게 허물어졌다. 나는 수술용 장갑을 낀 손으로 남자를 들쳐 업고 비에 젖어 질척이는 마당을 가로질러 집 안으로 향했다.

눈을 뜬 남자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불안해했다. 나는 남자의 입을 막고 있던 테이프를 살짝 떼어내고 초콜릿 한 움큼을 입안에 쑤셔 넣은 뒤 테이프를 다시 닫았다. 의자에 묶인 채 초콜릿을 삼킨 남자의 몸에서 순식간에 발진과 두드러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의자를 발로 차 뒤로 넘어트렸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의 얼굴이 순간 새파랗게 변했다. 남자는 몸을 비틀며 벌레처럼 고통스러워했다. 혈압이 떨어지며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는 것 같았다. 전형적인 아나필락시스 쇼크였다. 특정 물질에 몸이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극소량만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었다. 몸을 요동치며 뒤틀던 남자의 움직임이 잦아지는 데는 47분이나 걸렸다. 나는 맥박이 멈춘 것을 확인하고 결박을 풀었다. 식탁과 바닥 주변에는 초콜릿 알들이 자연스럽게 흩어지도록 했다. 예상대로 집안에서 확인한 대문 위의 CCTV는 녹화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남자의 집을 나와 가방에서 꺼낸 낡은 운동화로 신발을 갈아 신었다. 흙 묻은 새 신발은 주택가 한쪽의 재활용 분리수거함에 집어넣었다. 새 신발은 얼마 후 필요한 누군가에게 전해질 터이다. 초콜릿 알레르기로 마무리된 남자의 인생보다 훨씬 유용한 신발이었다.

힐끔 쳐다본 J선배의 얼굴이 꺼칠해 보인다. 면도를 안 해 하관을 덮은 수염이 지저분하다. 잠을 못 잤는지 눈도 발갛게 충혈돼 있었다.

-, 애가 무슨 문제 있대요?

나는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아 인터넷 서핑을 하며 물었다. 포털사이트 뉴스란에 내가 찾던 기사 몇 개가 올라와 있었다. 초콜릿 알레르기를 가진 남자의 자살 사건이었다.

사무실 탁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넘기던 선배가 대답했다.

-애 엄마가…… 다시 합치자네.

선배의 목소리가 살짝 흔들렸다.

-합쳐요, 그럼. 잘 됐네.

나는 자꾸만 약해지는 선배가 못마땅해 생각에도 없는 말을 던지고 기사에 집중했다.

남자는 가족을 모두 외국에 보내고 한국에서 혼자 생활하는 기러기아빠라고 했다. 사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들러 집안일을 도와주던 도우미 아주머니였다.

-그런데 조건이 있어. 여기 일을 그만두라네.

커피 잔을 내려놓은 선배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예전의 날카로운 이성과 동물적인 감각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무엇이 선배를 이렇게 만든 걸까. 침대에 누워 숨을 헐떡이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효용성이 휘발된 선배의 빈 껍데기가 천천히 일어나 문을 열고 사무실을 나선다.

기사 말미에는 우리나라 기러기아빠의 실태와 숫자에 대한 통계가 언급되었고 좀 더 많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결론짓고 있었다. 하지만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그가 요즘 상황이 어려워져 사채를 쓰고 있었다는 것과 마당 바닥에 찍힌 발자국이 신발장에는 없는 종류의 신발이라는 내용은 기사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회사 인트라넷으로 확인해 보니 파트너 교체 요청 건에 대한 답신이 도착해 있었다. 회사에서도 상황을 인지하고 있으나 좀 더 신중을 기한 뒤 적절한 대책을 내놓겠다는 요지였다.

J선배처럼 돈만 보고 이 일을 선택했다가 죄책감에 스스로 파멸해간 사람을 여럿 보았다. 물론 일반 회사에 비하면 엄청난 보수를 받는 게 맞지만 하찮은 양심과 알량한 도덕성이 기생충처럼 몸 안에 퍼져 있다면 스스로 그 중압감을 이겨낼 수는 없다. 뒤늦게 사회의 정의 운운하며 양심고백을 한다고 해서 들어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사람 한둘을 정신병원으로 보내는 것만큼 손쉬운 일도 없으니까. 소문에 의하면 지난달에도 다른 팀원들 중 한 명이 정신이상 판정을 받고 병원에 감금 처리되었다고 한다. 회사는 지금 J선배의 일로 고민 중인 것 같다. 장소가 정신병원이든 한강 바닥이든 결과는 마찬가지지만, 평생 입을 다문다는 조건을 지킨다면 순순히 퇴사를 인정할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회사의 우유부단한 일처리가 항상 불만이었다. 회사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무대 위 개그맨의 억지스러운 설정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다. 효용성이 사라지면 무조건 소멸되는 게 마땅하다.

*

헬스장엔 언제나 역동적인 기운이 감돈다. 이곳의 공기는 살아 있는 생명의 숨결을 느끼게 해준다. 운동은 내 오랜 불면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짬을 내서 운동을 하는 진짜 이유는 체력 관리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내 일이 마음에 든다. 보람도 있고 적성에도 잘 맞는다. 오랫동안 이 일을 계속하려면 지치지 않는 체력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러닝머신에서 한 시간을 달린 뒤 내려와 정수기 앞에 섰을 때 누군가 내게 음료수를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선배님. 회사에서 연락받으셨죠?

유난히 앳된 얼굴과 삐쩍 마른 몸매의 여자아이였는데 어쩐지 낯이 익어 보였다.

-우리가 구면이던가?

그녀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생긴 게 평범해서 그런 소리 종종 들어요.

H라고 했다. J선배의 빈자리를 채울 파트너였다. 회사에서는 연말까지 임시로 팀을 유지하면 내년 초 조직개편 때 팀원을 다시 정리해 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아직 수습이었다. 삐쩍 마른 게 닭 모가지나 제대로 비틀까 싶게 약해 보였지만 눈빛만은 제법 살기가 돌았다. 하지만 살기를 쉽게 드러내는 것은 아마추어에게나 허용되는 일이다. 프로는 발톱을 부드러운 털 안에 숨기는 법이다.

-정신 차려, 우린 자살을 도울 뿐이야, 그새 잊었나?

나는 남자의 등에 일곱 군데의 자상을 남긴 후배의 손에서 칼을 빼앗았다. 흥분한 그녀는 여전히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생각 좀 하고 일하자, ? 어디 기본도 안 된 애송이가 굴러들어 와서는…….

예민해진 나는 목소리를 비꼬았다. 이런 경우 남자의 독단적인 자살 처리는 불가능하지만 최종 목적이 동반자살이라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는 남자와 그의 내연녀를 여관으로 옮겼다. 그리고 칼에는 자살시킨 내연녀의 지문을 묻혔다. 사건은 내연녀가 남자의 등에 일곱 군데 자상을 내 살해한 후 자신도 음독자살한 것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일이 끝난 후 H가 먹고 싶다는 치맥을 하러 치킨집을 찾았다. 프라이드치킨은 바삭하게 잘 튀겨졌고 크림 생맥주의 하얀 거품도 부드러웠다. 나는 H의 사적인 감정이나 과거 따위에는 관심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을 하려면 적어도 자기희생의 숭고한 정신과 소멸 의미에 관해서는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뒤틀린 감정에 휘둘려 일을 망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회사에서도 교육을 받았을 텐데 아직도 제대로 우리의 사명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정식사원이 되기엔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심해, 우리는 단순히 청부살인을 하는 게 아니란 걸.

마지막 당부의 말로 설교를 끝낼 때까지 H는 계속 벌레를 씹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분위기를 좀 바꾸기 위해 이곳에 오기 전엔 무얼 했냐고 물었지만 H는 말없이 잔만 비웠다. 그러다가 처음 사람을 죽인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눈빛이 살아났다.

그녀의 이야기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혼 한 부모 중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녀는 어머니와 쌍둥이 동생이 궁금해 어머니의 집을 수소문해 찾아갔다. 벙어리였던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과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사춘기 삐뚤어진 감성과 제멋대로 얽혀 있었다. 사건은 순식간에 일어났다고 했다. 차라리 화를 냈다면 좋았을 텐데, 라고 말한 뒤 H는 닭의 살점을 뜯어 입안에서 잘근잘근 씹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얼싸안고 울며 손으로는 연신 미안하다는 수화를 되풀이했다고 한다. 병신같이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분노가 치밀어 올라 홧김에 밀쳤는데 어머니는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즉사했다고 했다.

-그런데 웃기는 게 뭔지 알아요?

남은 술을 마저 비우고 탁자 위로 내려놓는 H의 잔에서 쨍 소리가 울렸다. 시체에 이불을 덮어놓고 정신없이 자리를 빠져나온 며칠 뒤, 방송에서 쌍둥이 동생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고 했다. 베르테르 효과 때문에 어머니를 죽이고 자살한 시대의 패륜아가 되어 있었다고 했다. 정말 웃기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최근 들어본 어떤 이야기보다 더.

-그래서요, 그게…… 첫 경험이라고 해야 할지 아닌지, 헷갈려요.

말을 마친 그녀는 지나가는 종업원을 향해 빈 맥주잔을 흔들었다.

나는 만취한 H를 등에 업고 집으로 가고 있다.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제법 오래된 저택이다. 마당에 깔린 잔디엔 잡초가 무성하고 담을 둘러싼 정원수들도 관리를 하지 않아 지저분하다. 할아버지가 죽은 후 누군가를 데려온 것은 처음이다. 계단을 오르는데 가냘픈 H의 팔뚝이 내 목을 조여 왔다. 거실 소파에 H를 눕히고 담요를 덮어준 후 나는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해 J선배의 거취를 살폈다. 아직 별다른 조치는 취해진 게 없는 것 같다. 당연히 여관 동반자살 기사는 아직 뜨지 않았다. 시체는 여관 주인이 방을 들여다볼 내일쯤이나 발견될 것이다. 의정부의 한 산부인과에서 불이 나 사상자가 발생했고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남긴 뒤 사라진 남자가 다음날 저수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기도 했다. 경부고속도로에서는 갑자기 핸들을 꺾은 트레일러 차량 때문에 7중 추돌 사고가 발생해 9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나는 책상을 뒤져 담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베란다로 가기 위해 소파 옆을 지나는 순간 엄청난 전류가 몸을 관통했다. 난 아무 저항도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잠시 잃었던 정신이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눈을 뜨자 화장실 바닥에 눕혀진 몸이 밧줄로 결박돼 있었다. 손에 칼을 든 H가 나를 측은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H는 나와 칼을 번갈아 보더니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 칼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래요, 우린 자살을 도울 뿐이죠. 안 그래요?

H는 내 옷장에서 꺼내온 넥타이를 눈앞에서 흔들었다. 갑자기 정신이 아뜩해졌다.

-어때요? 애송이한테 당하는 기분이?

무슨 말이라도 하려 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내 정체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을 죽인 복수인가?

묻는 내 목소리가 살짝 흔들렸다. 순간 H가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다시 피식 웃었다.

-최근 들은 얘기 중 제일 웃기는 소리네요.

나는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착해지려 애썼지만 그럴수록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효용성을 잃지 않았다. 소멸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원인을 찾아야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쩌면 원인이란 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언제나 어떤 결과가 나타나면 원인부터 찾으려 들지만 우리 주변에는 원인 미상의 일들로 넘쳐난다. 다만 수많은 시간 동안 잠복하며 그 일이 일어날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 일이 일어난 것일 뿐.

회사는 H에게 내 리셋을 지시했다고 했다.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경찰에게 내 꼬리가 잡혔기 때문이다. 초콜릿 알레르기 자살을 수행했던 날이었다고 했다. 재활용 분리수거함 옆에는 무단 쓰레기 투여를 막기 위해 누군가가 설치한 초소형 몰래카메라가 숨겨져 있었다. 설마 그런 곳에서 손톱보다 작은 렌즈가 날 지켜보고 있을 줄은 몰랐다. 경찰이 탐문수사를 진행하고 카메라 주인을 만나 영상을 확보하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순식간에 난 용의자 1순위로 지목되었고 회사에서도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대상으로 떠올라버린 것이었다.

H는 나를 리셋하면 정식사원이 된다고 했다. 그녀에게 동생의 죽음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보다는 '애송이'라는 말이 더 삐뚤어진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 같았다. 선배랍시고 잘난 체하며 가르치려 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회사가 날 처리할 임무를 H에게 맡겼을 때 그녀는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잭나이프로 내 등을 사정없이 내리꽂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물론 이번엔 생각 없이 칼 휘두르는 걸 참아냈으니 그나마 발전이라면 발전인지도 모르겠다.

회사를 상대로 승산 없는 싸움을 할 생각은 없다. 일단 한 번 결정이 내려지면 번복되는 일은 없다는 것도 잘 안다. 다만 회사는 내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있지 못했다. 돈만 보고 일했던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회사의 방침에 반발하거나 도망갈 줄 알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들과 다르다. 처음부터 내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면 난 숭고한 소멸을 아름답게 수행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점이 가장 아쉽다. 그래서 H가 치맥에 대한 보답이라며 내게 마지막 선택권을 주겠다고 했을 때 고마움을 느꼈다.

-스스로 리셋 하실래요? 아님, 도와드려요?

치맥을 먹던 날 했던 설교를 허투루 듣지는 않은 모양이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내 생의 마지막을 아름다운 자기희생으로 마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H가 돌아가고 난 뒤 난 스스로 리셋을 수행했다. 내 목은 화장실 바닥과 문고리 사이에서 넥타이에 묶인 채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난 온몸에 힘을 빼고 눈을 감았다. 그동안 리셋된 사람들은 이 상태에서 얼마의 시간을 버텼었던가. 얼굴이 붉어지고 현기증이 일며 숨쉬기가 어려웠다. 의지와 상관없이 팔 다리가 제멋대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벌레 수십 마리가 온몸을 징그럽게 기어 다니는 것만 같았다. 생각보다 마지막 순간은 길게 이어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뭔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끈 풀린 풍선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내가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

몸이 떠오르니 세상이 좀 더 잘 보인다. 창밖 나뭇가지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나뭇잎들도 모두 떨어져 나갔다. 난 일주일째 목이 졸린 채 같은 자세로 문고리에 매달려 있다. H는 전기충격기로 정신을 잃은 경찰관을 차 안에 눕혀놓고 연탄불을 피우고 있는 중이다. 연탄보다는 번개탄이 더 유용하다는 것을 가르치지 못한 게 아쉽다.

J선배는 가족들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폭파되는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에 도착해 그가 원하는 대로, 남은 삶을 가족의 굴레 안에서 구질구질하게 이어갈지도 모르겠다.

얼굴의 안구와 눈꺼풀, 입술 등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몸에서 서서히 부패가스가 발산되기 시작했지만 그 냄새가 넓은 마당을 지나 집 밖까지 풍겨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할아버지의 집 안에서 나는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 온몸에 스멀스멀 벌레가 기어 다닌다. 여름이었다면 금파리나 검정파리 혹은 개미들이 내 몸을 점령하는 시간이 더 빨랐을 것이다. 기온이 낮아진 탓에 초기 3개월간의 부패 단계는 늦춰지겠지만, 그 후 시간이 더 흐르면 송장벌레와 쉬파리가 꼬일 것이다. 만약에 이대로 계속 방치되어서 1년에서 3년 사이에 뼈만 남으면 거미나 수시렁이가 나를 찾을 것이다. 벌레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내 몸의 일부였는지도 모른다. 시간의 간격을 두고 연어처럼 회귀해 내게 다시 돌아오는 건지도 모른다.

난 천천히 떠오르는 풍선처럼 조금씩 지상에서 멀어지고 있다.

회사의 다른 팀 직원들의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마포대교 북단에서는 40대 여성의 투신자살이 진행 중이고 경기도 일산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도 30대 회사원이 위태롭게 난간에 매달려있다. 인천의 한 호텔 욕조에서는 방금 전 중견기업 임원의 팔목 위로 면도칼이 지나갔고 부산의 유명 피부과 원장은 내일 아침 약물 과다 투여로 사망한 채 발견될 것이다.

2018년 우리나라의 하루 평균 자살자는 39.5명으로 OECD 평균인 12.1명의 세 배가 넘는다. 2008년의 29.9명에 비하면 10년 만에 매일 10명씩 더 늘어난 수치이다. 아직 미비하지만, 자연법칙에 동화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은 아름답다.

리셋은 세상의 구원이다. <>


 

  <당선소감>


   "끝이 안보였던 짝사랑 끝내고 새 사랑"

끝이 보이지 않는 짝사랑이었다. 상대는 완강했고 난 오랫동안 아파했다. 퇴근 후면 카페 구석에 앉아 혼자서 농밀한 '밀당'을 했고 제풀에 지쳐나갔다. 식욕 부진에 몸에선 열이 나고 식은땀이 흘렀지만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산이 변할 때쯤엔 내 심장이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여전히 마음을 짓누르는 알 수 없는 체증을 안은 채, 난 이 오랜 짝사랑을 그만 끝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간절함 5, 열패감 5, 거기에 상실감 몇 년을 듬뿍 얹은 후였다. 그리고 마지막 편지를 부쳤다. 전처럼 응답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모든 걸 내려놓았을 때, 투고조차 잊어버리고 있을 때, 답장이 날아왔다. 까만 밤 새하얀 함박눈처럼 내려왔다. 심장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겨울의 끝자락에 다시 시작된 연애. 앞으로 어떤 사랑을 해 나갈지 아직은 잘 모른다. 두려움, 걱정이 앞선다.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 10여년보다 더 큰 상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 마음으로 새 사랑을 시작해 보려 한다. 서두르지 않되, 멈추지 않되, 천천히, 진심을 담아……'리셋'은 세상의 구원이다.

채희문 선생님, 이세은 선생님 감사합니다.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가족들 사랑합니다. 병상에서 사투중인 처제, 조금만 더 힘내주길. 한결같이 믿어준 눈빛들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손잡아주신 한라일보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1973년생.

  ● 한양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졸업.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 졸업.

  ● 현 스포츠조선 편집팀 차장.


 

  <심사평>


  "소모되는 인생들 날카로운 서사로 포착"


올해의 한라일보 신춘문예는 예년보다 훨씬 많은 작품이 응모되었다. 문단 내의 갈등과 문학 시장의 위축을 염려하던 터라 자못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209편의 작품 중에서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아홉 편이었다. 변화된 시대의 문제의식과 새로운 미적 주체가 출현하기를 기대하면서 한 편 한 편 신중하게 읽어나갔다.

제주라는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아마도 지역에서 살고 있는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섬의 자연과 역사가 충분히 서사예술로 표현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리라. 하나 지역적 특성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수작은 보이지 않았다. 제주 굿을 소재로 한 '영귤소리'는 기대와 달리 굿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 아쉬웠다.

'그 모녀의 방식'은 성매매 여성의 고착된 성 의식을 엿볼 수 있어 사회학적 흥미를 끌었지만, 개선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이 별다른 반전 없이 계속될 뿐이었다. 과도하고 거친 성적 표현은 예술적 품격을 획득하지 못할 경우 비호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다만 작가로서의 역량은 충분히 엿보였다.

'애도증후군'은 애도의 실체가 막연하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었다. 전반부에서는 감각적인 묘사가 주목되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두서없는 넋두리처럼 느껴졌다. 소설은 미적 추구와 함께 서사적, 언어적 논리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논리적 비약이 설득력을 잃게 했다.

'리셋'은 창작 기법에서 투박하고 거친 면이 있지만, 적자생존의 논리 속에 소모되는 현대인의 모습을 날카로운 서사로 포착했다. 초반부의 지나치게 설명적인 서술이 다소 불편했으나 뒤로 갈수록 표현이 살아나고 서사의 힘도 돋보였다.

심사위원단은 '리셋'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신인이 가져야할 새로운 문제의식과 고유한 사유 능력, 그리고 서사를 끌어가는 힘을 높이 샀다.

부디 뚝심 있는 기질과 문학적 잠재력을 기반으로 역량 있는 작가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동시대의 문제와 인간의 삶을 깊이 있게 다루는 훌륭한 작품으로 한국문학을 빛내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김동윤, 김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