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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윈드 댐퍼 / 최광복

 

바람을 읽어내야 꼿꼿이 설 수 있다
수백 톤 무게 추를 허공에 매달고서
희미한 박동소리에 주파수를 맞춘다

찢어질 듯 팽팽한 장력을 거스르며
밀려드는 욕망을 가까스로 잠재워도
마음은 순간을 흔들며 균열을 일으킨다

태풍도 지진도 한 눈금씩 받아적듯
파동을 되새기며 다시 서는 몸의 경계
아득한 떨림을 안고 낮과 밤에 귀를 댄다


*윈드 댐퍼-초고층 건물의 중심을 잡는 장치

 

 

  <당선소감>

 

   "이제 시조 안에서 '세상의 말' 한 눈금씩"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 늘 고민해 왔었습니다. 어떤 날은 도무지 각이 나오지 않는 꼭짓점에서 갈등하기도 했고 때로는 가던 길을 되돌아와 제자리걸음이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제 안의 댐퍼가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심지가 굳지 못해 늘 경계에 끌려다니고, 가녀린 실바람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은 아닌지… 밀려드는 욕망을 잠재울 때도 마음은 늘 순간을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타협하고 안주하는 스스로를 측은하게 바라보기도 합니다. 이제 시조 안에서 세상의 말을 한 눈금씩 받아적고 제 안의 울림에도 더욱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먼저 부족한 작품을 선정해 주신 한라일보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열어 주신 길을 조심스럽게 내디디며,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웃의 말 못 할 아픔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기꺼이 연대하여 작은 목소리들이 외면받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구부렁길의 선한 걸음이 되고 싶습니다. 시절가조(時節歌調)라 말씀하시며 시대정신을 담아내셨던 시조인들을 본받고 싶습니다. 앞서 잘 닦아놓으신 그 길에 부끄럽지 않도록 저만의 뿌리, 역시 잘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서툴고 어눌한 제자를 따뜻한 사랑으로 이끌어주신 정경화 지도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경주불교학생회 47대, 경주문예대학 38기, 초림, 들풀시조, 가족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참, 지월스님, 지만스님도 기뻐해 주실 것 같습니다.

경북 경주시 출생


 

  <심사평>

  

  물리적 언어들의 결합이 더해준 깊이

우리 심사위원 3명은 형식, 주제와 소재, 형상화와 시어 사용 등을 기준으로 접수된 500여 편의 작품을 3등분하고 각각 10편을 골라냈다. 이어 골라진 30여 편을 윤독하며 2편씩 추려냈다.

'코바늘뜨기 테라피', '와이파이존', '봄, 숲은 용접 중이다', 'AS를 부르면 AI가 나온다', '투명한 벽-키오스크', '윈드 댐퍼'가 이에 해당한다. 이 6편은 일정 수준에 올라 있어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숙독과 논의 끝에 '투명한 벽-키오스크'와 '윈드 댐퍼'로 압축했다.

'투명한 벽-키오스크'는 호흡이 길고 기술 진보의 속도에 못 따라가는 세대의 아픔을 절절히 표현했지만, 설명적인 부분이 더러 있고, '무심타'와 같은 시어나 기시감을 주는 시구가 거슬렸다.

결국 '윈드 댐퍼'를 일치된 의견으로 선정했다. '윈드 댐퍼'의 언어들은 다소 공학적이고 금속성이라 차갑고 딱딱하다. 하지만 "바람을 읽어내야 꼿꼿이 설 수 있다"에서 그 주체를 초고층 건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치환했을 때, 물리적 언어들의 결합은 작품의 깊이를 더해주고 의미망을 확장했다. '윈드 댐퍼'가 건물의 흔들림을 줄여주듯이 우리도 흔들리는 누군가의 "희미한 박동 소리에 주파수를 맞춘다"면, "낮과 밤에 귀를 댄다"면 이 작품은 따뜻하다.

최광복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며 시조 '윈드 댐퍼'로 우뚝 설 것을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 문순자, 이재창, 홍성운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작품 전체 분석

1) 제목과 핵심 비유의 성격

**「윈드 댐퍼」**는 초고층 건물의 흔들림을 줄여 중심을 잡는 장치(추·감쇠장치)를 말합니다. 시조는 이 공학적 장치를 삶/존재의 은유로 끌어옵니다.

  • 건물(초고층) = 큰 세계 속에 서 있는 한 사람(또는 공동체)
  • 바람/태풍/지진 = 외부에서 밀려오는 사건·불안·압박·욕망·사회적 파동
  • 윈드 댐퍼(추, 장력, 조정) = 자기 내부의 균형 장치(자기조절, 성찰, 공감, ‘귀 기울임’)
  • “받아적다/주파수/박동/파동” = 흔들림을 감각적으로 ‘읽고 기록’하는 태도(시 쓰기 자체)

즉, 이 시는 기술 설명이 아니라 **‘흔들림을 견디는 윤리’**를 공학 언어로 구현한 작품입니다.


2) 정서의 흐름: ‘버팀’이 아니라 ‘조율’의 서사

이 시조는 “강하게 버틴다”가 핵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읽어내고(감지) → 맞추고(조율) → 잠재우고(감쇠) → 다시 서고(회복)”**가 핵심입니다.

정서도 뜨겁게 분출하지 않고, 긴장-균열-재정렬의 과정을 차분하게 밟습니다. 그래서 냉정하고 금속성인데도 끝에서 **“낮과 밤에 귀를 댄다”**로 인간적인 따뜻함이 생깁니다.


3) 이미지망(반복되는 핵심 어휘들)

이 작품의 강점은 어휘들이 한 방향으로 모인다는 점입니다.

  • 감각/측정: 읽어내다, 주파수, 박동, 파동, 눈금, 되새기다, 귀를 대다
  • 물리/구조: 수백 톤, 무게추, 허공, 장력, 균열, 경계
  • 사건/외력: 바람, 욕망, 태풍, 지진, 낮과 밤

이 이미지망이 “불안의 시대를 통과하는 몸”을 설득력 있게 만듭니다.


4)

“흔들림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흔들림을 ‘읽고’ ‘조율’하며 다시 서는 능력은 기를 수 있다.”
“그 능력은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한 눈금씩’ 기록하고 감지하는 태도에서 온다.”


2. 시조 상세 분석

A. 초장 분석

바람을 읽어내야 꼿꼿이 설 수 있다
수백 톤 무게 추를 허공에 매달고서
희미한 박동소리에 주파수를 맞춘다

1) 핵심 기능

초장은 **‘원리 제시’**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흔들림을 먼저 읽는 존재가 “꼿꼿이 선다”고 선언합니다.

2) 중요한 전환: ‘힘’이 아니라 ‘감지’

보통 ‘꼿꼿이’는 의지/근성으로 읽히기 쉬운데, 여기서는 조건이 붙습니다.

  • 꼿꼿이 서려면 → 바람을 읽어내야 한다

즉, 의지보다 앞서는 건 **감지능력(센서)**입니다.

3) 공학 이미지의 시적 전환

  • “수백 톤 무게 추”는 실제 장치의 물성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존재가 자기 안에 달아놓은 무거운 책임/중심/양심처럼 읽힙니다.
  • “허공에 매달고서”는 불안정의 이미지입니다.
    ‘중심’이 단단한 기초가 아니라, 오히려 허공에 매달린 채 유지되는 균형이죠.
  • “희미한 박동소리”는 흔들림을 생명 신호로 바꿉니다.
    외부 충격(바람)을 내부의 박동(생존의 리듬)으로 번역합니다.
  • “주파수를 맞춘다”는 흔들림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동조·조율하는 행위입니다.

📌 초장의 결론:
버팀 = 강철의 의지가 아니라 감지·조율의 기술이다.


B. 중장 분석

찢어질 듯 팽팽한 장력을 거스르며
밀려드는 욕망을 가까스로 잠재워도
마음은 순간을 흔들며 균열을 일으킨다

1) 핵심 기능

중장은 **‘내부 갈등의 폭로’**입니다.
초장에서 멋있게 “읽고 맞춘다” 했지만, 실제 삶은 그렇게 완벽하지 않죠.
여기서 시는 인간의 취약성을 드러냅니다.

2) “장력”의 두 얼굴

  • 장력은 구조를 유지하는 힘이기도 하지만
  • 동시에 “찢어질 듯”이라는 표현으로 **한계점(임계)**을 암시합니다.

즉, 버티게 하는 힘이 곧 파괴의 위험이기도 합니다.
(이게 좋은 시적 역설이에요.)

3) “욕망”의 침입: 외력의 내면화

태풍·지진 같은 외부 사건이 여기서는 “욕망”으로 바뀝니다.
흔들림의 근원이 외부에만 있지 않고, 내부에서도 솟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장면입니다.

  • “가까스로 잠재워도” → 통제 시도는 하지만, 완전 진압은 불가능
  • “마음은 순간을 흔들며 균열” → 흔들림은 구조(몸)보다 먼저 마음에서 터집니다

📌 중장의 결론:
외부 충격을 막아도, 내부의 욕망/감정이 균열을 만든다.
그래서 ‘댐퍼’는 단지 바람이 아니라 마음에도 필요하다.


C. 종장 분석

태풍도 지진도 한 눈금씩 받아적듯
파동을 되새기며 다시 서는 몸의 경계
아득한 떨림을 안고 낮과 밤에 귀를 댄다

1) 핵심 기능

종장은 **‘해결’이 아니라 ‘태도 확정’**입니다.
완전한 안정(무흔들림)이 아니라, 기록-되새김-재정렬을 반복하는 삶의 방식이 결론입니다.

2) “한 눈금씩 받아적듯”의 의미

이 구절이 작품의 심장입니다.

  • 태풍·지진: 감당 불가한 외력
  • 한 눈금: 그 외력을 측정 가능한 단위로 분해
  • 받아적다: 폭로/비난/분출이 아니라 기록과 관찰의 윤리

즉, “세상에 휩쓸리지 않기”의 방법은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기록의 반복입니다.

3) “몸의 경계”가 다시 서는 방식

“다시 서는 몸의 경계”는 ‘나’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무너질 수밖에 없는 조건 속에서 경계를 재설정한다는 뜻입니다.

  • 경계: 내가 나로 남는 선(자기 규정, 삶의 질서)
  • 다시 서다: 회복의 반복(리셋이 아니라 재조정)

4) 마지막 행의 따뜻함

“낮과 밤에 귀를 댄다”는
기계적 측정이 아니라 돌봄의 자세로 읽힙니다.

  • 귀를 댄다 = 가까이 간다, 기울인다, 들어준다
  • 낮과 밤 = 일시적 각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태도

📌 종장의 결론:
흔들림을 끊는 게 아니라, 그 떨림을 안고도 계속 ‘듣는’ 쪽을 선택한다.


3. 작품의 강점과 읽기의 포인트

1) 공학어의 ‘차가움’을 ‘윤리’로 바꾸는 기술

금속성 단어가 많지만, 독자는 결국 “공감/경청/연대”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게 이 작품의 성취입니다.

2) ‘감정의 분출’ 대신 ‘측정과 조율’

감정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감정을 정확히 다루는 방식이 다릅니다.
시조의 정형성과도 잘 맞습니다.

3) “무너지지 않음”이 아니라 “다시 서기”

이 시조는 승리담이 아닙니다.
대신 회복탄력성의 서정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