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풀이 자라는 날씨 / 이처음

<당선작>
풀이 자라는 날씨 / 이처음
엄마가 주간보호센터에서 자꾸 흐린 날씨를 가져온다
종종거리는 발자국에서 구름이 떨어지며 돌 굴러가는 소리를 낸다
돌멩이 소리는 엄마의 무성한 여름을 가져오는 전조 같은 것
콩잎보다 풀이 더 많은 밭이 따라 들어온다
여름이 다가오는 방향은 안개로 지은 옷처럼 뭉글거리고 흐릿하다
거실이 비구름으로 가득해진다
뭉쳐진 구름은 앞과 뒤를 모르는 사이
식탁 아래 주저앉은 엄마가 풀을 뽑는다
종일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던데 안 피곤해?
때를 놓치면 풀이 동산이 돼요
그 말을 들어서 저녁이 풀씨처럼 떨어진다
동글동글한 불빛이 비추는 손가락 끝에 먼 길
식탁 아래 펼쳐진 이랑과 고랑이 민달팽이처럼 고집스럽게 꾸물거린다
숨이 가빠진 엄마가 방향을 바꾼다
바닥에서 구름이 일어나는 건 봄이 만들어지는 일
공중에 풀 무덤이 생기는 건 여름이 지나가는 일
밭이랑에 바람이 가득해서 식탁 의자가 이리저리 밀린다
계절을 잊은 날씨들이 한 데 붙어 지나간다
여름은 비가 많아
조용히 창문을 닫는다
<당선소감>
"찔레꽃 피우는 계곡처럼 행복해져 시 쓸 것"
어머니에게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통증은 가라앉는 배와 같아서 나도 같이 숨이 차올라 허우적거렸다. 이럴 때 방안은 해가 가득한 한낮에도 차고 어둡다. 붙잡고 견딜 것이 어디 있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심해처럼 가라앉을 때 당선 전화를 받았다. 구명보트 같은 전화를 붙들고 코로 입으로 물을 꺽꺽거리며 어머니와 나는 마주 보고 웃었다. 그리고 함께 울었다.
이른 봄 찔레순이 돋아나면 어린 나는 그것을 꺾어서 오독오독 씹어 먹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면 찔레 뿌리에 꽉 들러붙어 온전히 겨울을 견딘 것들이 내 아랫배에 묵직하게 자리 잡는 것이었다. 그것은 봄볕처럼 달큰하고 숨이 깊었다. 그때부터 나는 가슴속에 계곡을 만들고 찔레순 같은 싹을 하나 키우게 되었다. 겨울밤 긴 허기와 혼자 걷는 여름 멀고 먼 한낮을 견디게 해준, 그것은 시의 영토였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꾼 지 참 오래되었다.
꿈길을 잃어버리고 헤맨 지도 오래되었다.
새벽을 처음 만나는 기분입니다. 기회를 주신 이대흠 심사위원님과 무등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래된 꿈을 다시 꾸게 해주신 박남희 선생님, 김이듬 선생님, 이제 다 왔어요! 꿈길을 함께 걸어주신 나비족장 박지웅 선생님, 모두 감사합니다.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되던 나비족과 동국대 시창작반 문우님들께도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늘 내 편이 되어주는 박용섭 당신께 가슴 벅찬 오늘을 드립니다. 당신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어요. 엄마의 모든 하루를 무작정 응원해주는 박태호, 박재연! 너희들에게 두 배의 기쁨을 보낸다.
햇볕 간지럼에 물결이 걀걀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찔레꽃을 품 안 가득 피우는 계곡처럼 마음껏 행복해져서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1961년 경기 고양 출생 ● 공주교육대 졸업
<심사평>
"숙련된 문학적 수사 능력 돋보여"
'풀이 자라는 날씨'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이 작품의 투고자는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데다가 숙련되었다. 다른 분들이 보낸 몇몇 작품도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다. 삶의 진솔성과 문학적 수사의 운용 능력을 놓고도 오래 고민했다. 부족함이 덜한 작품을 뽑자고 결론 내렸다. '풀이 자라는 날씨'에 방점을 찍은 이유이다.
이번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는 329명의 작품 1천281편이 투고되었다. 최종적으로 검토했던 작품은 '가담'외 2편, '농담을 배웠어요'외 2편, '물냉면'외 2편이었다. '물냉면'외 2편은 언어의 결을 잘 만졌고, 촘촘하게 엮는 솜씨가 좋았다. 또 화자의 아픔이 진솔하게 느껴졌다. 다만 시적 수사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보았다. '농담을 배웠어요'외 2편은 빼어난 시적 문장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시인으로 불려도 될 수준이었다. 언어의 밀도가 고르고, 진술에 힘이 생긴다면 기대할 만하다. '가담'외 2편의 응모작에서는 '웅덩이 스웨터'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시에 대한 기본기가 탄탄했다. 그러나 작품의 완성에는 첨과 더불어 삭이 필요하다. 작품에서 덜어내야 할 것이 있었다.
당선작을 뽑고 나서 무등산을 보았다. 큰 산에는 눈이 덮여 있었다. 설산의 흰 이마에 유독 햇살이 반짝거렸다. 큰 산의 겨울은 길다. 겨울이 가장 오래 머무는 큰 산이라야 봄이 되면 더 많은 것을 피워낼 수 있다. 긴 습작 기간을 거쳤을 당선자에게 겨울이 길었던 만큼 꽃피울 게 많을 거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풀이 자라는 날씨'외 2편은 문학적 흠결이 거의 없다. 하지만 시가 기교에만 그친다면, 그 세계는 작을 것이다. 발을 딛는 땅에 더 밀착한다면 큰 시인이 되리라 본다. 봄의 씨앗은 이미 움트고 있다.
심사위원 : 이대흠 시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시의 중심 상징: “풀”과 “날씨”가 한 몸이다
풀 = 시간/병/기억의 번식
- “때를 놓치면 풀이 동산이 돼요”는 텃밭의 상식이면서, 동시에 돌봄의 공포예요.
조금만 늦으면 감당 불가능해지는 것(증상, 불안, 생활의 무너짐)이 ‘풀’처럼 번져요. - “공중에 풀 무덤이 생기는 건 여름이 지나가는 일”
뽑힌 풀은 죽었는데(무덤), 그 죽음이 계절을 지나가게 하는 조건이기도 하죠.
→ 뭔가를 계속 “치워야만” 하루가 넘어가는 돌봄의 리듬이 겹칩니다.
날씨 = 엄마가 ‘몸으로’ 들고 오는 세계
- “엄마가 … 흐린 날씨를 가져온다”는 진술이 핵심이에요.
엄마가 우울하거나 피곤하다는 말이 아니라, 엄마가 어떤 기후를 달고 돌아온다는 말이죠. - 그래서 시 안에서 날씨는 단순 배경이 아니라 실내를 점유하는 물질이 됩니다.
“거실이 비구름으로 가득해진다” 같은 문장이 가능한 이유예요.
2) 장면 흐름: ‘귀가 → 침입 → 노동 → 뒤섞임 → 봉인’
- 귀가 장면
“종종거리는 발자국에서 구름이 떨어지며 / 돌 굴러가는 소리”
- 발자국에서 구름이 ‘떨어진다’는 표현은, 엄마의 움직임이 곧 기상 변화를 일으킨다는 뜻.
- “돌 굴러가는 소리”는 불길한 전조처럼 들려요. (몸의 통증, 관절, 낙상 위험, 혹은 마음속에서 굴러다니는 불안의 소리)
- 거실의 변형(실내가 밭이 됨)
“콩잎보다 풀이 더 많은 밭이 따라 들어온다”
- 생산(콩잎)보다 잡초(풀)가 많다는 건, 일상이 **‘키우는 삶’보다 ‘막아내는 삶’**으로 바뀐 상태를 암시해요.
- 엄마의 강박적/절박한 노동
“식탁 아래 주저앉은 엄마가 풀을 뽑는다”
- 가장 일상적인 가구(식탁) 아래에 밭이 생기고, 엄마는 거기서 풀을 뽑아요.
- 이때 엄마는 지금의 거실이 아니라 자기 몸의 계절/자기 과거의 밭에서 일하고 있는 듯합니다.
- 계절의 혼선(감각의 뒤섞임)
“계절을 잊은 날씨들이 한 데 붙어 지나간다”
- 봄(구름이 일어남)과 여름(풀·비)이 한꺼번에 붙어 지나가는 건,
시간 감각이 섞이고, 하루의 경계가 흐려지는 돌봄의 체감이에요.
- 마지막: ‘창문을 닫는다’—조용한 수습/봉인
“여름은 비가 많아 / 조용히 창문을 닫는다”
- ‘비가 많아’는 설명 같지만, 실제로는 이제 더 이상 더 들어오게 두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읽혀요.
- 크게 울부짖지 않고 “조용히” 닫는다는 점이 중요해요.
화자는 엄마를 막거나 통제하는 게 아니라, 집 안을 버티기 위해 최소한의 경계를 세웁니다.
3) 이 시가 잘하는 것: ‘돌봄’을 감정이 아니라 물성으로 보여준다
이 시에서 돌봄은 “슬프다/힘들다”로 말해지지 않아요. 대신
- 구름(흐림)
- 돌 굴러가는 소리(무게, 불길함)
- 이랑과 고랑(생활이 농사처럼 반복되는 구조)
- 바람 때문에 밀리는 의자(생활의 중심이 흔들리는 감각)
이런 물질적 이미지로 체험되죠. 그래서 읽는 사람도 “이해”가 아니라 “몸으로 느낌”에 가까운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4) 한 줄 평(주제 요약)
엄마가 가져오는 흐린 날씨(통증·기억·습관)가 거실을 밭으로 바꾸고, 화자는 그 번식을 조용히 막기 위해 창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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