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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왜소행성 134340* / 유진희

 

우주는 조금씩 부풀고 있고
우리는 같은 간격으로 서로 멀어지고 있어요
사방이 우주만큼 트여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일
좌표만 같은 비율로 커지는 세계에서
시간만이 변수라고 한다면
아득한 게 쓸쓸한 일이 되고 맙니다
다시 올 것 같지 않게 멀어지다가
어느 계절엔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는 별을
찌그러진 궤도를 가진 별을
사람들은 무리에서 내쫓았습니다
이로써 우리 행성계는
완벽하게 끼리끼리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공전 주기를 늦추고 싶은
사람들은 서둘러 여행을 떠나지만
매진 행렬이 더 빠르게 이어지고
출발을 위한 서류는 늘어납니다
서류가 늘어날수록 안심하는 사람들을 위해
늘 거기 여기의 세계에서
서류는 잠식하는 불안처럼 불어납니다
모든 항의에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는 답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관료의 심장을 뚫어버릴 별빛은
어느 블랙홀에 갇혀버렸을까요
다른 시간 속에서 유영하던 우주비행사는
돌아오자마자 순식간에 늙어버립니다



*태양계에서 퇴출된 명왕성이 받은 새 이름


 

 

  <당선소감>

 

   -


  중복 투고 여부에 대한 확인 전화를 받은 지 11일이 지나서야 당선 통보 전화를 받았다. 확인 전화 이후 거의 바로 당선 고지 전화가 오는 줄 알았던 나는 이 큰 행운이 스쳐 지나간 줄 알고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확인 전화와 당선 고지 통화 사이 열흘 남짓한 시간, 앞으로 해나가야 할 작업들을 정리했다. 그 중에 가장 큰 성과라면 '계속 쓸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다다른 것이다. 확인 전화를 받고도 떨어진 줄 알았던 나는 그 불운을 이겨내기 위해 언제라도 쓰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완전히 백기투항을 하게 되었다. 다른 방도는 없었다.

  최근에 '사무사'(思毋邪)에 대해 생각도 많이 했다. 이 말이 맑고 고운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진심'에 관한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니 진심이 담긴 시를 앞으로 계속 쓰도록 하겠다.

  나의 시에 성장시라는 이름을 붙여주시고 묵묵히 행로를 지켜봐 주셨던 최두석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교수님은 모르셨겠지만 나는 속으로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생각에 자주 조바심이 났었다. 시어 하나하나 세세하게 지도해 주셨던 임동확 교수님, 생각을 많이 깨우쳐 주신 서영채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문학은 언어 예술이란 정의에 조금은 어울릴 수 있는 시를 쓸 수 있도록 함께 공부해온 나의 선배님들 권오영, 엄기수, 신성률 시인께도 감사를 드린다. 사당에서 함께 한 시간이 없었다면 시를 어떻게 익혀가야 하는지 몰라 오래 헤매었을 것이다.

  당선 소식을 들은 날 시를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엄마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의 허망함으로, 아빠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로 시를 읽으셨다. 그렇게 읽히는 것에 수긍이 가면서 이렇게 각자의 생각대로 시가 읽히는 것이 좋았다. 엄마, 아빠, 그리고 조카 규민이에게는 사랑을 전한다.

 

● 1976년 서울 출생 
● 동국대 국어교육과 졸업. 
● 한신대 문예창작대학원 졸업 
● 국어교사


 

  <심사평>

 

  

  응모자 연령, 지역의 다양함에 심사 내내 놀라… 다양성이 우리 시가 가진 가능성

  이번 매일신문 신춘문예에는 총 1천785편이 응모되었다. 응모자들의 연령과 지역의 다양함에 심사 내내 놀랐다. 이러한 다양성이야 말로 우리 시가 가진 가능성이라고 생각해 설레는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도미노' 외 4편의 응모자는 사유의 집중력과 점착력이 돋보였다. 오랜 시간 시를 쓰며 응시한 세계를 완성도있게 쌓아올릴 줄 아는 시인이었다. 그러나 이 시가 갖는 깨달음의 형식이 신선하고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는 의견이 있었다.

  '천사를 만나는 날은 오늘' 외 4편의 응모자는 시가 젊고 감각적이어서 최근의 경향과 발맞추어 기대감을 갖게 하는 시인이었다. 그러나 젊은 시인들의 감각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변별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조금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과 분위기를 넘어서는 지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왜소행성 134340' 외 4편의 응모자는 자기만의 목소리가 돋보이는 시인이었다. 우주와 지구와 이국과 모국의 거리를, 익숙하면서 새로운 감각들을 발견하는 시선이 재미있게 그려졌고 각 시마다 마지막 문장에서 시적 분위기를 다시금 낯설게 만드는 감각도 좋았다. 그러나 문체에 대해 아쉽다, '습니다' 종결어미가 변주 없이 쓰이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되었다.

  세 분 다 수준 이상의 시를 쓰고 있었기에 당선자를 선정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세 분의 시를 두고 심사위원 셋이 고심을 거듭했다. 문청, 패션, 트렌드 및 시쓰기 감각에 대한 상당한 논의가 있었다.

  '왜소행성 134340'의 유진희 씨를 당선자로 선정한 것은 다른 두 분에 비해 이견의 격차가 크지 않았다는 점과 유진희 씨가 응모한 다른 시들 모두 편차 없이 고루 좋았다는 점이 크게 작동했다. 유진희 씨의 시가 보여주는 매력적인 세계가 여기서 출발해 어디로든 멀리로 잘 떠날 수 있기를. 그가 꿈꾸던 여행이기를 기쁜 마음으로 응원한다.

심사위원 : 강성은, 김문주, 정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