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크린토피아 / 강하라

<당선작>
크린토피아 / 강하라
을지로에는 문이 없어서 문을 열 수가 없다
간판 없는 카페들이 벽돌 속에 숨어 있다
그것은 입구라기보다는 오래된 벽의 단면
우리는 손잡이를 돌린다
손잡이는 돌아가지만 세계는 열리지 않는다
어긋난 시차 속으로
두 몸이 미끄러져 들어갈 뿐
그러면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붉은 실 뭉치를 꺼낸다
그것을 지도라고 불렀다
가지 말아야 할 곳들이 가고 싶은 곳들을 지우며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그런 건 이제 버리고 싶어
나는 손을 끌어 할머니를 의자에 앉힌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맛대가리 없는 빵
씹는다 혀가 아리다는 것은 혀가 있다는 뜻일까
취향은 없고 씹는 동작만 남은 식탁 위에서
할머니는 계속 뒤로 간다
뒷걸음질 치는 것이 유일한 이동 방식인 것처럼
그렇게 스크린 앞으로 도착하고
이민자 여자가 산 정상에 올라 소리지를 때
할머니는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단 한 번도 소리쳐 본 적 없는 목구멍이
비명을 삼키고 있었다
그것은 16:9의 화면 비율 밖으로 밀려난
어떤 울음의 총량 같은 것
그리고 빙하가 조금 녹아내렸다는 증거
나는 그가 잠든 사이 지도를 훔쳐 세탁기에 넣는다
울 코스를 누른다 세탁기가 웅웅거리며 붉은 선들을
뒤섞는다 금지된 구역들이 젖은 휴지처럼 풀어지고
철조망이 녹아내려
이제는 지도가 아니고 축축한 양털 한 뭉치
탈수가 끝난 세탁기 안에서
할머니의 구겨진 몸을 편다
그것을 들춰 업고 가로등 아래를 걷는다
붉은 혈관들이 지도처럼 다시 돋아나고 있었다
달이 잠들 때까지
우리는 어디로든 갈 수 있지
<당선소감>
“평생 짝사랑한 詩, 마침내 손을 맞잡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예측이 돈이 되는 세상에서, 왜 작가들은 도래할 세계를 적중하면서도 그 세계 바깥에 서 있는지. 정답을 직시하면서 왜 빗나가려 하는지. 왜 나는 그들이 지어둔 세상을 동경해 왔는지. 어긋난 시차의 시인들이 부러웠고, 당신들의 길을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뒷걸음질 치다가도 틈만 나면 워터파크의 유속에 떠밀려갔어요. 그것이 바로 내가 원했던 것인 마냥. 하지만 시가 무슨 의미가 있지? 이것이 헛되다는 생각이 들 때면 헛된 시, 헛된 문학, 헛된 음악, 헛된 삶. 그러니 제게 남은 아무것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이건 좀 절절한 사랑 고백 같죠?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슬픔도 그냥 슬픔이 아니라 한 번도 번역되지 못한 슬픔을 쓰고 싶어 펜을 들었습니다. 평생 해온 짝사랑은 모두 여기로 흘러왔습니다. 손을 뻗어 세상에 매달릴 때마다 삼 초도 버티지 못하고 떨어지는데 왜 나는 무릎에 묻은 흙을 툭툭 털면서 다시 일어서려 할까. 왜 자꾸 사랑하고 사람을 믿을까. 시의 힘을 빌려 미친 나를 의문했던 날들. 그 속에서 계속해 힘을 냈습니다. 다시 사랑하기 위해서. 그것도 아주 전속력으로, 최선을 다해. 아마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겠지요.
자신이 왜 힘껏 무언가를 잡으려 하는지 모르겠어서, 자꾸만 손바닥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손을 맞잡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제 손을 잡아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이제껏 감사를 전한 사람보다 앞으로 더 감사할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당신들에게 저의 모든 사랑과 기쁨과 평화를 전염시키겠습니다.
● 서울여대 중퇴, K팝 작사 및 작곡가로 활동 중
<심사평>
“인간 실존의 난경 은유해가는 필치 감탄”
이번 2026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예심 통과작들은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정성을 들임으로써 가독성과 진정성을 키운 시편들, 익숙한 의미론적 완결 구조보다는 끝없이 이어져 가는 환유적 언어 개진이 압도적 장면을 구축하는 가편이 많았다. 오랜 고민 끝에 심사위원들은 시어의 개성과 시인으로서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준 강하라씨의 ‘크린토피아’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크린토피아’는 전문 서비스점에서 세탁기를 돌리는 화자와 먼 옛날 붉은 실뭉치로 지도를 짜던 할머니를 대칭적으로 구성하여 오랜 시간을 사이에 둔 삶의 페이소스를 자아낸 명품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이의 내면적 고통과 그로 인한 실존적 반응의 연쇄를 소환하면서, 삶에 대한 예민한 관찰과 묘사를 통해 인간 실존의 난경(難境)들을 은유해 가는 시인의 필치가 예사롭지 않았다. 낮은 목소리에 얹힌 비명과 울음의 총량이 할머니의 삶으로 이어지면서, 비록 열리지 않지만 지도처럼 다시 돋아나는 삶의 역설적 희망을 건네주고 있다. 탈수가 끝난 세탁기 안에서 할머니의 구겨진 몸을 펴는 화자의 마음이 붉은 혈관처럼 감동으로 나직하게 전해진다.
응모된 다른 작품들도 균질성과 지속성을 예감시키는 수준작이라고 심사위원들은 판단하였다. 그 점에서 당선자의 시편이 가지는 공감의 능력은 폭넓게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좋은 신인을 얻어 마음 깊이 반갑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유채와 무기력’의 슬픔을 해석하는 경쾌하고도 유니크한 정점의 감각, ‘과녁의 뒤쪽은 누군가 빠져나간 모양이다’의 자아 인식의 중층성에 대한 개성적 관찰과 표현도 매우 귀한 사례였다는 점을 부기하고자 한다. 다음 기회에 더 좋은 성취가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응모자 여러분의 힘찬 정진을 당부 드린다.
심사위원 : 안도현, 유성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제목 ‘크린토피아’의 핵심 역설
- 겉뜻은 세탁소/세탁 서비스(현대 도시의 생활 인프라)인데,
- 시 안에서는 **유토피아(utopia)**의 패러디처럼 작동해요.
깨끗해지는 곳이 아니라, 오래된 금지·상처·비명을 “세탁”하려는 곳. - 그런데 세탁의 결과는 “완전한 말끔함”이 아니라 지도 → 젖은 양털로의 변형이죠.
즉, 고통을 지워 없애기보다 형태를 바꿔 들고 나오는 곳이 ‘크린토피아’입니다.
2) 첫 연: “문이 없어서 문을 열 수가 없다”가 말하는 것
을지로에는 문이 없어서 문을 열 수가 없다
손잡이는 돌아가지만 세계는 열리지 않는다
- 을지로는 한국 독자에게 “골목, 공업, 숨은 가게, 간판 없는 입구” 같은 도시 감각을 즉시 호출합니다.
- “손잡이는 돌아가는데 열리지 않는”은
노력/기술/습관은 작동하지만 삶은 바뀌지 않는 상태(무력감)를 정확히 찍어요. - 그래서 ‘입구’는 출입이 아니라 **단면(벽의 절개)**이 됩니다.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상처 단면을 보는 것.
3) 할머니의 “붉은 실 지도”가 상징하는 것
가지 말아야 할 곳들이 가고 싶은 곳들을 지우며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 이 지도는 관광지도가 아니라 금지의 지도예요.
누군가(특히 여성/노동/가난의 삶)가 “가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들로
욕망(가고 싶은 곳)을 덮어버리며 살아온 흔적. - “붉은 실”은
생명줄(혈관), 운명선, 인연, 그리고 상처의 실까지 겹쳐요.
지도이자 몸의 내부입니다.
4) “뒤로 가는 할머니”와 “16:9 화면 밖으로 밀려난 울음”
할머니는 계속 뒤로 간다
…
단 한 번도 소리쳐 본 적 없는 목구멍이 비명을 삼키고 있었다
그것은 16:9의 화면 비율 밖으로 밀려난 어떤 울음의 총량 같은 것
- 할머니의 이동은 전진이 아니라 뒷걸음질.
“유일한 이동 방식”이라는 말이, 한 세대의 삶을 압축합니다.
(참는 법, 물러서는 법, 삼키는 법으로만 이동해 온 삶) - 스크린/16:9는 중요한 장치예요.
현대의 시청각 프레임(영화/영상) 안에 담기지 못하는 울음이 있고,
그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 총량이 할머니의 몸(삶)으로 이어집니다. - “빙하가 조금 녹아내렸다는 증거”는
말해지지 못한 것(얼음)이 조금은 녹아 말/행동으로 흘러나오는 순간.
5) 클라이맥스: “지도를 세탁기에 넣는다”는 폭력인가, 구원인가
나는 그가 잠든 사이 지도를 훔쳐 세탁기에 넣는다
… 금지된 구역들이 젖은 휴지처럼 풀어지고 철조망이 녹아내려
- 화자는 “할머니 몰래” 훔칩니다.
그래서 이 행위는 구원이면서 동시에 침범이에요.
(타인의 고통을 내가 처리해도 되는가?) - 하지만 시는 단정하지 않고, 세탁기의 물리 과정을 통해
“금지/철조망”이 해체되는 장면을 보여줘요. - 중요한 건 결과가 “깨끗한 백지”가 아니라
축축한 양털 한 뭉치라는 점.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 다만 덩어리로 바뀌어 업혀 나옵니다.
6) 결말의 감동 포인트: “구겨진 몸을 편다” → “붉은 혈관이 다시 돋아난다”
탈수가 끝난 세탁기 안에서 할머니의 구겨진 몸을 편다
…
붉은 혈관들이 지도처럼 다시 돋아나고 있었다
달이 잠들 때까지 우리는 어디로든 갈 수 있지
- 세탁기 안의 “할머니”는 사실상
**지도(금지의 실) + 몸(삶의 주름)**이 겹친 이미지예요. - “펴기”는 미화가 아니라, 주름을 주름대로 인정하며 펴는 돌봄.
- 그리고 다시 돋아나는 붉은 혈관=새 지도.
금지의 지도였던 붉은 실이, 이제는 갈 수 있는 길의 혈관으로 바뀝니다. - “달이 잠들 때까지”는 완전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제한된 시간의 해방(그럼에도 가능한 해방)이라 더 현실적이고 아릿해요.
7) 이 시가 특히 잘하는 기술 3가지
- 환유의 연쇄: 문/손잡이 → 실뭉치/지도 → 스크린/비명 → 세탁기/탈수 → 혈관/지도
- 감각의 미세한 전환: “혀가 아리다” 같은 신체감이 ‘존재 확인’으로 넘어감
- 세대 서사를 설명하지 않고 “이동 방식(뒷걸음질)”로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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