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끈끈한 가족 / 최윤정

<당선작>
끈끈한 가족 / 최윤정
끈끈이에 몇 마리 파리가 붙어 있어요 저건 주검도 오점일 거예요 엄마도 끈끈이에 자주 붙었죠 한 발을 떼면 또 다른 발이 들러붙었어요 검버섯 얼룩덜룩한 팔다리를 가난에서 겨우 뜯어내고 나면 골방의 수챗구멍에서 아버지가 기어 나와요 놀라서 뜨거운 물을 끼얹어요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죠 다리가 너무 많거나 너무 긴 것들은 슬퍼요 아무 데나 자꾸 매달리고 싶어 하죠 엄마는 내 등에 올라타기도 해요 깍지 낀 손가락을 떼어낼 때마다 왜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죠? 뒷덜미가 잡힌 것처럼 목이 움츠러들어요
핏줄을 선택할 수 없다는 건 벌칙 같아요 기도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것도 있죠 두 귀가 왼쪽으로 비틀어진 개는 앞발을 모으고 누워 하루 종일 잠만 자고요 나는 귀퉁이가 해진 아버지를 모아 새로 아버지를 만들죠 반듯해진 그는 이력서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너덜너덜해지네요 속옷을 또 뒤집어 입었네요 킥킥, 당신이 몰래 꽃씨를 뿌리고 다니는 건 비밀로 할게요 우리 가족도 뭔가 하나쯤은 함께할 수 있잖아요
엄마가 밥통 속 환한 빛을 바닥까지 긁어 담아요 우리는 설익은 십자가들을 골라내어 그릇 옆에 모아두었죠 기도를 열심히 하면 울기도 하잖아요 집구석마다 곰팡이가 단란하게 피어 있는 오늘 밤이 꼭 그런 기분이죠 누군가 밟고 지나간 반지하의 하늘이 창으로 밀려들어요 우리는 각자의 벽에 들러붙어 싹싹 눈이 부신 쪽으로 밤새 빌었어요
<당선소감>
살아보니 다 때가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비관적인 시가 많았습니다.
다 써놓고 보면, 내놓을 만한 글이 못되고, 누가 읽으면 비웃을 것 같고, 너무 폭력적이거나 너무 아프거나, 흉잡힐 게 많았습니다.
그런 시들이 창을 내고 빛을 받아들이며 그래도 햇빛 쪽으로, 따뜻한 쪽으로 가고자 애를 쓰게 된 것은 남편 덕분입니다. 내 시 읽는 것을 안 좋아 하지만, 읽으라면 읽고 쓴소리를 해주니 썩 유용한 배우자입니다.
신춘이라는 한 줄의 이력을 얻기 위해서 마음만 애쓰고 몸은 게으름피우다 나이만 먹은 것 같습니다.
더 일찍 정신 차리고 바지런했으면 몇 년은 단축할 수 있었겠다 싶지만, 살아보니 다 때가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니 허송세월도 하늘의 뜻이니까 게을렀던 반성은 조금만 하고 많이 기뻐했습니다.
실은 당선 연락의 마지노선이었던 날이 지나고 마음을 접고 있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 하원을 기다리는 도중 당선 전화를 받았는데 엄마가 육중한 몸으로 폴짝폴짝 뛰는 것을 아이는 처음 보았을 겁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사랑하는 네 아이들과 남편,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시가 길을 잃을 때 이정표가 되어준 나비족장 박지웅 시인께도 감사드립니다.
● 2010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
● 제3회 천강문학상 수필 우수상
● 2014년 김유정 신인문학상
● 제15회 천강문학상 시 대상
<심사평>
생각을 풀고 거두는 솜씨 유려하고 자연스러워
요컨대 선자는 ‘끈끈한 가족’을 당선작으로 고르기를 피할 수 없었다.
어떤 투고작들도 그 새로움에 있어서나 시적 기량의 자재로움에서 당선자의 성취를 넘지 못했다.
영화 기생충을 연상시키는 가난한 도시 가계의 비참을 가볍고 쿨한 터치로 오히려 더 아프게 새겨내는 당선작은, 놀이인 듯 탐구인 듯 생각과 말을 풀고 거두어가는 솜씨가 이미 신인답지 않게 유려하고 자연스럽다. 다른 두 작품 역시 이에 손색이 없다.
훌륭한 당선작을 얻게 되는 것은 말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지만, 그 노련함과 무르익음이 오히려 염려스럽다는 군말을 굳이 덧붙여 두고자 한다. 이미 충분히 노련하여, 더 어떤 열정이 시인 내부에서 동원될 수 있을지, 그리하여 시와 삶의 자기갱신에 나설 수 있을지 저어스러운 바다.
노파심을 불식시킬 겸손한 심기일전이 그에게 있기를, 한국어 시쓰기의 새 길 한 자락이 그에 의해 일으켜 세워지기를 기대하고 응원하려 한다.
심사위원 : 김사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작품 전체 인상
「끈끈한 가족」은 가족을 ‘정(情)’의 끈끈함이 아니라 끈끈이(끈끈이 트랩)의 끈끈함으로 치환한 시이다. 혈연이 주는 친밀이 아니라 도망칠수록 더 달라붙는 빈곤·폭력·의존·죄책감의 점착을 보여준다. 그런데 시는 이를 비극적 탄식으로만 밀어붙이지 않고, ‘킥킥’ 같은 웃음, ‘비밀로 할게요’ 같은 속삭임을 섞어 잔혹하고도 쿨한 어조로 더 아프게 만든다.
제목의 역설: “끈끈한”은 따뜻함이 아니라 ‘붙잡힘’이다
일반적으로 ‘끈끈한 가족’은 서로 의지하는 결속을 뜻한다. 그러나 이 시에서 끈끈함은 사랑의 접착제가 아니라 탈출 불가능한 점착이다. 끈끈이는 곧 ‘가족’이고, 가족은 곧 ‘끈끈이’이다. 제목은 애초부터 “가족=안식처”라는 상식을 뒤집는 장치이다.
1연: 끈끈이-파리-주검, 그리고 “수챗구멍의 아버지”
- “끈끈이에 몇 마리 파리가 붙어 있어요”에서 시작하는 장면은 가난한 집의 위생과 생존 환경을 단박에 불러온다. 파리는 생의 주변부를 맴도는 것, 그리고 “주검도 오점”이라는 말은 죽음조차 정리되지 못하는 현실의 무게를 준다.
- “엄마도 끈끈이에 자주 붙었죠 / 한 발을 떼면 또 다른 발이 들러붙었어요”는 엄마가 처한 삶이 ‘노동’이나 ‘돌봄’이기 이전에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적 가난임을 말한다.
- “골방의 수챗구멍에서 아버지가 기어 나와요 / 놀라서 뜨거운 물을 끼얹어요”는 충격적이다. 아버지는 보호자가 아니라 혐오·공포의 대상으로 출현한다. ‘수챗구멍’은 가족의 가장 낮고 더러운 구멍이며, 거기서 “기어 나오는” 존재는 권위의 몰락이자 폭력의 귀환이다. 뜨거운 물은 방어이자 응징이자, 동시에 자식이 감당해야 하는 생존의 반사신경이다.
2연: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 “다리가 너무 많거나 너무 긴 것들”
여기서 시는 가족을 직접 말하지 않고 **형상(벌레/곤충/기형적 생명)**의 이미지로 에둘러 말한다.
- “다리가 너무 많거나 너무 긴 것들은 슬퍼요”는 혐오의 언어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는 “그렇게라도 매달려야 하는 존재”에 대한 연민이 있다.
- “엄마는 내 등에 올라타기도 해요”는 엄마의 의존이자 짐이며, 동시에 자식이 감당하는 가족 부양의 전도를 보여준다.
- “깍지 낀 손가락을 떼어낼 때마다 왜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죠?”는 아주 독특한 종교감각이다. 가족의 결박을 풀려는 순간 들리는 ‘신의 목소리’는 축복이 아니라 금지와 죄책감의 내면화이다. 가족에게서 떨어지려 하면 ‘벌 받는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 “뒷덜미가 잡힌 것처럼 목이 움츠러들어요”는 그 죄책감이 심리적이면서도 신체적인 공포로 나타나는 장면이다.
3연: “핏줄은 벌칙”, 그러나 ‘함께할 수 있는 것 하나’
이 연은 가장 노골적으로 주제를 말한다.
- “핏줄을 선택할 수 없다는 건 벌칙 같아요”는 가족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비선택의 폭력으로 규정한다.
- “두 귀가 왼쪽으로 비틀어진 개”는 가족의 한 구성원(혹은 가족의 삶 전체)을 대체하는 상징처럼 보인다. 비틀어진 귀,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모습은 무기력과 상처의 생활화이다.
- “나는 귀퉁이가 해진 아버지를 모아 새로 아버지를 만들죠 / 반듯해진 그는 이력서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너덜너덜해지네요”는 압권이다. 아버지를 ‘재생’하려는 노력은 현실(이력서/일자리/사회 구조) 앞에서 즉시 해체된다.
- 그런데 시는 여기서 갑자기 웃는다. “속옷을 또 뒤집어 입었네요 킥킥” 이 ‘킥킥’은 가벼운 유머가 아니라 절망을 버티는 생존 기술이다.
- “당신이 몰래 꽃씨를 뿌리고 다니는 건 비밀로 할게요”는 아버지(혹은 가족)의 어딘가에 남아 있는 미약한 선함/희망을 ‘비밀’로 보존한다.
- “우리 가족도 뭔가 하나쯤은 함께할 수 있잖아요”는 체념이 아니라, 균열 난 가족이 간신히 붙잡는 공동의 최소치이다. 이 최소치가 시의 온도를 아주 조금 올린다.
4연: 밥통의 빛, 설익은 십자가, 곰팡이의 단란함
마지막 연은 종교 이미지가 현실의 결핍과 뒤엉켜 폭발한다.
- “엄마가 밥통 속 환한 빛을 바닥까지 긁어 담아요”는 밥통의 ‘빛’이 곧 남은 밥/남은 생이다. 긁어 담는 행위는 살림의 절박함이자, 가족을 먹여 살리려는 몸의 움직임이다.
- “설익은 십자가들을 골라내어”는 기도가 아직 익지 못한, 즉 구원에 이르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종교는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이 시에서는 종교가 불완전한 약속처럼 남는다.
- “집구석마다 곰팡이가 단란하게 피어 있는 오늘 밤”은 소름 돋는다. 단란함(가족의 이상)을 곰팡이에 붙인다. 가족의 단란이 따뜻한 식탁이 아니라 곰팡이가 번성하는 환경으로 전치된다.
- “반지하의 하늘”은 「기생충」을 연상시키는 계급의 공간감각이다. 하늘은 원래 위에 있지만, 여기서는 “누군가 밟고 지나간” 잔해처럼 창으로 밀려든다.
- 결말의 “각자의 벽에 들러붙어 … 눈이 부신 쪽으로 밤새 빌었어요”에서 가족은 서로를 끌어안지 않는다. 각자 벽에 들러붙어 있다. 끈끈이는 서로의 품이 아니라 각자의 벽이다. 그럼에도 “눈이 부신 쪽”을 향해 빈다는 행위로, 시는 완전한 암흑 대신 희미한 방향성을 남긴다.
이 시의 핵심 장치 3가지
- 점착의 은유(끈끈이): 사랑의 결속이 아니라 탈출 불가능한 구조를 형상화한다.
- 해학의 칼날(킥킥, 비밀로 할게요): 비참을 감상으로 만들지 않고, ‘쿨함’으로 더 아프게 만든다.
- 종교의 양가성(십자가, 기도, 신의 목소리): 위로가 될 수도, 죄책감과 통제의 내면화가 될 수도 있는 종교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한 문장으로 정리
「끈끈한 가족」은 가족이 서로를 살리는 끈끈함이 아니라 가난과 상처와 죄책감이 서로를 붙잡는 끈끈함이 될 때, 그 점착 속에서도 ‘눈이 부신 쪽’을 향해 간신히 기도하는 존재들의 처지를 날카롭고도 해학적인 이미지로 그린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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