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계단 사이에 사는 화분 / 송우석

<당선작>
계단 사이에 사는 화분 / 송우석
우리 아파트
1층과 지하 사이
창문도 없는
계단 모퉁이에
화분이 하나 있습니다.
누가 여기다
두고 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나는 학교 갈 때마다
한 번씩 쳐다봅니다.
“안녕?”
속으로 인사하면
잎 끝이
살짝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어제는 흙이 말라 보여
집에 올라가
컵에 물을 담아 왔습니다.
물을 부을 때
흙이 “후욱”
숨을 쉬는 것 같았습니다.
저녁에 돌아올 때
계단 불빛 아래
그 화분은
아침보다
조금 더 초록색이었습니다.
언젠가 이사 갈 때
새로 오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줄 것 같습니다.
“여기,
계단 사이에
조용히 사는 친구가 있어.”
<당선소감>
동시는 가르치는 게 아닌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것
교사로 재직하며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제 글쓰기의 출발점이자 중요한 배움의 시간입니다. 쉬는 시간에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 엉뚱해 보이는 질문, 사소한 일 앞에서 머무는 표정 속에 어른은 이미 잊어버린 감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런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마음속에 오래 간직했다가, 조심스럽게 동시로 옮겨보곤 하였습니다.
동시는 어린이의 세계를 가장 깊은 자리에서 바라보는 언어입니다.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말 앞에서 함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마력에 놀라곤 하였지요. 교실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말은 언제나 제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 낯섦이 제가 시를 쓰게 만듭니다.
어린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상이 누군가에게 조용히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당선을 통해 알았습니다. 아이들의 하루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가 이미 놓여 있음을 깨달았고, 교정과 일상에서 마주하는 그 장면들이 저로 하여금 글을 계속 쓰게 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오랫동안 외롭게 동시 공부를 한 사람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큰절을 올립니다.
● 공주교대, 한국교원대 석사 졸업
<심사평>
읽는 이의 가슴을 초록빛으로 물들이는 작품
수많은 응모작을 보면서 순수한 동심으로 살며 동시를 쓰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마음이 뿌듯했다. 동심으로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시의 품격을 지닌 수준 높은 작품이 많아 반가웠다. 눈에 띄는 특징은 동화적 발상과 기법의 동시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너무 산문적인 작품이 눈에 띄는 점은 아쉬웠다.
‘풍선 타고’는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이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너무 길고 산문적인 점이 흠이었다. ‘느림보거북이 시골버스’는 시골 사람들과 버스 기사의 따스한 인정을 정감 있게 담아냈으나 너무 예스러운 정취였다. ‘못’은 벽에 박힌 못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신선했다. 그런데 함께 보내온 작품이 너무 평범했다. ‘손그릇’은 물을 받는 평범한 행위에서 비범한 의미를 발견해 낸 통찰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낯익은 발상과 설정이라서 새롭지 않았다.
‘계단 사이에 사는 화분’은 버려진 화분의 외로움과 아픔을 보듬어주려는 아이의 따뜻한 마음이 잔잔한 감동의 울림을 주었다. 그냥 무심히 지나쳤을 존재에도 다정한 손길을 보내 따뜻이 품어주려는 사랑과 배려의 마음이 여운을 남겼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 속에 다정다감한 동심을 담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점도 미덕이었다. 화분과의 따뜻한 교감을 정감 있게 그려내어 읽는 이의 가슴을 초록빛으로 물들이는 작품이었다. 또한 이기적인 세태를 사는 우리에게 무엇이 소중한가를 새삼 일깨워주는 좋은 작품이었다.
심사위원 : 이준관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한 줄로 잡는 중심
버려진 듯한 화분을 ‘친구’로 불러 주는 순간, 계단 모퉁이가 집이 되고, 혼자가 둘이 되는 시.
2) 구조가 만드는 감동의 리듬
이 작품은 사건이 크지 않은데도 여운이 커요. 이유는 전개가 정확히 “동시의 호흡”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입니다.
- 발견(장소)
- “1층과 지하 사이 / 창문도 없는 / 계단 모퉁이”
→ 빛도, 시선도, 사람도 덜 닿는 틈을 먼저 보여줘요.
→ 화분이 놓일 만한 ‘외로움의 좌표’를 만든 뒤 등장시킵니다.
- 미스터리(누가 두었나)
- “아무도 모릅니다.”
→ 화분의 사연을 길게 설명하지 않고, 공백으로 남겨둬요.
→ 이 공백이 독자가 마음을 얹을 자리가 됩니다.
- 교감(인사–반응)
- “안녕?” 하고 속으로 인사하면
- “잎 끝이 살짝 흔들릴 때”
→ 과학적으로는 바람일 수 있지만, 동시에서는 **‘대답’**이죠.
→ 여기서 화분은 ‘물건’에서 ‘친구’로 바뀝니다.
- 돌봄(행동)
- 흙이 말라 보여 물을 떠옴
- 물을 부을 때 흙이 “후욱” 숨 쉬는 것 같음
→ 가장 중요한 장면이에요.
→ 아이의 손길이 화분에게는 **숨(생명)**을 돌려줍니다.
→ “후욱”은 의성어지만, 숨소리처럼 들려서 생생해요.
- 변화(보상)
- “아침보다 / 조금 더 초록색”
→ 큰 기적이 아니라 ‘조금’이에요.
→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더 마음을 건드려요.
→ 돌봄의 결과가 과장 없이 돌아옵니다.
- 전달(다음 사람에게)
- 이사 갈 때 새로 오는 아이에게 말해 주겠다는 결말
→ 돌봄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게 **‘돌봄의 계승’**을 걸어 둡니다.
→ 화분을 ‘물려주는’ 게 아니라, **관계(인사하고 돌보는 마음)**를 물려주는 엔딩이에요.
3) 표현 장치가 좋게 먹히는 지점
- 공간의 대비: 집(사람 사는 곳) vs 계단 모퉁이(비어 있는 곳)
→ ‘집 밖의 집’을 만들어주는 마음이 시의 핵심. - 속말의 힘: “안녕?”을 크게 말하지 않아요.
→ 그래서 더 다정하고, 더 비밀스러운 우정처럼 느껴져요. - 의성어 ‘후욱’: 흙이 숨 쉬는 감각을 단숨에 전달.
→ 아이 독자에게도 촉감이 바로 와닿습니다. - ‘조금’의 미학: 돌봄의 변화가 “조금 더 초록색”
→ 동시가 설교가 아니라 관찰이라는 걸 지켜요.
'좋은 글 > 동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5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범선 한 척 / 황세아 (0) | 2026.01.25 |
|---|---|
| [2025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아브라카다브라 / 최고요 (0) | 2026.01.21 |
| [2026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엄마의 머그컵 / 류한월 (0) | 2026.01.16 |
| [2026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염소 농장에서 / 코샤박 (0) | 2026.01.11 |
| [2026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진눈깨비 / 윤슬빛 (0) | 2026.01.1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