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공간으로 새 말하기 / 이현정

<당선작>
공간으로 새 말하기 / 이현정
당신이 좋아한다던 그 새를 보고
당신이 자주 가던 그 공간을 이해했어요
검은머리 물떼새는
자기가 낳은 알보다 더 큰 알을 발견하면
자기 알을 버리고 더 큰 알을 품는대요
나는 그 새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 새의 붉은 부리와 눈동자가 무서웠어요
새들이 사람을 공격하던
히치콕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거든요
새는 공간으로 말해요 나는 할 수 없는 말
새는 공간으로 대답을 해요
질문과 대답으로 공간에 획을 그어요
그들과 공간의 관계는 명확해요 나는 할 수 없는 일
이제 나는 당신의 공간을 이해해요
알처럼 작았던 공간을 깨고 나와
당신만의 우주를 만들고 싶어했던
당신의 방식을
그것이 당신이 알을 이해하는 방식이었으니까요
이제 나는 새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당신이라는 새,
새가 자신의 무거움보다 가볍게 날아올라서가 아니에요
이것과 저것, 내 것과 내 것 아닌 모호한 경계에
공중에 획을 긋고 떠나는 새의 명쾌한 선 때문이에요
새의 거울인 까만 눈을 보면 사람이 보여요
당신 너머의 당신이 알처럼 보여요
그래서 오늘부터 새의 방식을 이해하기로 했어요
새가 알을 버리고 알을 품는 방식
그 새가 아니고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나는 이제 새에 대한 무지로 새를 이해해요
공간으로 새를 말해요
무지보다 더 큰 공간은 없으니까요
<당선소감>
"틈을 보는 일… 더 진한 매혹의 길로"
시를 쓰는 일은 틈을 보는 일이었습니다. 꽃의 틈, 나무의 틈, 새의 틈.
때론 꽃이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꽃잎 중 하나를 바라보거나 생각하는 일이 좋았습니다. 새가 날아간 선을 쓰다듬는 일,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결을 만지는 일이 좋았습니다. 그건 어쩌면 낭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저에게 낭만은 완전한 이해나 충만한 감정이 아니라 끝내 닿지 않는 것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틈을 남겨두는 일임을 시를 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늘 보던 분식점 앞의 먼지투성이 비둘기가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는 모습이 예고도 없이 마음속으로 훅 밀고 들어온 적이 있습니다. 시상은 늘 그렇게 다가왔고 대상은 계속해서 미끄러지며 새로운 의미를 주었습니다. 저는 그 환유의 순간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저에게 시는, 문학은 매혹입니다. 국어시험지의 지문을 읽을 때마저도 설렜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문학을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신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늘 사랑의 눈빛을 주시는 시부모님, 저의 시를 읽어주며 항상 응원해준 남편과 두 아들, 제 시에 자주 등장하는 강아지 코너 사랑합니다.
저의 문학의 길을 밝혀주신 한영옥 교수님 감사합니다. 저의 시에 자신감을 심어주시고 격려해 주신 박남희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시를 사랑하는 동국대학교 시창작반 문우님들 감사합니다. 저를 더 진한 매혹의 길로 이끌어주신 한라일보사와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 서울 출
<심사평>
낯선 표현이면서도 논리 잃지 않아 인상적
눈에 띄는 작품이 있어서 고르면 함께 응모한 작품들이 대체로 한 가지 유형의 방식으로만 시상을 전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나치게 지역성을 의식한 작품들도 보였는데, 지명이나 제주어가 들어간다고 해서 제주의 정체성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제목도 시의 한 부분이기에 제목에 더 신경 써야 한다.
끝까지 고심했던 작품은 '현무암의 독백' 외 4편, '붉은 꽃이 지다' 외 4편, '수세미가 열리는 저녁' 외 4편, '무를 주세요' 외 4편, '공간으로 새 말하기' 외 4편 등이었다. '현무암의 독백' 외 4편은 가장 안정적인 작품이었지만, 새로움이 필요했다. '붉은 꽃이 지다' 외 4편은 흡입력이 있는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수세미가 열리는 저녁' 외 4편은 일상에서 끌어올리는 시적 분위기가 일정 수준에 도달했으나 변주도 갖추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세 명이 마지막으로 붙잡은 작품은 '공간으로 새 말하기' 외 4편이다. 시 '공간으로 새 말하기'는 시를 끌고 나가는 힘이 미더운 작품이다. 주제를 모으는 힘이 일단 있는 상태에서 낯선 전개 방식으로 말하되 논리를 잃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응모한 다른 작품들도 대부분 새로운 시도를 보이고 있어서 신뢰가 갔다.
마침내 시 '공간으로 새 말하기'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앞으로 꾸준히 시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심사위원 : 강영란, 김효선, 현택훈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제목의 이중언어: ‘새(鳥)’이면서 ‘새(新)’
「공간으로 새 말하기」는 제목부터 두 갈래로 읽힙니다.
- 새(鳥) 말하기: “새는 공간으로 말해요”라는 작품의 핵심 명제와 직결
- 새(新) 말하기: ‘언어를 새롭게 말하는 방식’으로서 **공간(여백/거리/경계)**를 활용한다는 선언
그래서 이 시에서 “공간”은 배경이 아니라 언어의 방식(말하기의 문법)입니다.
2) 시의 큰 줄기: “싫어함 → 이해 → 좋아함”이 아니라 “공포 → 틈 → 윤리”
겉으로는 화자가 새를 싫어했다가 좋아하게 되는 변화처럼 보이지만, 실제 중심축은 조금 다릅니다.
- 공포(무서움): 붉은 부리/눈동자, 히치콕의 새
- 틈(이해의 여백): “새는 공간으로 말해요… 나는 할 수 없는 말”
- 윤리(버림과 품음의 선택): 알을 버리고 더 큰 알을 품는 방식
- 관계(당신의 방식 이해): 당신의 ‘공간’이 왜 필요했는지 이해
- 미학(명쾌한 선): 모호한 경계 위에 “공중에 획”을 긋는 능력
- 결론(무지의 공간): 이해는 완전한 지식이 아니라, 무지라는 가장 큰 공간을 인정하는 것
즉, 이 시의 감정선은 “호오(好惡)”보다 타자를 이해하는 방식의 변화입니다.
3) 핵심 이미지 3개: 알, 획, 거울눈
(1) 알: “가능성”이자 “공간”
- “알처럼 작았던 공간을 깨고 나와 / 당신만의 우주를 만들고 싶어했던”
- 알은 생명의 씨앗이면서 동시에 갇힌 방/작은 세계로 겹쳐집니다.
- 그래서 “알을 이해하는 방식”은 곧 자신이 사는 공간을 다루는 윤리(떠남/확장/버림/품음)로 번역돼요.
(2) 획: 새가 남기는 ‘공간의 문장’
- “질문과 대답으로 공간에 획을 그어요”
- 여기서 획은 글씨의 획이기도 하고, 새의 비행선/영역선/이동선이기도 합니다.
- 인간은 말로 경계를 조정하지만, 새는 몸으로/움직임으로 경계를 긋습니다.
화자는 그 명쾌함을 “나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해요.
(3) 까만 눈(거울): ‘나/당신’이 비치는 장치
- “새의 거울인 까만 눈을 보면 사람이 보여요”
- 새의 눈은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화자를 되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 “당신 너머의 당신이 알처럼 보여요”는,
‘당신’이 단일 인물이 아니라 아직 부화하지 않은 가능성(또 다른 당신)을 품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4) 가장 중요한 문장: “나는 이제 새에 대한 무지로 새를 이해해요”
이 한 줄이 작품 전체를 묶습니다.
- 이해 = 설명/지식/정복이 아니라
- 이해 = 끝내 다 알 수 없음(무지)을 인정한 채, 그 무지를 담을 공간을 확보하는 일
당선소감의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틈을 남겨두는 일”과 정확히 같은 축이에요.
시의 윤리는 결국 ‘틈(여백)’을 남기는 태도로 귀결됩니다.
5) ‘검은머리 물떼새’의 행동은 사실성보다 ‘윤리적 은유’로 읽힌다
“자기 알을 버리고 더 큰 알을 품는다”는 설정은 독자에게 불편함(혹은 거부감)을 먼저 줍니다. 화자도 “좋아하지 않았다”고 고백하죠.
그런데 이 불편함이 중요한 이유는, 이 시가 “예쁜 자연 서정”이 아니라
선택의 잔혹함을 정면으로 끌고 오기 때문입니다.
- 더 큰 알 = 더 나은 미래/더 안전한 선택/더 큰 세계
- 자기 알을 버림 = 기존의 책임/정체성/과거를 내려놓는 행위
- 품음 = 새로운 삶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결단
화자는 이 잔혹한 은유를 통해 ‘당신의 공간’(당신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당신을 새로 호감)도, 윤리(버림/품음)도, 미학(획)도 한 덩어리로 묶여요.
6) 심사평과 정확히 맞닿는 지점: “낯선 전개 + 논리를 잃지 않음”
이 시는 감정 폭발로 밀어붙이지 않고, 반복되는 문장 구조(“…해요”)와 설명적 진술을 사용합니다. 자칫 산문적으로 보일 위험이 있는데, 이 작품은 그 설명을 논리의 다리로 삼아 낯선 도약을 가능하게 해요.
- 새 → 공간 언어 → 경계의 획 → 당신의 우주 → 알의 윤리 → 무지의 공간
이 연결이 무너지지 않으니, 낯선데 “미더운” 힘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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