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광주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벽장 밖은 어디로 / 유재연
<당선작>
벽장 밖은 어디로 / 유재연
달리는 고속버스에 앉아 나는 시진에 대해 생각했다. 창문에 뿌옇게 김이 서려 있었지만 닦지 않았다. 나는 지리산에 있는 선원으로 가는 중이었다. 한 달 동안 절에 간다고 말하자 횟집 사장은 왜냐고 물었다. 비구니가 될까 고민해 보렵니다, 라고 둘러대자 사장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종교가 없었다. 선원에 가는 것은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민희가 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민희는 췌장암 말기이고 선원에서 일 년 넘게 요양 중이다. 나는 민희의 얼굴이 보고 싶었고 시진과의 추억이 많은 포항이 지긋지긋하기도 했다.
시진과 만난 삼 년은 건조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나 새해에 케이크 하나 사지 않았고, 커플링도 맞추지 않았다. 시진과 나는 함께 살았지만 밥을 먹을 때 외에는 각자의 방에 머물렀다. 시진은 우리 관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서로 각자의 구덩이에 있다가, 가끔 밖으로 나와서 만나는 거야. 그리고 여기 이 사람이 있구나, 하고 힘을 얻고 다시 자기 구덩이로 들어가는 거지. 난 그런 관계가 이상적이라고 봐.”
시진은 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의 국어 강사였고, 나는 횟집에서 홀서빙을 했다. 시진은 고등학생들을 지긋지긋하게 여기면서도‘냉정하지만 속으로는 학생을 아끼는 유능한 선생님’이란 이미지를 만들 줄 알았고, 나 역시 팁을 얻어내기 위해 손님들에게 호의를 가장할 줄 알았다. 시진은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은 우리의 본질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여겼다.
“우리의 핵은 구덩이 안 가장 깊숙한 곳에 있어. 일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
각자의 방에서 시진과 나는 글을 썼다. 우리는 인터넷 소설 교실에서 만났다. 코로나가 한창이어서 줌으로 듣는 수업이었다. 줌 수업을 처음 해본다는 소설가는 인터넷이 자꾸 끊기고 칠판이 보이지 않는 등 실수를 거듭해서 신뢰가 가지 않았지만, 수업이 거듭되자 자신이 가진 것 이상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소설가의 수업을 일 년 넘게 들었다. 시진도 비슷한 기간 동안 수업을 들었다. 모니터 너머의 시진은 머리칼이 길고 얼굴과 팔의 선이 아름다웠다. 소설 보는 눈이 밝았고 냉정한 비판도 따스한 조언처럼 들리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시진의 문장은 매력적이었고 주로 퀴어 소설을 썼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말과 행동의 움직임이 미미해서 나는 처음엔 여자들의 미묘한 우정을 다루는 소설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뜨겁고 괴로운, 열정이나 집착이라고 부를만한 감정이 그 안에 녹아있었다. 나는 시진의 모든 소설에 열렬한 추종을 보냈고 반 년 후엔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사이가 되었다. 신춘문예에 모두 떨어진 어느 1월, 나는 대구에서 고속도로를 오십 분 동안 달려 시진이 사는 포항으로 갔다. 그때 나는 마흔여섯, 시진은 서른여섯이었다. 우리는 일본식 꼬치구이 집에서 사케를 마셨고 그날 밤 나는 시진의 집에서 잤다. 한집에서 잤을 뿐 아무 일도 없었다. 훗날 시진은 내가 선잠을 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왜냐면 시진 역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떨림을 들킬까봐 쉽게 잠들지 못했으므로. 그날 이후로 시진은 미니 쿠퍼를 몰고 대구로 찾아오곤 했고, 나는 그보다 두 배 정도 더 자주 내 모닝을 타고 포항으로 갔다. 그해 여름 우리는 포항에서 방 두 개에 거실 하나의 빌라를 전세로 얻어 같이 살기 시작했다. 시진은 포항에서 입지를 다진 학원 강사였고 포항에는 횟집이 많으니 내가 이사를 가는 게 당연했다. 전세금은 반반씩 부담했다.
우리가 만난 지 삼 년 반 만에, 그러니까 내가 마흔 아홉이 된 해의 여름에, 시진은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등단과 동시에 책을 냈다. 나는 그 전해에 낸 신춘문예에 떨어지고, 봄에 낸 문예지 공모에서도 낙방한 상태였다. 나는 애인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했으나 내 진심의 한 귀퉁이가 일렁거렸다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진심의 뒤틀린 틈새로 축축하고 찐득한 열패감이 흘러나왔다. 시진이 등단한 작가들과의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웃으며 잘 다녀오라고 말했지만 입가가 미묘하게 떨렸다. 경북을 기반으로 하는 신진 작가 대여섯 명이 모이는 자리였는데, 그곳에서 등단과 동시에 책이 나온 시진은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했다. 시진은 k라는 작가에 대해 자주 말했다. k는 대구 출신에 시진보다 두 살 어리고 더 유명했다. 한 번은 k의 북 콘서트에 초대를 받아 간 적도 있다.
“k가 아야, 하고 입 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이가 빠졌다고 해서 청중이 다들 놀랐는데, 알고 보니 강냉이였어.”
북콘서트 다음날 아침, 샌드위치에 커피를 마시며 시진은 정말로 즐겁다는 듯 웃었다. 나는 재밌는 사람이네, 라고 맞장구쳤다.
“작가가 그렇게 스스럼없이 구니까 콘서트 분위기가 좋아지더라고. 겉보기엔 세련되고 새침해 보이는데, 알고 보면 장난기 넘치는 허당이야.”
내가 이미 k작가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고, 그녀가 장난을 좋아하는 성격이란 걸 알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k씨랑 k씨 애인이랑 불러서 언제 커플끼리 식사라도 할까?”
시진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애인이 이십 대일걸? 우리랑 너무 나이 차이 나서 재밌으려나.”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둘이 요즘 사이도 좀 그렇고.”
“그런 얘기도 해?”
“응. 우리 별 얘기 다 해. 베프야.”
언제 베프가 되었을까. 그러고 보니 시진이 밥을 먹으면서도 카톡을 들여다보며 피식거리는 일이 늘었다. 방 안에서 소곤대며 전화 통화를 한참 동안 할 때도 있었다.
“k랑 관련된 재밌는 일 생기면 나한테도 얘기해줘.”
내 목소리가 조금 떨렸을까. 가볍게 말하려고 했는데 말하고 보니 무겁고 음험하게 들렸다. 시진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k와 나를 저울에 달아 놓고 비교하는 것처럼. k는 숏컷이 어울리는 보이시하고 예쁘장한 여자였다. 내 옆의 시진보다 k옆의 시진이 더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시진을 처음 만날 무렵 나는 사십대 초반처럼 보인다는 말을 듣곤 했다. 쉰이 되자 갑자기 사람들이 나를 제 나이로 보기 시작했다. 피부가 푸석해지고 얼굴선이 탄력을 잃은 고무줄 바지처럼 흘러내린 탓이었다. 반면에 나보다 열 살 어린 시진은 여전히 삼십대 초반으로 보였다. 시간이 무섭구나. 나는 앞으로 십 년 후면 예순. 할머니로 불려도 좋을 나이였다. 열 살 차이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나는 시진에게 너무 늙은 건가.
“k의 사생활이니까, 글쎄.”
시진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아직은 유명 작가도 아니잖아. 책 한 권 낸 게 전부잖아?”
나는 웃으며 말했는데 시진의 입꼬리는 여전히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나름 이름을 알리고 있어. 문장이 되게 매력적이고 재치 있어서, 팬층이 더 두꺼워질 거야.”
그러니, 하고 나는 말했다. 일어나서 접시와 머그잔을 개수대에 갖다 놓는데 걸음이 무거웠다. 방바닥은 타르처럼 검은 액체로 끈적거렸다. 열패감이 맨발에 찐득찐득하게 들러붙었다.
성격이 안 맞는 것 같다는 말로 헤어졌지만, 그게 진짜 이유가 아니란 걸 서로 잘 알았다. 시진은 나와 헤어진 후 미련 없이 짐을 싸서 대구로 떠났다. 한 달 후 커플링을 낀 두 개의 손이 겹쳐진 사진을 카톡 프로필로 올렸다. 아마도 k의 손일 그 손은 희고 가늘고 섬세해 보였다. 나는 내 손을 들여다보며 참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크고, 마디가 두껍고, 까무잡잡하고 거친 손. 앞으로 시진의 프사를 볼 때마다 나를 얼마나 미워하게 될까 생각하다가 나는 시진을 카톡에서 삭제했다. 이제 죽을 때까지 더는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사랑받지 못하리라는 절망감이 들었다.
두 시간 반을 달려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함양 시외버스 터미널은 시골 초등학교 규모의 이층 건물이었다. 터미널 안에 붙어 있는 산삼 엑스포 현수막에는 눈이 크고 팔다리가 달린 산삼 캐릭터가 실제적으로 묘사된 작은 산삼을 손에 들고 있었다.
“저 산삼 캐릭터는 산삼을 먹으려는 건가.”
대합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딴 데를 바라보고 있던 민희에게 나는 인사 대신 농담을 건넸다. 일 년 넘게 만나지 못했지만 유난스럽게 굴고 싶지 않았다.
“은경이 왔구나. 산삼은 그냥 들고 있는 거 아냐?”
민희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캐릭터가 눈에 광기가 돌고 팔다리 움직임이 지나치게 활달한 게, 산삼을 아침저녁으로 먹는 것 같은데?”
“넌 여전하구나. 내 차로 가자.”
민희가 은은하게 웃었다. 민희 앞에서는 나도 장난스럽고 재치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민희는 갈색 털모자를 쓰고 있었고, 솜이 누벼진 회색 절바지에 남색 패딩을 입고 있었다. 눈 밑이 퀭하고 광대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라서 병세가 완연했다.
“넌 딱 절에서 온 사람 같다.”
“지난번엔 시장에 갔더니 나한테 합장하는 아주머니도 있더라. 엉겁결에 나도 따라서 합장했어. 그 아주머니가 스님 어디 아프세요, 하고 사과를 몇 알 주는데 그냥 받았지 뭐야.”
민희와 나는 훗훗 웃었다. 이미 단종된 민희의 은색 소형차를 타고 선원으로 가는 길에 민희는 선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줬다. 선원은 폐업한 사 층짜리 유스호스텔을 개조한 곳이다. 방 하나에 화장실 하나가 달려 있고, 두 명이 한방을 쓴다. 지금 머무는 사람은 총 육십 명 정도. 스님이 스무 명있고 나머지는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이 병이 든 사람들이야. 암 환자, 신장 투석 하는 사람, 정신질환자. 병자는 딱히 할 일이 없잖아? 고통이란 족쇄에 묶여 노예처럼 끌려가잖아. 그런데 이곳에선 병을 수단으로 삼아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가르쳐. 고통이 인간을 헐벗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신성함으로 나아가는 조건이 되는 거야.”
민희의 말은 그녀가 평소 쓰는 어휘를 능가했다. 누군가에게, 아마도 민희가 깊게 신뢰하는 사람에게 들은 말 같았다. 그럴싸했지만 와닿지는 않았다.
“그게 가능할까? 아프면 시야가 좁아지지 않니. 자기 몸에만 관심을 갖고.”
민희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었다.
“가능해. 이곳엔 원장 스님이 있어.”
“훌륭한 스님이셔?”
“만나면 알게 될 거야. 티벳 스님인데 사람 마음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야.”
원장 스님을 만난 것은 선원 앞이다. 그는 빗자루를 들고 낙엽을 쓸고 있었다. 풍채가 컸고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길렀다. 그는 외국인 티가 나는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새로 온 사람? 반갑습니다.”하고 차에서 내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목구비가 큼직하고 피부가 반들거렸는데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마흔 살 같기도 했고 예순 살 같기도 했다. 민희도 나이를 모른다며 “원장 스님의 몸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로선 알 수가 없어.”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민희의 말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마 내가 민희를 처음 만난 곳이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는 사이비 종교 마을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맹신과 신비주의는 내게 익숙했다. 나의 외할머니는‘생명마을’이란 곳에서 살았는데 엄마와 나는 여름방학마다 외할머니를 보러갔다. 그곳에선 집마다 교주의 사진이 붙어 있었고 신도들은 사진 앞에서 기도를 했다. 외할머니는 초등학생인 내게 “교주님은 종종 해질녘에 산책삼아 하늘을 날아다닌단다, 내가 봤단다.”라고 속삭였다. 민희는 그곳에서 유일한 내 또래였다.
“기억나? 어두운 벽장 속에 둘이 들어가 있곤 했잖아.”
선원에서 보내는 첫 밤, 불을 끈 방에 나란히 누워 내가 왜 벽장 이야기를 꺼냈을까. 민희와 알고 지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야기였는데. 선원의 어둠이 그때 그 벽장 속 어둠을 연상시켰던 것일까. 나는 민희가 준 자잘한 꽃무늬가 있는 두터운 솜이불을 덮고 있었는데, 이 고풍스런 이불의 무게가 과거를 떠올리게 한 걸지도 몰랐다. 민희는 두껍지 않은 가을 이불을 덮고 있었다. 무거운 이불을 덮으면 온몸이 저리다고 했다.
“그러게. 덥지 않았나?”
민희는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이상하게 그 벽장 안을 떠올리면, 한여름인데도 서늘했다는 기분이 들어.”
“자작나무 숲이라고 불렀잖아, 벽장 안을. 나는 앤이고, 너는 다이애나라고 했지. 왜 그런 곳에 틀어박혀 있자고 했니?”
민희는 쿡쿡 웃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빨간머리 앤’은 우리가 둘 다 읽은 책이었고, 민희는 이 책을 유난히 좋아했다. 나는 콧잔등에 주근깨가 나있고 머리칼이 갈색인 민희에게 ‘앤’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학교에서도 앤이라고 불리냐고 내가 묻자, 어린 민희는 대답했다. 아니, 내 별명은 사이비야. 그 말에 나는 바로 알았다. 사이비 종교에 소속된 배경이나 우물쭈물하고 눈치를 보는 태도 때문에 민희의 예쁜 얼굴은 호감을 얻지 못하고 시기와 조롱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걸. 남자애들도 다른 여자애들에게 동조해 끌림을 괴롭힘이라는 형태로 표출할 것이다. 나는 계산적이었다. 언젠가 민희가 예쁘고 착하다는 걸 모두가 알아보는 날이 올 것이지만 그전까지 민희가 나만의 것이길 바랐다. 나는 벽장을 앤과 다이애나가 우정을 쌓는 장소였던 ‘자작나무숲’이라고 이름 붙였고 앤과 다이애나는 그곳에서 놀아야 한다고 민희를 설득했다. 나는 벽장 속의 어둠을 좋아했다. 문짝 틈새로 들어온 빛을 따라 춤을 추는 주근깨 같은 먼지들,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민희의 부드러운 살, 머리카락 냄새, 어렴풋한 실루엣… 아직 성애를 알지 못한 내게 그 어둠은 민희와 용해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러니 내가 벽장에 틀어박히길 원했던 이유를 민희에게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수현이는 어때?”
나는 민희의 아들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늘 똑같지. 뭐, 수현아빠가 잘 돌봐줄 거야.”
민희의 아들 수현은 자폐아였고 이혼 후엔 전남편이 돌보고 있었다. 민희는 피곤한지 빨리 자자고 했다. 나는 어둠 속에서 한참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 선원에 도착하고 나서 한 번도 시진을 떠올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민희가 옅게 코를 고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선원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침 식사 시간에 유방암에 걸린 육십 대로 보이는 여자가 둘이 어떻게 친해졌냐고 물었다. 일층에 있는 식당은 고등학교 구내식당 같은 구조였다. 스무 명이 앉을 수 있는 긴 식탁이 네 줄 늘어서 있고, 근처에 앉은 사람끼리 가볍게 잡담을 나눴다.
“은경이가 서울에서 온 세련된 아이라서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서울로 돌아간 뒤에도 제가 계속 편지를 보냈는데 세 통에 한 통 꼴로 답장이 왔어요.”
민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민희가 보낸 편지를 읽고 또 읽었지만, 답장을 썼다가 찢어버리곤 했다.
“서울이라지만 변두리에 살았고, 집도 가난했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어린 시절 나는 민희가 나를 보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집은 짜증과 동정의 대상이었다. 아버지가 밤새 고함을 지르거나 뭔가를 부수면 동네 사람 중 누군가 신고를 해서 경찰서에서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민희에게 나는 상냥하고 우아한 다이애나였다.
“음식은 입에 맞아요?”
유방암에 걸린 여자 옆에 앉은 신장 투석을 하는 남자가 물었다. 그들의 병은 나중에 민희에게 들어서 알았다. 이곳에선 병이 그 사람을 대표했다. 나는 예의상 맛있다고 대답했다. 선원의 음식은 소금을 넣지 않아서 밍밍했다. 삶은 대추, 삶은 당근, 삶은 마, 물로 볶은 계란… 이곳에선 모든 걸 따뜻하게 먹는데 과일도 예외가 아니었다. 메뉴 중에는 끓여서 죽처럼 만든 딸기가 있었는데 그게 가장 맛있었다. 식사가 끝날 즈음에는 다른 테이블에서 어떤 여자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공황장애가 있어서 저래. 옆에서 민희가 속삭였다.
아침 식사 후 7시부터 8시 30분까지는 수행실에서 원장 스님의 말씀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라는 내용인 것 같았다. 원장 스님은 한국에 온 지 이십 년 가까이 되었다는데도 한국어 발음이 나빴다. 방으로 돌아가 내가 법문을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불평하자 민희가 말했다.
“나도 절반만 알아들어. 그런데 원장 스님이 굉장히 고급어휘도 아시거든. 일부러 우리가 알 듯 말듯 발음을 어눌하게 하시는 거 같아. 대중이 못 알아듣는 절반 정도의 말은 우리의 무의식을 향하는 주문, 만트라인 거야.”
원장 스님에 대해 말하는 민희의 눈빛은 어딘가 먼 곳을 보는 듯 했고, 뺨은 붉었다. 문학을 향한 나의 눈빛도 타인들에게는 이렇게 아름답고 터무니없이 보이는 걸까. 어쩌면 내가 계속 소설을 써온 것은 그 안에 살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얀 눈 위의 오솔길 같은 문장을 뽀득뽀득 밟으며, 내가 만든 먼 세계로 걸어 들어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시진이 그 안에 살고 싶어 할만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게 시진과의 관계를 영속시키는 방법이라 믿었다. k의 소설집을 펼칠 때, 나는 마치 아내의 불륜 현장을 덮치려는 남자처럼 괴로운 심정이었다. k가 구축한 세계는 유쾌하고 우아하면서도 어딘가 냉기가 돌았다. 시진이 왜 k에게 빠져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시진과 헤어진 후로 소설을 쓰지 않았다. 왜 소설을 써야 하는지를 잊어버렸다.
선원의 일과는 정해져 있었다. 식사 시간은 아침 6시, 정오, 저녁 6시다. 아침 식사 후엔 원장 스님의 법문을 듣고, 그 후로는 호흡 명상, 기체조, 만트라(주문)외우기 등을 하루종일 반복했다. 수행은 강제가 아니라서 방에서 쉬거나 밖에서 산책을 해도 되었다. 토요일에는 다 같이 빔 프로젝트로 영화를 보고, 금요일에는 소모임으로 모여 독서 토론을 했다. 원장 스님이 추천한 책들은 대학 신입생 수준의 교양서로 심리학, 우주, 역사 등 다양한 주제를 포괄했다. 나는 원장 스님이 책을 고르는 안목이 높은 것에 감탄했다. 민희는 자기가 대학도 못갔는데 여기가 대학교 같아서 좋다고 했다.
내가 따를 수 없는 규칙도 있었다. 예를 들어 아침 첫 오줌을 마시는 일이 그랬다. 세면대에 놓인 컵에 내가 칫솔을 넣으니까 민희는 그거 오줌 담는 컵이야, 라고 알려줬다.
“뭐?”
“아침마다 마시거든. 요로법은 암환자에게 필수야.”
나는 요로법이라는 걸 그렇게 알게 되었다.
민희와 대화를 하다가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은 자주 찾아왔다. 예를 들어 민희의 이런 말들.
“원장 스님은 에너지의 폭발체야. 그 몸 안은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우주야.” “원장 스님이 있는 곳에선 일상이 고도의 상징을 띄는 만다라의 세계로 변해. 예를 들어 원장 스님이 물 한잔을 마시면, 그건 번뇌하는 인간을 위해 생명수를 마신다는 뜻이야.”
나는 원장 스님이 대변을 보는 것도 고도의 상징이냐고 물었다. 나로서는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나와 똑같은 신체적 매커니즘을 가진 인간이 부처에 가까운 존재가 된다는 게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민희는 내 질문에서 조롱을 읽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응. 그건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상징이야.”
나는 민희의 말을 대놓고 반박하진 않았다. 췌장암은 치사율이 높았다. 나을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되냐고 묻자 민희는 이렇게 말했다.
“퍼센트는 중요하지 않아. 세상에는 말도 안되는 일들이 일어나니까. 일반인들은 그런 일을 기적이라고 불러.”
그 말은 민희가 살 확률이 기적에 가깝다는 소리로 들렸다. 나는 분했다. 쉰 살은 죽음을 생각하기엔 지나치게 젊었다. 먼저 늙음을 겪어야 했다. 늙음은 날카로운 회칼로 아주 얇게 저며진 죽음이어서, 우리는 늙음을 한 점 한 점 음미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횟집 일이 많이 힘들었니?”
민희는 내 걱정을 했다. 민희와 나는 밤마다 많은 얘기를 나눴다. 우리의 대화는 불을 끄고 나서 내밀한 어둠 속에서 이루어졌다. 민희의 말에는 허영기가 없었다. 허영은 너무나 삶을 향하고 있는데, 민희는 그 반대 방향을 보고 있었으니까. 나 역시 민희에게 많은 것을 솔직하게 말했다.
“즐겁진 않았어. 종업원들 셋이 자기들끼리 싸웠는데, 어느 틈에 내가 백안시되더라. 나중에 날 보고 인사도 하지 않았어. 뭐 서빙 일이야 다시 구하면 그만이니까.”
민희는 원장 스님이 한 말을 들려줬다.
“사람은 피부를 경계로 밖과 구분되고 자신의 본질은 내부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틀린 생각이래. 사람의 본질은 사람 바깥에 있어서, 누굴 만나고 어떻게 관계 맺느냐가 전부래. 그래서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면 사랑이 본질이 되고, 자주 사람을 미워하면 미움이 본질이 된대.”
만약 민희가 내게 횟집 종업원들을 미워하냐고 물었다면 나는 발끈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희는 그렇게 묻지 않고 어둠 속에서 내 손을 잡았다. 민희의 손가락은 너무 차갑고 가느다래서 나는 사람이 살이 빠지면 손도 작아지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어느 밤에 나는 시진의 등단에 대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실연에 대해, 내가 죽을 때까지 작가가 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에 대해 말했다.
“내가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 중에는 횟집의 다른 종업원들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게 아닐까.”
민희는 모두 괜찮다고 말해줬다. 누군가에게 나의 가장 깊은 곳에 고여 있는 어둠을 말할 수 있다는 것, 그 사람이 나의 말을 판단하지 않고 오로지 빛을 비추어 줄 뿐이라는 것은 작은 구원이었다. 보일러 비를 아끼느라 선원의 공기는 싸늘했지만, 나중에 이 순간을 떠올리면 민희와 나를 잇는 어둠이 푹신푹신하고 따뜻했다고 기억하리라.
“나는 혼자만의 구덩이를 너무 깊게 파고 들어간 것 같아.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나는 구덩이에 대해서도 말했다.
“다른 사람의 구덩이와 연결될 수는 없어?”
민희가 물었다.
“응.”
“왜?”
“수직으로만 파고드는 구덩이거든.”
“더 내려가면 아주 큰 동굴과 이어질 거야.”
민희가 말했다.
“거기서 사람들이 잔치를 열고 있을 거야. 전도 부치고 막걸리도 마시고… 동굴 한가운데에선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춤을 추는 사람이랑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나는 그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영원한 고립이 두려워서인데, 망자들이 무덤 깊숙한 곳에 모여 잔치를 벌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날 푹 잘 수 있었다.
달이 유난히 밝은 밤, 민희가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 중엔 내가 아는 얘기도 있었지만 모르는 얘기도 있었다. 우리는 어릴 때 친구였지만 어른이 되고선 연락이 끊겼다. 다시 만난 건 내가 서른여덟일 때 돌아가신 내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잘 안다는 착각을 심어주기 때문에 민희와 나는 금방 다시 친해졌다. 민희는 고교 시절 성적이 매우 좋았지만 대학에 갈 형편이 못되어서 생명마을에서 운영하는 공장에 취직했다. 그 공장에서 기계에 몸을 끼어 청년이 사망한 사건이 한때 뉴스에서 떠들썩했는데, 그 청년은 민희의 애인이었다. 민희는 공장을 그만두고 교단을 떠났다. 처음 사귄 남자여서 충격이 컸다고 민희가 말했다.
“그렇게 죽은 건 참 가엽지만 사실은 좋아하지 않았어. 공장에 젊은 남자가 몇 명 없었거든. 젊다고 해도 나보다 여덟 살이나 많았지만. 내가 고아였잖아. 새엄마는 워낙 엄했고. 그냥 누구라도 괜찮았던 거 같아, 날 좋아하는 사람이면.”
“넌 예뻐서 인기가 많았을 텐데.”
“교단을 나가서 또 공장에서 일했는데, 공장장이 나보다 열다섯 살 많고 부인이 병에 걸려 죽은 남자였어. 그 사람이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어. 내가 거절할 이유가 없지. 부자인데다 아이도 없지 참 편하잖아. 그런데 시어머니랑 안좋았어. 가방끈이 짧고 이상한 종교집단에서 자랐다고 날 무시했어. 그리고 남편과의 섹스도 참기 힘들었고.”
“섹스?”
나는 물었다. 남편과 만난 경위나 시어머니와의 불화는 언뜻 알고 있었지만 남편과의 성관계를 참기 힘들었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응. 하면 안되는 일을 하는 것 같았어. 마치 개나 소 같은 짐승이랑 하는 것처럼. 그래서 그걸 하는 중에 딴 생각을 하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
민희는 계속 말했다.
“어쩌면 수현이가 그걸 안 게 아닐까. 자신이 만들어질 때 내가 그렇게, 수치심에 떨었다는 걸… 그래서 세상을 향해 고집스럽게 눈을 돌리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아, 민희야.”
“은경아, 나는 세상이 너무 추웠다. 그래서 조금만 따뜻한 공기가 느껴지면, 그 한 줄기 따스함에 목숨을 걸고 매달렸다. 삶이 나한테는 생존의 문제였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산책 같은 거겠지. 세상이 따뜻하고 훈훈한 봄날인 사람이라면 여기저기 천천히 걷다가 고르고 골라 자신의 보금자리를 정했겠지.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어. 얼어 죽을까봐 무서웠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내가 너무 성급했던 걸까, 중요한 결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시기에 내렸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람이 불어서 창문이 덜커덩거렸다. 나는 이불 속으로 민희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바람이 그치자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다 준비되고 아이를 갖는 사람이 어딨니. 지금 생각하면 이십대 삼십대가 참 어린데 그 나이에 어떻게 부모가 되나 싶어. 오십이 되니까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드는데.”
“…아이가 갖고 싶니?”
민희는 졸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냥 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는 거야.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서른, 마흔이 되었을 때도 내가 벌써 이 나이인가, 하고 씁쓸했는데 쉰은 또 다르네. 한밤중에 자다가 깼을 때처럼 퍼뜩 놀라. 내가 벌써 쉰이구나. 젊은 날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구나. 그러니까 살아있는 것들이 좋아지네. 아이는 생명 자체잖아.”
“아니… 빛이… 동굴 속을 환하게…”
민희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는 잠들었다. 나는 어둠 속의 한 점을 오래 바라보았다. 어디에도 빛은 없었다. 깊은 우울감이 나를 덮쳤다. 만약 아이가 있었으면 작가가 되지 못한 것이 덜 불행했을까. 연인이 있었다면 남은 나날들이 덜 두려웠을까.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것처럼 살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에 떠다니는 건 펼쳐진 책들과 원고의 낱장들 뿐. 주변 풍경은 변한 게 없는데 나는 이렇게 나이 들어 버렸다는, 남은 미래는 죽음뿐이라는 섬뜩한 깨달음.
내가 떠나기 일주일 전, 민희는 오리 백숙을 사주겠다고 했다. 원장 스님이 유일하게 허락한 외식이 오리 백숙이라고, 선원에서 걸어서 오 분이면 조미료를 쓰지 않고 반찬이 정갈한 오리집이 있다고 했다. 비구니 스님 셋도 함께 갔다. 오리집은 일층자리 평범한 단독주택을 식당으로 사용하는 곳이었고, 밖에는 누런 진돗개가 묶여 있었는데 짖지도 않았다. 그놈 오리고기를 많이 먹어서인지 털이 반들반들하네, 라고 한 스님이 말했다. 주인 여자는 얼굴빛이 어둡고 통통한 육십 대 중반 정도의 여자였는데, 친구로 보이는 여자 한 명과 함께 손님용 테이블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테이블은 다섯 개였고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선원에 있는 동안 간이 안 된 음식만 먹어서인지 황귀와 당귀 같은 한약재를 듬뿍 넣은 오리 백숙이 유난히 맛있게 느껴졌다. 오리의 살을 다 먹고 남은 국물에 죽을 끓여서 떠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 소주를 마시던 주인 여자가 “제가요, 좀 울어도 될까요?”하고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만해. 손님도 있는데.” 친구로 보이는 여자가 제지했는데도, 그녀는 흐느끼며 말을 이었다.
“삼 년 전 이맘때, 내 아들이 떠났어요. 군대에서 스스로… 목을 매고.”
이쪽 테이블에서 저런, 쯧쯧, 같은 소리가 나왔다. 나는 여러 감정을 느꼈는데 그 중에는 미세한 반감도 있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저런 얘기를 하다니. 밥 먹고 있는데. 난 슬그머니 숟가락을 놓았다.
“잊을 수가 없어. 여기가 아파. 너무 아파.”
주인 여자는 주먹을 쥐고는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그녀의 눈동자는 취기와 슬픔으로 붉었다. 나는 휴대전화로 카톡을 보았다. 내게 온 메시지는 하나도 없었다. 포탈 뉴스를 클릭했다. 빙하가 녹아 북극곰의 수가 줄어들었다는 뉴스였다. 나는 눈 앞에 펼쳐지는 뜨끈하고 축축한 아픔에서 눈을 돌리고 아주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익히 알려진 비극을 들여다보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물기어린 목소리에 옆을 보니 민희가 울면서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스님 중 한 명이 휴지를 뽑아 건넸다. 나는 민희의 눈물이 자신의 불행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잠시 의심했지만, 여사장의 얼굴빛이 밝아지고 눈가와 입매가 한결 부드러워진 걸 보고 아주 깊고 넓은 지하 동굴에서 잔치를 벌이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사람들을 울고 있을까, 웃고 있을까.
“내 정신 봐. 노지 감귤이, 제주도에서 친척이 보낸 맛있는 귤이 있는데.”
주인 여자가 허겁지겁 부엌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귤 여섯 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주인 여자와 민희는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식당을 떠나며 민희는 주인 여자를 안았다. 민희가 내 손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엉겁결에 나도 주인 여자를 안는 모양새가 되었다. 주인 여자는 우리를 꽉 끌어안았다. 그건 이상한 기분이었다. 두툼하게 살집이 잡힌 몸과 뼈밖에 남지 않은 몸, 그리고 평범한 체구의 몸. 그 중 어느 것이 내 몸인지 잠시 구분이 가지 않았다. 나는 조금 울었는데 그 눈물도 내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법문 시간에 나는 통유리 너머로 당산나무를 지켜보았다. 검고 거대한 당산나무는 모든 나무들이 그렇듯 자신이 아닌 밖을 향해 나뭇가지를 내밀고 있었다. 창 밖으로 눈이 내렸고, 마치 손바닥 위에 놓인 선물처럼 나뭇가지에 눈이 쌓였다. 그 풍경을 오래 보는 동안 내 안에도 뭔가가 두텁게 쌓이는 것 같았다.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내부의 풍경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 무언가가.
“아름답다.”
원장 스님은 정확한 발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내 쪽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 실패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손해는 없다. 인생의 모든 일은 결국은 득이다. 실패도 득이다. 당신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나도 모르게 “네.”라고 대답했다. 그날 저녁 그는‘폐관 수행’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민희의 말에 따르면 원장 스님은 일 년에 한 번, 석 달 동안 판자로 창문을 막은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수행을 하는데, 이 기간 동안 그가 주변의 고통을 빨아들이므로 환자들의 병세가 좋아진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물었다.
“그러면 원장 스님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 스님 안에 쌓이면 어떡하는데?”
“스님의 마음 깊은 곳에는 불꽃이 있어. 고통을 태워서 더 큰 빛을 만들어.”
“항암치료는 안받을 거니?”
나는 내 말이 염려나 의심으로 들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의사는 낮은 확률이라도 항암치료를 해보자고 설득했지만, 민희는 치료를 거부했다. 민희는 볼살이 말라서 기이하게 커 보이는 눈으로 날 쳐다보며 딴소리를 했다.
“은경이 넌 늘 용감했어. 자기 마음을 따라 살았잖아. 그게 멋있고 부러웠어. 계속 그렇게 살아.”
나중에 나는 이 말을 민희의 작별 인사로 기억하겠지만, 당시에는 몰랐다.
선원을 떠나기 전 날 밤, 나는 잠든 민희의 숨소리를 들으며 시진과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모니터 속이 아니라 실제 세상에서 만난 날. 일본식 꼬치구이 집이었는데 시진은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음식도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거렸지만, 나는 내 부끄러움과 눈가의 주름을 가려줄 짙은 어둠이 고마웠다. 구운 파와 소금구이 닭꼬치가 번갈아 끼워진 꼬치를 뜯어 먹고 초록색 병에 든 맑고 달콤한 사케를 마시며 나는 말했다.
“나는 책벌레였어요. 어렸을 때는 심지어 책 속 세계가 진짜고, 현실 세계는 가짜인 줄 알았어요. 책 속 세계는 넓고 흥미진진했지만 현실 세계는 좁고 암울했거든요. 내 아버지는 알콜 중독에 폭력적인 사람이었어요. 나중에 폐쇄병원에 입원했어요.”
어느 맥락에서 이 이야기가 나왔나.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냐는 질문을 시진이 던졌던 것 같다. 나는 좀 더 흥미로운 사람으로, 글쓰기가 운명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물기 어리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로 불행을 말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으로도. 가짜 세계에서 어떻게 살았냐고 시진이 물었다.
“집에선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고 학교 수업시간엔 잠만 잤어요. 밤새 아빠가 소리를 질러대서 잠을 못자기도 했고. <로빈슨 크루소>라는 책을 학교에 갖고 다녔어요. 쉬는 시간에는 책을 펼치고 내가 무인도에 있다고 상상했어요. 32페이지에 로빈슨 크루소가 개와 해변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는 장면이 있었거든요. 그게 내가 생각하는 천국과 가장 흡사했어요. 사람이 없고 개 한 마리뿐인 섬이 말이죠.”
이날 시진은 검은 코트 밑으로 갈색 가죽 치마와 검은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시진의 긴 목을 완전히 가리면서도 몸의 실루엣을 그대로 드러내는 웃옷을 나는 힐끗거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시진은 내 쪽으로 몸을 숙이고 사케를 잔뜩 마셔서 느슨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 깨달았어요? 책속 세계가 가짜고, 바깥 세계가 진짜라는 걸?”
“얘기가 길어져도 괜찮아요?”
나는 되묻었고 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우리는 카드놀이를 하듯 각자의 가장 내밀한 상처와 깊숙한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상대의 패를 읽는 중이었다. 시진이 내게 먼저 고등학교 1학년 말에 단짝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은 얘기를 했다. 그 후로 시진은 고교시절 동안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고, 그래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남는 시간을 떼우기 위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친구를 정말 아꼈나 봐요, 라고 내가 말하자 시진은 꼭 그런 건 아니었다고 대답했다. “그냥 그 애가 죽었다고 다른 아이로 대체하는 게 불결하게 느껴졌어요.”라고 시진은 말했다. 그 말에서 시진의 고결함에 가까운 결벽증이 느껴졌고, 나는 좀 더 시진에게 반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를 매혹하는 중이었고 둘 다 그걸 알았다. 그래서 더 빨리 취했다.
“어릴 때 나는 여름방학마다 엄마를 따라 외할머니 댁에 갔어요. 외할머니는 사이비 종교를 믿는 마을에 살았죠….”
나는 생명마을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했다. 외진 곳으로 이십 분을 달리면 나타나는 검문소. 야자수가 곳곳에 세워지고 잔디가 깔린 정원. 언덕 위에 세워진, 외벽 페인트가 벗겨진 낡고 음습한 아파트. 아파트에서 걸어서 삼십분 거리에 있는, 하얀 천사 조각상들이 안팎으로 놓여 있는, 그곳에서‘성전’으로 불리던 교회. 천국과 지옥을 섞은 것 같은 생명마을의 분위기가 이야기에서 중요했다. 그곳 사람들은 기분 나쁠 정도로 선량했고, 그 선량함은 맹목으로 이어졌다. 아파트는 삼층이었는데 층마다 오십여 가구가 살았고, 복도 끝에 세 개의 변기가 있는 공동화장실이 있었다. 집에는 개인 화장실이 없었지만 부엌에 타일이 붙은 바닥과 수챗구멍이 있어서 소변은 거기서 봤다. 그리고 물통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쏟아 부었다. 그래서 어느 집에 가든 공기 중에 희미한 암모니아 냄새가 떠돌았다. 아파트에는 작은 매점도 하나 딸려 있어서 민희와 나는 스크류바와 쌍쌍바 따위를 사먹었다. 매점 아줌마는 손님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늘 교주님이 나오는 비디오를 시청했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우리는 사케 한 병과 홍합이 가득 든 맑은 오뎅탕을 더 시켰다. 그 이야기에서 의도한 것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이토록 다양한 세계를 이동하며 살아왔다는, 그래서 성인인 내가 독창적이면서도 유연한 시야를 갖게 되었다는 암시였다. 나를 보는 시진의 가늘고 촉촉한 눈에서 내 시도가 성공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곳엔 주근깨가 잔뜩 나 있고 머리카락이 갈색인 예쁘장한 여자애가 한 명 있었어요.
그 애 이름이 민희였는데, 민희는 철사처럼 뻣뻣한 검은 머리에 심술궂게 생긴 그 애 엄마랑은 너무 달랐죠. 생명마을에 내 또래는 그 아이밖에 없고, 게다가 동갑이라서 우리는 금방 친해졌어요…”
집마다 벽장이 있었는데 민희와 나는 벽장에 들어가는 놀이를 했다. 문을 옆으로 밀어서 여는 벽장이었고 안에는 이불이 개어져 있었다. 이불냄새와 나프탈렌 냄새가 났고, 벽장 틈으로 새어나오는 뾰족한 빛을 받은 먼지들이 아롱거렸다. 그곳에서 우리가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왜 그런 놀이를 했어요?”
시진이 물었다.
“그 애가 예뻐서 어둠 속에서 둘이만 있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우리가 둘 다 육학년이었을 때, 민희의 집 벽장에 숨어 있는데 두 아주머니가 민희의 엄마를 찾아 왔어요. 생명 마을에선 아무도 문을 잠그고 다니지 않거든요. 두 아주머니는 잠깐 얘기를 나누다 떠났어요.”
집에 없나? 없나 봐. 이 집 딸은 고아원에서 데려온 애라며? 애기 때 데려왔지, 세 살 인가. 그러면 친엄마가 아닌 걸 모르겠네? 모르지, 자기가 고아란 걸. 두 아주머니가 떠난 후 민희와 내가 얼마나 오래 벽장에서 숨죽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일이 분처럼 짧은 시간 같기도 하고 삼십 분이 넘는 긴 시간 같기도 하다. 내가 왜 벽장 속에서 민희의 뺨과 입술에 입을 맞췄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지난 지금 나는 추측할 뿐이다. 고아라는, 아이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비극에 매료된 것일까. 아니면 그 혼란의 틈을 타서 평소에 염원했던 일을 실행한 것일까.
“내가 아직도 헷갈리는 것은, 스크류바 딸기 맛이 나는 민희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갠 순간인지, 아니면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갑자기 벽장 밖의 환한 세상에 노출되었을 때인지, 아니면 벽장 밖에 나온 민희가 날 향해 웃으며 놀이터에 가자, 라고 말했을 때인지. 그러니까, 책 속 세계가 가짜고 현실이 진짜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요.”
“잃어버린 책의 세계를 위해 건배해요.”
시진이 나뭇가지에 달린 분홍 벚꽃이 그려진 사케 잔을 내밀며 말했다. 나도 잔을 든 손을 뻗었다. 막 시작하려고 하는 이 관계가 언젠가 시들 것이라는 걸 상상도 못한 채로. 이
이야기가 왜 글을 쓰냐는 질문의 대답이라는 걸 아직 깨닫지 못한 채로. <끝>
<당선소감>
스스로에게서 떨어진 반걸음이 소설 쓰게 만들어
어릴 때 현실 세계가 가짜이고 책 속 세상이 진짜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일학년 교실에서 누가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네도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소년소녀판 ‘로빈슨 크루소’를 펼치고 무인도로 들어갔습니다.
언제였을까요. 현실 세계가 진짜라고 자각한 순간은. 그건 한순간에 번쩍 깨달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책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현실 속 저의 육체로 도착하는 길고 긴 여행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행에서 저는 정말 잘 도착한 걸까요. 저는 아직도 스스로에게서 반걸음쯤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 반걸음이 저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 만듭니다.
슬픔은 기쁨이 되고 기쁨은 슬픔이 되니, 저는 반걸음 떨어진 곳에서 삶이 주는 슬픔과 기쁨을 바라보고 쓰겠습니다.
사랑하는 엄창석 선생님에게 오래 소설을 배웠습니다. 온라인으로 만난 김이설, 김성중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작은 이야기 마을’ 식구들이 있어 늘 든든합니다. 마음의 고향이 되어주는 ‘유심선원’ 식구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아무 대가 없이 삼 년 동안 심리 상담을 해주신 고려대 박정배 선생님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합니다.
소중한 친구들. 지인들. 스님들. 어머니. 모두 고맙습니다.
● 84년생
● 제주 거주
<심사평>
사랑과 예술, 생과 사에 대한 묵직한 물음 돋보여
본심에서 마지막까지 집중적으로 살펴본 작품은 ‘우리가 원소로 순환될 때’와 ‘벽장 밖은 어디로’ 두 편이다.
이 두 편의 작품은 공교롭게도 모두 예술과 죽음 앞의 삶이라는 다층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서사로 구현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우리가 원소로 순환될 때’는 그로테스크하고 다소 섬뜩하게 여겨지는 극적 설정이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 계속 글을 읽게 만드는 독특한 흡인력과 에너지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패기와 열정은 주목할 만했으나 전체적으로 서사의 흐름이 장황하고 매끄럽지 못한 점, 또 이런 근원적인 주제를 소설에서 탐구할 때에는 반드시 더 깊고 심층적인 성찰이 수반되어야 한다는점 등이 아 쉬움으로 남았다.
‘벽장 밖은 어디로’는 사랑에도 꿈을 이루는 일에도 성공하지 못한 중년의 여성 화자가, 암환자인 어릴 적 친구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문장과 잔잔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전개가 인상적이었으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랑과 예술, 생과 사에 대한 묵직한 물음을 독자의 가슴에 던지는 역량이 돋보였다. 당선작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왜 글을 쓰느냐는 질문의 대답’이라는 문장은 ‘왜 삶을 살아가느냐는 질문의 대답’이라고 바꿔 읽을 수 있다. 이것이 이 소설이 가진 힘일 것이다. 이에 큰 망설임 없이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심사위원 : 정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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