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진눈깨비 / 윤슬빛

<당선작>
진눈깨비 / 윤슬빛
나는 춤추면서 태어났어
푸르게 필 잎을 제일 먼저 알아보지
노란 공룡 무늬 잠옷을 입고
나를 지켜보는 네 방 창가엔
나쁜 꿈을 걸러준다는 드림캐쳐가 걸려 있고
있지 난
서툴게 내려앉아
금세 녹아버릴 거야
네가 이마를 대고 있는 유리창에
닿기도 전에 사라져버릴 거야
그러니까 우리 꿈에서 만나
춤추면서 춤추면서
어쩐지 나는 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당선소감>
"어린이들에게 공들여 만든 허구의 세계를 선물할 수 있어 벅차요"
동시를 처음 만난 날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저는 뭐든 잘 까먹거든요. 무엇을 잊어버렸는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오래 골몰한 덕분에 동시와 더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구석진 데 웅크려 앉기, 혼자 말하고 혼자 듣기,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빈자리 더듬어 보기. 다 자라고도 여전히 쓸데없는 일을 제일 잘하는 저에게, 동시는 넉넉한 그늘이 되어주었습니다. 그 안에서 안심하고 빛을 잡아챌 수 있었어요. 내가 아는 마음들을 찬찬히 어루더듬어볼 수 있었어요.
어린이의 목소리를 담은, 혹은 닮은 언어를 살살 다듬어 빚는 기분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낯선 세계를 각자의 방식으로 기웃거리고 있을 어린이들에게 공들인 언어로 만든 허구의 세계를 선물할 수 있어 조금 벅찬 것도 같습니다. 와르르 무너져도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는 안전한 세계에서 한껏 생생해지길 바라요.
돌이켜 보면 밑그림만 그리다 만 것 같은 날들이 많았습니다. 이기는 돌을 갖고 싶어 몰래 운 적도 많았어요. 꽝만 나오는 날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밤들도 있었지만 이제 압니다. 정성껏 밑줄을 긋고 싶은 날들도 충분히 많았다는 것을요. 물음표투성이인 이 세계에서 자주 투명해지는 기분을 느끼지만, 동시 안에서만큼은 서로가 그어놓은 밑줄을 콩콩 밟으며 신나게 뛰어놀 수 있어 좋습니다. 우리, 오래 같이 놀아요.
감사를 전할 데가 많아 괜히 쑥스럽네요. 꺼질 리 없는 '밝은빛' 덕분에 늘 새롭게 사랑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가족들과 막막한 길을 기껍게 같이 걸어준 돌씨앗분들, 불가능의 가능성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문우들, 든든하게 어린이들 곁을 지켜주는 춘천교대 학우들, 언제나 다정한 여러 모양의 친구들, 그리고 얼마든지 다른 길을 새로 걸을 수 있다고 알려주신, 어린이를 따라 멀리 가는 법을 알려주신 앞선 자리의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가풀막을 오르다 지쳐 찬바람을 맞으며 서 있던 저에게 따뜻한 환대의 문을 열어 주신 심사위원 두 분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에 혼자 창가를 서성이고 있을지도 모를 어린이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있지, 나는 헤매면서 흔들리면서 뭔가를 얻거나 잃었어. 아마 너도 그럴 거야. 그러니까 우리 걱정 없는 꿈속에서 만나자. 춤추면서. 춤추면서.
● 1990년 전남 고흥군 출생 ● 춘천교대 아동문학교육과 졸업 예정
<심사평>
"동시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 깬 작품들 반가워"
문학의 장르 문법은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동시 장르는 과거의 장르 문법에 대한 고정관념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듯 보였다. 한편에서는 오랜 고정관념, 다른 한편에서는 최근 창작 경향의 추수로 양극단을 이루는 상황은 좀 더 다양한 세계와 언어 형식을 늘 고대하게 만들었다.
이번 응모작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특징은 동시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창작된 작품이 매우 드물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응모작에 한정된 특징인지, 아니면 현재 응모를 준비하며 동시를 쓰는 분들의 전반적인 변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매우 반갑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다. 그럼에도 최근 창작 경향과 엇비슷한 작품이 다수였던 상황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어린이의 섬세한 내면을 그리려는 태도에는 신뢰가 가지만, 독백체로 느슨하게 이어지는 일률적인 형식에는 의문이 들었다.
그중에도 '딸기의 마음'의 섬세함과 '나비야'의 단순함이 돋보였으나, 전자는 자신을 긍정하는 어린이의 목소리에 머물렀고 후자는 그 외 작품의 완성도가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논의를 거듭한 작품은 '호랑이'와 '진눈깨비'였다. '호랑이'는 동시 장르에서 흔치 않은 야생적인 생명력의 찬양을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그려내어 신선했다. 이를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의 반대항으로 연결해 비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낸 점도 좋았다. 그러나 다른 작품에서는 이러한 사유의 깊이를 찾기 힘들었다.
이에 비해 '진눈깨비' 외 4편은 우선 응모작 전편이 시적 밀도를 지녀 시인으로 소개하기에 저어되는 점이 없었다. 어린이의 내면이 자기 긍정의 고백에 그치지 않고 타인과 세계로 연결되고 확장되어 최근 경향과도 달랐다. '진눈깨비'에서 보이듯, 말하고/말하지 않는 데서 드러나는 언어의 결은 지금까지 동시와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자꾸만 여러 번 읽게 하는 끌림을 지닌 '진눈깨비'와 그 외 응모작 말고도 시인의 작품을 다 같이 함께 계속 더 읽고 싶어졌다.
심사위원 : 김개미, 김유진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작품 한 줄 핵심
금세 녹아 사라질 ‘나(진눈깨비)’가, 창가에 선 ‘너(어린이)’에게 “꿈에서 만나자”고 말하며 ‘사라짐’을 ‘만남’으로 바꾸는 시다.
이 동시는 “위로 = 오래 남는 말”이 아니라, 위로 = 잠깐 스치더라도 알아보는 감각이라는 방향으로 간다.
2) 제목 ‘진눈깨비’의 의미
‘진눈깨비’는 눈과 비 사이, 고체와 액체 사이, 겨울과 봄 사이에 있는 경계의 날씨다.
그래서 이 동시는 처음부터 **“완전히 되지 못한 것(미완·중간·잠깐)”**을 주인공으로 세운다.
- 눈처럼 “내려앉지만”
- 비처럼 “금세 녹아 사라지는”
- 존재 자체가 짧고 서툰 것
그 짧음/서툼을 결핍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춤(리듬)과 만남(관계)**로 재해석한다.
3) 화자와 시점: ‘진눈깨비’가 스스로 말하는 이유
이 시의 화자는 사람(어린이)이 아니라 **날씨(진눈깨비)**다.
그런데 말투는 아주 친밀한 2인칭 대화(“있지 난”, “그러니까 우리”)로 구성되어 있다.
→ 효과:
- 자연현상이 “너를 알고 있는 존재”가 되며
- 어린이의 고독(창가에서 혼자 있는 밤)을 밖에서 안쪽으로 다독이는 목소리가 된다.
즉, **고독을 ‘내면 독백’이 아니라 ‘외부의 방문’**으로 바꾸는 장치다.
4) 정서의 흐름: 밝음 → 사라짐 → 약속
동시는 매우 짧지만 정서 곡선이 또렷하다.
- 탄생/활기: “나는 춤추면서 태어났어”
- 관찰/배려: “나쁜 꿈을 걸러준다는 드림캐쳐”
- 자기 고백(유한성): “서툴게 내려앉아 / 금세 녹아버릴 거야”
- 약속/연결: “그러니까 우리 꿈에서 만나”
- 확신 같은 직감: “어쩐지 나는 널 /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결국 이 시가 만드는 감정은 “슬픔”이 아니라, 짧은 존재가 남기는 희미한 확신이다.
(사라짐이 끝이 아니라, 꿈으로 이동)
5) 핵심 이미지 5개와 기능
(1) “춤”
첫 행의 “춤”은 진눈깨비의 물리적 낙하를 놀이/리듬으로 바꾼다.
“태어남=춤”이라는 설정은 생물학적 출생이 아니라 현상(내리는 일) 자체가 생명감을 가진다는 뜻이다.
또한 “춤추면서 춤추면서”의 반복은 주문처럼 작동해, 불안을 리듬으로 눌러주는 효과가 있다.
(2) “푸르게 필 잎”
진눈깨비는 겨울 쪽에 가까운 날씨인데, “푸르게 필 잎”을 먼저 안다고 말한다.
즉, 화자는 **봄의 징후(예고)**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먼저 알아보는 능력은 곧 “너의 미래”를 향한 배려로 확장된다.
→ 지금 힘들어도, 네 안에 푸르게 필 잎이 먼저 온다는 암시.
(3) “노란 공룡 무늬 잠옷”
이 디테일이 동시를 ‘어린이의 방’으로 정확히 고정한다.
공룡은 어린이 세계의 상상력/보호본능(무섭지만 귀여운 것)의 상징이기도 하다.
‘노란색’은 따뜻한 방의 조명 같은 느낌을 줘서, 시가 차갑게 끝나지 않게 한다.
(4) “창가의 유리창 + 이마”
“네가 이마를 대고 있는 유리창”은 아주 구체적인 자세다.
이건 대개 잠이 오지 않는 밤, 혹은 생각이 많아 멍하니 서성이는 밤의 자세다.
유리창은 바깥(진눈깨비)과 안쪽(너)을 가르는 경계인데, 화자는 “닿기도 전에 사라질” 존재다.
→ 접촉 불가능(혹은 지연되는 만남)을 미리 인정하면서, 대신 “꿈에서 만나자”로 우회한다.
(5) “드림캐쳐”
드림캐쳐는 ‘나쁜 꿈을 걸러준다’는 믿음의 물건.
중요한 건 이것이 과학적 사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린이가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화자는 그 물건을 “보고 있다”고 말하며, 어린이의 방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타자로 선다.
6) 부분(행/구절) 클로즈 리딩
① “나는 춤추면서 태어났어”
- 진눈깨비의 낙하를 “태어남”으로 강조한다.
-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타나는 것’이 된다.
→ 불안/우울의 언어가 아니라 등장의 언어로 시작.
② “푸르게 필 잎을 제일 먼저 알아보지”
- 아직 피지 않은 잎(미래)을 알아보는 존재.
- ‘어린이’와 ‘진눈깨비’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세상에서 작고 가벼운 존재로 취급되기 쉽다.
그런데 작은 존재가 오히려 미래를 먼저 감지한다는 역전이 생긴다.
③ “있지 난 / 서툴게 내려앉아 / 금세 녹아버릴 거야”
- “있지”는 친밀한 속삭임.
- “서툴게”는 진눈깨비의 물성을 감정으로 번역한다.
(똑바로 눈처럼 쌓이지 못하고, 비처럼 시원하게 흘러가지도 못하는 ‘미완의’ 상태) - 하지만 이 ‘서툼’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솔직한 자기 소개로 읽힌다.
④ “네가 이마를 대고 있는 유리창에 / 닿기도 전에 사라져버릴 거야”
- 접촉이 불가능하다는 선언.
- 여기서 위로는 “내가 네 곁에 오래 있을게”가 아니라
**“나는 사라질 텐데도, 너를 알아보고 싶어”**라는 형태로 나온다.
→ 지속이 아니라 인식(알아봄)이 중심이 된다.
⑤ “그러니까 우리 꿈에서 만나”
- 현실의 실패(닿기 전에 사라짐)를 꿈의 성공(만남)으로 전환하는 결단.
- 동시에 ‘꿈’은 어린이가 이미 드림캐쳐로 다루고 있던 주제이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⑥ “어쩐지 나는 널 /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 결말의 정서가 탁월한 이유는 “확신”이 아니라 “어쩐지” 때문이다.
- 어린이의 밤은 대개 확신이 아니라 막연함과 불안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 시는 막연함을 지우지 않고, 막연함 속에서 작은 가능성을 건넨다.
→ “어쩐지”는 불안과 희망이 섞인, 어린이의 실제 감각에 가깝다.
7) 이 동시가 새롭게 보이는 지점 (심사평과도 연결)
심사평이 말하는 “동시 고정관념을 깬다”는 지점은 대략 여기다.
- 교훈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 명확한 사건보다 **감각(창가, 이마, 유리, 드림캐쳐)**로 장면을 만든다.
- ‘나(화자)’는 어린이가 아니라 진눈깨비인데, 오히려 그 목소리가 어린이를 더 정확히 안다.
- 위로가 “괜찮아”가 아니라 **“우리 꿈에서 만나”**라는 약속(관계의 제안)으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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