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방아쇠 수지 / 최애경

<당선작>
방아쇠 수지 / 최애경
검지를 올려놓은 방아쇠를 당긴다
돋보기 쓴 총알이 과녁을 찾는 동안
불거진 힘줄 사이로
낯선 이름 박힌다
수선실 조명 아래 물 빠진 상표들
손가락 딸깍딸깍 맞접힌 한 평 햇살
깡마른 실 꾸러미가 땀을 따라 같이 뛴다
실밥 푼 얇은 오후 입에 문 졸음 한 올
주름을 당길 때마다 굽어지는 손가락
약속을 놓을 수 없어
펼 수 없는 순간들
*방아쇠 수지:손가락을 펼 때 방아쇠를 당기는 듯한 저항감을 느끼는 질환
<당선소감>
"경이로운 순간 더 자주 만나게 정진"
동네 야산을 자주 오릅니다. 어떤 날은 평소와는 다르게 내려오던 길로 산을 오를 때가 있습니다. 마지막은 내리막이라 기분 좋게 산행이 끝내던 길을 초입에서 가파른 경사로 만납니다. 그럴 때면 껍질이 반지르르하고 늠름한 소나무의 옆구리에 보이지 않던 깊은 옹이가 보입니다. 익숙한 풍경인가 싶었는데 찬찬히 보면 낯설기도 하고, 거기 서 있는 나무며 이름 모를 풀들에 스쳐간 상처들도 보입니다. 산을 내려올 때면 시의 길이 이러하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학창 시절에 배운 고시조의 가락과 편안한 호흡이 참 좋았습니다. 시어는 간결했지만 사유는 깊었습니다. 현대시조를 배우면서 시조라는 단정하고 품격 있는 형식 속에 흩어진 생각들을 어떻게 다듬어 넣을까를 무척 고민했습니다. 참 많이 더듬거렸고 넘어졌지만 언젠가는 시조가 제게 손을 내미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오늘처럼 말입니다.
눈치 빠른 아이에서 배려하는 어른으로 살아오는 동안 오래 눌린 말들이 하나씩 올라와서 미리 자리 만들어 비워 놓은 듯이 꼭 맞는 시어가 되는 환희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시조가 나에게 주는 경이로운 순간과 더 자주 만나도록 더 많은 시간을 헤매고 내 안의 부끄러움과 마주하겠습니다.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아직 덜 여문 제 작품을 뽑아주신 <부산일보>와 심사위원님께 마음 담아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언제나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되어준 문우님들 감사합니다. 엄마로서 온전하게 있어 주지 못하고 항상 무엇인가에 도전하느라 허둥댔지만 꿈을 잃지 않으면 결국에는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 줄 수 있어 기쁩니다. 언젠가는 딸의 시집을 읽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와, 혼자가 아니도록 곁에서 따스하게 다독여준 소중한 가족들과 이 기쁨을 함께하겠습니다.
● 대구 출생, 2025 중앙일보 신춘 시조 대상, 2023 노산시조문학 입상, 2023 청풍명월 입상.
<심사평>
소시민이 지켜낸 ‘약속’의 무게 '확장'
신춘문예에 작품을 투고한 예비 작가들의 설렘과 떨림은 고스란히 심사위원에게도 전달된다. 거기에 기대를 더하여 시조를 읽었다.
신산한 삶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은 작품이 많이 보였고 신세대나 청소년의 미래를 염려하는 작품, 급변하는 현실을 다룬 작품 또한 눈에 뜨여 시조의 확장을 가져온 점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다양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도식화된 주제에 머무르는 작품과 형상화가 덜 된 작품,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 작품, 시조의 틀 안에 생각을 가둔 작품 등은 아쉬웠다.
‘가자미 이불’ ‘뚫다, 겨울 고립’ ‘불개미의 날개’ ‘바람이 번지점프 할 때’ ‘낙타, 갈래 말에 대한 고찰’ 등은 활달한 생각을 자신만의 체험으로 녹여 감동과 깊이를 더한 작품이다. 신선한 비유와 세밀한 묘사, 현 세태에 대한 비판의식, 형상화의 미학적 완성도, 개성적인 말의 부림에서 각각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함께 투고한 작품의 수준이 고르지 못하고 시조가 가진 운문으로서의 성격을 잘 소화하지 못한 점,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고 주제를 성급히 드러낸 점 등에서 내려놓았다.
당선작 ‘방아쇠 수지’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방아쇠 수지’의 이미지가 수선인의 삶에 잘 투영된 수작이다. 장과 장을 긴장감 있게 이끌어 가며 첫수에서 셋째 수까지 독립성을 유지하되 유기적인 관계를 끝까지 놓지 않은 작품이다. ‘검지’에서부터 ‘낯선 이름’ ‘물 빠진 상표’ ‘땀’ ‘약속’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어휘의 선택은 진실성을 담보하고 오랜 시간 작품을 갈고 닦은 흔적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방아쇠 수지’로 대변되는 소시민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를 향해 잔잔하지만, 단단한 어조로 말하고 있어 감동이 깊다. 개인적인 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약속’의 무게를 그려내 사회성까지 확장한 점을 높이 샀고 같이 응모한 작품 또한 당선작과 어금버금했다.
신춘문예에 응모할 때의 다짐은 곧 시조와의 약속이다. 부디 평생 시조와 함께하는 훌륭한 시조시인이길 희망한다.
심사위원 : 정희경 시조시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제목(병명)이 곧 형식이 되는 시조
방아쇠 수지는 손가락을 펼 때 걸리고, ‘딸깍’ 튀듯 당겨지는 저항이 생기는 질환이죠. 이 시조는 그 증상을 **리듬(딸깍딸깍)**과 **이미지(방아쇠/총알/과녁)**로 바꾸어, 시조의 3장 구조를 “걸림–당김–못 펼침”의 운동감으로 엮습니다.
- 1수: 방아쇠(총/과녁) — 손가락의 통증을 위험한 긴장으로 번역
- 2수: 수선실(조명/상표/실꾸러미) — 노동의 현장과 리듬
- 3수: 실밥 푼 오후/주름/약속 — 결국 펼 수 없는 순간으로 귀결
즉, 병의 메커니즘이 시의 진행 메커니즘이 됩니다.
2) 1수: “검지”는 손가락이 아니라 삶의 스위치
“검지를 올려놓은 방아쇠를 당긴다
돋보기 쓴 총알이 과녁을 찾는 동안
불거진 힘줄 사이로
낯선 이름 박힌다”
여기서 ‘검지’는 단순한 신체가 아니라 노동/책임/정밀함의 상징입니다. 수선인의 손은 늘 작은 단추, 바늘땀, 라벨 같은 “정확성”을 다루죠. 그런데 그 정확성이 ‘총’의 정확성으로 치환됩니다.
- “돋보기 쓴 총알”: 총알이 돋보기를 쓴다는 역설이 탁월해요.
수선실의 돋보기(정밀노동)와 총알(폭력/위험)이 겹쳐지며, 손가락의 움직임이 ‘사소한 움직임’이 아니라 단 한 번의 당김이 결과를 만드는 긴장이 됩니다. - “과녁을 찾는 동안”: 통증이 찾아오는 잠깐의 시간, ‘딸깍’ 걸리기 직전의 공포 같은 예고된 순간.
- “불거진 힘줄”: 노동의 흔적(과로, 반복)을 몸의 표면으로 드러냄.
- “낯선 이름 박힌다”: 병명(방아쇠 수지)이 내 몸에 낙인처럼 새겨지는 순간이에요.
‘이름’은 정체성을 규정합니다. 이 노동자는 어느 날부터 “수선인”이 아니라 “환자”라는 이름을 ‘박힘’으로 얻게 됩니다.
3) 2수: 수선실의 빛과 ‘딸깍’—생활이 리듬으로 굳는 장면
“수선실 조명 아래 물 빠진 상표들
손가락 딸깍딸깍 맞접힌 한 평 햇살
깡마른 실 꾸러미가 땀을 따라 같이 뛴다”
여기서 시는 ‘병’의 이미지(방아쇠)를 ‘생활’로 내려앉힙니다.
- “물 빠진 상표들”: 옷의 브랜드/체면/새것의 권위가 수선실 조명 아래서 퇴색한 채 모여 있어요.
이 공간은 ‘새것의 세계’가 아니라 다 해진 것들을 다시 살리는 세계. - “한 평 햇살”: 수선실은 좁고, 빛은 조각처럼 들어옵니다. 노동자의 삶이 넓은 전망이 아니라 한 평 단위로 잘린 생이라는 느낌도 함께 줘요.
- “딸깍딸깍”: 방아쇠 증상의 소리이면서, 동시에 재봉·가위·손가락 관절의 소리입니다.
중요한 건 이 소리가 ‘통증’인 동시에 ‘일상’이라는 점. 병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생활의 박자가 되어 버린 거죠. - “실 꾸러미가 땀을 따라 같이 뛴다”: 몸과 도구가 한 덩어리로 움직여요.
‘나’가 일하는 게 아니라, 노동이 내 몸을 끌고 뛰는 느낌.
4) 3수: “펼 수 없는 순간들” — 통증의 결말이 아니라 삶의 윤리
“실밥 푼 얇은 오후 입에 문 졸음 한 올
주름을 당길 때마다 굽어지는 손가락
약속을 놓을 수 없어
펼 수 없는 순간들”
여기서 ‘오후’는 얇습니다. 하루가 두껍게 쌓이지 않고, 해진 천처럼 얇게 닳아가요. “졸음 한 올”은 실과 연결되며, 피로가 실처럼 늘어진 상태를 보여줍니다.
핵심은 마지막 두 줄이에요.
- “약속을 놓을 수 없어”: 수선은 대부분 “기한”이 있는 일입니다. 맡긴 사람과의 약속, 생활비와의 약속, 가족과의 약속.
그러니 손가락이 아파도 쉬지 못합니다. - “펼 수 없는 순간들”: 병명은 손가락을 “펼 수 없게” 만들지만, 시는 이를 삶 전체로 확장합니다.
손가락뿐 아니라 삶도 펴지지 않아요.
사정 때문에, 책임 때문에, 약속 때문에—몸을 펴고 쉬는 ‘순간’이 접혀 버립니다.
여기서 비극은 “총을 쏜다”가 아니라 “계속 당겨야 한다”에 있습니다. 방아쇠는 선택이 아니라, 반복의 의무가 됩니다.
5) 이 시조의 가장 큰 미덕: ‘사회성’이 설교가 아니라 촉감으로 온다
심사평에서 말한 “약속의 무게”가 이 작품에서 설교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시가 사회를 말할 때 **몸의 감각(힘줄/딸깍/땀/굽어짐)**으로 말하기 때문이에요.
- 노동은 ‘담론’이 아니라 손가락의 저항감으로 체감된다.
- 책임은 ‘가치’가 아니라 펼 수 없음으로 체감된다.
그래서 독자는 “수선인의 성실”을 칭찬하기보다, 그 성실이 만들어낸 구조적 피로를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6) “방아쇠”의 이중성: 정밀함(돋보기)과 위험(총알)
이 시조는 한 번에 두 세계를 겹칩니다.
- 수선실의 정밀함(돋보기, 실, 주름)
- 폭력의 문법(방아쇠, 총알, 과녁)
이 겹침이 암시하는 건 이거예요:
가난한 노동의 세계에서 작은 실수도 ‘총알’이 된다.
한 번의 실패가 손해배상/고객 불만/신뢰 상실로 이어질 수 있으니, 늘 과녁을 맞추듯 살아야 해요.
그 긴장이 결국 힘줄을 불거지게 하고, 병명을 박아 넣습니다.
7)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손가락의 걸림을 통해, 약속 때문에 몸을 펼 수 없는 삶의 구조를 보여주는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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