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고사목 / 고경숙
고 사 목 / 고경숙 연대기를 알 수 없는검은 책이다먼 시간을 집대성한 페이지를 넘기면불탄 새의 발자국이 떠도는바람의 유적지막다른 길에서 시간은 일어선다이마에 매지구름 걸쳐놓고진눈깨비 맞는 산,박제된 새소리가 나이테를 안고풍장에 든 까닭 차마 발설할 수 없어활활 피우는 눈꽃은 은유다명조체로 흐르는 햇살이 서술하는몰락한 종교의 잠언서나무의 필적이 행간을 읽는 동안다하지 못한 어둠이 전하는 고전이다꺾인 나뭇가지는허공을 수식하는 문장이다숨찬 몇 권의 눈부심이 사리처럼 반짝인다새떼들 젖은 울음이 밑줄을 긋고구전하는 말씀들일편단심이다생은 뼈를 삭이는 절명시다 맨몸으로 그루잠을 건너온울창한 기억들작자미상의 목판본 한 질을 집필하고 있다 시, 낯선 얼굴로 만져주던 존재 탁구공이 내는 소리가 좋아 탁구장을 찾았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