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경상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개미가 나를 구경한다. / 송인덕

<당선작>
개미가 나를 구경한다. / 송인덕
오늘
학교에 늦었는데
신발끈이 자꾸
말을 안 들었다
운동장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작은 개미 한 마리가
내 무릎까지 올라왔다
잠깐
나를 뚫어지게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내려갔다
나는 생각했다
아마 개미는
나를 구경한 것이라고
“이 아이는
오늘 늦었고요
신발끈이 엉켜 있어서
살짝 화가 나 있었어요.”
개미는
그 얘기를
친구들에게 전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자
신발끈이
살짝 풀렸다
<당선소감>
감정을 부풀리기보다는 장면을 남기고 싶어
앞으로도 과장하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하나는 분명합니다. 제가 붙잡은 사소한 장면이 누군가의 눈과 손끝에 닿았다는 것. 한 마리 개미가 운동장을 건너듯, 제 동시도 그렇게 누군가의 하루에 착지했기를 바랍니다. 무릎 위에, 책상 모서리에, 혹은 잠옷 주머니 속에.
저는 지금껏 ‘이걸로 상을 받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동시를 쓴 적이 없습니다. 항상 먼저 쓰고, 나중에야 ‘아, 내가 이런 걸 보고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되는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섯 살짜리 독자가 먼저 와서 말해주었습니다. “삼촌, 나 그 동시 좋아요. 이제 외워요.” 그 짧은 문장이 제게는 가장 정확한 독후감이었습니다. 칭찬이 아니라 확인이었지요. 동시가, 정말로 도착했다는 확인.
오늘은 그 확인에 하나가 더 보태졌습니다. 감정을 부풀리기보다는 장면을 남기고 싶습니다. 동시가 가진 힘은 크기를 키우는 데 있지 않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방식이야말로 아이들의 언어이고, 동시의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상을, 그 윤리를 더 조용히 지키라는 자리로 받겠습니다.
● 제12회 아리랑신인문학상 시 당선
● 2026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심사평>
익숙한 일상의 경험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펼쳐
본심에 올라온 응모작 74편의 일관된 우수성에 먼저 놀랐다. 응모작 대부분 완성도가 있었고 저마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깊은 고심 끝에 ‘개미가 나를 구경한다’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는 동과 시의 조합이 적절하고 현실과 비현실 세계의 결합이 자유로웠다. 제목과 본문 또한 조화로워 효과가 배가 되었다. 신발 끈이 엉켜 살짝 화가 난 나의 무릎까지 개미가 올라와 나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일상은 엉킨 일의 연속이다. 만사 엉킨 일에도 리듬이 있다. 끈이 없는 신발을 신지 그랬냐고 말한다면 물론 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개미가 나를 구경’하는 그 리듬에다 단련된 내공을 더했으니 더할 나위 없겠다. 당선자의 다른 응모작 ‘우산 거꾸로’ 또한 당선작으로 밀어도 손색이 없다. 익숙한 일상의 경험에 그치지 않고 기발한 상상력을 펼친 당선자의 참신한 필력이 돋보인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도 경계 없는 동시의 세계로 자유롭게 나아가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최명란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작품 한눈에 보기
「개미가 나를 구경한다」는 ‘지각’이라는 조급한 순간을, 개미 한 마리의 시선으로 뒤집어 보며 마음의 매듭을 풀어내는 동시이다. 큰 사건 없이도 장면 하나(운동장 계단, 신발끈, 무릎 위의 개미)로 감정의 흐름을 만들고, 마지막에 웃음 → 신발끈 풀림이라는 작은 기적 같은 결말로 마무리한다.
핵심 해석: ‘내가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본다’
이 동시의 가장 큰 전환은 화자의 생각이다.
- 처음엔 화자가 “늦었는데 / 신발끈이 자꾸 / 말을 안 들었다”라고 말하며,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되는 날의 기분을 보여준다.
- 그런데 개미가 무릎까지 올라와 “뚫어지게” 바라보고 내려가자, 화자는 ‘내가 개미를 보는’ 자리에서 ‘개미가 나를 보는’ 자리로 옮겨간다.
- 그 순간, 화자는 자신을 ‘화가 난 아이’라고 객관화한다. 이 객관화가 곧 마음의 여유이고, 그 여유가 신발끈의 매듭을 풀어낸다.
즉 시는 “해결”을 직접 말하지 않고, 시선의 전환을 통해 해결이 일어나게 한다.
장면 구성: 단순하지만 정확한 3막
1막 — 엉킴(문제의 시작)
오늘 / 학교에 늦었는데 / 신발끈이 자꾸 말을 안 들었다
‘지각+엉킨 끈’은 아이에게 아주 큰 위기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말을 안 들었다”는 표현이다. 끈을 의인화해 이미 동시의 세계가 열린다. 사물이 내 감정에 반응하는 세계, 혹은 내 감정이 사물에 묻어나는 세계다.
2막 — 관찰(개미의 등장)
작은 개미 한 마리가 / 내 무릎까지 올라왔다
잠깐 / 나를 뚫어지게 보더니
개미는 말하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내려간다. 이 침묵이 오히려 강력하다. 말이 없기 때문에 화자는 상상하게 되고, 그 상상은 자신을 밖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3막 — 해석과 풀림(작은 변화)
“이 아이는 오늘 늦었고요 … 살짝 화가 나 있었어요.”
개미는 그 얘기를 친구들에게 전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피식 웃었다 / 그러자 / 신발끈이 / 살짝 풀렸다
여기서 동시는 ‘상상’을 지나치게 부풀리지 않는다. “전했을지도 모른다”라고 가능성으로 남긴다. 그 덕분에 과장이 아니라, 진짜 장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피식”은 화자의 긴장을 내려놓는 아주 작은 웃음이다. 그 작은 웃음이 실제로 ‘끈 풀림’으로 이어지며, 감정과 현실이 맞물린다.
상징 읽기
신발끈 = 마음의 매듭
끈은 단지 끈이 아니라, 조급함·분노·초조함 같은 마음의 꼬임이다. 끈이 “말을 안 듣는” 건 결국 내가 나를 다루기 어려운 순간을 보여준다.
개미 = 아주 작은 타자(=거울)
개미는 작지만, 화자에게는 ‘나를 바라보는 존재’가 된다. 친구나 선생님처럼 무거운 시선이 아니라, 아주 가벼운 생명 하나의 시선이라서 부담이 없고, 그래서 웃을 수 있다. 개미는 화자를 심판하지 않고, 그냥 ‘구경’한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위로다.
“구경” = 판단이 아닌 관찰
구경은 평가가 아니다. 이 시는 “너 왜 늦었어?” 같은 꾸중 대신 “아, 오늘 이런 하루였구나”라는 관찰을 선택한다. 그 관찰이 동시의 윤리이기도 하다.
어조의 미덕: 과장하지 않는 상상
이 동시는 기발하지만 과장하지 않는다.
- “아마”, “~인 것이라고”, “~지도 모른다” 같은 표현은 상상을 부드럽게 만든다.
- 그래서 독자는 “진짜 그랬을 것 같아”라고 받아들이게 되고, 마지막의 “신발끈이 살짝 풀렸다”도 억지 기적이 아니라 마음이 풀리니 손도 풀린 자연스러운 결말이 된다.
한 문장으로 정리
지각과 엉킨 신발끈으로 꽉 조여 있던 하루가, 무릎 위에 올라온 개미 한 마리의 ‘구경’ 덕분에 살짝 느슨해지고, 그 느슨해진 마음만큼 신발끈도 풀리는 동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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