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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능소화 아래의 解剖 / 미향

 

붉은 것들은 언제나 안쪽에 있었다고 나는 오래 믿어왔다. 심장과 허파와 콩팥뿐 아니라, 어떤 날은 팥알이나 기장 같은 곡물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듯 비유적으로 남아 있기도 했다.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는 일이 어째서 그토록 많은 윤리적 부담을 남기는지. 얇은 껍질도 쉽게 갈라지지 않았고 두꺼운 곱창 같은 질감은 오히려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살아 있는 것의 내부는 언제나 열림과 닫힘 사이에서 이름을 잃고 

그래서일까, 나는 가끔 사람들이 서로의 속을 보기도 전에 완전히 오해해 버리는 방식을 떠올린다. 전쟁 중인 지역의 아이들이, 혹은 지구 반대편에서 하루를 버티는 생명들이, 

어쩌면 우리보다 더 정확하게 자신의 안쪽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여름빛 능소화가 한껏 타오르던 날, 나는 세계가 얼마나 쉽게 재와 꽃의 모양을 혼동하는지를 목격한다. 

살아 있다는 이유로 부패를 택하거나, 부패 속에서도 빛을 택하거나, 그것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선택이거나, 어떤 생은 갈라서 보아야만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내 손에 묻은 것들의 쓴 온도를 

허무도, 사랑도, 비릿함도 결국은 한 덩어리의 생에서 조용히 태어나는 것, 능소화 아래에서 나는 그 사실을 더 늦게 알았다. 너무 늦게.

 

 

  <당선소감>

 

   -

당선 소감을 쓰려니 이렇게 아플 수가 없다. 지나간 시간이 주마등이라 어디서부터 봉합을 해야 할지, 갑자기 피가 쏟아지는 기분이다. 아침마다 학교 가기가 두렵고 겁나하던 아이였는데, 돌아보니 나는 자퇴와 중퇴 속에 그 길만 오래 다녔다.

학교 가는 길은 오정희의 ‘노란 거리’(중국인 거리)처럼 늘 매캐하고 어지러웠다... ‘고교 4학년’이라는 만화를 얼핏 본 거 같은데, 그 제목의 주인공이 내가 될 줄이야. 산으로 떠돌 만도 하다.

빨간 구두 에나멜 플랫슈즈를 신고 신춘문예를 준비한다며 노란 낙엽이 깔린 거리를 헤맸다. 안 쓰자니 억울했고, 쓰자니 당최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어서, 모르는 바다에 풍덩 빠지는 기분처럼 ‘신춘’이라는 제도 자체가 못마땅했다. 문창과들이 당선의 저변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부풀어 오르는 호빵처럼 ‘부에’가 났다.

우체국에 납작 빨간 또각또각을 신고 첫 응모를 하고 돌아오는 길. 구두 밑창이 터졌다. 터진 줄도 모른 채 대로의 신호등을 건너다 무언가 묵직하게 감기는 느낌에 아래를 보니, 아차차 이미 밑창은 마지막 사력을 다하며 간신히 붙어 있었다. 그때 단말마 웃음이 터졌다. ‘세상에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자조와 긍정 섞인 너털웃음이 났는데, 정말 좋은 일이 생겼다. 좋은 일 맞지?!

동생네가 한가득 짐을 싸며 오하이오주로 떠나는 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대륙의 땅을 가늠해 보며 조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요즘 동화는 너무 어려워, 나는 그림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땅에서 나는 누구인지, 잠시 길을 잃고 있었다. 빼빼로가 세관을 통과 할까를 떠올리는데 전화가 울린다.

당선된 ‘능소화 아래의 해부’는 사실 슬픔이다. 능소화는 부잣집(?) 담벼락을 타고 화려하게 피는 여름꽃으로, 모든 꽃들이 지고 난 뒤 가장 뜨거운 계절에 만개한다. 능(凌)소(霄). 이름처럼 하늘을 능가하는 꽃. 도도함과 자만, 명예와 영광이라는 꽃말처럼 눈부시지만, 그 화려함이 지고 난 뒤 바닥에 떨어진 것은 늘 지저분하고 참담하다. 능소화의 반대편에는 겸손이 있다. 나는 그 꽃 아래에서, 떨어진 자리까지 함께 들여다보는 쪽을 택해보려 한다. 

숭실대학교 불어불문학·철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사학과 (세부전공 동양사)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북한학과 (세부전공 통일·평화) 석ㆍ박통합과정 중퇴


 

  <심사평>

  

  존재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시인들

신춘문예 시는 새해를 여는 첫 장과 같다. 새로운 기운, 새로운 자세로 묵은 때를 벗어내고 새 삶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시는 사실을 적시하거나 비판, 고발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새로운 자아를 창조하는 것이 진정한 시의 창조일 것이다. 

여러 좋은 작품들 가운데서, 이하영 님의 '눈' 외 4편을 대상작으로 선정하는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눈', '코', '귀', '입', '표정'의 다섯 편은 이 시인이 일관되고 지속적인 탐구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시 제목들은 얼굴을 이루는 모든 것이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나'의 신체의, 얼굴의 각각의 '일부'다. 이 일부들을 각각의 표층적인 신체기관들로 '방치'하지 않고, 시적 자아의 내적인, '통생명적'인 본질을 탐구하고 제시하는 '통로'로 삼고자 한 것이 이 시인의 작업이다.

'눈'에서 화자가 ''당신의 눈 안에는 / 당신보다 오래된 별이 산다"고 했을 때 이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이 초월적인 함축미가 그가 출품한 다섯 편의 시 모두에서 '명료하게' 읽힌다. 내성없이 내지르는 시대, 새로운 시인의 탄생이다.

우수작으로 선정한 미향(이주연) 님의 '능소화 아래의 해부' 외 4편은 시인의 깊은 사색의 산물이다.  대표작인 '능소화 아래의 해부', 그리고, '층',  '사막의 한 점', '기울기', '구멍' 등은 삶 자체, 자신의 삶 자체를 직시하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태도가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능소화 아래의 해부'에서 능소화 꽃은 아름다운 존재의 중심으로 나타난다기보다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작용한다.

''여름빛 능소화가 한껏 타오르는 날, 나는 세계가 얼마나 쉽게 재와 꽃의 모양을 혼동하는지를 목격한다."는 대목에 유의한다. 이 시인의 긴 호흡이 그의 시를 앞으로 더욱 멀리 나갈 수 있게 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이하영 님, 미향 님 두 분께 축하드리며 앞으로 더욱 정진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

심사위원 : 방민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제목이 이미 말하는 것: ‘아래’와 ‘解剖’의 긴장

  • 능소화는 담을 타고 위로 치솟는 꽃(상승, 과시, 화려함)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 그런데 시는 그 꽃 “아래”에 서요. 위가 아니라 아래. 즉 화려함의 하부, 떨어진 자리, 그늘, 잔해의 위치를 선점합니다.
  • **解剖(해부)**는 “열어본다/가른다”는 뜻인데, 동시에 “이해(解)”와 “몸(剖)”이 한 덩어리로 묶여 있습니다.
    → 이 시에서 이해는 곧 절개를 동반하고, 그 절개는 윤리적 부담을 남깁니다.

결론적으로 제목은 이렇게 예고해요:
“화려한 것의 아래에서, 이해를 위해 ‘열어보는’ 폭력과 윤리를 함께 견딘다.”


2) 첫 문장: “붉은 것은 안쪽에 있다”는 오래된 믿음

붉은 것들은 언제나 안쪽에 있었다고 나는 오래 믿어왔다.

여기서 “붉은 것”은 단순히 색이 아니라 생의 핵심(피, 심장, 열, 욕망, 죄책, 슬픔의 온도)을 뜻해요.
화자는 “오래 믿어왔다”고 말하죠. 즉 이건 관찰 결과가 아니라 **신념(세계관)**입니다.

그리고

심장과 허파와 콩팥뿐 아니라, 어떤 날은 팥알이나 기장 같은 곡물의 그림자가…

  • 심장·허파·콩팥: 생물학적 내부(의학적 내부)
  • 팥알·기장: 먹을거리의 내부, 혹은 “생계를 지탱하는 붉음/곡물의 그림자”
    (정내부성 자체라는 힌트예요.)

여기서 중요한 건 “그림자”라는 단어입니다. 내부는 선명한 실체가 아니라, 스쳐 지나가듯 비유로 남는 흔적이에요. 화자는 내부를 확신하면서도 동시에 내부를 비유로밖에 붙잡지 못하는 상태에 서 있습니다.


3) “속을 들여다보는 일”의 윤리: 열어보는 순간 생기는 부담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는 일이 어째서 그토록 많은 윤리적 부담을 남기는지.

  • 해부/관찰은 ‘알기 위한 행위’인데,
  • 그 행위는 곧바로 윤리 문제를 발생시켜요.
    (

얇은 껍질도 쉽게 갈라지지 않았고
두꺼운 곱창 같은 질감은 오히려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시가 탁월한 건, 내부를 “아름답게”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 “곱창 같은 질감”: 내부는 **추상(영혼, 진심)**이 아니라 비릿하고 두껍고 무거운 물질성으로 다가온다.
  • 그 결과가 “무기력”: 내부를 보면 진실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기운이 빠지고 말문이 막히는 상태가 옵니다.

즉, 이 시에서 ‘내부를 보는 일’은 계몽이나 구원이 아니라 피로·윤리·무력감으로 이어집니다.


4) 내부의 정체: “열림과 닫힘 사이에서 이름을 잃는다”

살아 있는 것의 내부는 언제나 열림과 닫힘 사이에서 이름을 잃고

  • 내부는 ‘열면’ 보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열리기 직전/닫히기 직후의 틈에서만 스친다는 듯 말합니다.
  • “이름을 잃고”: 내부는 언어로 붙잡히는 순간 거짓이 될 수 있어요.
    (정확히 말해, 내부는 명명되는 순간 단순화되죠.)

그래서 다음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갑니다.


5) 오해의 구조: “서로의 속을 보기도 전에 완전히 오해”

사람들은 서로의 속을 보기도 전에 완전히 오해해 버리는 방식을 떠올린다.

여기서 시는 개인의 해부에서 사회적/세계적 차원으로 점프합니다.

전쟁 중인 지역의 아이들이, 혹은 지구 반대편에서 하루를 버티는 생명들이,

이 구절의 효과는 두 가지예요.

  1. 거리의 역전
    우리는 “멀리 있는 타자”를 쉽게 오해하지만, 시는 그들이 오히려 “자신의 안쪽을 더 정확히” 알지도 모른다고 말하려 합니다.
  2. 내부의 ‘정확함’이란 무엇인가
    내부를 정확히 안다는 건 지식이 아니라,
    “하루를 버티는” 현실에서 자기 고통/욕망/공포를 생존 차원에서 직면한다는 뜻이 될 수 있어요.

6) 시의 가장 날카로운 장면: “재와 꽃의 모양을 혼동”

여름빛 능소화가 한껏 타오르던 날,
나는 세계가 얼마나 쉽게 재와 꽃의 모양을 혼동하는지를 목격한다.

  • 능소화 “타오르던” 날: 꽃이 불처럼 보이는 순간(아름다움=불꽃)
  • 그런데 세계는 “재(灰)와 꽃”을 혼동한다:
    불꽃(생기)과 잿더미(소멸), 축제와 참사, 영광과 폐허가 비슷한 모양으로 보이는 순간.

즉, 세계는 종종

  • 화려함을 생명으로 착각하고,
  • 폐허를 단지 끝난 것으로 치워버리고,
  • 둘의 경계를 형태만으로 쉽게 오판합니다.

이게 “해부”의 이유가 됩니다. 겉모양으로는 구분이 안 되니까, 갈라서 보려는 충동이 생기는 거죠. 하지만 그 갈라봄이 윤리 문제를 다시 불러옵니다(시의 딜레마).


7) 선택의 윤리: “살아 있다는 이유로 부패를 택하거나…”

살아 있다는 이유로 부패를 택하거나,
부패 속에서도 빛을 택하거나,
그것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선택이거나,

여기서 시는 “내부”를 도덕 강의로 바꾸지 않고, 선택의 고독을 강조합니다.

  • 살아있으면 부패할 수도 있고(타협, 체념, 붕괴),
  • 부패 속에서도 빛을 고를 수도 있고(저항, 버팀),
  • 그 선택은 대리 불가능: 타인의 내부는 결국 타인이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다음 문장이 매우 중요해요.

어떤 생은 갈라서 보아야만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게 정말 잔인한 문장입니다.
“채운다”는 것은 보통 따뜻한 말인데, 여기서는 “갈라서”라는 폭력과 결합돼요.

  • 오히려 절개(해부) 같은 극단적 과정이 있어야 내부가 ‘채워진다’(혹은 채워졌음을 알게 된다).

즉, 시는 말합니다:
“삶을 이해하는 일은 때때로 다치게 한다.”
(타인을 다치게 할 수도, 나를 다치게 할 수도.)


8) “내 손에 묻은 것들의 쓴 온도”

나는 비로소 내 손에 묻은 것들의 쓴 온도를

여기서 화자는 관찰자(해부자)에서 공범/당사자로 이동합니다.

  • 해부는 보통 “대상”을 열어보는 행위인데,
  • 이 시는 “내 손에 묻은 것들”을 말함으로써
    화자 역시 무엇인가에 손을 대고, 묻히고, 관여해온 존재임을 드러냅니다.

“쓴 온도”는 감각이죠.
내부를 이해한다는 건 결국 지식이 아니라, **손에 남는 감각(쓴맛/비릿함/열)**로 돌아옵니다.


9) 결말: 허무·사랑·비릿함은 ‘한 덩어리 생’에서 태어난다

허무도, 사랑도, 비릿함도 결국은 한 덩어리의 생에서 조용히 태어나는 것,

이 결론이 시를 성숙하게 만들어줘요.

  • 허무(부정)와 사랑(긍정)을 분리하지 않고,
  • 비릿함(몸/현실/부패의 감각)도 그 사이에 놓습니다.

즉, 이 시는 말끔한 도덕이나 깨끗한 서정으로 끝나지 않아요.
살아 있음의 혼합물을 인정합니다.

마지막의 두 번 반복:

더 늦게 알았다. 너무 늦게.

이 “늦음”은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내부를 이해하는 일이 원래 시간을 요구하는 고통스러운 지연이라는 사실을 못 박습니다.


10) 이 시의 문장 전략: ‘길게 숨 쉬며, 끝에서 칼처럼 자른다’

이 작품은 짧은 행의 리듬보다, 긴 문장 + 쉼표의 누적으로 밀어붙입니다. 효과는 이래요.

  • 해부는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천천히 층을 벗기며 들어가야 하잖아요.
  • 이 시의 문장도 그렇게 “벗기듯” 진행됩니다.
  • 그리고 마지막에 “너무 늦게”처럼 짧게 끊어,
    갑자기 출혈처럼 결론이 떨어집니다.

제목의 解剖가 문장 호흡 자체로 수행되는 셈입니다.


11) 당선소감과의 맞물림(시 밖의 텍스트가 시를 ‘봉합’하는 방식)

소감에는 “봉합”, “피가 쏟아지는 기분” 같은 말이 나오죠.
이 시의 해부-윤리-늦음은 소감의 정조(아픔, 중단, 돌아옴)과 강하게 공명합니다.

다만 중요한 건, 소감이 시를 설명한다기보다
시가 이미 소감의 언어(상처/봉합/피)를 시적 사유로 선행해놓았다는 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