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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나머지 인간 / 김범남

허름한 옷 입고 재즈만 듣는다. 사랑의 원가에 애착의 비용을 들인다. 가끔 일상은 사람을 멀어지게 만든다. 거리와 집착의 변수에 비례해 망각된다. 비위에 거슬리는 언행으로 허덕거린다.

나머지도 인간이다.

이틀간 잠만 잔다. 수면 부족과 의욕상실증이 만든 침착함이다. 잉여가 없는 느린 속도를 즐긴다. 기억은 꿈을 만들고, 우연은 희망이 된다. 액세서리 지식을 걸치고 동굴로 들어간다. 틈을 타고 빛이 침투한다.

방관자도 나머지 일부다.

역방향과 정방향, 선택을 종용한다. 기울어진 생각으로 방향을 찾는다. 모순이다. 모서리와 모퉁이도 일부가 모여 전부가 된다. 구석을 찾을수록 신경은 예민해진다. 평면의 날카로움이 보인다.

남는 인간이
남은 인간도
나머지다.


  <당선소감>

   "미완성·진행형인 ‘시의 퍼즐'을 찾아서"



  내 버킷리스트 퍼즐 가운데 신기루가 있다. 바로 신춘문예다. 아무리 시도해도 맞추지 못하는 퍼즐이었다.
  돌려도 보고, 뒤집어도 보고, 좌우를 바꿔 보기도 했다. 급기야 색깔까지 칠해 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퍼즐 조각은 엉켜만 갔다. 이 때문에 시는 내게 여전히 헝클어진 미로다.
  시를 쓰는 것은 원점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길을 찾은 것 같다가도 다시 돌아가 미로에서 진짜 길을 모색해야 하는 지난한 반복이 시 쓰기다.
  하지만 고난한 여정에서 벗어날 생각 따윈 없다. 갔던 길과 가지 않은 길의 경계조차 사라지는 순간에 어렴풋하나 모색이 보이리라.
  채울수록 가득해지는 궁기와 허기, 이 비루한 시대의 그늘을 그리고자 한다. 그것이 곧 나와 우리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나머지가 나머지를 안아주는 따뜻한 인문학으로서의 시 쓰기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시에 담을 생각이다.
  부끄러운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전남매일에 깊이 감사한다. 함께 문학을 고민하는 석혈 동인들에게도 마음을 전한다.
  늦은 등단에 만족하지 않고, 일신우일신 할 것을 다짐하고 약속한다. 여전히 내가 쓰는 시의 퍼즐은 미완성이고 진행형이다.

  ● 1973년 광주 출생
  ● 조선대 경영학과 
  ● 현 ㈜더펜 콘텐츠창작소 이사


  <심사평>

  "시를 읽는 사유의 맛, 시인 역량 가늠하기 충분

  얼마나 많은 기다림이 있었을까요. 간절함이란 상자를 설렘으로 열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읽으면서 먼저 심사기준에 못 미치는 시를 상자에서 덜어내었습니다. 억지로 쓴 시, 형식만 시인 시, 엄살과 과장이 넘치는 시, 시적 자유란 이름으로 비문을 마구 늘어놓은 시, 밋밋한 문장을 행만 갈라놓은 시 등이 먼저 상자를 떠났습니다.

  그리하여 ‘나머지 인간’ 외 4편과 ‘지리산 편지’ 외 3편이 남았습니다. 다시 몇 편을 더 뽑았지만, 또 두 편만 남아서 우열을 겨루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가 당선돼도 영광스러운 제1회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겨루다가 선에서 밀려난 작가의 작품은 삶을 진솔하고 감동적으로 읽어내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문장을 명랑하게 다루면서도 의미의 벼릿줄을 놓치지 않는 시였습니다. 그런데 왠지 오십 년 이전의 어느 농촌 마을을 거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신춘문예 응모가 아닌 개인 시집에 들어가면 어색하지 않았을 텐데, 새로운 시와 시인을 기다리는 신춘문예라서 아쉽게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선작으로 뽑힌 ‘나머지 인간’ 외 4편은 행간이 넓고 의미가 깊게 압축된 시였습니다. 언뜻 보면 불친절하지만, 촘촘한 의미의 집을 열고 들어가면 시를 읽는 사유의 맛을 한층 느낄 수 있는 시들이었습니다. 각 연과 행이 직조한 복층 구조는 시인의 역량을 가늠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제 공감과 감동이라는 보편적 예술 가치에도 혼신의 힘을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나 혼자만의 어깨 울음에서 모두의 어깨춤으로 나아가는 시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선에서 밀려난 분들에게는 곧 더 좋은 일이 당도하리라 믿습니다. 거듭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심사위원 : 이정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