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가뭄 / 유주연

<당선작>
가뭄 / 유주연
햇볕이 산등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새들은 마른 낙엽 밑으로 고개를 집어넣고 있었다
항아리는 토방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마른 목소리로 누군가를 부르는 사람의 가슴도 조각나고 있었다
대답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새는 그들의 마른 처소에서 울고 사람은 제단 아래에서 멍해지고 있었다
텁텁한 입과 질어진 머리 안팎으로 미처 울음이 되지 못한 슬픔들이 무음으로 울고 있었다
빛은 점점 옅어졌고 대지는 뜨거워졌으나 흙은 짙어지고 퍼즐처럼 갈라졌으나 몸들은 결코 따뜻해지지 않았다
영혼들은 스스로 자기를 먹으며 버텼다
때로 단지 마른 고기와 치즈가 그려진 금빛 액자틀 아래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듯 없는 목소리로 벙어리처럼 호소하고 있었다
햇볕이 산등 뒤로 또 다시 넘어가고 있었다 언제나 완전히 넘어가지 않고 넘어가고만 있었다
가뭄이었다
가뭄이었고
가뭄이었다
새들의 눈물이 낙엽을 적시고 있었다
사람의 모은 손이 신앙을 넘어가고 있었다
결정적 형태가 주어지지 않았다
가뭄이 깊어지고 피가 굳어가고 식량이 가루가 되어가고 있었다
<당선소감>
시가 주는 ‘투명한 부끄러움’… 시를 외면하지 못하게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시에서 위로를 구합니다. 저 역시 제가 보지 않으려던 제 안의 어둠과 마주칠 때마다 시를 찾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에서 ‘위로’로 부르는 그 말이 가리키는 것이 정말로 시의 자리일까요? 위로란 과연 무엇일까요.
캐나다의 정치인이자 사상가 이그나티에프는 한 저서에서 ‘시편’을 인용하며, ‘위로’란 나 자신과 내 삶의 맥락으로부터 한 발 물러나 그 장면을 전체로 다시 보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저 말에 오래 머물게 됩니다. 상황이 그대로더라도 그걸 전체로 돌아볼 정확한 자리가 주어지고 나면,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붙들려 보지 못하던 무언가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자신이 믿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말을 공적으로 해야 할 때, 사람은 그 말과 자기 사이에 놓인 균열, 곧 스스로 온전함(integrity)에서 어긋나 있음을 실은 어떤 식으로든 감지합니다. 다만 그걸 간과하게 하는, 살아가는 일과 맞물린 관성이 상황의 직시를 가로막는다고 여깁니다.
그렇기에 ‘한 발 물러나 전체를 다시 보는 일’은 대개 일정 계기를 필요로 합니다. 격렬히 꿈틀대는 내면과 다소 다른 리듬이 흐르는 곳, 조용한 공원이나 빛이 드는 강가, 혹은 신자가 아니라도 절이나 빈 성당의 낮은 침묵 가운데 놓이는 일 말입니다. 익숙한 흐름이 잠시 멈춘 후에, 비로소 ‘나’는 ‘나’에게 거리를 둘 수 있는 여백을 얻습니다.
저에게 시는, 그 틈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제 안의 희박함을 붙잡게 하는, 커다란 거울의 한 파편과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다른 이의 시로 만나고 저의 시로 표하려는 지점에 설령 제 존재가 영영 닿지 못할 듯하더라도, 시가 깨워 주는 투명한 부끄러움이 저에게 시를 외면하지 못하게끔 했습니다. 제가 시와 맺은 개인적 관계를 언급한 것은, 시를 매개로 한 이 작용이 다른 많은 분들의 체험에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제 안의 ‘저 아닌 무엇’에 관한 믿음과, 제가 그와 끝끝내 완전히 멀어지지만은 않을 것이란 희망. 이 둘의 개별적 증거가 되어 준 이곳의 저술들에-김우창 선생님의 글들을 포함해-한 독자로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여전히 곁을 나누는 주변 분들, 그리움이 된 여러 인연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건네받은 빛으로 눈 반짝임을 잃지 않고, 또 언젠간 건네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유주연(본명 유주영). ● 1988년 전주 출생. 2023년 청색지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심사평>
기후 위기에 경각심 주는 시… 긴 여운과 정교한 묘사 빼어나
2026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응모에는 많은 분들의 참여가 있었다. 가히 문학에 대한 열화(熱火)와 같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적 경향은 서정시가 우세했다. 자연과 계절감, 생활의 서사, 가족과 공유한 경험 등 전통적인 소재가 많았다.
물론 시대적인 현실을 반영한 작품도 눈에 띄었다. ‘인공지능(AI)’ ‘레시피’ ‘시니어’ ‘반려’ ‘행성’과 같은 시어가 활용된 시편이 꽤 있었다. 외따로 떨어져 지내는 시적 화자의 등장이나 산문화 성향은 더 두드려졌다. ‘혼령(魂靈)’의 출현은 요 몇 해 사이에 나타나고 있는 흥미로운 특징인 듯했다. 심사를 하는 내내 시의 글감이 이토록 무궁무진할 수 있나 싶어 감탄했고, 작품 수준의 높이가 한층 고양(高揚)된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우리가 한 편의 시에 대해 거는 기대는 묵은 것을 새롭게 하는 힘을 발견하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심사위원들은 네 분의 작품을 특별히 주목했다.
‘임시 정원’은 함께 투고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식물적인 상상력을 선보여 이목을 끌었다. 이 시는 잠시 동안 자리를 잡은 꽃밭을 시적 화자의 마음에서 한때 꽃피었던 사랑의 감정에 빗댐으로써 그 서정이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꽃밭은 도서관이 들어서면 사라지고 말 테지만, 그곳에 피고 지는 꽃을 통해 ‘너’에 대한 기억을 하나하나 소환했다. 모호한 의미의 시구가 여러 곳에 끼어들어 있어서 아쉬웠다.
‘페르소나’는 영화 촬영의 현장과 기법을 모티프로 해서 ‘나’와 타자와의 경계와 관계를 살핀 작품으로 보였다.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행은 매우 매력적이었지만, 후반부의 진술에는 비약이 있었다.
‘고스트 파일럿’은 시적 화자가 다른 존재에게 “나를 안내하고”, ‘나’를 증명하려는 행위를 통해 ‘나’의 정체성을 끝없이 질문하는 시였다. 시가 묵중했다. 그리고 시종 ‘나’의 큰 고립감이 느껴졌는데, 이 느낌은 시 속의 ‘나’만 갖는 감정은 아닐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나로 갈아입고”라고 쓴 대목에서는 소통과 회피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아가 엿보였다. 반면에 “내가 한 말의 의미가 없는 기준점 앞에서”와 같은 표현은 긴장을 무너뜨렸다. 이 시가 당선작과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음을 밝혀둔다.
숙의에 숙의를 거듭해 ‘가뭄’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우선 동봉한 작품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고르고 오랜 창작의 이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언어를 절제해 여운이 퍼져가도록 공간을 만들면서도 묘사는 묘사대로 정교하고 치밀했다. ‘가뭄’은 이상 기후가 지속되는 동안 발생하는 현상을 나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메마른 날씨가 자연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종교심까지 균열시키는 그 여파에 시의 시선을 모아가면서 이 세계가 다름 아닌 하나의 ‘항아리’와도 같은 곳임을 성찰하게 했다. 사람의 목소리가 무음(無音)이 되고, “식량이 가루가 되어가”는 사태의 제시는 이 시가 의도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적절하고 효과적이었다. 무엇보다 시적 상상력이 인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앞으로 이 분이 선보일 시적 역량을 두텁게 신뢰하게 했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 나희덕·문태준·박형준 시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가뭄〉 읽기: “비가 오지 않는 날씨”가 아니라 “형태가 오지 않는 세계”
이 시의 가뭄은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목소리·슬픔·신앙·몸의 온기까지 말라붙게 만드는 총체적 결핍의 상태예요. 그래서 끝내 “비가 온다” 같은 사건으로 해결되지 않고, **“결정적 형태가 주어지지 않았다”**로 멈춥니다. 구원의 형태(결론/응답/해석) 자체가 오지 않는 가뭄.
1) 장면의 골격: 해가 “넘어가고만” 있는 시간
첫 줄부터 해가 산등 뒤로 넘어가고, 새는 마른 낙엽 밑으로, 항아리는 토방처럼 말라가고—모든 존재가 “안으로 숨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심사평에도 잡히듯, 해가 “완전히 넘어가지 않고 넘어가고만” 있다는 문장인데, 이건 시간의 종료가 아니라 종료되지 않는 소진이에요.
- 해는 지는데 끝나지 않고
- 목소리는 부르는데 대답이 없고
- 슬픔은 울음이 되지 못한 채 “무음”으로 남습니다.
2) “무음의 울음”: 목소리의 실패가 세계를 마르게 한다
시 전반을 지배하는 건 ‘소리’의 부재예요.
- “누군가를 부르는 사람”이 있고
- “대답의 목소리”는 없고
- 슬픔은 “미처 울음이 되지 못한” 채 “무음으로 울”고
- 기도는 “없는 목소리로… 호소”가 됩니다.
즉 가뭄은 물의 부족이기 전에 응답의 부족입니다.
부르면 돌아와야 할 것이(목소리/사람/신/온기) 돌아오지 않는 상태가, 기후처럼 지속되는 거죠.
3) 상징 3개가 시를 묶습니다
(1) 항아리
항아리는 물을 담는 그릇인데, 여기서는 그릇 자체가 말라가는 이미지로 나와요.
→ “세계가 저장하고 보존하는 능력” 자체가 마르는 느낌.
심사평의 말처럼, 이 세계가 하나의 항아리라면, 가뭄은 “안의 것”만이 아니라 “그릇”까지 균열시키는 사건입니다.
(2) 제단 / 기도 / 금빛 액자틀
새는 “마른 처소”에서 울고, 사람은 “제단 아래”에서 멍해집니다.
그리고 “마른 고기와 치즈가 그려진 금빛 액자틀 아래”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장면이 나오죠.
이때 금빛 액자틀은 종교화/성화/정물화를 떠올리게 하고, ‘마른 고기·치즈’는 **생존의 최소 단위(식량)**처럼 보여요.
→ 신앙의 자리(제단)가 위로를 주기보다, 호소가 벙어리가 되는 자리로 전도됩니다.
(3) 퍼즐처럼 갈라진 흙
“퍼즐처럼 갈라졌”다는 표현이 날카로워요.
갈라짐은 파괴인데, 퍼즐은 “맞춰야 하는 형식/의미”를 갖죠.
→ 세계가 부서지는데도, 우리는 그걸 이해 가능한 조각처럼 붙여보려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결정적 형태”가 없다고 못 박아버려요. 퍼즐은 영영 완성되지 않습니다.
4) 반복의 효과: ‘서술’이 아니라 ‘주문(呪文)’에 가까운 확정
“가뭄이었다 / 가뭄이었고 / 가뭄이었다”
이 3연타는 설명을 멈추고 선고처럼 들리게 해요.
앞에서 충분히 이미지를 쌓아 놓은 뒤, 마지막에는 이유를 대지 않고 상태를 고정합니다.
그래서 독자는 “왜 가뭄인가”가 아니라 “가뭄 속에 갇혔다”는 체감으로 들어가요.
5) 마지막 두 줄이 남기는 잔혹한 결론
- “식량이 가루가 되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가루는 ‘부서짐’의 최종 형태예요. 씹을 수 없고, 붙잡을 수 없고, 흩어지는 것.
앞에서 계속 형태/응답/온기가 무너졌는데, 끝내는 **먹고 사는 것(식량)**마저 “가루”로 바뀌며, 생존 자체가 허물어지는 방향으로 닫힙니다.
6) 당선소감과 맞물려 읽기
당선소감에서 말하는 “위로”는 단순한 달램이 아니라 **한 발 물러나 ‘전체를 다시 보는 자리’**라고 하죠.
이 시가 만드는 자리도 딱 그거예요.
가뭄을 “기후위기”로만 환원하지 않고, 목소리의 결핍·기도의 무음·형태의 부재까지 한 화면에 놓아, 독자가 “전체”를 보게 만듭니다. 그때 생기는 감정이 소감에서 말한 **‘투명한 부끄러움’(내가 믿는 말과 나 사이의 균열을 알아차리는 감각)**과도 연결돼요.
즉, 이 시의 건조함은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내부의 무너짐을 들키게 하는 건조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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