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시 대상] 눈 / 이하영

<당선작>
눈 / 이하영
당신의 눈 안에는
당신보다 오래된 별이 산다.
탄생 이전의 밤부터
그 빛은 조용히 당신을 비추어 왔다.
세상은 보이라고 펼쳐졌으나,
사실 당신은 비추기 위해 눈을 열었다.
빛은 바깥에서 들지 않는다
시의 샘, 그 안에서 피어난다.
사람들은 그 빛을 모르고
유리알을 가리켜 눈이라 부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건 오래된 불씨,
잊힌 사랑의 근원이다.
누군가를 다정히 바라볼 때
그 별은 깨어난다.
별이 깨어나는 순간,
당신의 시선은 치유가 되어
세상의 상처에 맑은 이름을 건넨다.
어쩌면 별은 하늘의 일이 아니다.
그건 당신 안에서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빛.
보고, 느끼고, 용서하는 호흡마다
그 별은 다시 타오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당신의 눈 속에서 우주를 본다.
밤이 더 깊을수록,
그 별은 더 맑은 빛으로
당신을 투명히 비춘다.
<당선소감>
-
‘아들. 나 시인 되고 싶다.’
엄마는 3년전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1년의 투병 생활 끝에 가장 사랑하는 계절인 5월에 돌아가셨다. 힘들 투병 생활 속에서도 엄마는 시를 쓰셨다. 그리고 2권 시집을 나에게 남겨주셨다. 그 시집이 나에겐 가장 큰 지혜로 남아 있다.
엄마는 시를 쓰셨지만 시는 엄마에게 내려왔다. 세상을 보는 눈을 엄마는 시집으로 내게 주셨다. 시인은 세상을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다. 엄마는 시를 쓰면서 세상을 지나치치 않으셨다. 가지 앉은 참새 한 마리에도, 불어오는 겨울 바람에도, 산책하는 등산로의 풀꽃에도 시선을 멈추셨다. 그 시선 속에서 시는 엄마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시인은 보는 사람이다. 보는 사람은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다. 시선을 멈추는 사람이다. 그 멈춤 속에 몰입이 있고, 그 몰입 속에 알아차림이 빛나고 있었다. 이번에 수상한 시 ‘눈’은 이 알아차림의 빛을 짧고 서툰 나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우리는 눈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 세상이 나의 눈에 그려진다. 하지만 세상은 눈이 만든 것이 아니다.
세상은 눈 속의 빛이 만들고 있다.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고, 펼쳐내는 우리의 알아차림이 그것이다. 그 알아차림의 시선이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 속에서 나는 눈으로 그 곳을 바라본다. 분별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그 대상 속에 머무를 수 있다.
그 시선 속에서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그 다름 속에서 세상의 신비가 드러난다. 그 신비는 나에게 호기심으로, 세상에겐 선물로 비춰진다. 그 세상을 우리가 지나치지 않을 때, 세상도 우리를 지나치치 않는다.
세상이 주는 오감의 만찬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 만찬을 즐길 때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된다. 그 즐거움을 알려주신 이영 여사이자 시인이자 우리 엄마에게 수상의 영광을 전해주고 싶다. 겨울의 시작, 영하의 온도 속, 잠깐 불어오는 따뜻한 햇살이 내 귀를 스친다. 그 바람결 속에서 나는 엄마의 숨결을 느껴본다. 하늘이 숨 쉬는 그곳에서 파란 하늘 속 엄마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아들, 너가 시인이 되었구나’
●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삼성서울병원 인턴, 레지던트수료. 디마레클리닉원장 ● 유튜브 채널 이하영의프레젠트
<심사평>
존재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시인들
신춘문예 시는 새해를 여는 첫 장과 같다. 새로운 기운, 새로운 자세로 묵은 때를 벗어내고 새 삶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시는 사실을 적시하거나 비판, 고발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새로운 자아를 창조하는 것이 진정한 시의 창조일 것이다.
여러 좋은 작품들 가운데서, 이하영 님의 '눈' 외 4편을 대상작으로 선정하는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눈', '코', '귀', '입', '표정'의 다섯 편은 이 시인이 일관되고 지속적인 탐구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시 제목들은 얼굴을 이루는 모든 것이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나'의 신체의, 얼굴의 각각의 '일부'다. 이 일부들을 각각의 표층적인 신체기관들로 '방치'하지 않고, 시적 자아의 내적인, '통생명적'인 본질을 탐구하고 제시하는 '통로'로 삼고자 한 것이 이 시인의 작업이다.
'눈'에서 화자가 ''당신의 눈 안에는 / 당신보다 오래된 별이 산다"고 했을 때 이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이 초월적인 함축미가 그가 출품한 다섯 편의 시 모두에서 '명료하게' 읽힌다. 내성없이 내지르는 시대, 새로운 시인의 탄생이다.
우수작으로 선정한 미향(이주연) 님의 '능소화 아래의 해부' 외 4편은 시인의 깊은 사색의 산물이다. 대표작인 '능소화 아래의 해부', 그리고, '층', '사막의 한 점', '기울기', '구멍' 등은 삶 자체, 자신의 삶 자체를 직시하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태도가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능소화 아래의 해부'에서 능소화 꽃은 아름다운 존재의 중심으로 나타난다기보다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작용한다.
''여름빛 능소화가 한껏 타오르는 날, 나는 세계가 얼마나 쉽게 재와 꽃의 모양을 혼동하는지를 목격한다."는 대목에 유의한다. 이 시인의 긴 호흡이 그의 시를 앞으로 더욱 멀리 나갈 수 있게 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이하영 님, 미향 님 두 분께 축하드리며 앞으로 더욱 정진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
심사위원 : 방민호 문학 평론가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이 시의 중심 명제: “눈은 ‘보는 기관’이 아니라 ‘비추는 샘’이다”
시의 첫 전환은 여기서 시작해요.
- 보통 눈은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는 창(수용)인데,
- 이 시에서 눈은 내부에서 빛을 발하는 근원(발광)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보이라고 펼쳐졌으나”라는 상식 뒤에 곧바로 “사실 당신은 비추기 위해 눈을 열었다”라는 역전이 붙습니다.
즉, 세계가 먼저가 아니라 시선(빛)이 먼저예요. 세계는 그 빛이 만들어내는 장(場)처럼 읽힙니다.
2) 화법: ‘당신’이라는 2인칭이 만드는 윤리
이 시는 “나”보다 “당신”이 앞에 옵니다. 이는 독자를 설득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시선의 윤리를 세우는 방식이에요.
- “당신의 눈”을 말하면서도, 사실상 말하고 싶은 건
**누군가를 바라보는 태도(다정함, 용서, 치유)**입니다. - 그러니까 이 ‘당신’은 특정 인물이라기보다, 보는 행위를 수행하는 모든 존재(독자 포함)로 확장됩니다.
3) 1연(도입): 눈 속의 ‘별’—시간을 거슬러 오는 내면의 광원
당신의 눈 안에는 / 당신보다 오래된 별이 산다
탄생 이전의 밤부터 / 그 빛은 조용히…
여기서 ‘별’은 단순한 아름다운 비유가 아니고, 시간의 깊이를 끌어옵니다.
- “당신보다 오래된”은 개인의 삶(전기)을 넘어 존재의 근원을 호출해요.
- “탄생 이전의 밤”은 생물학적 탄생 이전이 아니라
자아 이전의 어둠, 즉 말로 붙잡히기 전의 ‘세계/의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때 빛은 “조용히” 비춥니다. 강요하거나 과시하지 않는 빛이죠.
시가 말하는 ‘보는 힘’은 공격이 아니라 조용한 지속입니다.
4) 2연(핵심 역전): “빛은 바깥에서 들지 않는다”
빛은 바깥에서 들지 않는다
시의 샘, 그 안에서 피어난다
이 두 행이 시 전체의 선언문입니다.
- 일반적 인식: 빛(정보)은 바깥에서 들어와 눈이 본다.
- 시의 인식: 빛은 눈 안에서 솟는다.
그리고 그 내부 광원을 “시의 샘”이라 부릅니다.
즉, 눈 = 시의 발생지예요.
여기서 ‘피어난다’가 중요합니다. 빛은 기계적으로 켜지는 게 아니라 생명처럼 피어남.
그러니 ‘보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생장(자람)**에 가깝습니다.
5) 3연(비판): 사람들이 “유리알”만 보며 눈이라 부르는 이유
사람들은 그 빛을 모르고 / 유리알을 가리켜 눈이라 부른다
이 대목은 현대의 시선(혹은 근대적 시선)에 대한 비판으로 읽혀요.
- 사람들은 눈을 **물질(유리알)**로만 규정하고,
- 그 눈 안의 **근원적 빛(의식·사랑·시)**을 놓칩니다.
즉 “눈”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것을, 시는 다시 분해합니다.
- 눈(기관) ≠ 눈(빛의 근원)
- ‘보는 행위’ ≠ ‘비추는 힘’
6) 4연(상징의 변주): 별 → 불씨 → 사랑의 근원
그건 오래된 불씨, / 잊힌 사랑의 근원이다
별이 갑자기 “불씨”로 내려옵니다.
이 변주는 시의 방향을 결정해요.
- 별: 우주적·초월적
- 불씨: 내밀한·일상적·살아있는 생존의 열
즉, 초월을 말하되 멀리 달아나지 않고 **가슴 가까운 윤리(사랑)**로 가져옵니다.
“잊힌 사랑”은 거창한 낭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잃는 다정함/연민/비판 없는 시선일 가능성이 큽니다.
7) 5연(윤리의 개화): “다정히 바라볼 때” 별이 깨어난다
누군가를 다정히 바라볼 때 / 그 별은 깨어난다
여기서 ‘별’은 자동으로 빛나지 않습니다. 조건이 있어요: 다정히 바라봄.
즉, 이 시가 말하는 빛은 능력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그리고 다음 행들이 더 중요합니다.
당신의 시선은 치유가 되어
세상의 상처에 맑은 이름을 건넨다
- “치유”는 감상적 위로가 아니라,
상처에 ‘이름’을 건넨다는 언어적 행위로 구체화됩니다. - “맑은 이름”은 판단의 낙인이 아니라,
존재를 살리는 호명(呼名)에 가깝죠.
여기서 시선은 곧 언어로 이어집니다.
“보는 것 → 이름 붙이는 것 → 세계를 다시 만드는 것”의 연결이 시적 논리입니다.
8) 6연(결론의 확장): 별은 하늘의 일이 아니라 ‘호흡의 일’
어쩌면 별은 하늘의 일이 아니다
…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빛
보고, 느끼고, 용서하는 호흡마다 / 그 별은 다시 타오른다
시가 도착하는 지점은 ‘우주’이지만, 그 우주는 멀지 않습니다.
- “호흡마다”라는 표현은 이 시의 사유가 **명상적(알아차림)**임을 드러냅니다.
- “보고, 느끼고, 용서하는”은 시선의 3단계예요.
- 보고(대상을 회피하지 않기)
- 느끼고(감각/정서로 닿기)
- 용서하는(판단을 풀고 관계를 살리기)
이건 시인이 당선소감에서 말하는 “분별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머무는 시선(알아차림)”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소감이 시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시가 소감을 이미 수행하고 있어요.
9) 마지막 이미지: “당신의 눈 속에서 우주를 본다”
나는 오늘도 / 당신의 눈 속에서 우주를 본다
밤이 더 깊을수록 / 그 별은 더 맑은 빛으로…
마무리는 두 겹입니다.
- **우주(거대함)**를 “눈 속(내면)”에 접습니다.
- “밤이 깊을수록” 빛이 맑아진다고 말합니다.
보통 밤은 어둠/불안인데, 여기서는 오히려 투명한 빛의 조건이에요.
즉, 시는 어둠을 부정하지 않고, 어둠을 통해 빛의 정밀도를 얻습니다.
이 지점에서 시는 위로가 아니라 존재의 작동 원리를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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