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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묘사의 밀도 / 김유진

 

저기 회오리가 있을 것이다 보이는 것에 대한 묘사는 하지 않을 것이다

네 곁에 결코 갈 수 없다 머리카락은 마구 흩날리고 있을 것이다 네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다

보이는 것에 대한 묘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장으로 앞으로도 영원히 네가 있는 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단지 거기 있는 숨의 율동

어떤 공간을 가득 채웠다가 빠르게 빠져나간다

다시 또 숨이 공간을 채웠다가 빠져나가며 주변을 빨아들인다 내게서 나온 숨이 거기 붙어 따라간다 끝까지 보이는 것에 대한 묘사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숨에 붙은 또 다른 숨

떨어져 나간 숨은 외곽에 몸을 맞추고 있다 꽉 차게 몸을 부풀린 숨은

중앙의 밀도가 낮아지고

겹치는 숨으로 인해 꾹꾹 밀려 밖으로 표면을 붙이고 있다

회오리의 가운데가 비어 있다는 정보는 지금 관찰한 결과가 아니다 보이는 것에 대한 묘사는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진술은 가능하다

사실 공기는 움직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보지 않은 것에 대한 묘사를 시작한다 숨은 쉬어지지 않았다 누구도 탄생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끝내 닿지 않았다

보지 않은 것에 대한 묘사는 우리가 공간을 가진 적이 없다고 한다 보지 않은 것들은 우리가 회오리를 거친 적이 없다고 지시한다 보이지 않는 지시는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젖어 있다고 바람이 불고 천이 펄럭이고 떠나는 것들이 늘 있었다고 우리는 소통한다 묘사는 없을 것이다

단절된 분노 예상 환희 격정들이 가득 찼다 비워진다 우리는 품었던 것뿐이다

아니다 우리는 품었던 적이 없다고 묘사는 말한다 우리는 공간의 격동을 거치고 살아남은 적이 없게 된다 기억은 묘사가 아니다

보이는 것을 묘사하지 않기로 한 기억 때문에 우리는 여기 남았다

 

 

  <당선소감>

 

   지옥 같은 곳… 열심히 딴생각해서 된 詩

그러니까 써야 했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주로 울고, 마지못해 씻고, 먹고 먹이고, 후회하고, 보통은 딴생각을 합니다. 먼바다에 데이터센터가 가라앉아 있다는 걸 아나요. 바다를 한없이 뜨겁게 할 윙윙 돌아가는 기계들의 울림을 생각합니다. 데이터센터는 우주로도 나아갑니다. 우리보다 먼저 우리의 정보가 우주를 누비게 된다니. 우리는 이 시공간에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요.

건조한 밤입니다. 종종 사는 곳은 지옥이 됐습니다. 그 고임을 잊기 위해 딴생각을 열심히 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가끔 시가 됐습니다. 제 잘못과 실수로 상처받은 모든 관계에 용서를 바랍니다. 속죄하듯 써가겠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색종이로 벌레를 만들어 소파 위에 올려두곤 했습니다. 느지막이 일어나는 엄마를 놀라게 하고 웃게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팔·다리·눈·코·입과 날개·더듬이가 함께 달린 얄팍한 벌레들. 정전기 때문에 옷에 붙어 어디든 따라오던 조각들. 살다가 가끔 이상한 색종이 벌레 같은 시들을 발견하고 놀라고 웃어주시길 바라봅니다.

가장 소중한 두 아이. 그 생동이 지금 여기에 날 붙잡아 두고 살게 한다는 것 잊지 않겠습니다. 절단을 알려 준 용감한 우리 도마뱀. 떨어질 수 없는 내 가족들. 제게 방향과 길을 주신 김지승, 김승일 선생님. 구혜영, 김근 선배의 선한 가르침. 감사 전하겠습니다.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들 고맙습니다.

불투수성은 댐이 가져야 할 성질입니다. 그렇지만 투수하는 댐과 도시가 있어도 좋을 거 같습니다. 매일 저녁 몸을 코팅하고 잠들면 더는 건조하지 않을 텐데요. 마지막까지 열심히 딴생각을 하게 해 준 원고지 4매의 소감 지면에도 감사합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과정 중퇴


 

  <심사평>

  

  긴장·서정성… 보이지 않던 것 느끼게 해

이번 신춘문예에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를 실감케 할 만큼 많은 원고가 투고되었다. 투고된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그 형식과 수준이 예년에 비해 한층 다양해졌으며, 내용상으로는 ‘나’의 목소리와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이 보다 두드러졌다. 다만 증가한 작품의 양에 비해 시 쓰기와 더불어 ‘나’가 깨어지고 변화되는 그런 힘 있는 시편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 이후 1년여 시간이 흐른 지금, 아마도 우리 사회는 저마다 겪고 있는 여러 문제를 문학에 대한 믿음과 열정으로 점차 상대해 나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심사위원들은 아쉬운 마음보다도 더 큰 기대와 응원의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심사를 마칠 수 있었다.

투고된 5194편 가운데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깃털 털기’ 외 2편, ‘자신감 있는 자신감과 자신감 없는 자신감’ 외 4편, ‘바깥의 미래’ 외 2편, ‘묘사의 밀도’ 외 2편이었다. 저마다의 매력과 깊이를 보여 주는 수작들로, 대표작 이외의 시편들이 대표작만큼의 참신함과 완성도를 보여 주었다면 충분히 당선작으로 선정되었을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묘사의 밀도’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안정적인 문장들이 지성적으로 구성되며 환기하는 긴장감과 서정성은 독자로 하여금 저마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고 또 느끼게 하며, 결국엔 다시금 비우게끔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결과가 ‘고작’ 기억일 뿐이라 하더라도 ‘묘사의 밀도’를 충분히 느끼며 통과한 이들은 그것이 결코 고작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당선을 축하드리며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 이광호, 이병률, 양순모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핵심 갈등: “보이는 것”을 말하지 않겠다는 선언

시의 첫 문장은 거의 ‘헌장’처럼 시작합니다.

  • “저기 회오리가 있을 것이다 / 보이는 것에 대한 묘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회오리는 이미 “있다”가 아니라 “있을 것이다”(추정)로 놓입니다. 즉, 시작부터 확정 대신 가정/가능성으로 출발해요. 그리고 그 가능성을 붙잡는 대신, 곧바로 **묘사(확정의 언어)**를 거부합니다.

이 거부는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시 전체를 지배하는 윤리처럼 읽혀요.

  • “너”에게 “결코 갈 수 없다”
  • “네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다”

‘너’를 규정(성별조차)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단지 정보 부족이 아니라 **“타자를 확정해 소유하지 않겠다”**는 결심처럼도 보입니다. (규정=묘사=소유의 욕망)


2) 회오리 = 관계의 형상 / 닿을 수 없음의 물리학

회오리는 이 시에서 자연현상이라기보다 **두 존재(나/너)가 만드는 ‘사이의 격동’**에 가까워요.

  • “단지 거기 있는 숨의 율동 / 어떤 공간을 가득 채웠다가 빠르게 빠져나간다”
  • “다시 또 숨이 공간을 채웠다가 빠져나가며 주변을 빨아들인다”

숨은 가장 원초적인 생명 징후이면서 동시에 말(발화)의 전 단계예요. 말 이전의 리듬, 목소리 이전의 ‘율동’. 그러니 이 회오리는 말로는 닿지 못하는 관계의 형상입니다.

중요한 건, 여기서 “나”와 “너”는 직접 접촉하지 못하고 숨-숨이 붙고 떨어지는 방식으로만 이어진다는 점이에요.

  • “내게서 나온 숨이 거기 붙어 따라간다”
  • “하나의 숨에 붙은 또 다른 숨”

즉, 몸이 아니라 숨이 접촉합니다. 만질 수 없는 것으로만 이어지는 관계—그게 이 시의 서늘한 친밀감이에요.


3) “밀도”의 언어: 감정 대신 물리학(표면/중앙/겹침)

중반부는 갑자기 관찰 보고서처럼 바뀝니다.

  • “중앙의 밀도가 낮아지고”
  • “겹치는 숨으로 인해 꾹꾹 밀려 밖으로 표면을 붙이고 있다”

이 대목은 감정을 “분노/슬픔” 같은 심리어로 직접 말하지 않아요. 대신 압력, 겹침, 표면, 중심의 공허 같은 물리적 어휘로 바꿉니다.

이게 제목의 의미예요.
감정을 설명(서사화)하는 대신, **감정이 만들어내는 ‘압력과 빈 공간’**을 기술해요. 그래서 시의 정서는 오히려 더 조밀해집니다. (말을 아낄수록, 그 아낀 자리의 압력이 커짐)


4) “회오리의 가운데가 비어 있다”는 문장: 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진술

아주 결정적인 역설이 나옵니다.

  • “회오리의 가운데가 비어 있다는 정보는 지금 관찰한 결과가 아니다”
  • “보이는 것에 대한 묘사는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진술은 가능하다”

보통은 보았기 때문에 말할 수 있죠. 그런데 여기서는 반대로,

보지 않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가 됩니다.

이건 시가 “묘사”를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권력(확정/점유)**로 보는 시선이에요. “관찰한 결과”는 대상을 붙잡아 확정하려는 언어가 될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보지 않음’은 대상을 풀어 놓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사실(정보)**만은 말할 수 있게 해요.

즉, 이 시는 “말하지 않겠다”가 침묵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앎(확정하지 않는 앎)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5) 한 번 더 뒤집기: “사실 공기는 움직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바로 다음 줄이 더 무섭게 흔들어요.

  • “사실 공기는 움직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회오리라는 현상(관계의 격동)이 실재했는지조차 불확실해집니다.
이건 “기억/감정”의 세계와 닮았죠. 우리가 겪었다고 믿는 격렬한 어떤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바뀝니다.

  • 정말 있었나?
  • 내가 만들어낸 것 아닌가?

이 문장 하나로, 앞의 물리학적 묘사는 ‘객관’이 아니라 불안의 형식이 됩니다.


6) “보지 않은 것에 대한 묘사”: 부재의 서사(탄생하지 않음 / 닿지 않음)

후반부는 “보이는 것”에서 “보지 않은 것”으로 넘어갑니다.

  • “보지 않은 것에 대한 묘사를 시작한다”
  • “숨은 쉬어지지 않았다 / 누구도 탄생하지 않았다 / 우리는 끝끝내 닿지 않았다”

여기서 ‘탄생’은 관계의 성립, 혹은 말의 출현(의미의 탄생)일 수 있어요.
결국 이 시의 결론은, 사건이 ‘있었음’으로 굳어지지 못했다는 쪽에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더 아픈 문장이 나와요.

  • “기억은 묘사가 아니다”

기억은 흔히 ‘재현’(묘사)처럼 취급되지만, 이 시는 단호히 갈라놓습니다.
묘사는 확정하고, 기억은 흔들립니다. 묘사는 소유하려 하고, 기억은 남겨둡니다.


7) “우리는 품었던 것뿐” ↔ “품었던 적이 없다”: 감정의 존재마저 붕괴

시가 마지막으로 가는 방식은, 경험의 의미를 지우는 쪽입니다.

  • “단절된 분노 예상 환희 격정들이 가득 찼다 비워진다 / 우리는 품었던 것뿐이다”
  • “아니다 우리는 품었던 적이 없다고 묘사는 말한다”

여기서 묘사는 거의 검열관/판결문이 됩니다.
“너무 격렬했던 감정들”조차 ‘실재’로 인정받지 못해요. 그러니까 남는 건 감정의 내용이 아니라, 감정이 남긴 **공간의 흔들림(격동)**뿐입니다.


8) 마지막 문장: “묘사하지 않기로 한 기억 때문에 우리는 여기 남았다”

결말이 정말 정확해요.

  • “보이는 것을 묘사하지 않기로 한 기억 때문에 우리는 여기 남았다”

보통 “묘사하지 않음”은 잊음으로 가기 쉬운데, 이 시에선 정반대예요.

묘사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잊지 못한다.
(확정해 닫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열린 채 남는다.)

즉, 이 시의 ‘기억’은 완결된 서사가 아니라 미완의 잔류입니다. 회오리의 중심이 비어 있듯, 이 기억의 중심도 비어 있고—그 비어 있음 때문에 사라지지 않아요.


9) 덧붙임: 당선소감과의 공명(건조함/코팅/정전기/데이터센터)

당선소감에 나오는 “건조한 밤”, “몸을 코팅”, “정전기 벌레”, “데이터센터” 같은 소재는 시의 핵심 감각과 이어집니다.

  • 건조함 ↔ 숨(습기) ↔ 젖어 있음
  • 정전기처럼 붙는 조각 ↔ ‘내게서 나온 숨이 거기 붙어 따라간다’
  • 데이터/정보의 우주적 이동 ↔ 존재는 닿지 못하는데 ‘지시’만 떠다님

즉, “묘사”가 사라진 자리에는 지시/정보/흔적이 남고, 우리는 그 흔적으로만 서로를 ‘있었다고’ 말하게 되는 세계—그 감각이 시에도 소감에도 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