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셰어 하우스 / 박은우

<당선작>
셰어 하우스 / 박은우
그늘도 태초엔 빛이었다 신이 자꾸 사람을 빚어
방이 늘어난다
관리자가 저장 강박에 대해 설명한다
누가 열다 만 병조림에서 단내가 흘러나온다
악취는 돌려 쓰는 생활이다
흠집을 무늬로 이해한다 스와핑 스네일링 스너글링 금지
그날그날 달라지는 영역, 새들은 공중을 나눠 쓰다가 둥지를 바꿔 알을 낳는다
산책을 권하는 이가 생긴다면 떠날 때가 됐다는 뜻
일 인분은 양보다 자세의 문제다 거실 벽지는 띠부띠부씰이 아니다 스티커를 한곳에 모아 놓고 보면 어른용 캐릭터 셔츠를 닮았다
바다 뷰는 다음 생에
당분간이다 웰컴티는 우롱차, 여러 마리 길고양이는 모두 누리는 휴식이다 주인 냄새를 지우고 상자 속의 상자 속의 상자가 되는 놀이
정체성은 넣어 두자 약정된 일조량은 하루 늦게 도착하고
신은 그늘을 살피느라 백반증을 앓는다
나는 일반인처럼 웃는 연습을 한다
화분 아래 비상 열쇠와 관람용 바게트빵 방금 건넨 인사는 공동 주방과 어울린다 한쪽 면만 맞춘 큐브와 겹눈 달린 파티션, 휴게실에는
다인용 테이블과 보드게임판 당신이 젠가를 무너뜨려도 빌런 취급하지 않는다 무관심은 너무 많은 눈주름을 가지고 있어서
가지를 볶는 중국식 젓가락이나 포도 물 밴 앞섶에서 취향을 발견하는 것
발견하자마자 못 본 척해 주는 것
발소리마저 죽여 기척을 비인칭으로 변환한다
무음은 누구나 반기는 소음이다 초인종을 누르고 싶다면 짐을 꾸릴 때가 됐다는 신호다 그림자마저 시끄러운
첫발부터 마지막까지 튜토리얼이다 길들지 않는 이곳은
여행자가 꾸린 가방 속이다
<당선소감>
"시집 속 그리운 마녀" 드디어 생긴 문
동화 속 마녀의 손톱은 아래로 굽어 있었다. 그녀는 그믐달과 부엉이 눈알과 어린애 심장을 파내 수프를 끓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혼자 놀다 돌아버린 사람, 누구도 보듬어주지 않아 등이 굽은 사람, 망토를 펼쳐 웃풍을 일으키다 자기 손톱에 찔려 죽는 사람이었다.
마녀를 고아 야금야금 먹어 치웠다. 마녀는 수다쟁이였다. 예쁜 건 몸에 해롭다거나 이름을 묻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줬다. 사랑하면 먹어 치우라고. 너처럼. 너처럼.
끝없이 속살거렸다.
내가 자랄수록 마녀는 멈췄다. 한해살이풀은 정말 한 해만 살고 싶은 식물인지 투명 인간도 망토를 다림질해 입고 싶어 하는지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부터 열고 싶은 마음이 문을 만드는 거라고 믿었다. 기다리면 문이 생길 거라고.
노크 소리가 들려올 동안 닥치는 대로 시집을 읽었다. 찢어진 마녀, 6기통 마녀, 결식 마녀, 연체된 마녀, 반건조 마녀···
시집 속엔 그리운 마녀가 가득했고 난 연필심이 닳도록 그녀를 옮겨 적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는 마녀일 수 있다. 그들을 파먹으며 살아내고 시를 쓴다.
그러니 그대들, 온전하시기를.
어머니의 노환이 깊다. 남은 힘을 돌아가는 일에 쓰시려나 보다. 애잔하게 바라볼 뿐이다.
사랑하는 영채. 새해에도 건강하고 아름답기를.
책장에 꽂힌 셀 수 없는 시인께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나를 호명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부산일보사>에 깊이 감사드린다.
● 충남 온양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니트 디자이너.
<심사평>
뿌리뽑힌 현대인, 그 존재 방식 표현
올해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투고작은 601명의 2506편이다. 신춘문예란 성격을 고려하여 작품의 완성도, 창의적 발상, 사회적 문제의식 등을 선정기준으로 정하고 심사에 임하였다. 그 결과 남호순의 ‘우주설비’, 전병숙의 ‘야간 보안대원 Kim’, 차정희의 ‘항상성’, 전재운의 ‘화해’, 박은우의 ‘셰어 하우스’가 최종 심의 대상이 되었다. 모두 당선작으로 할 만한 작품이었지만, 심사 기준을 고려하여 박은우의 ‘셰어 하우스’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우주설비’는 보일러 수리공의 삶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한 점이 돋보였으나, 너무 이미지의 참신함에 치우쳐 사회적 삶이 관념적으로 제시되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야간 보안대원 Kim’ 역시 하층 노동자의 삶을 참신하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는 점이 주목되었으나, 표현의 긴밀성이 떨어지고 의미 전달이 모호해지는 부분들이 아쉬운 점으로 언급되었다. ‘항상성’은 현대적 삶을 살아가는 당대인의 심정을 매우 아름다운 표현으로 담아내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끌었지만, 동시대적 문제에 대한 사색이 빈약해 보이는 점이 약점으로 논의되었다. ‘화해’는 이사가 잦은 현대적 삶의 문제를 탁월한 이미지와 따뜻한 시각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관심을 끌었으나, 시적 전개에서 표현의 긴밀성을 깨뜨리고 있는 부분이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었다.
박은우의 ‘셰어 하우스’는 현대인의 불안한 주거방식을 “악취는 돌려쓰는 생활이다”, “첫발부터 마지막까지 튜토리얼이다” 등 촌철살인의 포착과 깊은 사색을 통해 뿌리뽑힌 현대인의 존재 방식을 잘 표현하고 있고, 시적 발상의 정합성과 표현의 긴밀성을 잘 살려냄으로써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심사위원들은 ‘셰어 하우스’를 당선작으로 정하자는 데 아무런 이의가 없었다. 당선자는 정진하여 한국 시단의 별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 김경복 문학평론가, 신정민 시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제목이 이미 말하는 것: ‘집’이 아니라 ‘시스템’
‘셰어 하우스’는 보통 함께 사는 집이지만, 이 시에서 “집”은 따뜻한 내부가 아니라 규칙·약관·감시·절제로 굴러가는 시스템이에요.
- 방이 “늘어난다” → 사람을 빚으면 방(수용 공간)이 늘어나는 역설
- “관리자”가 등장 → 가족/주거가 아니라 운영·관리·통제의 영역
- “금지”, “약정”, “영역” → 친밀이 아니라 경계와 계약이 핵심
즉, 이 시의 셰어하우스는 공동체가 아니라 임시로 머무는 생존 장치에 가깝습니다.
2) 첫 연: 그늘의 기원과 저장 강박—‘태초’부터 불안한 주거
“그늘도 태초엔 빛이었다 … 방이 늘어난다 / 관리자가 저장 강박…”
“그늘도 태초엔 빛”은 아름다운 문장처럼 보이지만 곧바로 신이 사람을 자꾸 빚어서 방이 늘어난다로 이어지며 분위기가 바뀝니다.
여기서 ‘방’은 포근한 공간이 아니라 수용·격리·분할의 단위예요. 사람을 “빚는” 창조가 곧 “방이 늘어나는” 주거 불안으로 변환됩니다.
“저장 강박”은 개인의 습관 같지만, 셰어하우스에서는 그것이 “설명”의 대상이 됩니다.
즉, 이 공간은 이미 정상/비정상을 분류하고 관리하는 체계예요.
그리고 결정타:
“누가 열다 만 병조림에서 단내가 흘러나온다”
열다 만 병조림은 공유의 취약점입니다. 누군가의 “남긴 것”이 공용 냉장고에서 냄새·단내로 번지고, 그 단내는 곧 “악취”로 이어지죠.
공유는 늘 이런 식으로—따뜻함이 아니라 부패의 위험으로 먼저 감각됩니다.
3) “악취는 돌려 쓰는 생활이다” — 공유의 냉혹한 정의
이 시에서 가장 날카로운 명제 중 하나예요.
- 악취 = 남의 흔적, 남의 생활, 남의 시간
- 돌려 쓴다 = 공용, 재사용, 순환
그러니까 “함께 산다”는 건 종종 “따뜻함의 공유”가 아니라
남의 흔적을 감당하는 기술이 됩니다.
여기서 냄새는 단순한 위생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존재가 내 피부에 닿는 방식(침입/오염/불쾌)의 은유입니다.
4) 규칙의 언어: “스와핑 스네일링 스너글링 금지”
갑자기 영어 비슷한 말들이 나열되고 “금지”가 붙습니다.
이 대목의 효과는 두 가지예요.
- 무슨 뜻인지 완전히 알 수 없게 만들어, 규칙이 생활을 설명하기보다 생활을 위협하게 함
- 소리(발음)가 귀엽고 둥글어서, 금지의 폭력성이 오히려 일상적·유희적으로 포장됨
즉, 이 셰어하우스의 규칙은 “안전을 위한 약속”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긴장시키는 약관이에요.
정체성·애정·몸의 습관까지 “금지”가 침투합니다.
5) “영역”의 시: 그날그날 달라지는 경계, 둥지 바꾸는 새들
“그날그날 달라지는 영역… 새들은 공중을 나눠 쓰다가 둥지를 바꿔 알을 낳는다”
셰어하우스에서 가장 피곤한 건 경계가 고정돼 있지 않다는 점이죠.
- 오늘은 괜찮았던 소리가 내일은 민원이 되고
- 오늘은 허용된 동선이 내일은 눈치가 되고
- 친절의 정도가 매일 달라짐
새들이 공중을 나눠 쓰고 둥지를 바꿔 알을 낳는다는 비유는
“떠돌이”의 생태를 자연화하지만, 동시에 슬픕니다.
정착이 아니라 이동이 기본값이라는 뜻이니까요.
그리고 아주 섬뜩하게도:
“산책을 권하는 이가 생긴다면 떠날 때가 됐다는 뜻”
보통 “산책”은 배려인데, 여기서는 퇴거 신호예요.
친절이 친절이 아닌 세계—이 시의 핵심 정서가 이 한 줄에 들어 있습니다.
6) 생활 팁처럼 보이는 문장들이 사실은 ‘존재 방식’의 지침
“일 인분은 양보다 자세의 문제다”
“바다 뷰는 다음 생에”
‘1인분’이 양이 아니라 자세라는 말은,
이 공간에서 먹는 행위조차 **몸가짐(태도/눈치/속도/소리)**로 평가된다는 뜻이에요.
‘바다 뷰는 다음 생에’는 계급 농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희망의 좌표가 현재 생에서 삭제된 문장입니다.
현실적 욕망(좋은 전망/좋은 집)은 “다음 생”으로 미뤄져요.
7) “상자 속의 상자 속의 상자” — 정체성은 보관되고, 사람은 포장된다
“주인 냄새를 지우고 / 상자 속의 상자 속의 상자가 되는 놀이”
“정체성은 넣어 두자”
‘주인 냄새’는 곧 나의 고유성입니다.
그걸 지우라는 말은, 셰어하우스에서 안전하게 살기 위해선
“내가 나임”을 너무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죠.
‘상자 속의 상자’는 보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더 작은 규격으로 접는 행위예요.
그리고 가장 강렬한 신의 이미지:
“신은 그늘을 살피느라 백반증을 앓는다”
‘백반증’은 피부의 색이 빠져나가는 병이죠.
신이 그늘(주거의 그늘, 삶의 그늘, 사회의 그늘)을 살피다가
자기 몸에서 색을 잃습니다.
이건 “누구 탓”을 묻는 방식이 아니라,
그늘이 너무 거대해서 감당하는 자도 소모된다는 비극적 우화예요.
화자는 그 와중에
“나는 일반인처럼 웃는 연습을 한다”
‘일반인’이 목표가 됩니다.
즉, 이 공간은 화자를 **비일반(어딘가 어긋난 사람)**으로 만들었고,
화자는 그 어긋남을 감추기 위해 “웃음”을 훈련합니다.
공동주거는 공동체가 아니라 사회성 연기 훈련장이 됩니다.
8) 공동 주방의 디테일: “비상 열쇠”, “관람용 바게트”, “겹눈 달린 파티션”
여기서 시는 아주 현실적인 소품들을 던지는데, 전부 불안합니다.
- 비상 열쇠: 늘 열릴 수 있는 방, 사적인 공간의 취약함
- 관람용 바게트: 먹는 빵이 아니라 “보여주는 생활”, 인스타 감성 같은 삶의 전시
- 겹눈 달린 파티션: 칸막이가 프라이버시를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감시의 눈을 늘림
그리고 결정적 문장:
“당신이 젠가를 무너뜨려도 빌런 취급하지 않는다”
젠가는 ‘무너짐’이 내장된 놀이죠.
그걸 빌런 취급하지 않는다는 건 관대함이 아니라,
이곳에서 무너짐이 너무 흔해서 죄가 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무관심은 너무 많은 눈주름을 가지고 있어서”
무관심이 “눈주름”을 가졌다는 건 역설이에요.
무관심은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이 보고 너무 많이 견딘 끝의 표정입니다.
이곳의 윤리는 “관심”이 아니라 “무관심의 기술(배려로서의 모른 척)”에 가깝죠.
9) 이 시의 윤리: “발견하자마자 못 본 척해 주는 것”
“취향을 발견하는 것 / 발견하자마자 못 본 척해 주는 것”
셰어하우스의 관계는 친밀이 아니라 침범을 피하는 합의로 유지됩니다.
- 남의 취향을 알아채는 순간, 그건 약점이 될 수 있음
- 그래서 알아도 모르는 척이 배려가 됨
이게 슬픈 이유는, 우리가 보통 “알아봐 줌”을 사랑이라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사랑의 방식이 바뀝니다.
다가가지 않는 것이 최선의 다정함이 됩니다.
10) 소리의 철학: “무음은 누구나 반기는 소음”
“발소리마저 죽여 기척을 비인칭으로 변환한다”
“무음은 누구나 반기는 소음이다”
여기서 ‘비인칭’은 아주 중요해요.
나는 ‘나’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아닌 기척(비인칭)으로 살아남는 법을 배웁니다.
‘무음이 소음’이라는 역설은,
이 공간에서 침묵조차 “의식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조용해도 눈치가 필요하고, 조용하기 때문에 더 들키는 세계죠.
그리고 또 하나의 퇴거 신호:
“초인종을 누르고 싶다면 짐을 꾸릴 때가 됐다는 신호다”
‘초인종을 누르고 싶다’는 건 관계를 시작하고 싶은 욕망입니다.
그 욕망이 생겼다면 떠나야 한다—
즉, 이 공간은 관계 욕망과 공존하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11) 결말: “첫발부터 마지막까지 튜토리얼” — 삶이 ‘연습’인 채로 끝나는 곳
“첫발부터 마지막까지 튜토리얼이다 … 여행자가 꾸린 가방 속이다”
셰어하우스는 임시 거처이고, 화자는 여행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곳에선 “살기”가 아니라 계속 “연습(튜토리얼)”만 한다는 것.
- 정착의 서사가 아니라 적응의 매뉴얼만 누적됨
- 성장이나 관계의 서사가 아니라 규칙에 맞춘 축소만 반복됨
그래서 마지막 이미지가 완벽해요.
- 집 = 내가 만든 세계
- 이 시의 집 = 누군가가 꾸린 가방 속(임시·압축·이동)
12) 이 시가 붙잡는 동시대 감각 한 문장
“뿌리내리지 못한 삶이 예민한 규칙과 절제된 무관심으로만 유지되는 방식”
—그것을 냄새와 소리와 상자의 이미지로 ‘몸’에 남게 하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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