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키, 키, 키, / 한병인
키, 키, 키, / 한병인 계단을 오르다가 놓고 온 키를 생각 한다 키는 어딘가의 구멍에 꽂힌 채로 계단 하나 정도의 높이에 매달려 있을 것이고 키는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고 구멍 하나의 길이로 밖을 가늠하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오늘이라는 높이에 매달려 있는 작은 새 한 마리를 상상한다 새의 감정은 한사코 키와는 무관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구멍을 물고 있는 저 키의 속성이 새의 부리에서 왔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키와 새의 부리가 키, 키, 키, 웃음을 만들어낸다 서로 너무 꽉 맞아 떨어지는 속내를 키는 키 만큼의 길이로 유희하고 전유하는 까닭이다 쪼는 저들의 관성에서 부리는 점 점 더 높은 구멍으로 향하고, 그러나 언제고 다시 풀리는 키와 구멍들, 키를 닮은 수많은 부리들이 구멍을 통해 일제히 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