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범선 한 척 / 황세아

 

 하굣길에 종종 마주치던

 하굣길에 종종 마주치던

 우석삼촌은

 기우뚱 기우뚱


 몸을 흔들면서 걸었다


 매번 삼촌 지나갈 적마다

 홍해 갈라지듯

 확 트인 골목 양 쪽에서

 속삭이듯 들려오던 얘기들


 ㅡ교통사고였댔지?

 ㅡ응, 몇 년 안 됐어

 ㅡ가족들도 다 떠났대

 ㅡ요샌 폐지도 모으나봐

 ㅡ어제 리어카 끄는 거 봤어

 ㅡ젊은 사람이 에휴 쯧쯧쯧


 수군수군 출렁이는

 홍해의 물살 위로

 돛처럼 곧추세운 옷깃

 힘차게 펄럭이며

 장애인 구직신청서

 양 손에 꽉 쥔 채

 주민센터로 나아가는

 

 호호탕탕

 저

 범선 한 척!

 

 

  <당선소감>

 

   어린 나에게 하나씩 질문을 던져야

동시에 관해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모르는 것들이 마구 떠올라서 아무나 붙잡고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알건 모르건 일단 써 봐,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않겠니?’ 하고 누군가가 제게 한 말을 발판 삼아 그래도 꾸역꾸역 여기까지 왔네요. 이런저런 책들을 읽고, 그 책을 쓰신 작가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조금은 ‘모르는 것들’이 해소가 되기도 했지만, 이 ‘모르는 것들’은 허기처럼 혹은 갈증처럼 어느새 제 곁으로 다시 와서 저를 못살게 굴곤 합니다. 그때마다 서둘러 그동안 읽었던 시집, 해설집, 지인과 작가의 말씀 모음집으로 ‘모르는 것들’의 입을 벌려 양껏 떠먹여 준 뒤 간신히 그 순간은 모면했지만 다음번에 찾아올 이 ‘모르는 것들’의 허기와 갈증은 또 어떻게 해결해 주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얼핏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렇게 어르고 달래고 때론 눈치도 보면서 슬금슬금 써 내려간 것들이 동시가 되기 시작한 시기는 ‘모르는 것들’이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자라난 것이란 걸 깨달은 이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무슨 이유로 친구들과 다퉜는지, 왜 부모님의 눈치를 자주 살폈는지, 왜 큰형의 심부름을 당차게 안 한다고 했다가 뒤지게 얻어맞곤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거든요. 저도 모르는 어린 제가,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어? 여기 눈밭이 있네”하며 노트북 속에 펼쳐진 한글화면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순간이 왜 제가 동시를 쓰는 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이젠 노트북 화면을 눈밭 삼아 뛰어노는 아이와 친해진 후 그 녀석에게 하나씩 질문을 던져볼까 합니다. 어릴 적 있었던 산처럼 큼지막한 일부터 모래알처럼 작디작은 사건까지 남김없이요. “너! 똑바로 대답 안 하면 같이 안 논다!” 이런 반 협박(?)으로 살짝 겁도 주면서요. 이처럼 모르는 것도 많고 부족한 것도 많은 저의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신춘문예라는 가슴 설레는 문학의 장을 마련해주신 부산일보사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경남 마산 출생. 2020년 뉴스N제주 신춘문예 시 당선.


 

  <심사평>

  

  암울한 현실 묘사하며 실험적

올해 아동문학 부문은 356명이 동시 798편, 동화 146편을 응모하였으며 부산 경남권뿐 아니라 수도권과 해외에서까지 응모를 해와서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대한 열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동시와 동화가 가진 장르적 성격이 완전히 다른데 아동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해서 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해야 하는 일은 참 곤혹스러웠다. 심사위원 두 명은 동시와 동화 분야의 작품을 나눠 읽고 각 분야에서 2편을 최종심에 올려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을 정도로 설득력을 가진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자고 합의하였다.

동화의 경우 많은 편수에 걸맞게 소재도 다양했다. 생활동화가 주류였으나 마녀 이야기에서 AI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판타지가 시도되었다. 그러나 유리벽에 꺾여지는 화살처럼 판타지 진입에 대부분 역부족이었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달려라 거짓말!’과 ‘친절한 도빈치’였다. ‘달려라 거짓말!’은 깔끔한 문체로 술술 읽히는 재미성을 확보하였지만 소품이었다. 마지막까지 당선 동시와 겨룬 작품은 ‘친절한 도빈치’인데 구조가 촘촘하고, 어린이 세계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으며 엄마의 아픔과 부재가 주는 두 아이의 연대가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동시의 경우 응모 편 수도 많았고 예년보다 수준 높은 작품이 여럿 눈에 띄었으나 기존 동시의 문법을 답습하는 경우나 시의 본령인 함축성을 외면한 시, 이미지나 메시지가 불분명한 시들을 제외하고 두 편을 최종심에 올렸다. ‘미운 별’은 할머니의 퇴행성 관절염을 미운 별에 비유한 점이 신선했고, 노인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하는 시의성도 적절했다. 또한 쉬운 시어로 공감을 확보하였지만 함께 보내온 다른 작품의 수준이 일정하지 못했다.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된 ‘범선 한 척’은 장애가 있는 청년의 구직문제를 조명하며 암울한 현실을 희망차게 묘사하였다. 또한 장애인이 지나가는 거리 모습에서 ‘홍해 갈라지듯’이라는 기발한 비유를 가져왔으며 시의 형식에서도 실험성이 돋보였다. 보내온 5편이 모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여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해도 손색이 없었다. 동시단에서 큰 역할을 기대해도 좋을 신인의 앞날에 문운이 가득하길 빈다.

심사위원 : 배익천 동화작가, 박선미 동시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이 동시 **〈범선 한 척〉**은 “장애가 있는 청년(우석삼촌)”을 바라보는 **동네의 시선(수군거림)**과, 그 시선을 뚫고 나아가는 당사자의 존엄/의지를 아주 선명한 이미지 하나로 뒤집어 버리는 작품이에요. 핵심 장치는 **‘홍해 갈라지듯’**과 마지막의 **‘저 범선 한 척!’**입니다.


1) 화자의 위치: ‘목격자’이자 ‘공기의 기록자’

시의 화자는 우석삼촌의 내면을 직접 말하지 않아요. 대신 하굣길에 “마주치던” 장면과, 그때마다 골목에서 들려오는 타인의 말을 기록합니다.
즉, 화자는 “판단하는 나”보다 세상이 어떻게 말하는지를 먼저 보여주고, 그 뒤에 ‘시의 전복’을 던져요.


2) 첫 이미지 “기우뚱 기우뚱”의 이중성

우석삼촌은 / 기우뚱 기우뚱 / 몸을 흔들면서 걸었다

여기엔 두 겹이 있어요.

  • 표면: 장애로 인해 균형이 흔들리는 걸음
  • 심층: 그 흔들림이 곧 파도 위에서 흔들리는 배의 움직임으로 변환될 준비(복선)

즉 “기우뚱”은 결핍의 표지가 아니라, 뒤에서 “범선”으로 변환될 **운동감(리듬)**이에요.


3) “홍해 갈라지듯” : 길이 아니라 ‘시선의 바다’

홍해 갈라지듯 / 확 트인 골목 양 쪽에서 / 속삭이듯 들려오던 얘기들

이 비유가 정말 강합니다.

  • 홍해는 원래 구원의 기적 이미지인데,
  • 여기서는 오히려 사람들이 양옆으로 비켜서며 수군대는 장면을 만든다는 점에서 역설적이에요.

즉, 길이 열린 게 “환대”가 아니라 배제의 방식이라는 거죠.
사람들은 “피해 준다” “배려한다”는 얼굴로 서 있지만, 실은 그 사이로 흘러드는 말들은 낙인과 동정의 칼날입니다.


4) 수군거림의 내용: ‘사실’처럼 포장된 낙인

  • “교통사고였댔지?”
  • “가족들도 다 떠났대”
  • “폐지도 모으나봐”
  • “젊은 사람이 에휴 쯧쯧쯧”

이 대사들은 정보처럼 보이지만 실은 전형적인 타인 서사화예요.

  • “사람”이 아니라 “사연”으로 환원시키고,
  • 그 사연을 소비하면서,
  • 마지막에 “쯧쯧쯧”으로 도덕적 우위를 확보합니다.

이때 중요한 건, 화자가 이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는 점이에요. 독자가 이 잔인함을 직접 듣게 만들죠.


5) 전환의 핵심: ‘옷깃(돛)’과 ‘신청서(항해도)’

수군수군 출렁이는 / 홍해의 물살 위로
돛처럼 곧추세운 옷깃
힘차게 펄럭이며
장애인 구직신청서 / 양 손에 꽉 쥔 채
주민센터로 나아가는

여기서 시는 완전히 뒤집힙니다.

  • 사람들의 수군거림 = “물살”, “출렁임”
    장애를 둘러싼 사회의 편견이 만들어낸 파도예요.
  • 우석삼촌의 옷깃 = “돛”
    → 당사자가 가진 최소한의 품위/자기 단정함이 “항해 장치”로 바뀝니다.
  • 구직신청서를 “양 손에 꽉”
    → 이건 단순한 서류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의지의 깃발이에요.

즉, 이 시의 주인공은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바다를 건너는 항해자로 재탄생합니다.


6) 마지막 선언 “호호탕탕 / 저 / 범선 한 척!”의 의미

이 결말이 좋은 이유는 희망을 말로만 부르지 않고, 호흡과 리듬으로 체화시키기 때문이에요.

  • “호호탕탕”은 유치한 의성어처럼 보이지만, 동시에서 이건 강력한 장치입니다.
    → 어린이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로, 우석삼촌을 ‘비극의 인물’에서 ‘모험의 인물’로’ 바꿔요.
  • “저 / 범선 한 척!”
    → 화자가 우석삼촌을 ‘그 사람’이라 부르지 않고 **사물/상징(범선)**으로 호명합니다.
    그런데 이 사물화는 대상화가 아니라 존엄의 비유화예요.
    “저 사람”이 아니라 “저 범선”이라고 부르는 순간, 우석삼촌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스케일을 얻습니다.

7) 이 동시가 던지는 질문

이 시는 사실 우석삼촌보다 “우리”를 겨눠요.

  • 우리는 누군가를 비켜줄 때, 정말 배려하고 있나, 아니면 구경하기 편하게 길을 여는 건가?
  • “쯧쯧”은 걱정의 소리인가, 아니면 나를 안전한 자리로 올려놓는 소리인가?
  • 한 사람의 삶을 ‘사연’으로만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의 오늘(구직신청서, 주민센터)은 어디로 사라지나?

8) 한 줄로 요약하면

수군거림의 바다를 가르는 ‘낙인’의 거리에서, 한 사람의 품위가 돛이 되어 항해를 시작하는 순간을 포착한 동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