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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꽃이 된 글씨체 / 김순호

 

글씨란 씨앗들이 응어리를 풀고 있다
가슴에 묻어 둔 말 쭉정이가 다 됐어도
갈증 난 어둠 속에서
물이 올라 눈 뜬 시간

문해교실 화분 속 오래 묵은 뿌리들
깜냥껏 밀어 올려 뻗어가는 흘림체
불거진 손끝 마디마디
환한 길 피고 있다

남은 숨 불어넣는 꽃주름 버는 소리
굴곡진 삶의 줄기 향기로 감아올린
활짝 핀 칠곡 할매체 부푸는 꽃잎활자

 

 

  <당선소감>

 

   천년 흘러온 문학의 강줄기에 물 한 방울 되도록 노력

“왕관을 쓰려면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셰익스피어가 남긴 말입니다.

꿈에 그리던 신춘문예 당선, 제게는 왕관만큼이나 영광스럽습니다. 그러나 벅찬 기쁨보다 왕관의 무게와 이름에 값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마음을 짓누르는 것만 같습니다. 이제 시조라는 밧줄에 영원히 묶여 버렸습니다. 시상을 떠올리고 그 얼개를 짜는 일에 한순간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시조는 천년을 굽이쳐 흘러온 우리 문학의 큰 강이라고 했습니다. 그 도저한 강줄기에 저도 한 방울의 물이 될 수 있도록 시의 혼을 부지런히 갈고 또 닦겠습니다. 시조 3장의 아름다운 정형 위에 시조만이 드러낼 수 있는 정갈하면서도 활달한 언어 미학을 얹고 싶습니다.

오래전 경주문예대학을 수료하고 동리목월문학관에서 시 합평을 할 때, 손진은 교수님이 제 시가 시조의 호흡과 가깝다고 방향을 틀어 주셨습니다. 교수님이 주신 좋은 자료와 응원, 그리고 유튜브와 독서 등을 통해 시조의 정석을 배우며 간결함 속에 큰 울림을 거느리는 시조의 매력에 빠져 오늘 이 벅찬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촘촘하게 채우지 못한 성근 행간의 여백에 덜컥, 과분한 상을 안겨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고개 숙여 깊은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두 분 심사위원님의 결정에 누가 되지 않도록 매진하겠다는 다짐을 드립니다. 저에게 꿈같은 기회의 장을 열어 주신 동아일보사에도 마음 담아 감사드립니다.
“점심은 알아서”, “못 가요”, “나중에”, 이런 말 다 받아준 그런 사람이 옆에 있어서 참 고맙고 행복합니다.

1965년 안동 출생      경주문예대 수료, 동리목월 문예창작반 수료


 

  <심사평>

  

  수틀에 앉힌 내간체의 그림 같은 작품

올해 투고 작품에는 시조 형식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원고가 많았다. 열망에 상응하는 수준 높은 교육이 제공되지 못하고 있는 시조 현실이 가슴 아프다. 초등과 중등 과정에 시조 창작에 관한 교육과 학습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대학의 문예창작과나 여러 평생교육기관에서도 현대 시조 창작에 관한 과정을 다루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응모작 중 최종까지 우열을 다툰 작품은 ‘점묘의 사계’, ‘양파의 기원’, ‘아버지의 등’, ‘시리우스의 밤’, ‘꽃이 된 글씨체’ 5편이었다. ‘점묘의 사계’는 단시조의 묘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같은 응모자의 다른 작품 ‘그림시’에서의 시도 또한 주목받을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다만 사유의 깊이 면에서 다소 아쉬움이 느껴졌다. ‘양파의 기원’은 적절한 발상과 시조형식을 원용해서 만들어내는 결구의 매무새가 믿음직스러웠지만 신춘에 펼쳐놓기에는 조금 어색하고 부족함을 느꼈다. ‘아버지의 등’은 가정을 이끌어 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힘 있고 건강한 메시지로 그려냈지만 새로움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시리우스의 밤’은 적절한 서정성과 재치 있는 문장으로 개성적인 매력을 보여 주었다. ‘꽃이 된 글씨체’는 노년의 서사를 잘 표현해낸 시조였다. 이 두 작품을 놓고 마지막까지 고심하다가 수틀에 앉힌 내간체의 그림 같은 김순호씨의 ‘꽃이 된 글씨체’에 영광을 돌리기로 최종 결정했다. 아울러 그의 다른 작품들 또한 이 결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음을 밝히며 시조 시인으로서 대성하길 기대하고 또 빈다.

심사위원 : 이근배, 이우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전체 해석(한 문장으로)

평생 가슴에 묻어 둔 말들이 ‘글씨’라는 씨앗으로 싹터, 문해교실의 늙은 뿌리(노년의 삶)를 밀어 올려 마침내 ‘칠곡 할매체’라는 꽃(공적 기록/존재 증명)으로 활짝 피어나는 시간을 노래합니다.


장(초장·중장·종장)별 현대어 풀이 + 핵심 분석

1장(초장) : “글씨”의 발아—어둠에서 물이 오르는 순간

현대어 풀이

  • 글씨라는 씨앗들이, 가슴속 응어리(한/말 못함)를 풀며 싹트고 있다.
  • 마음속에 묻어 둔 말이 이미 쭉정이(쓸모없어진 것)처럼 되어 버렸더라도,
  • 갈증 난 어둠(무지·침묵) 속에서 물이 올라
  • 마침내 눈을 뜬 시간(배움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분석 포인트

  • 첫 행에서 바로 핵심 은유를 박습니다: “글씨란 씨앗”. 글씨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생명력(발아 가능성)**입니다.
  • “쭉정이”는 잔혹할 정도로 현실적입니다. “이 나이에 배워서 뭐하나” 같은 체념, 혹은 “때가 늦었다”는 사회의 시선까지 포함해요. 그런데 그 다음이 “물이 올라 눈 뜬 시간”입니다.
    배움 = 물, 무지/침묵 = 어둠, 각성 = 눈뜸. 이 세 이미지가 한 번에 연결됩니다.
  • “갈증”은 단지 지적 호기심이 아니라 존엄의 갈증입니다. 말하고 싶었는데 글을 몰라 “가슴에 묻어 둔 말”이 되었던 것.

2장(중장) : 문해교실의 ‘오래 묵은 뿌리’—손마디로 길을 피우다

현대어 풀이

  • 문해교실의 화분 속에는 오래 묵은 뿌리(늦은 배움의 주체들)가 있다.
  • 그들이 제 힘 닿는 만큼(깜냥껏) 밀어 올려, 흘림체로 뻗어 간다.
  • 불거진 손끝의 마디마디가
  • 환한 길을 피우고 있다.

분석 포인트

  • “화분”은 너무 정확한 선택입니다. 들판이 아니라 화분이에요.
    → 문해교실은 ‘자연발생적’ 기회가 아니라, 누군가 마련해 준 작은 공간·보호된 환경(제도/교육)입니다. 작지만 확실한 토양.
  • “오래 묵은 뿌리들”은 이중 뜻입니다.
    1. 노년의 신체(세월) 2) 오래 눌려온 말/사연(서사)
      글씨는 ‘지식’만이 아니라, 삶의 뿌리가 밀어 올리는 것.
  • “깜냥껏”이 아주 중요합니다. 고급 시어 대신 생활어를 꽂아 넣어 문해교실의 말맛을 살립니다. 동시에 ‘완벽한 글씨’가 아닌, 자기 속도·자기 몫의 성장을 인정하는 어조예요.
  • “불거진 손끝 마디마디”는 노년의 관절(관절염, 굳은살) 같은 구체적 몸의 현실인데, 그 다음이 “환한 길 피고 있다”입니다.
    → **고통(마디) → 길(해방/연결)**로 바꾸는 전환. 이 작품의 정서적 클라이맥스가 사실상 여기서 한 번 터집니다.

3장(종장) : 꽃으로 완성되는 글—‘칠곡 할매체’의 꽃잎활자

현대어 풀이

  • 남은 숨을 불어넣으며, 꽃주름이 벌어지는 소리가 난다.
  • 굴곡진 삶의 줄기를 향기로 감아 올린다.
  • 활짝 핀 칠곡 할매체—부푸는 꽃잎 같은 활자들.

분석 포인트

  • “남은 숨”은 감동을 ‘좋은 이야기’ 수준에서 멈추지 않게 하는 생의 긴장입니다.
    → 시간이 많지 않은 몸이 숨을 불어넣어 글씨를 살립니다. 그래서 글씨는 취미가 아니라 존재의 마지막 확장처럼 느껴져요.
  • “꽃주름 버는 소리”는 청각화(의성/감각전이)입니다. 원래 주름은 만지고 보는데, 여기서는 소리가 납니다.
    →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 교실의 숨소리, 혹은 글꼴이 ‘활자’로 출력될 때의 기계음까지 겹쳐 들리게 해요. (의도적으로 다층적)
  • 마지막 행 “꽃잎활자”는 거의 **작품의 발명품(신조어)**입니다.
    활자 = 차갑고 규격화된 인쇄물이라는 통념을 깨고, 활자를 **꽃잎(살아 있는 개별성)**으로 바꿉니다.
    → 손글씨가 폰트가 되면 오히려 ‘표준화’될 법한데, 이 시조는 반대로 표준화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생기를 강조합니다.

이 시조가 잘 만든 “큰 장치” 5가지

  1. 확장 은유(전편을 관통)
    글씨(씨앗) → 뿌리(삶) → 줄기(서사) → 꽃(글꼴/활자).
    시조 3장이 마치 식물의 성장 단계처럼 진행됩니다.
  2. 어둠/물/눈(배움의 메커니즘을 한 세트로 압축)
    무지·침묵(어둠) 속에서 배움(물)이 오르고 각성(눈뜸)이 일어납니다.
    → 문해를 “지식 습득”이 아니라 “생명 현상”으로 보여줘요.
  3. 몸의 리얼리티를 삭제하지 않음
    “불거진 손끝 마디마디”, “남은 숨” 같은 표현이 감동을 ‘미화’가 아니라 존엄으로 올립니다.
  4. 감각의 교차(공감각)
    어둠 속에서 물이 오르고, 꽃주름이 “소리”를 내고, 삶의 줄기가 “향기”로 감깁니다.
    → 글씨가 보는 것을 넘어 살아 움직이는 것이 됩니다.
  5. ‘개인 서사’가 ‘공적 기록’으로 넘어가는 결구
    문해교실의 한 사람 손끝에서 시작한 것이 “칠곡 할매체”라는 공유 가능한 활자로 피어납니다.
    → 늦게 배운 글이 “나만의 기쁨”을 넘어 사회가 읽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순간.

심사평의 “내간체”가 왜 딱 들어맞는가

심사평은 이 작품을 “내간체의 그림 같은 작품”이라 했는데, 내간체는 본래 부녀자들 사이에서 오가던 편지글 서체를 가리키며, 정형화된 궁체와 달리 자유롭고 대담한 흘림(흘림체) 성격이 있다고 설명됩니다.
이 시조가 2장에서 굳이 “흘림체”를 전면에 세운 이유가 여기와 맞물립니다.

  • 규범적 ‘정자’가 아니라 삶이 새어 나오는 흘림,
  • 공적 문서의 글씨가 아니라 사적인 편지의 글씨,
  • 그래서 “할매체”가 단순 폰트가 아니라 **삶의 편지(서사)**로 느껴지게 하는 것.

(보너스) 당선소감과 작품의 내적 연결 2줄

당선소감에서 본인은 “천년 문학의 강줄기”에 한 방울이 되겠다고 말하는데, 시조 1장에서 이미 “어둠 속에서 물이 올라 눈 뜬 시간”을 썼죠. 즉, **물의 이미지(배움/문학/흐름)**가 작품과 소감에서 서로 호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