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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인견 / 안진영

 

부슬비의 한 종류인가 싶었다

구름에서 직물 짜는 소리가 들리고 그 틈에서 뚝딱, 소나기 한 필이 완성
되기도 했으니까

여러 겹을 뭉쳐서 두꺼운 소리를 뽑아내는 일과 
넓게 펴 얇은 소리로 늘이는 일은 구름의 오래된 직조법이다
한 덩어리 물을 물 조리개에 넣고 따르면
거기, 몇 십 올의 조금 굵은 직물이 줄줄 흘러 나왔다

한 쪽으로 미끄러지듯 넘친 어제와 철커덕 기계의 틀을 빠져나온 오늘,

부슬부슬 종일 뿌린다는 말
한 올이라는 말은 모두 여름의 말 같다

구름이 끝단을 재단하는 오후 내내 나는 어린 나무의 새순 같은 옷감을
고르느라 계절의 숲을 지나온 것 같다 숲이 기계를 흉내 내다 기계가 다시
숲을 흉내 낸다고 생각했다

가장 더운 것이 여름이고
그 여름 속에 시원한 것이 섞여있다

인견은 오로지 식물성인줄 알았다가 잎이 많은 나무의 속껍질에서 찾아
낸 그늘과 사나운 소리가 뽑아놓은 한 올 인 것을 알게 된다

올 여름엔 강우량이 적어
인견 생산 실적이 저조하다는 예보가 있다

모든 여름은 구름의 두께에서 온다

 

 

  <당선소감>

 

   “마을 풍경·저녁 햇살…시란 그것을 받아적는 것”

한참을 앉아 생각해보니 시를 만든 것은 분분(紛紛)하게 앞장섰던 발걸음이 아니라 멈추거나 되돌아섰던 순간들이었습니다. 하염없는 일이라 여겨놓고도 자꾸 반복하다보면 그 일은 점점 질겨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땐 아무리 마음 모질게 먹어도 끊어낼 수 없습니다.

시냇물이 돌아나가는 곳에서 시작되는 마을, 산과 들 가지런한 논과 밭의 계절이 저에게 고스란히 유년이었습니다. 정미소 앞마당에 노랗게 날아오르던 쌀겨, 어둠이 웅숭그리는 큰 쇠바퀴 작은 쇠바퀴들 사이 사다리를 오르내리던 아버지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저녁 햇살에 고조곤히 잠기던 단풍, 별밤 뒤꼍, 귀룽나무 잎 지는 소리를 받아 적은 저의 말들이었습니다. 그것이 시였고, 그보다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서설(瑞雪)이 내린 날 들여놓은 동백화분에서 첫 꽃이 피었습니다. 당선소식을 듣고 내뱉은 첫마디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말, 꽃핀 말 아니겠습니까.

말들은 새벽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행과 단락을 찾아갔지만, 다시 먼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기울어진 어깨를 매번 일으켜 세워준 가족들과 격려와 지지, 그리고 모든 가르침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낮게 기울일 때에야 조용히 속삭여 주는 시의 방식을 고대하며, 시 이전의 순간을 오래 지켜보겠습니다. 침묵의 자리에서 천천히 다음 시를 기다리며 질겨질 대로 질겨진 일에 기꺼운 마음으로 이끌리겠습니다.

1965년 경기 양평 출생  숭실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수학


 

  <심사평>

  

  구름이 비를 직조하는 과정, 오감으로 표현한 수작 

올해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는 예년보다 훨씬 많은 분들의 작품이 접수되었다. 그만큼 본심에 오른 작품의 수도 많았고, 당선작을 선정하는 심사에도 심사위원들의 고심이 컸다. 시 세계는 자연 서정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작농(作農)의 경험과 고향을 노래한 작품이 다수였다. 보다 진전된 것은 그런 것을 소재로 하여 읊되 생명 철학으로 사유를 확대했다는 점이었다.

마지막까지 논의한 작품은 ‘집을 뜨다’ ‘파동의 계절’ ‘모신다는 말’ ‘인견’이었다. ‘집을 뜨다’는 집을 짓는 일을 뜨개질에 비유했다. 털실로 떠서 목도리 등을 만드는 과정이 건축의 공정에 대응되었다. “먼지는 고요한 직물”과 같은 시구는 그 감각이 빼어났으나 건축과 뜨개질의 대응이 시종 너무 고집스러워 오히려 갑갑함을 느끼게 했다. ‘파동의 계절’은 나비의 날아오름과 그로 인해 생기는 파동을 생활의 신산했던 기억과 능숙하게 연결시켰다. 후반부에 직설적인 시구가 들어 있어서 아쉬웠다. ‘모신다는 말’은 어떤 존재를 가까이에서 받드는 일에 대한 깊은 생각을 드러냈다. “긴 병의 어머니를 모셨던 방”에 대해 쓴 대목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하지만 이 시도 직설적인 시구가 눈에 띄었다.

당선작으로 시 ‘인견’을 선정했다. 여름날의 구름이 비를 직조하는 일에 대해 오감을 한껏 활용해 쓴 수작이었다. 세심한 언어의 실이 손끝에 느껴졌다. 강우의 적음을 인견의 생산이 저조한 것과 연계하는 상상력은 지금의 현실을 성찰하게 했다. 서정시의 영역을 넓혀갈 것으로 크게 기대하며, 당선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 안도현, 문태준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제목 ‘인견’이 먼저 하는 말

  • **인견(人絹)**은 말 그대로 “사람이 만든 비단(인공 실크)”이라는 뜻을 품고 있어요. 즉,
    • **자연(비·구름·숲)**의 감각을 닮았지만
    • 실제로는 가공/기계/노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시원함’입니다.
  • 시는 이 이중성을 끝까지 밀고 갑니다. “시원한 것”의 출처가 **그늘(자연)**이면서 동시에 **사나운 소리(가공의 폭력)**라는 걸 후반에 드러내죠.

2) 첫 문장: ‘관찰’이 아니라 ‘오해/가설’로 시작한다

“부슬비의 한 종류인가 싶었다”

  • 화자는 확정하지 않고 “싶었다”로 시작합니다.
    이 시의 기본 태도는 **정의(定義)**가 아니라 추적이에요.
  • “인견”을 ‘원래 있던 자연의 무엇’으로 착각하는 순간을 먼저 세우고, 그 착각이 어떻게 깨지는지(=알게 되는지)로 시를 끌고 갑니다.

3) 구름은 ‘하늘’이 아니라 ‘직물 공장’이 된다

“구름에서 직물 짜는 소리가 들리고… 소나기 한 필이 완성”

  • 여기서 핵심은 “비가 내린다”가 아니라 **“비가 한 필의 천처럼 ‘완성’된다”**는 발상입니다.
  • 비는 물이 아니라 **직물(한 필)**로 바뀌고, 구름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직공/직조기로 바뀝니다.
  • “뚝딱”은 ‘자연의 느린 순환’을 ‘공정의 속도’로 바꾸는 의성어예요.
    구름이 장인처럼도 보이지만, 동시에 공장처럼도 보이게 만드는 단어죠.

4) 이 시의 가장 큰 장치: ‘비의 감각’을 ‘직물의 공정’으로 번역하기

“두꺼운 소리를 뽑아내는 일 / 얇은 소리로 늘이는 일”

  • 보통 직물은 “두껍다/얇다”로 말하는데, 시는 그걸 “소리”로 번역합니다.
    공감각이 본격적으로 작동해요.
  • 비가 세차면 “두꺼운 소리”, 가늘면 “얇은 소리”.
    강수의 양과 강도(기상 정보)가 **직조의 두께(물성 정보)**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물 조리개… 몇 십 올의 조금 굵은 직물이 줄줄 흘러”

  • “조리개”는 샤워기처럼 물을 ‘올’로 나누는 장치죠.
    소나기/부슬비가 실의 굵기로 바뀝니다.
  • 여기서 비는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뽑혀 나오는 것’이에요.
    자연을 생산의 언어로 포획해 버리는(혹은 이해해 보려는) 시선이 드러납니다.

5) “어제–오늘”을 직조기의 ‘틀’로 넣어버리기: 시간도 직물이다

“미끄러지듯 넘친 어제와 / 철커덕… 틀을 빠져나온 오늘”

  • “철커덕”은 분명 기계의 소리입니다.
    비·구름·숲의 세계에 기계음이 박히는 순간, 이 시는 ‘서정’만이 아니라 ‘산업’ 쪽으로 궤도를 틀어요.
  • 어제는 “넘치고”, 오늘은 “틀을 빠져나온다.”
    시간은 흐르는 물이 아니라, 틀에 걸려 짜이고 빠져나오는 천이 됩니다.
  • 그래서 “부슬부슬”, “한 올” 같은 말이 “여름의 말”로 규정돼요.
    계절은 날씨가 아니라 **어휘(언어의 직물)**로 체감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6) 숲과 기계의 “서로 흉내 내기”: 자연/인공의 경계가 뒤섞인다

“구름이 끝단을 재단하는 오후… 숲이 기계를 흉내 내다 기계가 다시 숲을 흉내 낸다”

  • “재단”은 천을 자르는 말이죠. 구름이 ‘끝단’을 자른다고 할 때,
    • 비의 시작과 끝,
    • 계절의 경계,
    • 하루의 경계(오후의 길이)까지
      모두 “천의 끝처리”처럼 느껴집니다.
  • “숲 ↔ 기계”의 상호모방은 아주 중요한 테마예요.
    • 숲이 기계를 흉내 낸다: 바람·빗소리·나뭇잎의 마찰이 기계음처럼 들리는 순간
    • 기계가 숲을 흉내 낸다: 인견/공정이 자연의 시원함·그늘을 모방하는 순간
  • 결국 이 시에서 자연과 인공은 대립이 아니라 뒤섞임의 시스템입니다.

7) 논지의 중심 문장: “여름은 가장 덥고, 그 안에 시원함이 섞여 있다”

  • 시는 여름을 단일한 ‘더위’로 두지 않습니다.
    여름은 더위의 절정이면서 동시에 **시원함(인견, 비, 그늘)**이 끼어드는 계절.
  • 이 모순이야말로 인견의 감각(시원함)과 제작 방식(가공/기계)을 함께 껴안는 틀이 됩니다.

8) 인견의 정체가 드러나는 대목: “그늘” + “사나운 소리”

“잎이 많은 나무의 속껍질에서 찾아낸 그늘과 / 사나운 소리가 뽑아놓은 한 올”

  • 화자는 “오로지 식물성”이라고 믿었다가, 그 믿음이 ‘수정’됩니다.
  • 인견은 자연에서 왔지만, 그냥 자연이 아니에요.
    • 그늘: 나무가 주는 서늘함, 생명의 내부에서 길어 올린 서정
    • 사나운 소리: 벗겨내고, 으깨고, 뽑아내는 공정의 폭력/노동/기계성
  • 인견의 ‘시원함’은 순수한 선물이 아니라 추출된 결과입니다.
    즉, 시원함의 윤리(누가, 무엇을, 어떻게 희생했는가)가 은근히 등장해요.

9) 예보 한 줄이 현실을 끌어당긴다: 기후–산업–생활

“강우량이 적어 / 인견 생산 실적이 저조”

  • 앞부분에서 비는 ‘천’이었고, 구름은 ‘직조자’였죠.
    여기서는 그 상상이 곧장 **현실의 생산지표(실적)**로 이어집니다.
  • 시는 “시원함”이라는 감각을 기후와 경제의 문제로까지 넓힙니다.
    여름의 시원함이 단지 개인의 쾌적함이 아니라, **구름의 두께(=비의 공급)**에 의해 좌우되는 세계.

10) 마지막 행: 결론이자 되감기

“모든 여름은 구름의 두께에서 온다”

  • “두께”는 이 시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예요.
    • 비의 두께(부슬비/소나기)
    • 소리의 두께(두꺼운/얇은 소리)
    • 직물의 두께(인견의 ‘한 올’)
    • 구름의 두께(강우량, 기후)
  • 즉, 여름이란 단지 온도가 아니라
    구름이 짜는 물질성(두께)—그리고 그 두께가 만들어내는 감각과 생산과 삶—의 총합이라는 결론입니다.

11) 이 시가 “좋은 이유”를 기술적으로 정리하면

  • 확장 은유의 일관성: 비/구름/여름을 끝까지 “직물-공정”으로 밀어붙이되, 마지막에 “예보/실적”으로 현실성을 꽂아 넣음
  • 공감각의 정밀함: 두께를 촉감이 아니라 “소리”로 번역해 감각을 새로 열어줌
  • 자연-기계의 혼합 미학: 숲과 기계가 서로를 흉내 내는 세계—시원함조차 순수하지 않다는 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