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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빗물 / 송이후

 

스님이 처마 끝에 동이를 놓아두었다

장마철 내내 빗물이 고였다

 

나는 새벽예불 전에 그 물을 든다

무겁다

동이를 기울여 세숫대야에 붓는다

물줄기가 끊어지지 않는다

 

처마에서 떨어진 빗방울들이

동이 안에서 한 덩어리가 되어 쏟아진다

열흘 전 하늘이던 것이

지금 내 손목을 적신다

 

나는 그 물로 얼굴을 씻는다

차갑다

이마에 닿는 순간 빗방울의 경계가 사라진다

 

어느 것이 먼저 떨어진 물인지

어느 것이 나중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세숫대야 바닥에 고인 물이

내 턱에서 떨어진 물방울을 받아들인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스님이 마당을 쓸고 지나간다

빗자루 자국이 젖은 흙에 남는다

 

 

  <당선소감>

 

   월정사 템플스테이 새벽의 기억

몇 해 전, 강원도 월정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며 맞이한 새벽을 기억합니다. 어둠이 걷히기 전, 법당 쪽에서 먼저 목탁 소리가 깨어났고, 그 뒤를 따라 공기와 냄새가 달라졌습니다. 젖은 전나무 냄새, 장독대 쪽에서 올라오던 된장의 숨,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던 빗소리. 누군가는 마당을 쓸고 있었고, 누군가는 대야에 물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몸이 먼저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빗물’은 그때 본 한 장면에서 출발한 시입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던 물, 동이 속에 모이던 빗방울, 예불 전 잠시 찾아오는 적막. 하늘에서 온 물과 내 얼굴을 스쳐 내려온 물이 한 그릇 안에서 뒤섞이는 순간, ‘나’와 ‘바깥’을 가르는 선이 잠시 흐려지는 듯했습니다. 그 틈을 오래 들여다본 시간이 이 시가 되었습니다.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 새벽의 마당이었습니다. 젖은 흙 위 얇은 빗자루 자국, 물기를 머금은 돌계단, 법당을 향해 조용히 걸어 들어가던 뒷모습들. 서둘러 이름 붙이지 않고, 곧 사라질지도 모를 장면을 한 번 더 바라보는 일이 시를 쓰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문태준 심사위원께 감사드립니다. 곁에서 생활의 무게를 함께 들어준 가족과, “괜찮다”고 말해 준 이들, 이름을 다 부르지 못하는 스승과 선후배, 친구들의 눈빛, 그리고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한 사람에게도 이 물 한 그릇의 마음을 조용히 건넵니다.

빗물은 잠시 머물다 흘러가고, 마당은 다시 마릅니다. 시도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제 삶과 문장에 스며든 작은 물기로 이 시간을 기억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거창한 세계를 말하기보다, 작게 젖어 있는 것들을 먼저 바라보는 시를 쓰고자 합니다. 이 빗물을 제게까지 흘려 보내 주신 모든 인연께 합장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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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구별을 무화하는 불교적 상상력

올해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응모한 작품들을 읽었다. 풍성했고, 마음 시편이라고 이름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불교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거나 장엄한 서사를 시의 짧은 형식에 다 담아내려는 시편들은 그 음성이 명료하고 대범했으나 그에 못지않게 세공이 덜 된 듯 표면이 거칠었다. 자연 서정과 우주 감각, 그리고 일상에서 발견한 불교적인 가치를 노래한 작품들에서 높은 완성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빗물’, ‘돌탑의 시간’, ‘살구 목탁’, ‘폭우’, ‘목탁의 숨’ 등의 작품에 주목했고, ‘목탁의 숨’과 ‘빗물’ 두 편을 두고 마지막까지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다.

‘목탁의 숨’은 고요를 바라보는 사유가 깊었다. 하나의 사물에서 발생한 소리와 그 소리가 가라앉은 후에 다시 자리를 잡는 고요를 절제된 언어로 노래했다. 울림과 침묵, 현출(現出)과 숨김, 개폐(開閉), 앞면과 뒷면 등 대척되는 것을 따로 떼어놓지 않고 유기적으로 통찰하는 안목은 웅숭깊었다. 다만 동일한 시어의 반복은 아쉬웠다. 그리고 “오래된 고요를 일으킨다”라고 쓴 대목에서 그 의중이 모호해지는데, 오래된 고요를 일으켜 세운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고요가 시작되게 한다는 의미인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오래된’이라는 시어를 우리가 늘 습관적으로 쓰는 식으로 고요와 연결시킨 것이 아닌가 싶었다.

올해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으로 ‘빗물’을 선정했다. 이 시의 단초는 비교적 단순한 일에 있지만, 그 일을 펼쳐놓고 바라보는 마음의 영역은 상당할 정도로 넓다. 스님께서 동이를 놓아두어 처마로부터 떨어지는 빗방울을 받아 모으시고, 시적 화자는 그 물을 세숫대야에 쏟아붓고서 세수를 한다. 물에 대한 구별이 없다. 처맛물과 세숫물을 나누지 않고, 동이에 담겨있는 과거의 물과 세수를 하는 지금의 물과 하늘의 비구름이 될 내일의 물을 간별하지도 않는다. 깨끗한 물과 허드렛물의 차이도 없다. 스님의 일과 시적 화자의 일도 갈라놓지 않는다.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장맛비에 ‘젖은 흙’이 ‘빗자루 자국’을 제 몸에 받아들여서 비록 잠시 흔적은 남겠지만 결국 하나의 몸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융화를 본 것일 텐데, 이런 시안(詩眼)은 앞으로 창작할 불교시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갖게 한다. 정진을 거듭해서 불교시의 일신을 이끌어주길 바란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 문태준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핵심 정서·상황

장마 동안 모인 빗물을 새벽예불 전 떠다 세수하는 한 순간이, ‘하늘-물-몸-마당-흙’의 경계를 지우는 체험으로 확장됩니다. 결말은 거창한 깨달음의 선언 대신, 젖은 흙 위 빗자루 자국처럼 “잠깐 남았다 사라질 흔적”으로 가라앉아요.


2) 화자/시점/거리감

  • 화자는 “나”지만 감정 과잉이 없고, 관찰자에 가깝습니다.
  • **감각 보고(무겁다/차갑다)**만 짧게 찍어 넣고, 의미는 독자 쪽으로 흘려보내죠.
  • ‘스님’은 교훈을 말하는 인물이 아니라 **리듬(수행의 일상)**을 제공하는 존재로 서 있습니다.

3) 행별 세밀 해석

(1) “스님이 처마 끝에 동이를… / 장마철 내내 빗물이 고였다”

  • 시작이 ‘나’가 아니라 스님-처마-동이인 게 중요해요. 주체(나)의 의지가 아니라, **시간과 환경(장마)**이 먼저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내가 들어옵니다.
  • 동이는 “모으는 그릇”이기도 하지만, 불교적으로 읽으면 **마음을 담는 그릇(그릇됨/수용)**으로도 비쳐요.

(2) “나는 새벽예불 전에 그 물을 든다 / 무겁다 / … 물줄기가 끊어지지 않는다”

  • “무겁다”는 단순 감각이면서도 이 시의 역설을 여는 열쇠예요.
    • 빗방울은 가볍지만, ‘장마철 내내’ 모이면 무거운 덩어리가 됩니다.
    • 이건 곧 ‘작은 것들이 쌓여 형성하는 삶/업/시간’의 감각과 닿아요.
  • “끊어지지 않는다”는 단지 물리적 흐름 묘사가 아니라, 시간의 연속성을 촉각으로 보여줘요. (열흘 전 하늘이 ‘지금’ 손목을 적시니까요.)

(3) “처마에서 떨어진 빗방울들이 / 동이 안에서 한 덩어리가 되어 쏟아진다”

  • 여기서 핵심 장치가 나오죠: ‘낱개 → 한 덩어리’
  • 빗방울의 개별성이 사라지고, “한 덩어리”가 되면서 이미 **구별(분별)**이 흐려집니다.
  • 이 다음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선언은, 사실 이미 이 지점에서 준비되어 있어요.

(4) “열흘 전 하늘이던 것이 / 지금 내 손목을 적신다”

  • 이 두 행은 시 전체에서 가장 강한 도약(비약)입니다.
    • 열흘 전이라는 시간 표시가 구체적이라서, 추상이 아니라 정확한 시간의 물성이 생겨요.
    • 하늘(먼 곳, 위, 바깥)이 손목(가까운 곳, 아래, 몸, 안)을 적시는 순간, 바깥/안의 경계가 한번 접힙니다.
  • “손목” 선택도 좋아요. 얼굴보다 더 생활적이고, **일(노동/수행의 일상)**에 가까운 신체 부위니까요.

(5) “나는 그 물로 얼굴을 씻는다 / 차갑다 / 이마에 닿는 순간 빗방울의 경계가 사라진다”

  • “차갑다”는 다시 감각 보고인데, 이 차가움은 단순 온도가 아니라 **‘깨어 있음’**을 강하게 부릅니다. 새벽예불 전이라는 시간과도 맞물리고요.
  • “경계가 사라진다”는 철학적 문장이지만, 앞의 촉각(차갑다) 덕분에 공중에 뜨지 않아요.
  • 그리고 ‘경계’가 사라지는 것은 결국 물의 본성이기도 해요. 물은 섞이고, 분리하려면 도구(구획)가 필요하죠. 즉, 경계란 원래 인위적 선일 뿐이라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6) “어느 것이 먼저… / 어느 것이 나중 것인지 / 구분할 수 없다”

  • 이 대목은 시간의 직선성을 무너뜨립니다.
  • 앞에서 “열흘 전”을 제시했는데, 그 ‘열흘’조차 물 앞에서는 의미가 약해져요.
  • 불교적으로는 무분별(분별심의 멈춤), 혹은 ‘나’의 판단이 붙는 순간을 내려놓는 수행의 한 국면처럼 읽힙니다.

(7) “세숫대야 바닥에 고인 물이 / 내 턱에서 떨어진 물방울을 받아들인다 /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 “받아들인다”는 시의 태도를 정확히 말합니다. 물은 물을 거부하지 않아요.
  • 하늘에서 온 물과 ‘내 몸을 지난’ 물이 섞일 때, 위계(깨끗/더러움, 전/후, 바깥/안) 같은 구분이 무력화됩니다.
  •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정말 뛰어난 엔진이에요.
    • 물이 떨어지면 원래 소리가 나는데, 시는 “없다”고 말하죠. 이건 물리 현상 부정이라기보다 ‘의미화의 소리’가 멈춘 상태를 가리키는 쪽이 큽니다.
    • 즉, 깨달음을 웅변하는 소리 대신, 침묵으로만 가능한 인식을 선택한 거예요.

(8) “스님이 마당을 쓸고… / 빗자루 자국이 젖은 흙에 남는다”

  • 결말이 “깨달았다”가 아니라 쓸고 지나감인 게 이 시의 품격입니다.
  • 물의 “구별 소거”가 철학으로 끝나지 않고, 곧바로 **일상 수행(쓸기)**으로 착지해요.
  • “젖은 흙”은 받아들이는 세계(대야의 물과 같은 구조)고, “빗자루 자국”은 잠깐 남는 흔적입니다.
    • 물도 머물다 흘러가고, 자국도 마르면 지워지겠죠.
    • 시가 마지막에 ‘흔적’만 남기는 방식은, 당선소감에서 말한 “곧 사라질지도 모를 장면을 한 번 더 바라보는 일”과 정확히 겹칩니다.

4) 이미지·상징 지도

  • 동이: 모음/저장/그릇(마음) / ‘장마철 내내’의 시간 축적
  • 물의 연속(끊어지지 않는다): 시간·인연의 끈 / 한 덩어리로 되는 과정
  • 손목·이마·턱: 하늘 → 몸 → 다시 그릇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경로
  • 세숫대야: 세계/공동의 자리(섞임이 일어나는 장)
  • 무겁다·차갑다: 사유를 붙잡는 감각 앵커(추상 방지)
  • 빗자루 자국: 수행의 흔적/업의 흔적/무상(잠깐 남았다 사라짐)

5) 장치 분석

  • 짧은 단정문(무겁다/차갑다): 명상처럼 호흡을 끊고, 감각으로 독자를 현재로 끌어옵니다.
  • 행갈이의 미세한 “전환”:
    • “열흘 전 하늘” → “지금 내 손목”에서 세계의 축이 꺾이고,
    • “받아들인다” → “아무 소리도”에서 의미의 과잉이 꺼집니다.
  • 직접적인 불교 어휘의 부재: ‘공/무아/연기’ 같은 말을 쓰지 않는데, 오히려 그 덕에 체험이 설득력을 얻어요. (심사평의 “불교적 상상력”도 이 점을 높게 본 듯합니다.)

6) 논지(시의 ‘생각’)의 흐름

  1. 누군가(스님)가 마련한 그릇에 시간이 모인다
  2. 나는 그 시간을 들어올리고(무겁다), 흐르게 한다(끊어지지 않는다)
  3. 하늘이 몸을 적시며 바깥/안이 섞인다
  4. 먼저/나중, 처맛물/세숫물, 깨끗/허드렛물 같은 구별이 흐려진다
  5. 그 섞임은 소리 없이 진행된다(의미의 소음이 멈춤)
  6. 깨달음의 결론 대신, 수행의 일상(쓸기)과 흔적(자국)만 남는다

7) 특히 좋은 대목 3곳

  1. “열흘 전 하늘이던 것이 / 지금 내 손목을 적신다”
    • 시간·공간·신체를 두 행으로 접어버리는 강한 도약.
  2. “이마에 닿는 순간 빗방울의 경계가 사라진다”
    • ‘깨달음’을 설명하지 않고, 감각의 순간으로 제시.
  3. “세숫대야 바닥에 고인 물이 / … 받아들인다 /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 ‘받아들임’의 윤리와 ‘침묵’의 미학이 동시에 완성되는 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