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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가을, 랩소디 / 오은주

 

읽다 놓친 편지처럼 또 한 번의 봄은 가고

시든 꽃대궁에 향기 남은 가을, 

여자로 산다는 것은 매달 저를 지우는 일.

 

내일을 닫아버린 빈 방에 홀로 남아

올 터진 생각 달래 바늘귀에 꿰다보면

눈물도 나래를 펴나 창가로 가 별이 된다.

 

달을 걸러 가끔 피던 꽃소식도 감감하고

캄캄한 블랙홀에 움푹 패인 연못 하나

빈 배에 달을 싣는다, 비로소 완경完經이다.



<당선소감>

 

사물 바라보는 시선 더 깊고 따뜻해지도록 연마

 

  조심스럽게 첫발을 디뎌봅니다. 아직은 어설프고 뒤뚱거리지만, 차츰 꼿꼿하게 걸을 수 있도록 더 많은 밤을 밝혀야겠습니다.

  시조의 바다에 나를 세워두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더 새롭고 깊고 따뜻해질 수 있도록 닦고 연마해 나가겠습니다. 마부작침(磨斧作針)의 마음으로 글을 쓰라는 선생님의 말씀, 가슴에 새기며 우리 민족의 정형 가락을 계승하는 작은 밀알이 되겠습니다.

  덜 여문 시에 피를 통하게 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큰절 올립니다. 그리고 크게 걸어보라고 등 떠밀어 주신 경상일보사에 감사드립니다. 묵묵히 노력하는 듬직한 시인의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제가 시조 시인이 되기까지 이끌어 주신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 같이 공부하는 따뜻한 동인님들의 응원 고맙습니다.

  그리고 늘 저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남편과 두 아들 사랑합니다.

 

[약력-오은주]

-1967년 경북 경주 출생

-2009년 경주문예대학 수료

-9회 백수정완영 전국시조 백일장 장원



<심사평>

 

여인에서 인간으로 새출발자기처방의 자세 담겨

 

  문학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가는 가운데서도 신춘문예에 대한 기대가 여전하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당선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인해 근년 들어 자꾸만 개성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중론인 것 같다. 지나친 화장과 성형으로 본태미를 잃게 된다면 감동 또한 반감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기대하며 응모작들을 읽었다. 예심을 거쳐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15명의 시조 64편이었다.

  비교적 많은 습작과정을 짐작할 수 있는 작품들이었으나 진한 감동과 여운으로 다가오는 작품은 드물었다.

  그 다음 기준인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작품을 고른 끝에 들풀, 일어서다’ ‘허방다리’ ‘가을, 랩소디 세편이 선택되었다.

  먼저 들풀, 일어서다는 사물을 대하는 남다른 연민에도 불구하고 자기감정의 조절에 실패하여 밀려났고 남은 두 편을 두고는 쉽게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허방다리 가을, 랩소디 모두 자기 반성적 시간읽기의 작품들로 체험적 진실에 대한 탐구라는 점에서 궤를 같이 하고 있었다.

  장고를 거듭한 끝에 가을, 랩소디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한 여인에게 다가온 신체적, 정신적 좌절감을 극복하는 모습이 아프게 그려진 작품임에도 마침내 빈 배에 달을 싣는 선택으로 한 여인에서 한 인간으로 새 출발하는 자기처방의 자세가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록 제목과 메시지의 일체화에는 실패하였지만 감각적인 어휘선택과 문장력이 돋보인 허방다리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는 점을 밝혀둔다.

 

[약력-민병도]

-1953년 경북 청도 출생

-1976년 한국일보 신문문예로 등단

-한국문학상, 중앙시조대상, 가람문학상, 김상옥문시조학상 등 수상

-시집 <슬픔의 상류> <원효> <들풀> <장국밥>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장

-이호우·이영도 문학기념회 회장

-계간 <시조21>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