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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 김은진

 

“벌써 학교 가는 겨?”

 

“시험 봐.”

“그럼 든든히 묵고 가야 제. 어서 온나.”

속 비면 될 일도 안 된다며 할머니는 서둘러 상을 차려 주었다.

“뭐야, 시험 보는 날 미역국 먹으라고?”

“새벽에 흰둥이가 새끼 낳았다. 아홉 마리나.”

“수학경시대회라고.”

“어때서 그랴? 미역국 먹어도 잘 볼 놈은 다 잘 봐야.”

운이라는 게 있다. 발 떨지 마라, 문턱 밟으면 복 나간다, 밤늦게 손톱 깍지 마라, 베개 세우면 못쓴다고 입이 닳게 말하던 할머니가 시험은 무시한다.

“오늘 잘 봐야 학교 대표로 나가서…”

“흰둥이 미역국 갖다 줘야 것다. 젖이 잘 돌아야 할텐디.”

할머니는 내 말을 자르며 일어났다. 

난 반장과 동점이었는데, 반장이 나보다 주관식 답안 성적이 높아 학교 대표가 됐다. 내가 1점이라도 부족했다면 사나이답게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다. 그리 속 좁은 놈은 아니니까. 결국은 미역국 먹고 벌러덩 미끄러진 거다. 똥개 새끼들 하루만 늦게 태어나지. 

교실 청소를 마치고 집에 가는데 반장이 자전거를 타고 내 옆으로 쌩 지나갔다. 길가에 돌멩이를 주워 힘껏 던졌다. 쨍, 내가 더 놀랬다. 갑자기 반장이 핸들을 돌려 나를 향해 폐달을 밟았다. 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촌 학교 반장에게 서울 맛 좀 보여 주어야겠다. 까짓것 한 판 붙지 뭐. 다가오는 반장을 째려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효석아, 자전거 하이킹 갈래?”

내 앞에 멈춰선 반장이 물었다.

“응?”

꽉 쥐었던 주먹이 풀렸다.

“방학하는 날 준우랑 가기로 했는데, 너도 같이 가.”

반장은 내 눈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으…음….”

“그날 학교 파하고 여기서 봐.”

반장은 핸들을 돌려 페달을 밟았다.



한 여름이 시작되자 햇빛은 훨씬 뜨거웠다. 버스를 놓쳐 걷는데 머리도 아프고 속도 울렁거렸다. 

대문에 막대기가 꽂혀 있는걸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는 밭에 갔나 보다. 흰둥이가 내 발소리를 알아듣고 먼저 달려와 대문 밑으로 코를 들이밀며 킁킁 거린다. 막대기를 올리고 대문을 밀었다. 새끼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재빨리 닫았다. 

흰둥이는 삐쩍 마른 몸으로 꼬리를 흔들며 날 반겨 주었다. 어미를 따라 새끼들도 우르르 나왔다. 축 늘어진 어미 젖 주위는 새끼들 발톱자국 투성이다. 털도 푸석거린다. 반들반들 윤기 나는 새끼들은 어미젖을 향해 뛰어 올랐다. 간신히 젖꼭지를 문 새끼는 앞발로 어미 가슴을 부여잡고 뒷발로 서서 젖을 빨았다. 젖이 잘 안 나오는지 옆 젖꼭지로 옮겨 무는 놈도 있다. 발톱자국이 아물지도 않았는데 얼마나 아플까, 참고 서있는 흰둥이가 바보 같다. 

젖꼭지를 차지하지 못한 새끼 한 마리가 내 신발 끈에다 입을 댄다. 마저 남은 끈도 모두 씹어버릴 태세다. 놈들 때문에 요즘 마당에 서있는 게 무섭다. 발로 걷어차며 평상으로 뛰어 올랐다. 

‘모레가 방학하는 날인데…. 괜히 약속했나….’ 

나도 모르게 혼자 소리가 나왔다.

옆에 쪼그리고 앉아 졸던 흰둥이가 살포시 눈을 떴다. 알아들었다는 시늉인지 못 알아들었다는 시늉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낑낑낑…. 바짝 마른 모습이 불쌍해 평상위에 올려놓았더니 새끼들이 평상에 앞다리를 걸치고 올라오려고 버둥거렸다. 

흰둥이는 아빠 친구가 준 족보 있는 진돗개다. 나랑 같이 시골로 내려오면서 똥개 신랑을 만나 똥개 새끼를 낳고 똥개 엄마가 되었다. 이젠 동네 똥개랑 구분도 안된다.

“흰둥아! 진짜 따라가고 싶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흰둥이는 졸리는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나저나 자전거를 어디서 구하지. 친한 친구도 없고, 촌구석이라 대여점도 없다. 집에 할아버지 자전거가 있지만 굴러갈 때 쌕쌕 가래 끓는 소리가 난다. 할머니한테 말해 뒷집 아저씨 자전거라도 빌려 볼까. 



저녁밥을 먹고 있던 나에게 할아버지는 수화기를 건네주었다.

“아빠다.”

아빠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자전거 이야기부터 꺼냈다.

“사줘.”

“당분간 참아. 자리 잡으면 바로 데려 갈게.”

전화기 속 아빠 대답은 항상 똑같다. 

“걷기 힘들어.”

“버스 있잖아.”

“어제도 버스 놓쳤어.”

아빠도 그 학교 다녔단다, 그때는 버스도 없었다, 당연히 걸어 다녀야 했다, 운동화도 없었다, 고무신 구멍날까봐 돌길을 맨발로 걸을 때도 있었다, 사내 녀석이 엄살 부리지 말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 할머니에게 수화기를 넘겨주었다. 친구들과 하이킹 가기는 다 틀렸다.

“아빠가 조금만 참으란다. 그나저나 숙제는 다 했냐?”

낮에 그린 그림이 생각났다. 졸고 있는 흰둥이를 그려 물감을 칠한 후 마르라고 평상에 펼쳐 두었다. 그런데 평상에 달려가 보니 그림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다. 여기저기 개 발자국이 도장처럼 찍혀 있다. 눈감고 엎드려 있는 흰둥이에게서는 똥냄새도 났다. 그놈들 짓이 분명하다. 흰둥이를 그린건지 개 발바닥을 그린건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떡해.”

그림을 들고 큰소리로 울었다. 

“무슨 일이냐?”

놀란 할아버지가 방에서 나왔다. 나는 계속 울었다. 

“강아지들이 지 애민 줄 알았는갑다.”

할아버지는 그림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마당 구석으로 달려가 막대기를 찾아 들었다. 이것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다.

“어린것 때리믄 못쓴다. 내가 도와줄테니 다시 그리자잉.”

나는 눈물을 훔치며 팔레트에 물감을 짰다. 흰둥이를 보고 그려야 하는데, 아무리 불러도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튿날이다.

“아이고, 이 놈들이….“

할머니 목소리에 밖을 내다보았다. 할머니가 긴 막대기를 마루 밑에 넣어 휘젓고 있었다. 막대기 끝에 운동화 한 짝이 걸려나왔다. 나는 아침밥을 먹다말고 부리나케 뛰어 나갔다. 새끼들도 내 발소리를 듣고 개집에서 뛰어 나왔다.

“뭐야, 다 망쳐놨잖아.”

흰둥이 새끼들이 운동화 끈을 또 씹어 놓았다. 이제는 자를 것도 묶을 것도 없다. 

“저녁에 마루 위로 올려놓는다는 걸 깜빡 해부렀다아.”

울상 짓는 날 보더니 할머니는 광으로 가 뻗뻗한 검정 고무줄을 들고 나왔다. 

“멀리서 보믄 티 안난다.”

운동화 구멍에 고무줄을 꿰기 시작 했다.

“창피하단말야.”

“오후에 장에 가서 사다 놓으마.” 

할머니는 운동화를 내 발 앞에 놓아 주었다.

“싫어. 안 신어.”

“낼은 학교 안간께 오늘만 참어.”

나는 악을 지르며 운동화를 걷어찼다.

“학교 안가.”

애꿎은 할머니한테 화를 냈다. 똥개 새끼들은 팬티만 걸치고 서서 울고 있는 나에게 떼로 몰려와 발뒤꿈치를 깨물었다. 

“저리 안 가.”

발로 힘껏 차고 방으로 들어왔다. 깨갱 깨갱,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침밥도 거르고 누웠다. 학교에 안 갈 거다. 

점심때가 가까워오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마당에서 두런두런 말소리도 들린다. 할아버지가 장에 가나 보다. 따라가고 싶지만 학교도 안가겠다고 드러누운 판에 체면 상 따라 나설 수가 없다. 탈탈탈탈탈탈, 경운기 시동 걸리는 소리가 난다. 밥 먹으라는 할머니 목소리도 들렸다. 나는 그냥 잠이 들고 말았던가보다. 

“효석아, 나와 봐라. 니 운동화 완전 새 거 됐다.”

할머니 목소리에 잠이 깼다. 날씨도 덥지만 굶어서 그런지 힘이 없고 축축 늘어졌다. 

“퍼뜩 인나라. 니 자전거도 사왔시야. 참말로 좋다.” 

자전거라는 말에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마당에 반짝거리는 파란색 자전거가 떡 하니 놓여있었다. 

“이거 타고 다니믄 힘 덜 들것제?”

할아버지는 자전거 핸들을 여기 저기 살펴보며 말했다. 

후다닥 뛰어나가 자전거 안장에 올라탄 후 페달을 밟았다. 잘 굴러갔다. 아싸! 내일 친구들과 하이킹도 갈 수 있다. 안마당을 몇 바퀴 돌았다. 그대로 핸들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마을 공터며 당산나무까지 갔다. 내친김에 학교까지 달렸다. 버스 타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자 회관 내리막길에 동네 아이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곧장 그리로 갔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부러 두 손을 놓고 내리막길을 내려 왔다. 부웅, 자전거가 하늘 위로 날았다. 내 마음도 함께 날았다. 아이들 몇 명이 뒤쫓아 왔다. 따라오지 못하게 속력을 냈다. 

“효석아! 저녁밥 먹어라.”

대문 앞을 지날 때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지만 동네를 몇 바퀴 더 돌아본 후 집에 갔다. 

평상 옆에 자전거를 세우고 헐레벌떡 밥상 앞에 앉았다. 신발을 올려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밥을 먹으면서도 자전거에 자꾸 눈이 갔다. 밥 먹고 또 탈거다.

할아버지는 입맛이 없는지 밥을 반 그릇도 채 비우지 못했다. 남긴 밥에 고기를 섞어 찌그러진 흰둥이 밥그릇에 부어 주었다. 

말없이 내 밥 위에 반찬을 얹어주던 할머니는 신발을 평상 아래로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똥개 새끼들이 또 물어뜯으면….’

말을 하려는 순간 뭔가 허전했다.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새끼들이 보이지 않았다. 마당에서 진을 치고 있던 고 고물고물 한 것들이 안보인다. 어디 갔지? 

흰둥이는 나무 밑에 엎드려 날 빤히 쳐다보고 있다. 할아버지는 흰둥이 옆에 앉아 앙상한 갈비뼈가 들어난 등을 한 없이 쓰다듬어 주고 있다. 
 

 

 

 

 



[당선소감]“내 글, 누군가의 씨앗 되길 바라”


“은진아, 글 써라!”

고등학생 때 쓴 첫 동화 ‘천사의 선물’을 읽고 장정희 선생님이 해주신 한마디가 씨앗이 되었습니다. 힘들었던 시절, 나도 잘 몰랐던 나를 알아봐주는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종종 교실 밖으로 불러내 파란 하늘도 보여주고, 새로 나온 소설도 읽어줬지요. 그때 읽은 소설들 정말 단맛이었습니다.

도서관 사서가 되어서도, 아내가 되어서도, 엄마가 되어서도 그 씨앗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813.8 분류번호가 붙은 서가를 돌며 동화책을 보았습니다. 나도 써보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흐트러진 서가 책을 정리하던 중에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허리를 펴니 도서관 유리창으로 파란하늘이 보였습니다. 오늘, 품었던 씨앗 속에서 새싹이 올라왔습니다.

날 지지해주고 사랑해주는 소중한 가족들, 언제나 첫 독자이기를 마다하지 않는 용구 남편과 책가게 주인이 되겠다는 민성 아들, 천천히 가라고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되라 하시는 존경하는 나의 스승님, 만나면 행복해지는 금요동화반 식구들과 이 기쁨 함께 나누겠습니다. 그분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작품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경상일보, 그 뜻을 헤아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읽고 쓰겠습니다. 제가 쓰는 동화가 누군가에게도 씨앗이 되면 좋겠습니다. 

김은진 약력
-1977년 광주광역시 출생
-(현) 서울시 금천구 가산정보도서관 사서


[심사평]정석에서 벗어나 읽는 묘미 있어

이 작품은 얼핏 보면 사정이 있어 시골 할아버지 댁에 와있는 주인공이 갖고 싶던 자전거를 얻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갖춰야 할 모양새를 고루 갖춘, 그저 고만한 동화다. 그런데 다시 읽으면 그리 단순치 않다.

이 작품에 겉으로 드러난 인물은 (주인공 효석이 빼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전화를 한 번 걸어 온 아버지뿐이다. 오히려 서울서 함께 내려온 흰둥이가 중요한 인물인 셈이다. 여기서 잠깐! 효석이 시골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사정은 무엇일까? 엄마는 어디 갔을까? 그렇다. 이 작품에 엄마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을뿐더러 엄마에 대한 이야기 또한 한마디도 없다. 다만 뱃가죽이 벗겨지도록 새끼에게 젖을 빨리는 어미개가 있고, 자전거 값으로 팔려간 강아지의 <엄마>가 저만치 엎드려있을 뿐이다.

작가는 정작 <엄마 이야기>를 하기 위해 흰둥이를 등장시키고, 그게 아닌 척 시치미를 떼고 있는 건 아닐까? 소설이나 동화에서 모범답안지 같은 작품은 재미가 덜하다. 정석에서 약간 벗어날 때 오히려 읽는 묘미가 있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강정규 약력
-1994년 대산문학상
-2005년 제38회 세종아동문학상
-(현)한국아동문학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