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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혀를 삼키는 나무 / 조경환

 

그를 떠나보낸 건 혀였다

혀가 어른이 된 나무를 스튜디오에 불렀다

머나먼 이국으로 흙 한 줌, 물 한 모금 보자기에 싸여 보내졌다

어른의 모습으로 그가 돌아왔다

-어머니 찾으러 왔어요

1번 카메라 앞에서 젖은 가지를 후드득 턴다

붉은 혀가 더듬더듬 어떻게 살았느냐며 묻는다

허공에 파노라마처럼 나무의 성장과정이 실금처럼 얽히고 설킨다

-누굴 원망한 적은 없는 걸요

심호흡 한번으로 다 풀 수 없다는 듯이 고개 떨군다

-우는 법도 잃어버렸어? 혀가 묻는다

-오는 내내 비가 내렸어요

더 가벼워지지 않으려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날아왔죠

뿌리를 내리기까지 나무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새 뿌리에 새 말이 고인다 새 흙이 덮이고

새 잎이 수북이 쌓인다

혀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꺾꽂이 된 거군요

혀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혀가 3번 카메라를 보는 사이

내가 어미라는 말이 들린다

혀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저음이다

아랫입술 밑에서 나오는 작은 소리다

갑자기 그가 꺼이꺼이 운다

혀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그의 등을 두드린다

어른이 된 나무가 몸속 깊이 혀를 꿀꺽 삼킨다.




  <당선소감>


   "더 크게 집을 짓고 마당도 넓혀 시로 쓰다듬자"


  신문사에 원고를 보낸 후 아내에게 말했다. 무조건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반복해달라고 했다. 아내는 이유를 먼저 묻는 평소의 대화방식과 다르게 “조경환 신춘문예 당선”이라고 내 말을 반복해 말해주었다. 당신 입으로 말해주면 그렇게 될 것 같다고 나는 말했다. 늦은 동지죽을 쑤었다며 이웃 아주머니께서 보내주신 따듯한 동지죽을 막 먹으려는 차에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 손을 잡고 입학식에 갈 때처럼 떨림 반 설렘 반으로 전화를 받았다. 아니 떨림이 더 컸다.

  처음 시를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훗날 한 권의 자작시집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수없이 망설이다가 결국 묵은 습작시를 책상 위에 출력해 놓았다. 모두 왜소해 보이고 보잘것없어 보였다. 습작의 시간도 제대로 갖지 않은 20년 가까운 공백은 컸다.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못도 치고 흙도 덧발라보았다. 그러나 상태는 나아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집을 낼 욕심으로, 처음 시 쓰기의 기초를 놓아주신 전원범 교수님께 보따리를 싸들고 갔다. 책으로 내고 싶으니 눈 한번 맞춰주시라는 부탁을 드렸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근본 없는 자식처럼 아무데도 이름을 올리지 않고 책만 내면 되겠느냐고 책하셨다. 그래서 더 지도해주시기를 부탁드렸다. 그리고 여러 문을 두드렸다.

  시를 쓰면서 내면 깊은 곳을 건드리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생에 대한 감사 또한 상처 일부라도 용광로 안에서 녹아 섞이지 않으면 공허하다. 깊이깊이 숨어버린 상처를 찾아 꺼내놓기도 해야 하고 내 주변의 상처들까지도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출생하는 날보다 나은 날’이라는 마음의 작은 집 하나를 지어두고 살면서 외출도 하고 그리움이나 연민 등을 초대도 하며 살았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외박은 하지 않겠다는 묵시적 규율도 정해두었다.

  그러나 기왕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많은 것을 가둬두지 말자. 풀어 놓자. 그것들에게 자유를 부여하자. 그러면 집을 왕래하는 것들이 스스로 치유되고 나 또한 치유되리라 믿기로 했다. 더 크게 집을 짓고 마당도 넓혀 시로 쓰다듬자. 호호 불어서 치유되는 일상들이 내 주위에 몇은 있게 하자. 꿈을 꾸자.

  꿈을 갖도록 해주시고 펼칠 수 있도록 부족한 저를 북돋아 한 계단 올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광남일보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동인활동으로 어깨를 나란히 해주신 여러 문우들과 선배 작가님들께 감사드린다. 특별히, 도전을 망설일 때, 그리고 여러 고비 때마다 본인들의 창작열을 나에게도 아낌없이 나누어주며 응원해주신 두 분의 동화작가 김명희 선생님, 임성규 선생님과도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글쓰기가 어느 때는 실없어 보일 때도 있었겠지만 화병에 물 갈아주고 딴전부리는 아내의 속마음이 더없이 고맙다. 눈 맞추는 것만이라도 잘 해보겠다며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잘 자라준 딸·아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 전북 고창에출생 
  ●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 명금문학회 회원
  ● 우송문학회 회원
 

 

  <심사평>


  "입양 글감…민족사의 비애 인내의 언어로 전개


  시의 역할과 기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다른 공연예술과 영상예술이 사람들 주변에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와 있기 때문이리라.

특히 핸드폰의 발달로 인해 모든 예술을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게 되자 더 이상 시를 찾지 않게 된 듯도 싶다. 이제는 책을 펴고 앉아 읽으며 즐기던 기존의 고급 예술인 시가 설자리를 잃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투고된 원고는 상당했다.

  어쨌거나 선자는 정성을 다해 읽으며 원고더미를 줄여갔다. 우선 15편의 우수작을 골라낸 뒤 읽고 또 읽으며 엄선을 거듭해 나갔다. 마침내 좋은 작품 7편이 남게 되었다. 이렇게 엄선을 하는 과정에 투고한 사람의 이름도 확인이 되었다. 아는 이름이 있으면 과감하게 떨어뜨렸다. 역차별을 당한 셈이다.

  최종 예심에 오른 시 7편은 김향숙의 ‘달의 계곡’, 김정순의 ‘필사의 밤’, 조수일의 ‘낯선 조문’, 김휼의 ‘악어가 사는 집’, 김현곤의 ‘남간재 구름다리’, 이호영의 ‘모퉁이 찻집에서’, 조경환의 ‘혀를 삼키는 나무’였다. 이들의 시 7편을 중심으로 투고자의 나머지 시들도 거듭 검토한 결과 김현곤의 ‘남간재 구름다리’, 이호영의 ‘모퉁이 찻집에서’, 조경환의 ‘혀를 삼키는 나무’를 남기고 나머지는 옆으로 밀어냈다 그런 뒤 다시 또 남은 3편의 시를 여러 차례 숙독했다. 거듭 숙독한 끝에 우선 먼저 김현곤의 ‘남간재 구름다리’를 제외시켰다. 이호영의 ‘모퉁이 찻집에서’와 조경환의 ‘혀를 삼키는 나무’만 남게 된 것이다.

  이호영의 ‘모퉁이 찻집에서’는 서정이 풍부한 시, 공감이 풍성한 시이다. 하지만 그런 장점과 달리 예의 시와 함께 투고된 시들에는 추상적 관념이 많았다. 이호영의 시적 역량을 가늠하기가 힘들었다는 뜻이다. 읽고 또 읽은 끝에 조경환의 ‘혀를 삼키는 나무’를 2019년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의 당선작으로 뽑기로 했다.

  나머지 시들도 우수하지만 이 시는 ‘머나먼 이국’으로 입양을 떠났던 아이가 ‘어른의 모습으로’ 돌아와 어미를 찾는 방송국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선은 아이를 나무로, 그 나무를 이국으로 떠나보낸 원인을 혀로 알레고리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 그런 재미와 함께 전개되고 있는 민족사의 비애를 인내의 언어로 전개하고 있는 면도 긴장감을 준다. 민족사의 비애와 함께 섬세한 운산이 담겨 있는 조경환의 ‘혀를 삼키는 나무’를 당선작으로 민다.

  당선된 사람에게는 축하를, 낙선된 사람에게는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 이은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