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아브라카다브라 / 최고요

<당선작>
아브라카다브라 / 최고요
오늘 밤에도 엄마는 자꾸
베개 밑에 달을 숨겨
난 지금 눈을 감고 있어
그래서 더 잘 보여
엄마가 지금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새까만 밤이 방안으로 몰려왔기 때문만은 아니야
지금 엄마에겐 엄마가 없거든
아브라카다브라 아브라카다브라
마침내 엄마가 주문을 외기 시작하고
할머니의 덧신은 할머니가 없는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
할머니를 기다려
나는 꼼짝도 않고 누워서 엄마를 응원하지
베개 밑에 숨겨진 달이 점점 부풀어 올라
지붕을 뚫고 솟아오르도록
아브라카다브라 아브라카다브라
엄마는 일 년이 넘도록 병원에 누워있는
엄마가 하루 빨리 집으로 날아올 수 있도록
주문을 외는 중이야
*아브라카다브라: 서양에서 마술을 할 때 주문의 용도로 쓰는 말. 의미는 '말한 대로 이루어지리다.'
<당선소감>
엄마에게 마음을 보냈더니, 시가 왔어요.…"아브라카다브라"
정말 그랬어요. 마음이 하늘에 콕 박힌 점 같은 날이 있었어요. 전주에 사는 엄마 생각이 나는 날이면 더욱 그랬어요. 새까만 밤, 유난히 작지만 동그랗게 콕! 찍힌 점이 점점 부풀어 올랐어요. 엄마에게 내 마음이 가닿은 거라고 믿었어요. 그때였어요. 부풀어 오르던 점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고, 밤이 환해졌어요. 나를 위해 쓴 시가 엄마의 마음에 붙어 다시 되돌아 온 거예요. 언제부터인가 그랬어요. 내게 보름달은 내 마음과 누군가의 마음이 함께 뜬 날이었어요.
지금은 꿈속이에요. 노랑나비가 개망초 꽃 주위를 맴돌며 앉을락 말락 망설이는 걸 한참 들여다봐요. 방울토마토, 부추, 상추, 고추를 심어 베란다텃밭을 만들고 매일 출근 도장도 찍어요. 나는 환한 웃음을 붓으로 들고 내 마음과 누군가의 마음 사이를 넘나들며 나비도 되고 잠자리도 되어보는 거지요. 구름이 얼굴을 만지고 가는 날에는 따뜻한 차 한 잔 가져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네, 네, 좋아요. 우린 더 쑥쑥 자랄게요." 말하는 소리가 들려요. 나는 잠시 무안해져서 "참 좋지? 그저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좋아 아무 말도 못하겠네." 하고 머쓱하게 웃어보는 겁니다. 누구에게나 마법 같은 순간은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자주 꿈속이에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그걸 초등학교 아이처럼 받아쓰면서 새로운 잠을 청하듯 이야기를 나눕니다. 내가 쓰는 대부분의 동시는 이렇게 나만의 이야기로 태어납니다. '아브라카다브라'도 그랬습니다.
동시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동시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해주신 분이 계십니다. 오랜 시간 고민하고 용기내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아무 일도 아닌데 그저 내 마음을 돌아보는 일인데….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끝까지 설득해서 저를 동시 속에 포옥 빠질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항상 곁을 지켜주는 정진호 선생님과 영하 그리고 미희 사랑합니다. 아울러 작가로서의 첫 시작을 할 수 있게 문을 열어주신 매일신문사와 아직 부족한 작품을 선해주신 권영세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 학사,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 석사
<심사평>
시의 배경을 상상하고 공감하게 하는 끌림과 여운
900편에 가까운 전체 응모작이 전반적으로 작품의 완성도가 대체로 잘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설렘과 기대와는 달리 신인작가로서 지녀야 할 새로운 소재의 발굴과 변모된 시적 형상화 등에 있어서는 기존의 방식을 과감하게 탈피한 작품이 눈에 많이 띄지 않아 아쉬웠다.
우선 일차적으로 류한월(충북·53세)의 '컴퓨터 마우스', 백정진(대구·44세)의 '파인애플', 정이도(경기·41세)의 '슈뢰딩거의 고양이', 김미르(세종·60세)의 '걱정 먹는 하마', 이두은(대구·38세)의 '딱따구리', 손음(부산·60세)의 '아빠 구두', 안도연(충북·22세)의 '꼬리빗', 최시현(경남·47세)의 '아브라카다브라'를 뽑았다. 이 중에서 끝까지 남겨진 작품은 '컴퓨터 마우스', '슈뢰딩거의 고양이', '아브라카다브라' 등 세 편이었다.
'컴퓨터 마우스'는 게임에 빠진 아빠와 함께 놀지 못하는 어린이다운 화자의 마음을 잘 드러내었지만 동시가 어린이를 비롯한 모든 연령대까지 공감하며 감동을 주었으면 하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있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 세계의 불확실성과 역설적인 성질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고 실험인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과감하게 인용하여 동시 세계를 확장하려는 작가의 시도가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표현이 산만하여 이미지가 분명하지 못한 것이 단점이었다.
당선작으로 뽑은 '아브라카다브라'는 제목에서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제목이 '말한 대로 이루어지리다'는 뜻을 지닌 주문의 용도로 쓰이는 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작품 속에 끌려 들어가는 듯한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관찰자인 화자와 그의 엄마의 심정을 적절히 조화시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시의 배경이 되는 상황을 상상하면서 공감하게 하는 끌림과 여운이 있어 당선작으로 서 결심을 굳혔다. 당선을 축하하며 동시단의 빛나는 별이 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권영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이 시는 아이의 시선(동시적 화자)을 빌려, “엄마의 두려움”을 가장 조용하고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겉으로는 마법 주문을 외는 밤의 장면인데, 속을 들여다보면 **부재(할머니의 부재)와 기다림(병원에 있는 할머니), 그리고 그 부재를 견디게 하는 상상력(달·주문)**이 핵심 축으로 작동합니다.
1) 한 문장 해석
“엄마가 엄마를 잃은 밤, 아이는 ‘마법’이라는 언어로 엄마를 응원하며, 할머니의 귀환을 빌고 또 빌어 ‘달’을 부풀리는 이야기.”
2) 화자와 상황
- 화자는 아이예요. “난 지금 눈을 감고 있어 / 그래서 더 잘 보여”라는 말이 아이 특유의 논리(역설)를 보여주죠.
- 밤, 엄마는 “베개 밑에 달을 숨겨”요. 이 장면은 현실적 행동이라기보다, 불안과 소망이 만들어낸 상징적 행위로 읽히는 게 자연스러워요.
- 시의 사실 관계는 끝에서 명확해져요.
- “엄마는 일 년이 넘도록 병원에 누워있는 / 엄마가(=할머니) … 집으로 날아올 수 있도록 / 주문을 외는 중”
→ 즉, 할머니의 장기 입원이 이 밤의 긴장을 만든 배경입니다.
- “엄마는 일 년이 넘도록 병원에 누워있는 / 엄마가(=할머니) … 집으로 날아올 수 있도록 / 주문을 외는 중”
3) 핵심 정서: “엄마가 지금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이 시의 가장 강한 문장은 여기예요.
“엄마가 지금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새까만 밤이 방안으로 몰려왔기 때문만은 아니야
지금 엄마에겐 엄마가 없거든”
- 엄마의 공포 원인은 “밤”이 아니라 엄마를 지탱해주던 존재(할머니)의 부재예요.
- “엄마에겐 엄마가 없거든”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세대의 끈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공포(상실 예감)를 한 줄로 압축합니다.
- 동시에 아이는 그 공포를 “알아”요. 아이가 어른의 두려움을 알아차리는 순간, 동시는 어린이의 세계를 넘어 가족 전체의 심리로 확장돼요.
4) 상징과 이미지 장치 해석
(1) 달: ‘숨기는 빛’이자 ‘부풀어 오르는 소망’
- 달은 원래 하늘에 떠야 하는데 “베개 밑”이라는 가장 사적인 장소로 내려와요.
→ 엄마가 간직한 소망/기도가 사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숨겨져 있음을 암시해요. - “베개 밑에 숨겨진 달이 점점 부풀어 올라 / 지붕을 뚫고 솟아오르도록”
- 소망이 커져서 집(현실)의 지붕을 뚫는 장면: 현실을 넘어서는 기도
- ‘지붕’은 일상/생활의 한계, ‘뚫고 솟아오름’은 그 한계를 넘어서는 간절함입니다.
(2) 밤이 “방안으로 몰려옴”: 공포의 침입
- 밤을 단순 배경이 아니라 침입하는 존재처럼 묘사해요.
→ 불안이 마음을 덮치는 감각이 시각화됩니다.
(3) “눈을 감고 있어 / 그래서 더 잘 보여”: 내면 시력
- 현실을 ‘보는 눈’이 아니라, 마음의 사태를 ‘보는 눈’이에요.
- 아이는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죠. 이 역설은 상상력의 기능(현실이 너무 아플 때, 상상이 더 정확히 진실을 포착하는 순간)을 드러냅니다.
(4) 할머니의 덧신: 부재를 증명하는 물건
“할머니의 덧신은 할머니가 없는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 / 할머니를 기다려”
- 덧신은 주인의 부재를 가장 뚜렷하게 말해주는 사물이에요.
- 덧신이 방으로 “들어가” 기다린다는 의인화는
- 가족 전체가 ‘기다림’에 들어가 버린 상태,
- 집안의 모든 사물이 할머니를 기다리는 듯한 정지감
을 만들어냅니다.
- 특히 “할머니가 없는 할머니 방”은 텅 빈 자리의 무게를 반복해서 못 박아요.
(5) “날아올 수 있도록”
- 병원→집의 이동을 ‘걷기’가 아니라 ‘날아오기’로 말해요.
→ 회복과 귀환이 기적처럼 느껴지는 마음(혹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인식)이 담깁니다.
동시에 동시의 결로는 “날아오기”가 더 맞아요. 아이에게 소망은 ‘비행’이니까요.
5) 반복 구조: 주문이 곧 리듬이자 버팀목
“아브라카다브라 아브라카다브라”가 두 번 반복되죠.
- 반복은 주문의 형식이면서도, 실제로는 견디기 위한 자기최면에 가깝습니다.
- 같은 말의 되풀이가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라기보다,
변화가 없을 때도 무너지지 않게 붙잡는 손잡이가 돼요. - 그래서 이 반복은 단순 장식이 아니라, 이 시의 정서적 엔진입니다.
6) 관계의 역전: “나는 꼼짝도 않고 누워서 엄마를 응원하지”
여기서 장면이 아주 묘해져요.
- 보통 엄마가 아이를 재우고 지키는데, 이 시에서는 아이가 가만히 누워 엄마를 지켜요.
- 아이는 무언가를 ‘해결’하진 못해요. 대신 응원해요.
→ 이것이 동시가 가진 윤리이기도 해요. 아이는 무력하지만, 사랑은 무력하지 않다는 식으로요.
7) 결말이 주는 여운: “주문을 외는 중이야”
결말이 “이루어졌다”가 아니라 “외는 중”으로 끝나요.
- 현실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는 뜻이죠.
- 그럼에도 시는 절망으로 닫히지 않아요. 왜냐하면 ‘중’이라는 진행형이
지금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남기기 때문이에요. - 동시의 미덕은 바로 이 지점: 비극을 단정하지 않고, 기다림의 시간을 살아내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8) 제목의 역할: 마법 주문이지만, 실은 ‘말의 기도’
각주에 “말한 대로 이루어지리다”가 제시돼 있죠. 이 각주는 독자를 해석의 방향으로 데려갑니다.
- 이 작품에서 주문은 초현실적 능력이 아니라,
말을 걸어 놓아야만 버틸 수 있는 상황에서의 언어예요. - 그래서 “아브라카다브라”는 사실상 “괜찮아질 거야”, “돌아오실 거야” 같은 말을
동시의 방식으로 더 순수하고 더 간절한 형태로 바꾼 것이죠.
9) (참고) 당선소감과 연결해 읽기
당선소감에서 말한 “부풀어 오르던 점(보름달)”은 시의 “달이 부풀어 올라 지붕을 뚫는” 이미지와 정확히 호응해요.
즉, 이 시는 ‘사실을 기록’하기보다 마음의 움직임(그리움이 커지는 과정)을 이미지로 번역한 작품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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