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사과가 맛없을 때 / 김미월

<당선작>
사과가 맛없을 때 / 김미월
바람의 손을 놓으려고 집들은 점점 높아진다
닫힌 문의 표정으로 나를 만지는
아이들이 술래를 피해 바다로 간다
멀리 헤엄쳐 가는 의자들
기다리던 것은 당연한 저녁이었을까
불꽃도 없이 돌들이 제 몸을 태운다
나무와 새들이 헤어진다
공중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림자만 기어다니는 거리
두고 간 것들로 남은 것들이 축축하다
오지 않은 날을 만지는 기분으로
아이들은 한 장씩 바다를 접는다
물어보지 않아도 큰소리로 대답하고 싶을 때
나무는 큰다
<당선소감>
아내·두 딸에 고마움 전하고파
누군가 쏟아버린 물인지도 모른다 귀가 큰 새가 잃어버린 모자일 수도 있고 수천 년 돌아다니던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눈먼 낙타였거나….
아내에 대한 궁금함이 하루의 첫 줄이 되곤 했습니다.
소주 한 병 사 오면서 저녁 버스에 깔린 캔 하나 봤습니다.
어디론가 가려면 저렇듯 모습을 바꿔야 하나 봅니다.
오랜 세월 옆에서 지켜봐 주신 임승빈 시인님, 이제 또 누군가의 옆이 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양애경 시인, 최은묵 시인, 대전문학회 선후배 문우들 고맙습니다. 저의 하루를 시로 읽어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로 오늘이 무성해지고 있습니다. 아내 정은경과 두 딸 경은, 원주에게도 고맙다는 말 꼭 전합니다.
● 1960년생
● 청주 거주
<심사평>
개인의 미감, 보편의 미감으로 바꾸는 능력 탁월
창간 80주년을 맞이한 경남신문의 2026년 신춘문예 시 부문에는 총 1610편의 옥고를 보내왔다. 여느 해와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한 응모작을 보며 심사위원 2인은 날로 더해가는 경남신문 신춘문예의 위상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수치와 의미는 심사에 임하는 태도와 마음을 한층 더 삼가게 했다.
시를 심사한다는 것은 삶을 평가하는 일이 아니다. 다만 저마다 살아온 시간과 마주한 대상과 품게 된 사유를 얼마나 미학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는가를 살피는 일이다. 정독과 재독을 거듭한 끝에 중점적으로 논의할 4인의 응모자를 선정했다.
‘변소의 여왕’ 외 2편은 현실적 상상력을 통해 현실이 미처 지니지 못한 아름다움을 온전히 채우고 복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총 3편의 투고작 가운데에서도 완성도의 편차가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접촉의 방식’ 외 4편은 탄탄한 구조를 통해 정감과 시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하지만 일말의 불안 탓인지 읽는 이의 몫을 남겨두지 않고 작품의 답을 정해둔다는 인상을 받았다. ‘시룻번’ 외 2편은 끝까지 놓지 못했다. 편편마다 신뢰감 있게 끌고 나가는 진술이 돋보였고 어느 순간 이미지 하나만을 툭 부려 놓고 끝내는 방식도 안정적이었다. 우리가 신춘문예에서 기대하는 활력과 새로움의 관점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과가 맛없을 때’ 외 3편을 당선자로 정한다. 시인은 독특한 감각을 담백한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개인의 미감을 보편의 미감으로 온전히 바꾸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정확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시인만이 끝내 그 문장을 자유롭게 풀어 둘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할 수 있었다. 앞으로 더 정확해지기를, 그리하여 더 멀리 나아가기를 당부드린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낙선자에게는 위로를 드린다. 다만 당선자든 낙선자든 이미 내 삶을 시로 쓰고 있으니 모두에게 다시 축하의 마음을 드린다.
심사위원 : 김언희, 박준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작품 전체 인상
이 시는 세계가 “제대로 맛이 나지 않을 때”의 감각을, 현실 묘사가 아니라 사물들의 이상행동으로 번역해 놓은 시이다. 익숙한 질서가 미세하게 틀어지고, 그 틈에서 상실·불안·성장 같은 정서가 초현실적 이미지의 연쇄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제목의 역할: “사과가 맛없을 때”라는 세계 인식
제목은 단순한 미각 불만이 아니라 삶이 더 이상 예전처럼 달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을 가리키는 표지이다. 사과는 일상, 건강, 평범한 기쁨 같은 것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읽히기 쉽다. 그 사과가 “맛없다”는 것은 감각의 둔화이자 세계와의 친밀감이 떨어진 상태를 암시하는 장치이다.
이미지의 핵심 축 1: 바람과 집, ‘자연과의 결별’
첫 행의 “바람의 손을 놓으려고 집들은 점점 높아진다”는 문장은, 인간이 자연과의 접촉을 끊기 위해 위로 도망치듯 개발하고 축조하는 장면으로 읽히는 문장이다. 바람은 잡을 수 없는 것인데도 “손”을 가진 존재로 의인화되어 있고, 집은 자연의 손을 놓기 위해 “높아진다”는 역설을 수행하는 존재가 된다. 여기서 높이는 진보나 풍요라기보다 접촉을 회피하는 방식이 된다.
이미지의 핵심 축 2: 아이들, 술래, 바다, ‘회피와 탈주’
“아이들이 술래를 피해 바다로 간다”는 진술은 놀이의 장면처럼 보이지만, 곧바로 도망과 피신의 정서로 기울어지는 문장이다. 술래는 구체적으로 명명되지 않기에 더 불길한 압력으로 남는 존재이다. 그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이들은 땅이 아니라 바다로 향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바다는 자유이면서도 위험이어서, 이 탈주는 해방이자 불안의 선택이 된다.
이어지는 “멀리 헤엄쳐 가는 의자들”은 이 세계에서 “앉아 있음” “머묾” “안정”을 상징하는 의자가, 오히려 헤엄쳐 떠나가는 존재가 되는 장면이다. 안정의 도구가 안정에서 이탈하는 장면이므로, 화자의 세계가 정주(定住) 불가능한 상태로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이미지의 핵심 축 3: ‘불꽃 없는 소각’과 ‘이별의 연쇄’
“불꽃도 없이 돌들이 제 몸을 태운다”는 불가능한 사건을 선언하는 문장이다. 불꽃 없는 연소는 원인 없는 소진, 이유 없는 자기소모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이다. 돌은 가장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것의 상징인데, 그 돌이 자기 몸을 태운다는 것은 기반이 무너지는 경험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나무와 새들이 헤어진다”는 자연의 조화가 끊어지는 장면이다. 나무와 새는 서식과 노래, 둥지와 비행이 연결된 관계이다. 그들이 헤어진다는 것은 세계의 연결망이 끊기는 일이자, 살아 있음의 리듬이 어긋나는 일이다.
질문의 자리: “공중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시의 심장부에 놓인 존재론적 공백이다. 공중은 늘 ‘사이에 있는 것’이고, 매개하고 떠받치고 숨 쉬게 하는 것인데, 화자는 그 매개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심하는 상태이다. 그래서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내가 숨 쉬는 이 세계가 아직 세계인가”를 확인하는 물음이 된다.
도시의 풍경: 그림자만 남는 거리와 축축함
“그림자만 기어다니는 거리”는 몸(실체)이 사라지고 흔적(그림자)만 남은 풍경이다. 이는 고독과 단절, 혹은 인간적 온기가 빠져나간 도시의 감각을 압축한 장면이다.
“두고 간 것들로 남은 것들이 축축하다”에서 축축함은 단순한 습기라기보다 미련, 후회, 미해결의 정서이다. 떠난 것들이 남긴 자리 때문에 남아 있는 것들까지 젖어버린다는 진술이어서, 상실이 현재를 오염시키는 방식이 드러나는 문장이다.
전환의 장면: “바다를 접는다”라는 상상력
“오지 않은 날을 만지는 기분”은 미래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손끝에 닿아 있는 듯한 불안한 예감을 말하는 문장이다. 그 직후 “아이들은 한 장씩 바다를 접는다”가 나온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바다를 접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감당 불가능한 세계를 ‘종이’처럼 다루려는 시도로 읽힌다. 바다는 무한하고 거대한 것인데, 그것을 한 장씩 접는다는 것은 공포를 축소하고, 혼란을 정리하고, 세계를 휴대 가능한 크기로 만드는 행위이다. 이때 아이들은 도망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를 다시 만들려는 재구성의 주체가 된다.
마지막 두 행의 의미: “대답”과 “성장”
“물어보지 않아도 큰소리로 대답하고 싶을 때”는 묻지 않았는데도 답하고 싶은 마음, 즉 존재가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싶어지는 충동이다. 불안이 커질수록 사람은 질문이 없어도 결론을 외치고 싶어지는 법이다. 이 문장은 그 심리를 정확히 짚는 문장이다.
그 직후 “나무는 큰다”가 놓이는 방식이 이 시의 결론이다. 나무는 앞에서 새와 헤어졌던 존재이다. 단절의 한 축이었던 나무가, 마지막에는 성장의 동사로 귀결된다. 이는 세계가 맛없어진 순간에도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자, 말(대답)의 충동을 넘어 생명은 자기 방식으로 계속 확장된다는 조용한 선언이다.
형식과 미학: 담백한 문장으로 만드는 초현실
이 시의 힘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정확한 단문 진술에서 나온다. “집은 높아진다 / 아이들은 간다 / 의자는 헤엄친다 / 돌은 태운다 / 나무는 큰다”처럼 동사 중심으로 세계의 규칙을 바꾸어 버리는 방식이다. 그래서 독자는 설명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바뀐 규칙의 세계에 던져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점이 심사평에서 말한 “개인의 미감을 보편의 미감으로 바꾸는 능력”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해석
이 작품은 삶이 더 이상 달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 인간이 자연과 세계의 연결을 끊어내며 불안 속에서 도망치다가도, 결국에는 세계를 “접어” 다시 다루려 하고, 그 와중에도 생명은 자라난다는 사실을 초현실적 이미지로 증명하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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