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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기도 / 원기자

 

일면식도 없는 햇살이

평화의 소녀상 앞에 십자가로 세워집니다

아무도 보듬어주지 않는 상처를 온몸으로 끌어안은 할머니가

외줄 위의 어름사니처럼 아슬아슬하게 넘어갑니다

헐렁한 약속을 꿰어보자고

옷고름 풀고 앉아 빈 하늘에 보내는 침묵을

귀 세워 듣는 이 없네요

열세 살 어린 꽃송이

군용트럭에 실려 어둠의 터널로 들어섰지요

속살 드러낸 허공이 이제 막 달거리 시작한 꽃잎으로

휘파람을 불며 달려들던 밤에는

비린내가 사라질 때까지 노래를 불렀지요

그 노랫소리 배경삼아 스스로 껍질이 된

한 여자의 붉은 생, 반듯한 체면을 따라가면

목숨처럼 그러안은 기도가 쏟아집니다

인생이란 단막극을

주연으로 살아본 적 없는 몸, 숨이 멈추면

“미안합니다”

듣고 싶은 그 말 한 마디 염원으로 남기고

십자가 꼭대기 푸른 하늘에 한 줌 햇살이 되리



  <당선소감>


   "-"


  김군자 할머니의 영면 소식이 전해지던 날

  햇살보다 더 환한 모습으로 수요집회에 모인 학생들이

  십자가처럼 오랫동안 평화의 소녀상 앞을 지켰습니다.

  낙엽 같은 당신이 눈에 밟혀 낮선 기억을 더듬어봅니다.

  그날의 슬픔이 오늘 이렇게 큰 기쁨이 되어 부메랑처럼 날아오다니, 꿈만 같습니다.

  어린시절 목이 긴 양말을 문고리에 걸어놓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던 것처럼 우편물을 보내놓고 짧은 오침 시간에도 전화기  를 꼭 쥐고 얕은 잠을 잤습니다.

  그러다 포기하고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당선 전화를 받고 히죽히죽 웃으며 거리를 걷는데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선물처럼 다가섭니다.

  허리가 휘도록 자식들 뒷바라지한 어머니, 당신의 거친 손마디가

  한없이 그리운 날입니다 당신 딸이 시인이 된 것을 알면 두 눈 가득 눈물 글썽일 어머니 그곳에서는 고통 없이 행복하시길 기도할게요.

  처음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적어 보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제 글이 미흡하여 그분들께 오히려 상처가 되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큰 상을 받게 되어 기쁘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듬직한 남편, 사랑하는 딸들

  늘 엄마를 자랑스럽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살아가면서 힘든 일도 기쁜 일도 두 손 꼭 잡고 웃으면서 함께 가보자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원님, 영주일보 사장님과 관계자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영주일보라는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뚜벅뚜벅 걸어보겠습니다.



  ● 강원도 둔내 출생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심사평>


  "-


  좋은 시 한 편에 가닿기까지 숱한 절망과 좌절의 고통을 겪어야만 되는 것 같다. 응모 된 천여 편에 가까운 시를 읽으면서 시를 향한 열의를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띄는 한 편을 찾기 위해 정성스레 세세히 살피면서 읽어 내려갈수록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유행처럼 번져 식상 단계에 다다른, 새로운 감각을 만들려는 시도는 엉뚱한 단어와 억지스런 문장으로 조립된 시들로 넘치고 있었다. 마땅한 자리에 적확히 놓인 단어를 통해서 우리의 생각은 구체화 되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게 된다. 생각의 구체화를 통해서 다른 생각으로의 이행 혹은 비약, 깊어지면서 새 길을 찾을 때 우리는 그러한 시에 매료되는 것이다.

  심사자는 고심 끝에 최종 세 편으로 압축해서 살폈다. 「분보후에」를 쓴 송종철의 시선은 현미경처럼 정밀하다. 사물을 세세히 묘사하는 솜씨 또한 놀라웠다. 응모된 다른 두 편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응모된 작품이 세 편뿐이라서 그런지 세 편 모두 시의 소재가 낯선 것들을 다루고 있다. 소재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 당선작으로 해도 무방할 것 같아 손에서 놓기가 아쉬웠다. 고영숙의 「나를 낳아주세요」는 언어를 비틀어 이미지의 신선함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원기자는 「기도」 외 두 편의 시를 응모했는데 진부한 주제와 제목이 눈에 거슬렸다. 그러면서도 다시 읽게 하는 힘이 있었다. 우리 주변의 인물들에 대한 시인의 속 깊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웃의 비극적 삶에 대해 무관심했던 우리의 시선을 공동체의 삶 속으로 끌어 들이는 울림이 컸다. 그렇다고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어 시적 미학을 놓친 것은 아니었다. 2019년 벽두에 원기자의 발견으로 우리 시단이 조금은 더 풍요로워지길 바란다.

 

심사위원 : 김성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