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나비 / 김밀아

 

 

가늘고 긴 다리는 망설이고 있었다
향기가 더듬이를 떠날 때까지

아무도 보지 않는데 가끔은
양면을 펴서 평평하게 엎드렸다가

꽃빛에 반해서 얼굴을 대는 동안
바람은 날개를 붙잡고 꽃대는 휘청거려
어디선가 물방울도 듣고 있는
펴졌다 구부러지는 입의 모양

모았다가 벌어지는 어깨가 넓어진다

꽃가루가 묻으면서 공중에서 깊게 무늬들이 박히고
날개끼리 빠르게 부딪치면 앞으로 뒤로 숨막히게 반짝이고
앞으로 뒤로 떠 있는 동안 고요하게 부서지는 살갗의 비늘

양 날개 위에 마주 보는 몸의 문양은
마른 공기 속에 펄럭이는 두 장의 꽃잎

후드득
떨어질 것 같다가
구불거리며 솟구치다가
따사롭게 앉아 있다가

날아갈까
날아갈까
날아가는 나비

 

 

  <당선소감>

 

   타국의 삶 한가운데에서 시 써보고파

웅크리고만 있던 말들, 나에게서 떠나갔으면
시인의 길 가라 격려해준 김기택 교수께 감사


타국의 삶 한가운데서 시를 써 보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시가 아닌 다른 것으로는 말해질 수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웅크리고만 있던 말들이 저에게서 떠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힘겨울 때마다 다독여주신 수지 선생님, 힘이 되어주는 친구 진옥, 영아, 영진, 정혜, 소연, 성미, 복선 언니 많이 생각납니다. 수다예찬 선생님들 한번 뵙고 싶습니다. 열정적인 수업으로 시에 푹 빠지게 하신 조동범 시인 교수님 감사합니다. 따뜻한 말씀으로 용기를 주시는 경희사이버대학원의 홍용희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오랫동안 무엇을 쓴다면 그것은 소설일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짧은 텍스트의 형태로 무엇인가 쓰고 있었고 궁금한 점들이 생겨났습니다. 창작 수업을 몇 과목 수강하면서 묻고 싶은 것들을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질문이 유난히 많은 학생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 질문을 귀하게 여겨주신 분이 계십니다.


좋아하는 시의 길을 가보라고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던, 글쓰기에 관한 한,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는, 존경하는 김기택 시인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독일 문학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제가 교수님 덕분에 한국 문학 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저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저의 건강을 돌봐주시고 두려운 마음까지도 주장해 주시길 기도하면서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봄에 직접 나비를 보았을 즈음, 리처드 용재 오닐이 연주하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을 수도 없이 듣고 있었습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다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있는 곳에서는 계절이 조금 늦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 -


 

  <심사평>

  

  마지막 연 ‘날아갈까…’ 새해 첫 지면 장식하는 여운

경인일보 2026년 신춘문예의 심사를 맡아 응모작을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응모작의 대부분은 거대담론이나 시대적 소명의식이 잘 드러나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 따라서 대 사회적 목소리가 부족하다고 느꼈는가 하면 역사의식이라던가 시대를 꿰뚫어 보는 혜안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신춘문예를 의식해서 쓰여진 탓이겠지만 현란한 수사를 구사한 응모작이 많아 심사위원들 가슴을 울리는 작품이 적은 것도 지적하고 싶은 결함이다. 많은 응모작들이 소소한 일상에서 소재를 찾는 경향을 보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부분 응모자들의 문학에 대한, 혹은 시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보여졌다. 시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사물의 본질에 닿으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점은 한국 시단의 발전을 위해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되었다.

두 사람의 심사위원은 응모자 중 단연 돋보이는 김정아의 작품에 주목했다. 응모작 네 편 중 ‘나비’를 당선작으로 밀기로 쉽게 합의했다. 특히 마지막 연의 ‘날아갈까 날아갈까 날아가는 나비’가 보여주는 상승 이미지가 경인일보 새해 첫 지면을 장식하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진해서 한국 시단을 견인하는 역할을 담당해주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김명인 시인·김윤배 시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작품 한 줄 요약

「나비」는 ‘망설임-접힘-비상’의 순간들을 현미경처럼 확대해, 나비의 몸짓이 곧 말(언어)과 삶이 날아오르는 과정임을 보여주는 시예요.


읽는 맛의 핵심: “움직임”을 ‘문장’으로 만든 시

이 시는 설명보다 동작으로 갑니다.

  • 펴졌다/구부러졌다, 모였다/벌어졌다, 앞으로/뒤로… 같은 반복이 날갯짓의 리듬을 그대로 옮겨 놔요.
  • 마지막의 짧은 되풀이(“날아갈까…”)는 의미를 결론내리기보다 떠오르기 직전의 떨림을 남깁니다.

주요 이미지 5개로 보는 시의 흐름

  1. 망설이는 다리
  • 시작부터 “가늘고 긴 다리”가 망설입니다. 비상이 아니라 주저가 첫 장면이에요.
  1. 평평하게 엎드림(접힘/숨기)
  • “아무도 보지 않는데” 엎드리는 장면은, 나비가 아니라 말/마음이 스스로를 눌러 숨기는 태도처럼 읽혀요.
  1. 꽃·바람·물방울(타자의 세계)
  • 꽃대가 휘청이고, 바람이 붙잡고, 물방울이 “듣고 있는” 듯한 장면은
    → 나비의 비상이 혼자만의 사건이 아니라, 세계의 반응 속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보여줍니다.
  1. 무늬가 ‘박히는’ 순간(탄생/각인)
  • 꽃가루가 묻으며 “깊게 무늬들이 박힌다”는 대목은
    → 경험이 몸(날개)에 남기는 각인, 혹은 타국의 삶이 남기는 새 언어의 무늬로도 읽혀요.
  1. ‘후드득’—떨어질 듯 솟구치기(불안한 비상)
  • 의태어 하나로 낙하/비상의 공포를 동시에 줍니다. 비상은 늘 떨어질 가능성을 품고 있죠.

표현 기법 포인트

  • 의인화: 더듬이, 꽃대, 물방울까지 ‘감각’이 생깁니다.
  • 신체의 확대 촬영: 다리·더듬이·입·어깨·비늘… ‘나비 전체’보다 ‘부분’을 따라가며 생동을 만듭니다.
  • 반복과 병렬: “앞으로 뒤로”, “모았다가 벌어지는”, “날아갈까” 같은 반복이 불안과 떨림을 리듬으로 바꿔요.
  • 시각+촉각의 결합: “부서지는 살갗의 비늘”처럼, 보는 장면이 동시에 만져지는 듯합니다.

주제 해석 2가지

1) 관찰시로 읽기: “비상은 아주 작은 근육의 결심”

나비는 갑자기 ‘날아오르지’ 않아요.
망설이고, 엎드리고, 붙잡히고, 휘청이고… 그 끝에 겨우 떠요.
→ **비상은 결단이라기보다 ‘과정’**이라는 메시지.

2) 자기서사로 읽기: “웅크린 말들이 날개를 얻는 과정”

당선소감의 “웅크리고만 있던 말들”과 시의 ‘엎드림/접힘/비상’이 겹쳐요.
→ 나비 = 타국의 삶 한가운데에서 시를 쓰려는 화자 자신,
말(언어)이 날개가 되어 “날아가는” 장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