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화산리 보물선 / 이수하

<당선작>
화산리 보물선 / 이수하
그가 어떤 파랑도 타고 넘는 보물선을 만든다
담벼락 밖으로 삐져나온 보일러 연통은 좌표
개나리 꽃가지는 방위를 살피는 나침반이다
턱선의 땀방울을 향해 양어깨가 번갈아 오가며
오후를 스패너로 조인다
기름통을 싣고 와 기계실에 연결했으니
골목에서 얻은 메트리스를 선실 바닥으로 삼고
커튼은 돛으로 쓴다
눈썹에 와닿는 입김
문턱에 가는 실금 따라 살얼음이 생긴다
아귀가 맞지 않는 곳에서 갈매기 울음이 새어 나온다
유모차는 뭐 하려고?
엄마를 밀고 가려고
부러진 선풍기는 내놓아야지
거기 푸드덕 새가 살아
의자는 도로 갖다 놔 애들도 올 텐데
발 뻗을 곳이 없잖아
그는 제 식구 찾아가겠다고
삐걱대는 의자를 타고 헌 옷가지들 챙긴다
의자 다리가 구부러진 못을 물고 기우뚱거린다
잠가도 들리는 물 흐르는 소리
쇠 파이프의 긴 그림자가 기울어지는 들보를 받쳐 든다
나무 벌레 구멍 속에서 금가루 같은 햇볕 쏟아내면
갯벼룩이 기어 나온다
벼락바람이 불고
얼룩무늬 골목이 스멀스멀 방문을 밀쳐둔다
<당선소감>
꿈결 속에서도 글귀 하나 쥐고
아버지 산소 가는 길에 보았습니다. 환삼덩굴이 칭칭 감아 오른 나무를. 환삼덩굴이나 사위질빵 덩굴이 나무를 오르며 촘촘한 그물을 짜기에 작은 새들이 비바람과 천적을 피해 살아갑니다.
당선 전화를 받고 그 나무가 내 안에 들어옵니다. 이른 새 떼가 날아오릅니다. 기쁨 반 무거움 반 섞인 어깻숨을 쉽니다.
입구가 긴 병 속이라 생각했던 삶이 시를 쓰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집안일을 하다 물 묻은 손을 닦고서, 길을 걷다 어느 집 담장 밑에 서서 내게 온 문장을 놓칠세라 휴대전화에 메모했습니다. 꿈결 속에서도 글귀 하나 쥐고 잠을 들락거렸습니다.
독이 든 열매를 먹고 비상하는 새처럼 부자유한 상황을 디딤판으로 시를 쓰겠습니다. 돌멩이 하나를 꼭 쥐어봅니다. 어딘가에 굄돌같이 제 시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시인의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저보다 기뻐하실 분들이 떠오릅니다. 내 안으로 침몰하지 않게 칭찬과 격려를 해주신 존경하는 이승하 교수님. 오랜 인연이었던 동작 문학반 맹문재 교수님 끝까지 도움을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기대에 대한 마음의 빚을 조금은 갚은 것 같습니다. 굽은 터널이라 느낄 때 불빛이 되어주신 나비족장 박지웅 선생님과 이경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랜 습작기 동안 좋은 인연으로 만났던 선생님들과 문우들 모두 감사합니다. 미완성 나의 시 당신과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 창작 전문가과정 3년 수료
<심사평>
감춰진 현상 연관 따스한 시선···자연과 사물 신진대사 돋보여
시는 어디까지나 고착화되고 부절절한 이미지와의 싸움이다. 특히 그런 까닭에 깊이도, 유연성도 없는 동어 반복적이고 고정화된 이미지들의 반복과 재현은 창의적이고 자유분방해야할 시적 상상력을 질식시키는 조종(弔鐘)에 불과하다. 단적으로 상투적 세계인식은 우리에게 생각의 자유와 사유의 지평을 제한하는 악마적인 속삭임인 까닭이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구현해나가기에도 바쁜 우리의 존재를 다시금 순응과 훈육의 대상으로 길들여 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디까지나 시는 그동안 우리가 믿거나 당연시해온 것들을 한정 짓거나 상대화하기보다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의 관계 맺기다. 특히 기존의 그 어떠한 담론이나 이념의 틀로 가둘 수 없는, 매우 다양하고 자유로운 언어적 유기체가 다름 아닌 시의 세계이다. 필시 과 에 대한 반복적인 질문과 회의, 의심과 반격이 시의 교두보이자 우리 모두가 기대하는 새로운 시인들의 출발점인 셈이다.
경향각지의 총 220여명의 951편의 응모작들 가운데 최종심에 오른 「럭키」외 2편과 「화산리 보물선」외 2편의 응모작들은 이러한 기준과 원칙에 부합되었다고나 할까. 먼저 「럭키」의 이른바 '세월호 대참사'를 배경으로 한 자유롭고 활달한 재난적 상상력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기존의 주제의식이나 고루한 기법에 얽매이지 않는 점들이 눈에 띄었다, 다만 시적 집중도와 완성도에 아쉬움이 남아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솔직히 과연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시인될 수 있을까, 일말의 우려와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결정한 「화산리 보물선」의 경우 응모작들 가운데 가장 안정되고 차분한 시적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 가상의 '보물선'을 완성해가는 작업의 과정에서 드러나거나 감추어진 일체의 현상을 이리저리 연관시켜 가는 따스한 시선 아래, 각기의 자연과 사물들이 단지 시적 부품이 아니라 엄연한 활물(活物)로 활발하게 신진대사하는 모습이 돋보여 당선작으로 결정했음을 여기 밝혀둔다.
응모자들 모든 분들께 큰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전한다. 아울러 오래 절차탁마의 시간을 보냈을 당선자에게도 큰 축하와 문운의 인사를 전한다.
심사위원 : 임동확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이 시는 ‘보물선 만들기’라는 한 장면을 통해, **가난/추위/노동/돌봄/이주(혹은 탈출)**가 한꺼번에 겹쳐지는 세계를 보여줘요. 핵심은 “배를 만든다”가 아니라, 살기 위해(또는 살려 내기 위해) 세상에 흩어진 것들을 ‘다시 연결’하는 행위입니다.
1) 한 문장 해석
골목의 폐품과 생활 사물로 ‘보물선’을 조립하는 한 사람의 노동 속에서, 결핍의 현실이 생존의 상상력으로 바뀌고, 그 틈으로 ‘떠나려는 마음’이 밀려온다.
2) 제목 ‘화산리 보물선’의 효과
- ‘화산리’는 특정 지명처럼 들리지만(현실의 좌표), 동시에 **거칠고 뜨거운 지층(화산)**을 연상시켜요.
- ‘보물선’은 낭만적 단어인데, 시 속 재료는 연통·스패너·기름통·메트리스·헌옷·부러진 선풍기 같은 생활의 잔해입니다.
→ 제목이 만든 낭만을 본문이 즉시 깨뜨리면서, 오히려 **“낭만은 폐품 위에서만 겨우 가능하다”**는 역설이 생겨요.
3) ‘그’는 무엇을 하는가: 조립 = 생존의 방식
시 초반은 ‘그’의 행동을 거의 공학적으로 묘사하죠.
- “보일러 연통은 좌표 / 개나리 꽃가지는 나침반”
→ 골목의 사물이 항해 장비로 변환됩니다. - “오후를 스패너로 조인다”
→ 시간을 ‘조이는’ 노동. 하루를 버티기 위해 시간을 꽉 죄는 느낌이 있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상상’이 현실을 도피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버티기 위한 기술이라는 점입니다.
4) 이 시의 가장 강한 장치: 사물의 전환(용도 바꾸기)
사물이 계속 “다른 역할”을 얻어요.
- 메트리스 → 선실 바닥
- 커튼 → 돛
- 유모차 → “엄마를 밀고 가려고”
- 부러진 선풍기 → “푸드덕 새가 살아”
- 삐걱대는 의자 → 타고 올라 ‘제 식구’ 찾아갈 발판
이 전환은 따뜻해 보이지만 동시에 처절합니다.
원래 기능을 잃은 사물들이 다른 생명을 부여받는 장면이니까요.
결국 이 시의 ‘보물’은 금은보화가 아니라 **재기능화(살림의 지혜)**예요.
5) 대화가 끼어드는 순간: 가족/돌봄/갈등의 현실
중간의 대사는 시의 톤을 바꿔요. 세계가 갑자기 ‘생활극’이 됩니다.
- “유모차는 뭐 하려고? / 엄마를 밀고 가려고”
→ 보물선은 놀이가 아니라 돌봄의 이동 수단입니다. 엄마가 아프거나 거동이 불편한 상태가 암시돼요. - “의자는 도로 갖다 놔 애들도 올 텐데 / 발 뻗을 곳이 없잖아”
→ 공동체(애들)와 개인(떠나는 준비)이 충돌합니다.
즉, 보물선을 만드는 건 ‘가족을 살리는 구상’이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에겐 자리를 빼앗는 일일 수 있어요.
6) 핵심 정서: 떠나려는 마음 + 떠나지 못하는 마음
후반부가 결정적입니다.
- “그는 제 식구 찾아가겠다고 … 헌 옷가지들 챙긴다”
→ ‘제 식구’는 남겨진 가족일 수도, 흩어진 식구일 수도 있어요. - “의자 다리가 구부러진 못을 물고 기우뚱거린다”
→ 떠남 자체가 불안정합니다. 발판도, 몸도, 생활도 기울어져 있어요.
여기서 보물선은 사실상 탈출선/피난선/이주선의 얼굴을 합니다.
7) 소리와 감각: 이 골목의 ‘균열’이 새는 방식
이 시는 추위를 ‘사실적으로’ 차갑게 보여주면서도, 균열에서 다른 세계가 새어나오게 합니다.
- “문턱에 가는 실금 따라 살얼음”
→ 빈곤의 디테일(난방, 틈) - “아귀가 맞지 않는 곳에서 갈매기 울음이 새어 나온다”
→ 여기서 갈매기는 중요해요. 골목인데 바다의 소리가 샙니다.
즉, 보물선/항해의 세계가 ‘균열’에서 새어 들어와요.
현실(불완전함)이 곧 상상(바다)의 통로가 되는 셈이죠.
8) 마지막 연: 자연과 사물이 ‘살아 움직이는’ 신진대사
결말은 갑자기 생태적으로 열립니다.
- “쇠 파이프의 긴 그림자가 기울어지는 들보를 받쳐 든다”
→ 무너짐을 지탱하는 건 사람만이 아니라, 그림자/사물까지 포함한 전체 환경. - “나무 벌레 구멍 속에서 금가루 같은 햇볕 … 갯벼룩이 기어 나온다”
→ 썩고 부서지는 곳(벌레 구멍)에서 빛이 나오고 생물이 나오죠.
결핍의 틈이 생명의 출구가 됩니다. - “벼락바람… 골목이 스멀스멀 방문을 밀쳐둔다”
→ 마지막은 불안한 개방입니다. 문이 열리는데 따뜻한 초대가 아니라, 바람과 흔들림이 밀고 들어오는 개방이에요.
보물선이 떠나기 직전의 긴장처럼 읽힙니다.
9) ‘보물’은 무엇인가
이 시에서 보물은
- “버려진 것들을 다시 쓸 수 있게 만드는 능력”
- “가족을 밀고 나아가게 하는 이동”
- “균열에서 다른 세계(바다)를 들리게 하는 상상”
입니다.
즉 보물 = 생존의 기술 + 돌봄의 의지 + 탈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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