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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솟대 / 유택상

 

들판은 왜 저리 푸른가


아버지는 늙어서도 솟대이다

들판을 한 평생 지키시다 한 마리 새가 되었다

지적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땅을 지키기 위해

비를 맞고 눈을 맞고

가난한 살림에 몸피가 말라 있었다 

자갈밭을 논으로 만든 옹이는

힘겹게 일궈 온 들판들 언제쯤 아버지 가는 주름살의 

내력을 읽어 낼 수 있을까,

이것만은 지켜야 자식들 산목숨 이어줄 수 있다고 콜록콜록 막걸리 한 사발

가득 마시던 순간, 야윈 갈비뼈 사이에 깊이 앓았던 병이 도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들판에서 자꾸 흔들렸다

빛보다 어둠이 두려웠던 나는 들판에서 얼어 죽지 않으려고

아버지의 깃털을 뽑아 내 몸을 덮었다

겨울 동면에도 흘러 들어온 견딜 수 없는 추위 때문에

조금씩 아버지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한 평생 내내 몸이 젖은 들판은 살과 뼈로 자비를 베풀어 주었다


아버지의 몸이 된 들판은

새의 울음 같은 게 스며 있다

바람 찬 방안에서 비가 새는 걸 막으려고

밤새 솟대가 된 몸

밥그릇에 메아리치는 뜨거운 목숨의 노래

수풀 사이 땅바닥에 낙석처럼 버려진 삽 한 자루

아버지의 몸이다





<당선소감>


 나의 고단함을 녹여준 희망의 글

 

 어두운 그림자를 앞세우고 일터로 나갑니다. 

 언제나 희미한 불빛 아래서 작은 꽃으로 다가오는 것. 그 꽃이 흔들릴 때마다 따스한 시선으로 보내준 향기. 그것은 나의 희망이었습니다. 낮과 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독서는 나의 고단함을 녹여 주었습니다.

 늘 모난 돌처럼 살아온 날들이 녹록하게 생활에 배어나오면 그 표현의 무수한 글자들. 나는 글귀를 통해 삶을 이야기 했습니다. 때론 어둠 속에서 진흙과, 모서리에서 나를 지켜준 시어들이었습니다. 원고를 보내놓고 강가로 나갔습니다. 저무는 노을을 바라보며 갈대의 서걱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갈대는 그곳에서 추위와 함께 겨울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살면서 감사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남편 등 뒤에서 기도해준 아내와 가족 그리고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끝으로 머니투데이 관계자분들과 작품을 심사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심사평>


 가족의 삶도 청춘의 고민도…더 풍성해진 '생활속 경제이야기'

 

 시 부문에서는 전체 수준은 예년과 비슷했지만, 출품작들의 우열이 너무 극명한 느낌이었다. '솟대', '간재미', '아가미 숨과 생활', '트레이더스 개점하다'가 최종 경합을 벌였다. '트레이더스 개점하다'는 시적 전개가 활달하고 주제도 선명했지만 함께 응모한 작품들이 고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아가미 숨과 생활'은 어판장 생선가게에서 젓갈을 담그는 그녀의 일상이 그림처럼 전개되나 '꽃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와 같은 생경한 표현이 시적 긴장을 약화시켰다. '간재미'는 간재미를 무치는 엄마의 모습을 정밀하게 묘사하듯 새콤하게 그려냈으나 마지막 마무리 연의 처리가 하나의 추억으로 전락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솟대'는 아버지를 마을이나 집을 지키는 수호신의 상징물인 솟대로 비유하며 아버지의 일생을 그려낸 수작이다. 솟대와 들판, 버려진 삽 한자루가 모두 아버지의 몸이다. 한 겨울 ‘아버지의 깃털을 뽑아 내 몸을 덮었’던 시인이 말하는 ‘밥그릇에 메아리치는 뜨거운 목숨의 노래’가 가슴 아프다. 이 작품과 소설 부분의 '팬티M'을 놓고 작품의 성취와 완성도를 따진 끝에 우수작으로 결정했다.


심사위원 : 이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