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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엄마의 머그컵 / 류한월

 

엄마가 제일 아끼는 머그컵을 깼어

식탁 모서리에 톡, 부딪혔을 뿐인데

쨍그랑, 소리가 아침을 부쉈어


안 돼! 엄마의 외침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조각들 옆에 나란히 엎드렸어


놀란 내 머리카락이 솟아오르고

어깨에 앉아 있던 먼지 세 톨은

악!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저쪽 벽까지 날아갔어


물바다가 된 바닥에

멍하니 맨발로 서 있는 나

그때 엄마가 다가와

발밑에 수건을 깔아주었어


상어 이빨이 번뜩이는

무서운 바다 한가운데

내가 디딜 수 있는


작은 섬 하나를 만들어주었어

 

 

  <당선소감>

 

   "잃어버린 동심 찾는 여정에 새 이정표"

생각해 보면, 아주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셸 실버스타인의 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저는 그 나무가 주는 위로를 잊고 살았습니다.

오십이 넘어 홀로 시작한 동시 쓰기는 아동문학이라는 숲으로 돌아가는 여정이었고, 잃어버린 동심을 찾아 떠난 고단한 순례였습니다. 제 안의 어린이를 찾아 헤매다 마주한 것은 종종 초라하고 타락한 어른의 얼굴이어서 타이핑하는 손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다 올가을, 서늘한 바람 속에서 저는 제 안의 어린이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수상이나 타인의 시선을 지운 자리에, 오롯이 서정적이고 순수했던 옛 시간을 재발견하는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그 순간 알았습니다. 기쁨과 불안이 한 몸이었던 그 시절의 순수함이 여전히 제 안에 숨 쉬고 있음을.

이번 당선은, 잃어버린 그 마음을 찾아 떠난 여정 한가운데 놓인 이정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의 도착점이자, 동시에 또 다른 숲을 향해 떠나는 출발점 말입니다.

2025년은 저에게 선물 같은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부산과의 인연이 참으로 깊고 푸릅니다. 몇 달 전 사하모래톱 문학상을 받으며 부산을 찾았는데, 다시 이곳 부산일보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되니 이 도시가 저를 부르는 듯한 따뜻한 착각마저 듭니다. 심사위원님들과 <부산일보>의 귀한 선택에 감사드립니다.

제 삶의 뿌리가 되어주신 고 류춘계 할아버지, 고 박희섭 상무님, 류민정, 김라온과 가족들, 이향숙 본부장님, 김현경 님, 박예송 님, 문단의 유일한 지인 정지윤 작가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제2의 고향 제천시와 제천문화재단, 이수경 팀장님 감사합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세상의 작은 것들을 귀하게 여기며,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어른의 책임으로 성실하게 기록하는 동시인이 되겠습니다.마

서울 출생,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20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심사평>

  

  보편적 소재 '비유의 힘'으로 승화

동시의 경우 급변하는 사회 현상보다 반려견이나 반려묘,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시의 함축성이나 주제 의식이 결여된 작품이 많아 아쉬웠다.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인물인 작품이 많았는데, AI 공존 시대에 어떤 문제 제기나 환기를 준다기보다 기존 작품의 돌봄 주체였던 보호자들에게 기계적 탈만 씌우는 데 머물렀다.

동시는 ‘엄마의 머그컵’과 ‘할머니네 집 앞, 아니 이제 우리 집 앞 신호등’이 최종심에서 자웅을 겨루었다.

‘할머니네 집 앞, 아니 이제 우리 집 앞 신호등’은 건널목이라는 위험한 공간을 배경으로 엄마 손잡고 건너는 안전한 아이와 대비되는 화자를 내세워 “손잡고 다닐 엄마는 없지만요./아주머니보다 욕 잘하는 할머니가 있어요.”라고 새로운 가정 형태를 해학과 더불어 희망차게 묘사한 주제 의식이 감동을 주었다.

동화 최종심에서 숙고를 거듭한 작품은 ‘피하기 구하기’였다. ‘시소, 피구공, 아웃’ 등 적재적소에 상징적 요소를 배치하여 작품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나와는 좀 다른 친구를 이해하고 그 친구의 처지에 놓이게 되자 겪는 갈등과 깨달음을 피구 경기라는 소재로 빼어나게 표현했다. 극적으로 치닫는 절정이 없이 평이한 서사지만 인물의 내면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고 깔끔한 문장으로 쓰인 수작이었다.

오랜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동시 ‘엄마의 머그컵’을 선택했다. ‘엄마의 머그컵’은 컵을 깨뜨린 일상의 경험을 자신만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소재가 멋진 시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은 비유의 힘이었다. 깨진 조각은 “상어 이빨이 번뜩이는/무서운 바다”가 되었고, 맨발로 서 있는 나를 염려한 엄마가 발밑에 깔아준 수건은 “내가 디딜 수 있는//작은 섬 하나”가 된 은유의 연쇄가 주제로 연결되어 시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함께 보내온 6편에서 엿볼 수 있는 재능과 역량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데 믿음을 주었다. 앞으로 우리 동시단의 큰 나무로 우뚝 서길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 박선미 작가, 안미란 작가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이 동시의 중심 정서: “혼날까 봐 무서움”에서 “살려주는 안심”으로

첫 행부터 아이의 세계는 바로 비상 상황이 됩니다.

  • 사소한 실수(톡)세계의 붕괴(쨍그랑, 아침을 부쉈어)
    아이에게는 깨진 컵이 “물건 파손”이 아니라 **시간(아침)**까지 깨뜨리는 큰 사건이죠.
    여기서 “아침”을 부쉈다는 표현이 아주 좋습니다. 엄마의 하루, 집의 평온, 가족의 시작을 내가 망친 것 같은 죄책감이 한 단어에 들어가요.

그리고 엄마의 “안 돼!”는 꾸중이라기보다 경보음처럼 들립니다. 그 순간 아이의 몸은 바로 반응합니다.

  •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 조각들 옆에 나란히 엎드렸어

“나란히 엎드렸어”는 정말 동시다운 발상이에요.
아이 자신이 깨진 조각처럼 작아지고, 바닥으로 내려가고, ‘깨진 것’들과 같은 편이 되는 느낌이죠. “나도 부서질 것 같아”라는 감각을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2) 소리의 연쇄: ‘쨍그랑’이 몸과 공간을 흔든다

이 시는 소리를 잘 써요.

  • 톡(원인) → 쨍그랑(사건) → 안 돼!(위기 선언) → 쿵(심장 낙하)

소리들이 이어지면서 아이의 공포가 단계적으로 커집니다.
그리고 재밌는 건, 그 공포가 아이만의 것이 아니라 주변의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전염시킨다는 점이에요.

  • 놀란 내 머리카락이 솟아오르고
  • 어깨에 앉아 있던 먼지 세 톨은 / 악!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 저쪽 벽까지 날아갔어

‘먼지 세 톨’이 등장하는 순간, 아이의 공포는 과장이 아니라 “진짜 크게 느껴짐”이 됩니다.
먼지조차 놀랄 정도면, 아이의 마음속에서는 지금 지진급 사건인 거예요. 동시에 이 부분은 아이의 시선이 얼마나 섬세한지(그리고 얼마나 겁먹었는지)를 귀엽고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3) 전환의 핵심 장면: “수건”이 ‘사랑의 행동’이 되는 순간

중간에 “물바다”가 나옵니다. 깨진 컵의 물이죠.

  • 물바다가 된 바닥
  • 멍하니 맨발로 서 있는 나

여기서 아이는 두려움에 더해 현실적 위험(유리 조각) 앞에 서 있어요.
그리고 엄마가 하는 행동은 꾸중이 아니라 안전 확보입니다.

  • 발밑에 수건을 깔아주었어

이 한 줄이 작품의 결말을 결정해요. 말보다 먼저 ‘행동’이 와요.
아이가 느끼는 메시지는 단순하죠:
“지금 중요한 건 혼내는 게 아니라, 네가 다치지 않는 거야.”


4) 최고의 은유: “상어 이빨 바다”와 “작은 섬”

마지막 연은 이 동시가 당선작이 된 이유를 보여줍니다.

  • 상어 이빨이 번뜩이는 / 무서운 바다 한가운데
    → 깨진 컵 조각이 “상어 이빨”로 바뀌는 순간, 위험이 확 살아나요. 아이가 느끼는 공포와 현실 위험이 동시에 표현됩니다.
  • 내가 디딜 수 있는 // 작은 섬 하나
    → 수건은 단순한 천이 아니라, 엄마가 만들어 준 “안전 지대”예요.

여기서 “섬”은 안전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중요합니다.
아이는 지금 죄책감과 공포로 설 자리가 없는 상태였는데, 엄마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딛고 설 자리”를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이 동시는 결국 이런 이야기가 돼요:

실수로 세계가 무너지는 것 같을 때,
누군가는 내 발밑에 작은 섬을 깔아준다.


5) ‘엄마’가 멋지게 그려지는 방식: “용서”가 아니라 “보호”

이 작품이 특별한 건 엄마가 “괜찮아”라고 말하지 않아도,
수건 하나로 이미 말이 다 끝났다는 점이에요.

  • 훈계/교훈을 길게 말하지 않고
  • 아이의 공포를 먼저 알아차리고
  • 다치지 않게 즉시 섬을 만들어 주는 사람

그래서 마지막이 감동적이면서도 과장되지 않습니다.


6) 한 줄 평

보편적인 ‘컵 깨짐’을, 아이의 공포 감각(소리·몸·먼지)과 엄마의 보호 행동(수건)으로 ‘섬’까지 밀어 올린 은유의 동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