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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뜨개질하는 여자 / 박숙경

 

맞은편 유리창 속 나 같은 여자 하나
구겨진 종이 가방 무릎 사이 세워놓고
안뜨기 바깥뜨기로
남은 오후 짜 놀이나

실마리 움켜잡고 내달리는 두 개의 손
바늘 끝 시선까지 한 코씩 엮어내면
상상을 더하지 않아도
이미 따뜻한 겨울

살다 보면 가끔씩 그럴 때 있기도 해
덜컹 덜컹 흔들리다 저절로 아귀 맞는

까무룩 졸다 깨보니
한 뼘이나 자란 오후

 

 

  <당선소감>

 

   겨울 숲길에서 마주한 고마운 소식

혹시라도 당선 소식이 오면 울어야지 먼저 김칫국을 마시며 세웠던 소심한 계획도 건망증 때문에 잊어버렸지만 작아서 더 여린 사물들의 말을 받아쓸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우체국과 미인개엘 들렀다가 마트에서 저녁 찬거리를 사고 나니 그제야 조기(弔旗)와 근조화환 값을 송금해야 된다는 생각이 났다. 집으로 와서 장 본걸 정리해놓고 다시 ATM기가 있는 곳으로 가서 송금을 한 후 나온 김에 숲길을 걷는 중이었다. 동지를 지나 제법 겨울다운 날씨였으므로 중무장을 한 상태였고 어수선한 시절이라 모르는 번호로 뜨는 전화는 잘 받지를 않는데 '064-' 생소한 번호였지만 왠지 받아보고 싶었다. 한라일보라는 말이 눌러쓴 모자를 뚫고 귓불에 닿는 순간 잠시 멍했다.

십여 년의 습작 후 2015년에 자유시 등단이 있었고 2019년부터 갑자기 시조 생각이 났다.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읽은 시조가 전부여서 막막했지만 정완영 시조작법을 읽으면서 율을 익혔고 율격에 맞춰 한 수 두 수 써보는 일이 꽤나 재미가 있었다.

안팎으로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한 해의 끝자락, 조여만 드는 숨통을 트이게 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한라일보에 감사드리며 기뻐해준 가족들과 저와 제 시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께 깊숙이 숨겨놓은 사랑의 마음을 꺼내 전하며 자주 잊어버려 고생이 많은 나의 손과 발을 토닥여 본다. 가끔이라는 말 보다 자주라는 말이 자주 좋아지는 성탄절 이틀 전날의 일이다.

1962년 대구 군위 출생


 

  <심사평>

  

  평이한 소재에 담긴 따스하고 깊은 울림

이번에 응모된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감정이나 사유가 결여되어 있거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가 부족하여 메시지가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최종적으로 논의된 '뜨개질하는 여자', '호랑거미 건축법으로', '수세미 꽃밭' 세 작품은 각기 다른 주제와 표현 방식으로 현대 시조의 매력을 잘 드러내었으며, 각 작품이 가진 독창성과 시적 상상력이 주목됐다. 하지만 어머니의 손길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과 고단함을 표현하면서도 어머니의 마음을 전달하고 있는 '수세미 꽃밭'과 독특한 제목으로 삶의 방식을 연결지은 '호랑거미 건축법으로'는 독창적이었으나 표현이 다소 평이한 점, 일부 추상적인 표현과 메시지의 전달 방식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반면 뜨개질이라는 평이한 소재를 통해 깊이 있는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뜨개질하는 여자'는 뜨개질 과정에서 따뜻함과 삶의 소소한 순간을 포착해내었다. 또한 복잡한 언어나 화려한 수사 대신, 섬세한 감수성과 간결한 표현을 통해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를 돋보이도록 했으며, 리듬감 있는 구성으로 공감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판단되어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앞으로도 실과 바늘을 사용해 여러 가지 형태를 만들어내는 뜨개질처럼 간결하면서도 독창적인 시조 작품들이 다양하게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사위원 : 고성기(시인), 김희운(시인), 홍경희(시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이 시조는 “뜨개질”이라는 반복 노동을 통해, 흔들리는 삶 속에서도 스스로를 ‘맞춰’ 가는 순간을 아주 조용히 붙잡는 작품이에요. 겉으로는 일상의 한 장면인데, 속에는 “버티는 법”과 “따뜻해지는 과정”이 들어 있습니다.


1) 장면부터 정리해 보기: 어디서, 누가, 뭘 하나?

  • 화자는 버스(혹은 지하철)처럼 흔들리는 이동 공간에 있어요.
  • “맞은편 유리창”은 실제 창문이면서, 동시에 거울이죠.
  • 그 유리창 속에 “나 같은 여자”가 보입니다.
    → 결국 화자 자신을 타인처럼 바라보는 장면이에요.
  • 여자는 종이 가방을 무릎 사이에 세워두고, 뜨개질을 해요.
    → 소지품도 단출하고, 자세도 소박합니다. “남은 오후”를 조용히 “짜 놀”아요.

이 시조의 세계는 크지 않아요. 대신, 작은 행동 하나가 마음 전체를 보여주게 만들어요.


2) 핵심 상징: 뜨개질은 무엇을 뜻하나?

뜨개질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시에서는 이런 의미로 확장돼요.

(1) “삶을 엮는 기술”

  • 실마리, 바늘, 한 코 한 코…
    흩어진 시간을 질서 있게 엮는 행위예요.
  • 뭔가 거창한 해결이 아니라,
    “오늘을” “지금 이 순간을” 한 코씩 처리하는 방식이죠.

(2) “추위를 이기는 법”

  • “상상을 더하지 않아도 / 이미 따뜻한 겨울”
    → ‘따뜻함’이 미래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
    지금 손이 움직이는 순간에 이미 시작돼요.
  • 뜨개질은 결과물(목도리/장갑)이 아니라,
    하는 동안의 온기가 핵심입니다.

(3) “불안정한 세계에서 내가 붙잡는 리듬”

  • 버스/지하철은 흔들리잖아요.
  • 그런데 뜨개질은 “반복”과 “리듬”이 있습니다.
    → 밖의 세계가 흔들려도,
    내 손은 내 리듬으로 중심을 잡는다는 뜻이에요.

3) 구절별 상세 해석

① “맞은편 유리창 속 나 같은 여자 하나… 남은 오후 짜 놀이나”

  • “나 같은 여자”라고 말함으로써, 화자는 자기 자신을 거리 두고 바라봅니다.
    (지치거나, 낯설거나, 혹은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려는 심리)
  • “구겨진 종이 가방”은 소박함도 있고,
    동시에 삶의 구김 같은 뉘앙스도 있어요.
  • “안뜨기 바깥뜨기”는 뜨개의 기본이죠.
    → 삶도 사실 기본의 반복이라는 메시지가 깔립니다.

② “실마리 움켜잡고… 한 코씩 엮어내면 / …이미 따뜻한 겨울”

  • “실마리 움켜잡고 내달리는 두 개의 손”
    → 손이 “내달린다”는 표현이 중요해요.
    느릿한 취미가 아니라 살려고 움직이는 손, 버티는 손입니다.
  • “바늘 끝 시선까지”
    → 시선(마음)도 바늘 끝에 붙어 함께 달려가요.
    즉, 뜨개질은 몸뿐 아니라 정신을 한 점에 모으는 행위예요.
  • “상상을 더하지 않아도”
    → 거창한 희망, 멋진 계획을 덧칠하지 않아도
    지금 여기의 온기가 충분하다는 태도입니다.

③ “덜컹 덜컹 흔들리다 저절로 아귀 맞는”

  • 여기서 작품이 훅 깊어져요.
  • “덜컹 덜컹”은 이동의 흔들림이면서,
    인생의 흔들림(불안, 사건, 상처)도 겹쳐요.
  • 그런데 “저절로 아귀 맞는” 순간이 온다.
    → 인생이 늘 계획대로 맞춰지는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 어긋난 것들이 스르르 맞물리는 때가 있다는 믿음이에요.
  • 중요한 건 ‘억지로’가 아니라 저절로예요.
    (버티고 있으면, 코를 뜨다 보면, 맞춰지는 시간이 온다)

④ “까무룩 졸다 깨보니 / 한 뼘이나 자란 오후”

  • 뜨개질하다 보면 졸기도 하죠.
    그런데 깨고 나니 “오후가 자라” 있어요.
  • 이게 정말 예쁜 결말이에요.
    → 노력의 성취를 과장하지 않고,
    다만 “시간이 조금은 나아갔다”는 사실만 말해요.
  • “한 뼘”은 큰 성공이 아니라 작지만 분명한 진전입니다.
    오늘의 삶이 그렇게 자라나는 거죠.

4) 이 시조가 주는 정서: ‘조용한 회복’

이 작품은 눈물도, 분노도 크게 터뜨리지 않아요. 대신,

  • 흔들리는 공간(삶) 속에서
  • 손이 반복하는 리듬으로
  • 마음을 한 코씩 엮어
  • 어느새 “따뜻해진 상태”에 도착하는

조용한 회복의 방식을 보여줘요.

그래서 심사평에서 말한 것처럼, 소재는 평이한데 울림이 있어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평범한 행위’로 독자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 오히려 더 어렵거든요.


5) 제목을 다시 보면: 왜 “뜨개질하는 여자”일까?

“뜨개질하는 여자”는 특정 인물이라기보다,

  • 우리 모두 안에 있는 버티는 자아,
  • 흔들려도 손을 놓지 않는 생활의 태도를 대표해요.

그래서 유리창 속 “나 같은 여자”는 결국
**‘나를 살리는 나’**로 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