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달을 밀고 가는 휠체어 / 박락균

<당선작>
달을 밀고 가는 휠체어 / 박락균
물비늘 일으킬 때 주저앉는 여름밤
내려온 눈썹달이 당신 뒤를 밀어주면
휠체어 해안선 따라 바퀴가 걸어간다
당신의 마디마디 달의 입김 스며들어
번갈아 끌어주는 밀물과 썰물 사이
눈동자 물결에 멈춰 어둠을 다독인다
바닷가에서 태어나 뭍에서 사는 동안
파도만큼 출렁여 눈 뜨고 산 새벽시장
발자국 병상에 누워 허공을 걷는 어머니
<당선소감>
부모 세대의 아픔 모두 공감했으면
반평생 몸담은 교직을 떠나 독서하며 소일하다 몇 년 전에 중학교 은사님의 권유로 시조에 입문했고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전통 시가로 정형률을 중시하는 시조는 생각한 것보다 접근하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율격에 맞춰 급변하는 현시대에 맞는 감각을 세워 놓고 언어를 절제하기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우리말을 가꾸려 하는 내 글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풍요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수평선 너머 검은 기운이 넘쳐 날 때 개장을 앞둔 해수욕장은 분주했습니다. 아내와 해변을 천천히 거니는데 구름 사이로 하얀 달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가롭게 일상을 즐기는데 달그림자 속에 어머니 모습이 아른거렸습니다. 하반신 장애로 휠체어 생활하는 어머니를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사시던 우리 어머니는 집안에 도움을 주기 위해 새벽시장에서 물건을 팔아 생활하고 잠시도 편안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어느덧 빠르게 흘러 어머니는 삶을 정리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인생의 즐거움을 맘껏 누리지 못하는 애틋한 마음을 시조에 담고자 했습니다. 부모 세대의 아픔과 그 시대의 슬픔을 역동적인 율격으로 그려 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감동과 여운을 작품에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부족한 제 작품을 선정해 주신 서울신문사 심사위원님께 마음 깊이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시조에 눈을 뜨게 해 주고 문학의 활력을 키워 준 조경선 선생님께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열띤 문학 토론을 하는 시란 동인 여러분, 따뜻한 격려로 시적 용기를 준 아내, 말없이 응원을 보낸 두 딸과 이 기쁨을 누리고 싶습니다.
●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심사평>
시대정신이 바라는 서정 미학
신춘문예 백년은 시조에 특히 기여했다. 우리 고유 정형시에 그나마 주어지는 공적인 격려가 돼 왔다. 묵인되는 당선 공식이 있는 듯 관성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 곁들여서 사회는 다시 격랑 시절이다. 올해 신춘문예의 시조 부문 당선작 ‘달을 밀고 가는 휠체어’는 그런 시대적인 특별함을 포괄하며 미학 본질에 성실하다.
문명 편린으로 애틋함의 표징처럼 여겨지는 휠체어가 심상을 장악하며, 달을 옛시조 음풍농월 풍류 객체에서 생애를 격려하는 주체로 치환한다. 시조 현대화라는 강령을 섬밀한 서술로 작위적이지 않게 확보하는 것이다. 율격에선, 낱말들을 읽는 호흡에 맞춰 놓음으로써 운문성에 유려히 닿는다. 배경의 바다는 모태를 닮아 있으며 심정적인 모국으로 확대되면서, 존재에게 건넨 위로는 곧 시대에 위로가 된다. ‘어머니’ 특질을 투지 여정으로 다룬 충만한 독백은 거대 서사 웅변만큼 위력적이다.
당선권 ‘오래된 선풍기’는 결기에 서정을 더하면서 일상과 시대를 편직한다. 다만 최소화된 어휘가 최대화된 내용을 만드는 장르의 간결미와 종장 특유 극적인 비약은 덜하다. 명료한 깨달음에 미장센의 절묘함을 겹친 역량은 환대될 것이다.
함께 당선권에 든 ‘널배를 밀고 온 달의 잠꼬대’는 긴 이야기성 포만감으로 다섯 수를 이끈 저력이 있다. 운율은 기계적인 초중종장 글자 숫자 맞추기를 극복, 인간 본능이 호응할 리듬을 획득한다. 옛 어투는, 외래어와 신조어로 억지스럽게 현대성을 만듦만큼 주의할 작풍이지만, 연애시 흡인력에 시대 정신을 함의로 포갬은 기예롭다.
시조가 우리 옛것 애착만을 뜻하진 않는다. 동시대성을 갖추며, 큰 우주마저 조그마한 꽃잎에 옮길 멋진 축약 체계여야 한다. 현대 시조 백년에 좋은 자극이던 신춘문예와 함께 금세기적인 르네상스를 성취하길 바란다.
심사위원 : 이근배, 한분순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한 문장 핵심
달빛이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어 주는’ 순간, 바다는 병상과 새벽시장까지 연결되며 ‘부모 세대의 삶’을 위로의 율격으로 되돌린다.
2) 제목이 곧 시의 세계관: ‘달’의 역할 전도
- 전통 시조에서 달은 흔히 풍류·관조·그리움의 배경이죠.
- 그런데 여기서는 달이 “내려온 눈썹달”로 **능동적 존재(주체)**가 됩니다.
- “당신 뒤를 밀어주면” → 달은 감상 대상이 아니라 돌봄의 손이자 추진력.
즉 제목은 미학적 장난이 아니라, 이 작품의 윤리(태도)를 선언합니다:
바라보는 달 → 돕는 달.
3) 초장: 여름밤의 바다를 ‘휠체어의 길’로 바꾸는 전환
“물비늘 일으킬 때 주저앉는 여름밤”
“휠체어 해안선 따라 바퀴가 걸어간다”
- “물비늘”은 달빛에 반사된 바다의 잔물결이지만, “주저앉는”이라는 동사로 인해
- 풍경이 곧 **몸의 상태(주저앉는 하반신/쇠약)**를 닮아갑니다.
- “바퀴가 걸어간다”는 표현이 핵심이에요.
- 바퀴는 걷지 못하는데 “걸어간다”로 바꾸면서,
- **장애(불가능)**를 **서정(가능)**으로 전환합니다.
여기서부터 시는 ‘장애를 설명’하지 않고, 장애를 운문적 운동으로 바꿔버려요.
4) 중장: 어머니의 몸에 스미는 ‘달의 입김’ + 바다의 박자
“당신의 마디마디 달의 입김 스며들어”
“번갈아 끌어주는 밀물과 썰물 사이 / 눈동자 물결에 멈춰 어둠을 다독인다”
- “마디마디”는 관절의 마디이면서, 생의 구간(세월의 마디)이기도 합니다.
- “입김”은 따뜻함·생기인데 달은 차가운 존재잖아요.
→ 차가운 달빛이 ‘입김’이 되는 순간, 위로가 물리적 온도로 환원됩니다.
그리고 가장 시조적인 리듬 장치가
- “번갈아 끌어주는 밀물과 썰물”
→ 어머니를 혼자 밀지 않는다는 감각(세상이 번갈아 돕는다)을 줍니다.
마지막 “어둠을 다독인다”는,
- 상황을 바꾸진 못해도(밤은 밤),
- 감정의 방향을 바꾸는 손길이 있다는 확신이에요.
5) 종장: ‘새벽시장’에서 ‘병상’으로—노동의 기억이 눕는 자리
“바닷가에서 태어나 뭍에서 사는 동안”
“파도만큼 출렁여 눈 뜨고 산 새벽시장”
“발자국 병상에 누워 허공을 걷는 어머니”
여기서 시가 갑자기 현재(해변의 휠체어)에서 과거(새벽시장)로 깊게 잠수합니다.
- “뭍에서 사는 동안” : 바다(모태)에서 떨어져 생계를 위해 육지로 밀려난 삶
- “눈 뜨고 산 새벽시장” : 잠/휴식이 없는 생애.
파도처럼 출렁이는 건 바다가 아니라 고단한 생계의 리듬입니다.
그리고 결정타:
- “발자국 병상에 누워”
→ 발자국은 원래 땅에 남는데, 병상에 “누워” 있어요.
즉 걷기의 흔적이 누워 버린 상태, ‘삶의 운동’이 ‘정지’로 바뀐 순간. - “허공을 걷는 어머니”
→ 이제 걷기는 현실이 아니라 기억/환상/그리움의 운동입니다.
이 종장은 슬픔을 과장하지 않는데도 아주 세게 남아요.
걷지 못함을 ‘허공 걷기’로 표현해, 비극을 비명 대신 은유로 처리하거든요.
6) 이 작품이 주는 정서의 결
이 시조의 감동은 “불쌍함”이 아니라,
- **엄마가 살아낸 리듬(파도/시장/호흡)**을
- 달빛이라는 돌봄의 리듬으로 다시 맞춰 주는 데서 옵니다.
그래서 읽고 나면 비통함보다, 묘하게 ‘어둠이 다독여진’ 느낌이 남아요.
'좋은 글 > 시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5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뜨개질하는 여자 / 박숙경 (0) | 2026.01.28 |
|---|---|
| [2025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어느 모텔 수건의 공식 / 김동균 (0) | 2026.01.24 |
| [2026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1인칭의 저녁 / 이복렬 (0) | 2026.01.19 |
| [2026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프랙털 / 이수빈 (0) | 2026.01.17 |
| [2026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방아쇠 수지 / 최애경 (0) | 2026.01.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