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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에 대한 두가지 욕망 / 염지영


◆ 등장인물= 언니, 동생,남자
◆ 때= 현재

무대

무대는 숲 속 통나무로 지어진 2층집이다. 

1층은 주방과 언니의 생활공간으로 주방기구, 여러 개 물통이 놓인 식탁, 전화, 침대가 놓여있다. 귀퉁이는 나비 박제의 공간으로 작업대와 작업도구, 선반 등이 있고 작업대 놓인 방향의 벽은 박제된 나비로 장식되어 있다. 마당이 보이는 창문 있다. 

계단으로 이어진 2층은 동생의 공간이다. 침대가 놓여 있고 두꺼운 커튼이 2층 전체를 가리고 있다. ㄴ자 형태의 공개된 마당은 집과 연결 돼 자유로이 드나들게 되어있다. 큰 감나무가 있고, 감을 말리는 건조대 놓여 있다. 남는 공간엔 곶감 포장 박스 쌓여 있다.



막이 열린다.

문마다 커튼이 쳐있고 2층 역시 커튼으로 가려져있다. 1층 창문을 덮은 커튼이 바람에 날리며 빛줄기가 집안을 비친다. 창문으로 날아든 파란 나비, 2층의 커튼 안을 들락거린다. 2층 커튼이 열리고 동생 나온다. 일렁이는 빛의 움직임에 언뜻 보이는 동생은 긴 옷차림, 검은 망사로 된 베일로 얼굴을 가린 모습이다. 

인기척이 들리고 마당으로 양손 가득 짐을 든 언니 등장한다. 집 안으로 들어서 불 켜면 실내 환해진다. 물을 들이킨다. 식탁에 짐 올려두고 정리한다. 동생은 나비를 잡아 유리병 안에 넣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축 늘어진 나비를 본다.



동생죽었어. 이건 죽은 거야.

언니그래.

동생용케 태어나 몇 단계를 거쳐 이 모습을 하고 고작 몇 날. 그것도 보장 받을 수 없어. 아이들 그물망에 걸려 잠깐의 놀이거리, 혹은 방학숙제. 누군가의 먹이, 지나가는 차의 유리에 부딪칠 수도.

언니그래.

동생아름다움은 잠깐이야. 그 짧은 시간을 위해 태어나 버티고 견디다 시들어가. 멀쩡하리라는 보장도 없어. 멀쩡하다 해도… 중간에 망가질 수 있어.



빛에 따라 박제된 나비는 움직이는 듯 보인다. 동생은 황홀한 표정으로 박제된 나비들 앞에 선다. 베일로 얼굴이 가려져 오직 목소리로 감정이 드러나는데, 기복이 심하고 때때로 광기어린 모습이다.



동생살았어. 이건 산 거야.

언니그래.

동생죽었다고 생각하겠지. 숨이 멎고 차갑게 식어버린 몸뚱이에 섣불리 그럴지도 몰라. 그런데…살았어. 숨이나 체온은 아무런 문제가 안 돼. 이렇게 찬란한 빛깔을내고 있는 녀석들을 어떻게 죽었다고 할 수 있겠어.

언니그래.


동생살아있을 때보다 더…아름다워.

언니그래. 

동생숨이 붙어있을 땐 가지고 있는 본능이 있어. (날아다니는 나비 잡는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태어나자마자 날개를 몇 번 퍼덕이고는 날아 오르잖아. (나비 날려 보낸다) 하지만 본능에 충실한 대가는 퇴화될 뿐이야. 날갯짓이 힘겨워지고 결국 날아오르려는 욕망마저 소멸되겠지. 본능이 사라지면…그제야 진짜로 사는 거야. (박제된 나비들을 쓰다듬는다) 이걸 좀 봐. 날고 있어. 고작 몇 날 뿐이던 삶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이토록 생명력 있는 날갯짓을 하게 돼. 평생의 정점이었던…가장 높이 날아오르던 찬란한 모습으로…사는 거야.

언니그래.




언니는 장바구니에서 곶감 상자를 꺼내 열어 몇 개를 골라낸다. 동생의 시선이 골라낸 감에 고정된다.



언니서로 붙어서 살점이 떨어졌어. 못 팔고 가져왔잖아.

동생모양은 그래도 맛은 진짜라는 걸 아는 사람이 있을 거야. 

언니사람들은 터지고 예쁘지 않은 건 안 찾아. 반들반들 윤이 나는 것만 찾아.

동생맛은 역사가 있어야 해. 나무에서 열리고 떨어지고 볕을 쬐고 그늘에서 몸을 말리고…사람의 독한 손길을 견뎌내 여기까지 온 역사가 있다고.



동생, 곶감 상자에서 멀쩡한 감 하나를 들어 살핀다.



동생가짜 같아. 놀랄 정도로 매끈하고 어디 하나 찌그러지거나 긁힌 자국 없어.



베일에 가려진 얼굴 쓰다듬는다. 읊조리듯 말하는 것은 점점 감정적이 된다.



동생새 것은 가짜 같아…진짜는 터지고 흘러 엉망진창이지. 난 진짜야. 일그러진 나는 진짜라고. (구석의 무른 감을 바라본다) 진짜는 구석에 버려져…

언니…우기지마. 그냥 감이야. 

동생(점점 흥분해 말이 빨라지고 호흡이 거칠어진다) 문드러지고 일그러졌어…미치도록 뜨거웠던 기운은 몸과 내 영혼까지 태워버렸어. 나는… 버려졌어. 그리고는(구석의 감을 본다) 저렇게 내쳐졌지. 

언니그렇지 않아.

동생언니만은 알아줘. 망가지는 건… 멀쩡했던 과거가 있어야 가능해. 

언니네 말이 맞다. 다음 장에 가지고 나갈게. 찾는 사람 있을 거야.



전화벨이 울리자 언니는 다급하게 수화기를 들었다 바로 끊는다. 다시 벨이 울리고 또 끊어버린다. 어색한 공기. 누군지 알 것 같은 전화. 동생은 전화 쳐다본다. 언니는 수선을 피우며 장바구니에서 포르말린을 꺼낸다.



언니나비 박제는 나프탈렌으로 충분하다던데.

동생포르말린이 필요해. 죽기 직전 가장 아름다운 색이 나와. 숨이 끊어지기 전에 마지막 발악으로 안간힘을 다해 자기 색을 드러내니까. 

언니독극물이라 위험하다고 했어.

동생(박제된 나비 하나를 가리킨다) 살았을 때엔 이런 빛깔이 아니었어. 유리병 속에서 죽어가는 나비를 보는데… 고통의 절정에서 거짓말처럼 색을 발했어. 아주 아름다운 색… 그리고 차츰 퇴색되어 갔지. (색에 대한 집착, 광기가 엿보이는 모습이다) 어떻게 해야… 어떻게 해야 가장 아름다운 색을 가질 수 있을까. (유리병에 갇힌 나비를 가리킨다) 공기를 차단시킨 것에 대한 분노, 숨이 막히며 느꼈을 극도의 공포… 그 순간의 시간을 잡아야 돼. 

언니적어도 꿩 크기는 돼야 쓰는 약이랬어.

동생(정색한다) 그래서 포르말린이야. 색을 발할 때 포르말린을 뿌려. 가장 아름다울 때를 영원히 가질 수 있어.



포르말린을 선반 위에 놓는다. 바람에 커튼이 젖혀지며 환한 빛이 들어온다.



동생가려줘.

언니(커튼을 친다) 

동생… 세상 어느 한 곳은 하루의 시작이 아침이 아닌 저녁이나 밤이었으면 좋겠어. 나라가, 마을이, 아니 단 한 사람이라도… 하루의 회전이 나와 같았으면 좋겠어.

언니…

동생아침을 기다리며 밤을 견디는 것일까,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며 눈부심을 견디는 것일까.

언니글쎄.

동생아침을 기다리며 밤을 견디던 때가 있었어. 눈부심에 열광하던 때가…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어.

언니… 없잖아.

동생그마저도 없었던가? 눈부셨다고 생각하던 그 시절마저 착각인가.

언니… 10년이 넘게 그런 말 한 적 없잖아. 단 한 번도… 혹시… 날 원망하니?

동생원망?

언니그래. 그 날의 일을, 그 날의 내 행동을.

동생(웃는다) 새삼스럽다. 10년도 지난 일에 원망이라니.

언니… 

동생(시를 읊는 느낌이다) 이쪽 문이 닫히면 저쪽 문이 열린다.

언니무슨 말이야?

동생내가 보는 세상이 닫히고 나니 언니가 들려주는 세상이 열렸어.

언니… 직접 세상을 보고 싶지 않아?

동생온전히 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세상을 가진 적 있어? 언니는 내 세상이야. 언니가 보는 것이 내가 보는 것이 되고, 언니가 듣는 것을 내가 들어. 언니는날 위해 존재하는 세상이야. 난 전부를 가졌어.

언니…때로 난 너에게 거짓말을 해. 못 본 것을 보았다고 하고 본 것을 못 보았다고 하기도 해. 

동생이를테면?

언니지난 번 장날에 말했던 젓갈골목.

동생골목 가득 빨간 꽃이 피었다고 했잖아.

언니꽃은 없었어. 그리고 지난 장터의 입구.

동생장으로 들어서는 길은 나무에서 떨어진 색색의 잎으로 그림 같다고 했어. ‘그림을 밟고 걷는 것 같다고. 폭신한 것이 마치 떠있는 느낌이라고 했잖아.

언니발에 짓이겨져 형태를 알아보기도 힘든 질척한 길이었어. 

동생…

언니내가 보는 현실보다 네 상상이 더 아름다워. 



동생이 창문을 열고 바깥을 바라본다. 



동생사람들에게선 어떤 냄새가 나?

언니고단한 냄새.

동생또?

언니고단함을 어떻게든 보상받으려는 냄새.

동생…기억이 안 나. 



언니, 동생에게 겉옷을 입힌다. 소란스러운 시장의 분위기를 내려 라디오를 켜 음악을 크게 튼다. 실제 자리마다 가게의 물건을 내려놓는다.



언니기억하러 가자. 사람들 냄새 가득한 장에 가자. 



동생의 손을 잡고 서둘러 뛴다.



언니아저씨, 잠깐만요. 뛰자. 놓치면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돼. (몇 바퀴 뛰고 식탁 의자에 앉는다) 다행이다. 하마터면 서서 갈 뻔 했네. 



버스에서 내려 시장을 둘러본다.



동생차 들어오는 소리,,. 고기차 들어온다. 국거리용 좀 주세요.

언니(칼과 칼을 맞부딪쳐 챙챙 소리를 낸다. 도마를 리듬 있게 친다. 목소리 톤을 바꾼다) 또 여기 자리를 대면 어떻게 해요? 기름내가 양말에 배잖아요. 

동생또 양말 트럭이랑 전 부치는 집이랑 붙었다. 저 집은 만날 저러네.

언니장날 레파토리잖아. 저 쪽에 커피 카트 온다. 커피 마실래?

동생응.

언니(커피 타 동생에게 건넨다) 아가씨는 프림 하나에 설탕 둘.

동생어떻게 아세요?

언니아가씨 입맛만 외운 줄 아나? 이 장터 사람들 입맛은 다 꿰고 있어. (입으로 치이익 소리 낸다)

동생무슨 소리야?

 



언니떡집. 김 빼는 중이다. 

동생그 소리 들으니 배고프다. 팥죽 먹자.

언니(동생을 식탁에 앉힌다) 어서 오세요. 뭐 드시겠어요?

동생팥 하나 호박 하나요. 이 집은 늘 맛있어요.

언니허리며 어깨며 성한 데가 없어. 이 짓거리 그만 둬야지 하면서도 아가씨 같이 맛있게 먹는 사람들 때문에 팥 불리고 호박 속 긁어내고 그래.

동생(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언니이제 무슨 냄새나는지 기억나?

동생반 쯤 팥죽을 비우고 나니 한 국자 더 내주는 할머니 냄새, 뜨거운 커피에 혹여 입천장이 데일까 적당히 찬물을 섞어준 아주머니 냄새. 

언니저기 재미있는 게 있나봐. 줄넘기다. 열 번을 넘으면 상품을 준대.



열 번을 못 넘기고 줄에 걸려 넘어진다. 웃음을 터뜨리는 자매. 동생, 몸을 일으키는데 손에 남자 양말 딸려 나온다. 싸늘한 기운으로 변하는 동생. 



언니(다른 방향 보고 손을 번쩍 든다) 잠깐만. 우리 다시 도전해요. (입으로 줄이 돌아가는 휘휘 소리 낸다) 



동생양말… 그 남자 양말이야.



동생이 라디오를 끈다. 소란스러운 장터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언니저번에 두고 갔길래… 그냥 두기도 뭐해서… 우리 빨래하는 김에… 

동생버려. 냄새나.



동생은 유리병 속 나비를 꺼내 박제판에 고정시킨다. 동생의 눈치를 살피던 언니, 장바구니에서 걸쇠를 꺼내 출입문 손잡이에 건다.



언니자물쇠보단 이게 낫대.

동생갑자기 그건 왜.

언니필요한 것 같아서.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어.

동생걸쇠든 자물쇠든… 결국 열기 위한 거잖아.

언니지키려고 잠그는 거지.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가 커질수록 동생의 숨이 점차 거칠어진다. 호흡을 진정시키는 동안 언니는 장바구니에서 약을 꺼낸다.



언니(설명서를 꺼내 읽는다) 이유 모를 불안정한 호흡.

동생(약을 먹는다) 좀 쉬어야겠어.



동생, 2층으로 올라가 커튼을 친다. 언니는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간다. 

마당. 남자 서있다. 언니는 2층을 살피며 안절부절 못한다.



남자생각해봤어?

언니하고 말 것도 없어요. 

남자나가자. 나가서 나랑 살자. 

언니아니요. 내 대답은 늘 같아요.

남자난 점점 저 호수에 가까워지고 있어. 아무도 몰랐던 숨겨져 있던 호수를 발견했고, 호수로 닿을 길만 찾는다면 내 이름이 걸린 안내도가 생기는 거야. 두 개의 길이 남았어. 그중 분명 호수로 닿는 길이 있어.

언니(2층을 살피며 남자의 목소리를 낮추라는 동작을 한다)

남자난 그저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길이 맞는지를 살폈어. 지루하고 힘들고 성과가 없지만 난 만족했지. 방향 못 잡고 사는 내 인생에서 확실하게 방향을 제시하는 내비게이션이 좋았거든.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야. 내가 만들어낸 길을 가고 싶다… 내 길을 찾고 싶다… 그러다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은 호수를 발견했어. 숨겨진 보물, 그 곳에 닿는 길,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다 찾은 당신… 10년의 세월을 한꺼번에 보상받았어.



언니를 벽에 세우고 몸을 밀착시킨다. 언니는 남자를 완강하게 밀치지 않는다. 2층 창문 커튼이 살짝 열렸다 닫힌다.



남자아까 빌린 여관, 아직 시간 남았어. (여자의 윗옷을 슬쩍 들여다본다) 

언니(옷깃을 여민다)

남자장에 빠트린 게 있다고 그래. 여관에서 기다릴게.



남자가 반지를 꺼내 언니의 손가락에 끼우고 퇴장한다. 2층 커튼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언니는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온다. 동생은 박제된 나비에 방부제를 바르고 박제를 좀 더 오래 보존시키는 종이 유지를 덮는다. 



동생종이 한 장 차이인데 덮고 안 덮고 차이가 커. 

언니그렇구나.

동생… 누가 왔었어?

언니말도 안 되는 가격에 곶감을 대달라잖아. 대번에 거절했지.



언니는 남자가 나간 쪽을 힐끔댄다. 괜스레 커튼을 정리하며 바깥을 살핀다.



언니멀리 안 갔으면 다시 흥정 해볼까? 

동생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며.

언니정기적으로 가져간댔으니 멀리 보면 손해는 아닐 거야.

동생그냥 흘린 말이면 어쩌려고.



몸은 나비를 박제하고 있지만 동생은 언니를 보고 있다. 나가려는 언니를 보면서 동생은 불안감에 호흡이 거칠어진다. 언니는 동생의 등을 쓸어내린다.



언니생전 안 그러더니 요즘 들어 부쩍 왜 그러나 모르겠다.



전화벨이 울리다 끊긴다. 언니는 동생과 시선이 마주치자 황급히 냄비 꺼낸다.



언니시장 아주머니들한테 물어보니까 호흡이 가쁘고 숨이 안 쉬어질 때 백작약, 황기, 당귀를 넣고 끓여 먹어보라더라. (냄비에 말하는 순서대로 집어넣고 끓인다) 물 대신 마시면 약보다 나을지도 몰라. 한 번 마셔보자. 아니… 약을 다시 지어올까? 아니… 약보다 이 물이 나을지도 모르지.
언니, 동생 눈치를 보며 장바구니를 살피다 손바닥을 마주쳐 소리를 낸다.



언니내 정신 좀 봐.

동생또 장에 뭐 두고 오기라도 했어?

언니아래 정류장. 무거워서 잠깐 내려뒀는데 깜박했어. 

동생(핀에 손가락 찔려 피가 난다) 아.

언니괜찮아?

동생괜찮아. 조금 찔렸어.

언니아… 다행이야.

동생(가스레인지 위 냄비 본다)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언니약은 은근한 불에 오래, 많이 끓이는 게 좋아. 얼른 올게.



언니 나간다.

창문 커튼을 걷고 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동생. 휴지로 피를 닦고 돌아서는데 발에 채이는 물건. 장터놀이를 하던 물건이다. 혼자서 장터놀이를 시작한다.



동생고기 좀 주세요. (칼을 양손에 잡고 맞부딪치다 리듬 있게 도마를 두드린다) 양말에 기름 냄새 배잖아요. 저 쪽으로 당장 옮겨요. (의자를 밀어낸다) 아줌마, 커피 한 잔 주세요. (커피를 타 마신다) 정말 열 개 넘으면 저 선물 주시는 거 맞죠? (폴짝폴짝 뛴다)



지쳐 언니의 침대로 가 풀썩 눕는다. 언니의 베개에 얼굴을 묻고 냄새를 맡는다. 

푸른 조명이 동생에게 비춰지면 환상적인 음악 나온다. 나비가 박제된 벽에 조명이 더해진다. 형형색색의 나비는 벽에서 떨어져 나와 동생의 몸을 감싼다. 동생의 몸은 화려한 옷을 입은 듯 보인다. 그러다 멈칫한다. 가스레인지 위 솥에서 연기가 새어나온다. 불안한 동생, 호흡이 가빠진다. 괴로워하며 목을 잡고 고통스러워한다. 나비는 동생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

회상. 연기가 새어 들어온다. 대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들린다. 바깥에서 잠긴 문은 아무리 열려고 해도 꿈쩍도 않는다. 문을 두드리던 동생, 그대로 쓰러진다. 



(소리) 안에 사람이 있어요. 문 밖에서 자물쇠를 채워 못 나오고 있어요.



현재. 연기가 자욱한 집 안. 언니가 넋 빠진 얼굴로 뛰어 들어온다. 집안의 모든 문을 열고 연기를 뺀다.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통에 물을 뿌리자 치이익 열이 식는 소리 들린다. 동생을 침대에 눕히고 인공호흡을 한다. 



언니또… 또… 내가… 미친 거야. 잠시 미쳤어. 얼마나 무서웠을까… 남자랑 붙어먹자고 나가 결국 이 사단을 만들고. 



남자 들어온다. 



남자찾았어. 호수에 닿는 길을 찾았어. 



언니를 안고 돌며 환호성을 지른다. 언니는 동생을 의식하며 남자를 밀어낸다.



언니… 가요. (물을 들이킨다) 

남자(언니의 어깨를 쥐고 흔든다) 찾았다고. 길을 찾았다니까.

언니당신 혼자 그 길로 나가요. (물을 들이킨다)

남자왜 끝도 없이 물을 마셔대는 줄 알아? (언니가 마시는 물을 뺏는다) 당신은 이 산골, 동생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거야! 당신 인생에 목말라하는 거라고!



흥분한 남자는 언니를 끌고 마당으로 나간다.



남자그 놈의 변덕. 옷만 챙겨 같이 나가겠다고 들어온 거잖아. 

언니몸뚱이 몇 번 섞은 걸로 엉길 거면 가요. 돌아가요.

남자난 돌아갈 곳이 없어. 출발한 곳이 없거든.

언니시작이 없는 건 없어요. 

남자당신이 사라지고 난 헤맸어. 헤매던 어디에선가 시작은 했겠지. 하지만 어딘지 몰라. 내 지난 10년이 어땠는지 알아? 

여자알고 싶지 않아요..

남자길라잡이. 이름도 거창한 내비게이션 업그레이더… 난 그저 꼭두각시였어. 지시대로 따라가기만 했지. 그러다 우연히 서비스가 끊긴 지역을 발견했어. 



조명 어두워지고 남자 손전등 꺼내 켠다.



남자발에 뭐가 걸려 넘어졌어. 녹슨 철로였지. 나무가 들어찬 숲인데 희한하게 물 비린내가 풍겼어. 철로가 끊긴 곳에서 고개를 들었어. 기가 막힌 호수가 눈앞에 펼쳐지는데… 거짓말 같은 풍경이었어. 



남자는 잠시 말을 멈춘다. 눈앞에 펼쳐진 호수에 넋을 잃은 표정이다.



남자회사에 보고를 했어. 호수에 닿는 길만 찾아낸다면 포상금은 물론이고 승진까지도 바라볼 수 있었지. 이 잡듯 뒤졌어. 안내 되는 길은 물론이고 비포장도로, 산길, 겨우 사람 하나 드나드는 좁은 길까지. 

여자…

남자돌아서는데 저 멀리 뭔가가 움직이는 걸 봤어. 자세히 들여다봤지.

언니그만 해요.

남자사람이었어. 숲속에 사람 사는 집이 있어 희한하다 싶었지. 그러다 봤어.



조명이 푸른색으로 마당을 비추면 언니 밖에서 나비를 먹고 있다. 춤을 추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비의 움직임을 좇으며 나비를 먹는 모습.



남자나비를 먹고 있는 여자를.

언니…

남자여자의 얼굴을 보고 싶었어. 세상 어떤 누가 나비를 먹을까,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닐까? 폐까지 깊이 느껴지는 물 비린내, 나비를 먹는 여자… 꿈은 아닐까? 호수도 저 여자도 꿈인가. 나는 확인해야 했어. 호수를 찾은 게 꿈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싶어서, 나비를 먹는 여자 역시 진짜라고 확인하고 싶었어. 다가갔지. 환영처럼 보이던 여자 곁으로 끌리듯 갔어. 키우는 동물을 안고 먹이로 주는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아니었어. 여자는 나비를 먹고 있었어. 왜 나비를 먹을까? 왜?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떨렸지. 나에게 닥칠 어떠한 일에 대한 예고 같은 거겠지. 한걸음 한 걸음 그렇게 걷는데… 당신이었어. 



쿵하는 소리 들리며 언니와 남자의 눈이 마주친다. 조명 다시 들어온다.



남자전단지에서 현수막, 현수막에서 실종신고, 아무도 못 찾아내 결국 내가 찾아나선 여자였어. 내일은 오겠지, 모레는 오겠지, 잠깐 여행이라도 갔겠지, 혼식 전에는 오겠지, 오겠지, 오겠지. 그렇게 하루아침에 없어진 여자가, 그것도 인적 하나 없는 이 숲에서, 다른 것도 아닌 나비를… 먹고 있었어. 



집 안에서 동생의 소리가 새어나온다. 들어가려는 언니를 남자가 붙잡는다.



남자떠나고 싶어 했잖아.

언니또 돌아오고 싶어질 거예요.



언니는 남자를 뿌리치고 집 안으로 들어와 걸쇠를 잠근다. 동생을 품에 안고 아이 안 듯 진정시키자 다시 잠든다. 남자가 문을 두드린다. 



남자수진아.

언니…

남자난 찾았어. 호수로 통하는 길도, 너도. 



남자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언니는 문에 귀를 대고 대화를 엿듣는다.



남자여보세요. 아직까지는 그 길이 유일해요. 혹시 모르니까 올라가기 전에 다시 살펴볼게요. (전화 끊는다) 수진아, 길이 험하대. 너한테 닿는 길에 비하면 저 호수길은 험한 것도 아닌데. 



남자는 사진 한 장을 꺼내 문틈으로 넣는다. 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남자10년 전 당신 사진이야. 침대와 계절별 이불을 고르고,,, 웨딩드레스를 보러 갔었잖아. 그 때 찍은 당신이야. 

언니그만. 내가 누구였든. 어떤 사람이었든 상기시키지 말아요.

남자10년이나 나를 괴롭혔어. 

언니시간은 기다리는 사람이 세는 거죠. 

남자속죄는 어디서든 할 수 있잖아. 모두 죄를 짓고 살아. 너만 그런 게 아니야.

언니병이 사람을 죽게 하진 않아요. 병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때문이지.

남자무슨 소리지?

언니화마는 동생을 죽이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 흔적이 동생의 숨통을 끊어 놓았어요. 손목을 몇 번이나 긋고, 수면제를 먹어댔죠. 손톱깎이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거 알아요? 날카롭고 위험한 거 모조리 치운다고 치웠는데도 쟨 손톱깎이로 온 살을 뜯어내 결국 손목을 긁듯 뜯었어요. 나 때문이라고요! (절망적인 말투) 내가 한 그 철없는 짓 때문에… 

남자 그런 거 몰라. 내가 길을 찾았다는 사실만 알아.



사이



남자손 좀 내 봐.

언니… 왜 그러죠?

남자문고리 바로 위.

언니(문에 손을 댄다)

남자(같은 위치에 손을 올린다) 우리는 손을 맞잡은 거야. 10년이 그랬어. 세상은 달랐어도 같이 있었어. 

언니(남자의 말이 싫지 않다. 문에 얼굴을 대고 남자의 말을 듣는다)

동생갑갑해.



언니,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란다.



언니깼니?

동생문 열어줘.

언니(창문 연다)

동생아니, 다 열어줘. 모조리.



언니가 문을 열자 남자 서있다. 남자는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온다.

동생과 남자는 서로를 오래 응시한다. 서로의 의중을 알고 있는 느낌이다. 

언니는 동생 곁에 선다.



남자우린 셋이었잖아. 겨우 5주 살다 간 그 녀석.



언니, 멈칫한다.



남자쓰러진 당신을 옮기고 간호사는 여러 가지를 물었어. 결혼은 했느냐. 아니요. 임신 가능성이 있느냐. 예. 

언니가벼운 교통사고였을 뿐이에요. 

남자2층 산부인과에서 날 찾는다고 했어. 5주 된 아이가 있었다고 했어. 있는게 아니라 있었다고.



그 때의 기억에 고통스러워하는 남자. 동생은 무표정으로 나비를 잡아 살핀다.



동생원래 우리나라에서 살 수 없는 종이에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살기 시작하더니 이젠 흔한 종이 되어버렸죠. 자기가 있던 곳은 잊은 거죠. 

남자그래서?

동생 그냥 하는 말이에요. 익숙해진다는 것, 습관의 무서움에 대해서. 행동이 습관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박제판에 나비를 꽂고 방부제와 붓을 든다.
 
 동생 굳혀버리죠. 더 이상 흐트러지지 않게. 자신의 몸에 방부제가 발린 걸 잊은 녀석이 있었어요. 얼마 못 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지만. 퍼덕이며 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웃는다) 미련하죠? 벗어나려고 하다니. 
 남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동생 박제는 방부제를 빼고 말할 수 없어요. 박제물을 썩게 하는 미생물의 활동도 막아내고, 보존 기간도 길게 해줘요.
 
 남자가 폭발하듯 내뱉는다.
 
 남자 그만 지껄이라고 했잖아. 넌 언니의 젊음을, 안정된 사랑받을 수 있는 시간을 사라지게 했어. 비정상적인 이곳에서 수진이를 빼낼 거야.
 언니 그만!
 
 언니는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말을 토해내듯 뱉는다.
 
 언니 여보.
 
 남자, 말이 막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언니를 쳐다보는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남자가 감격하여 언니를 안으려는데 언니는 남자를 외면한다.
 
 언니 단 한 번만… 당신 앞에서 불러보고 싶었어요.
 남자 매일 부를 수 있어.
 언니 한 번으로 족해요. 
 남자 어떻게… 수 백, 수 천 번 될 수 있는 일이 충분해?
 언니 정말 그래요. 그것으로 다 됐어요.
 남자 (손을 잡아끈다) 집도 얻고, 적금도 붓고, 장도 보러 다니고. 남들처럼 그렇게 살자. 너만 생각해. 너만.
 언니 사람을 죽인 사람은 죽은 사람의 몫까지 살아내요.
 남자 죽지 않았잖아.
 언니 오히려 살아있으면서 죽은 듯 사는 게 더 고통일지 몰라요. 
 
 라디오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노래. 동생은 볼륨을 높인다. 이 모든 일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사람인양 태연하다. 천천히 남자 앞으로 간다.
 
 동생 내가 좋아하는 노래죠. (남자의 고개를 돌린다) 내 얼굴을 너무 자세히 들여다보진 말아요. (노래 흥얼거리며 남자의 손을 잡는다) 
 남자 (손을 빼낸다)
 동생 왈츠는 3박자. 할 수 있겠어요?
 남자 (좀 더 세게 동생을 밀어낸다) 제정신이 아니야.
 
 남자, 동생을 뿌리친다. 다시 남자의 손을 잡으려는 동생. 성이 난 남자는 동생을 밀친다. 넘어지면서 동생의 베일이 벗겨지고 화상 입은 얼굴이 드러난다. 뒷걸음질 치는 남자. 동생은 베일을 찾아 얼굴을 덮는다. 동생이 몸을 비틀다 정신을 잃는다. 언니는 동생에게 달려들어 숨을 쉬게 하려 온 힘을 쏟는다.
 
 남자 실수야. 실수라고. 단지 널 데려가고 싶었어. 그 뿐이야.
 언니 순정? 첫 정? 당신은 지치지도 않아요?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사람을 질리게 하냔 말이에요! 
 남자 그 녀석. 우리의 그 녀석. 
 
 언니, 지긋지긋하다는 표정. 듣기 싫어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른다.
 
 언니 그 녀석, 그 녀석, 그 녀석! 대체 손톱만한 그게 뭐라고 이래요.
 남자 그렇게 말하지 마.
 언니 또 있었어요. 지웠고.
 
 사이
 
 언니 여기 들어오기 전에 우연히 알았고, 지웠어요.
 남자 거짓말. 아닐 거야.
 언니 동생 저렇게 되고 바로 병원으로 갔어요.
 남자 … 아닐 거야.
 언니 사실이에요.
 남자 보호자가 있어야 돼. 내가 모를 리 없어.
 언니 일당 아르바이트 고용했어요. 
 남자 얼굴도 모르는 생판 남을 아빠로 만들어? … 이상해. 그게 쉬워? 
 언니 쉽지 않았어요. 
 남자 너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어. 
 언니 당신이 알던 10년 전의 나를 지금의 나에게 강요하지 말아요.
 
 동생이 일어나자 언니는 단숨에 달려간다. 남자, 동생 앞에서 무릎 꿇는다.
 
 남자 사람을 구하자. 동생을 돌볼 아주 괜찮은 사람. 
 동생 …
 남자 (동생 본다) 주말은 온통 여기에 와서 지낼게. 우린 이미 얘기가 다 됐어. 
 언니 이 남자가 일방적으로… 난 포기했다고 했어.
 동생 포기는 꿈꿨던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잖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런 말을 쓰지 않아.
 언니 나는…
 동생 언니는 나를 떠나는 걸 갈망했었구나.
 언니 아니. 난 절대 떠나지 않을 거야!
 
 동생은 가쁜 숨을 내쉰다. 동생에게 가려는 언니를 남자는 마당으로 끌고나간다. 언니는 세게 남자의 뺨을 때린다.
 
 언니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이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숨을 못 쉰다고요. 
 남자 또 나 때문이야?
 언니 (소리 지른다) 이런 일 없었어요. 아무도 없을 땐 이런 일 없었다고요!
 남자 수진아!
 언니 저 애가 왜 나갈 수 없는지 알아요? 나 때문이에요. 나도 실수였어요. 혹여 제 새 옷 입는다고 뭐랄까봐 바깥문 걸어 잠그고… 나가면서 걸어 잠근 문 연다는 걸 깜박했어요. 여기까진 나도 실수… 그런데 불이 났어요. 바깥문이 잠기고 애는 못 나와 결국…
 남자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
 언니 대체 왜 이렇게 엉겨 붙어요? 침대에서 했던 말들 때문이에요? 그 위에서 무슨 말인들 못 해요? 
 
 동생의 기침소리가 들린다. 언니는 집 안으로 들어간다. 언니의 부축을 받으며 동생은 2층으로 올라간다. 남자를 노려보는 언니.
 
 언니 당신한테는 우연에 필연, 운명이지만 나한테는 집착에 악연이에요. 
 
 남자, 품에서 꼬깃꼬깃 접힌 종이 꺼낸다. 남자의 휴대전화 울린다.
 
 언니 …혼인… 신고서…
 남자 늙었지? 10년간 내 주머니에서 나이를 먹었어. 난 다 썼어. 네 칸만 채우면 돼. (계속 울리는 전화벨. 전화 받는다) 확인하고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전화 끊는다) 마지막이야. 늦어도 한 시간 뒤엔 출발할 거야.
 
 남자 나간다. 언니는 남자가 주고 간 혼인신고서를 꺼내 오래 들여다본다. 허공에 사인을 하는 시늉. 옷을 둘둘 말아 배에 대본다. 불룩하게 나온 모양을 만져본다. 전화벨 울린다. 언니 받으면 무대 한 쪽에 조명 켜지고 통화하는 남자.
 
 남자 나가자. 너도 네 인생에 목말라 하잖아. 남자 스물여덟에 첫 정, 그 다음을 못 만들어 그저 처음이라는 것에 집착하는 건지도 몰라. 
 언니 …그래요. 단지 그것뿐이에요.
 남자 난 아이디어도 없고 센스도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통속적인 말 뿐이지만… 사랑한다. 정류장에서 기다릴게.
 
 언니가 전화를 끊자 남자 사라진다. 수화기를 품에 안은 채 흐느낀다. 흐느낌이 가라앉고 언니는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오래 응시한다. 나비 한 마리를 잡는다.
 
 언니 나도… 날고 싶어.
 
 나비를 먹은 언니.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바라본다. 2층에서 숨을 고르는 소리.
 
 동생 언니.
 
 언니, 2층으로 올라가 커튼을 걷으면 동생 누워 있다. 동생은 언니의 얼굴을 조용히 오래도록 응시한다. 언니의 얼굴을 손바닥에 새기듯 만진다. 
 
 언니 … 왜 그래.
 동생 언니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어. 잊혀지지 않게.
 
 언니, 2층 커튼 치고 내려온다. 동생의 손길이 닿았던 얼굴을 되짚어 만져본다. 주머니에서 남자가 준 혼인신고서 두 조각으로 찢어 날려버린다.
 
 언니 (나지막하게 중얼거린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종이 한 장이야.
 
 바닥에 흩어진 혼인 신고서를 바라본다. 배를 쓰다듬어 본다. 찢어진 혼인 신고서를 주워 맞춰본다. 결심을 한 듯 주머니에 넣는다. 2층의 동태를 살피다 서둘러 짐을 싸기 시작한다. 전화를 들어 남자에게 전화를 건다.
 
 언니 나를 경멸해. 매번 장터에 나가며 당신을 만나던 나를 경멸해. 그리고 여기를 떠나 당신과 살림을 차리는 꿈을 꾼 나를… 그리고 지금 당신을 따라가겠다고 마음먹은 나를… 아직도 여자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나를… 경멸해.
 
 2층 커튼 한 쪽이 살짝 걷히고 동생의 베일 쓴 얼굴 보인다. 다시 닫히는 커튼. 
 전화를 끊고 침대에 걸터앉은 언니.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2층 커튼이 열리고 동생 내려온다. 포르말린을 언니의 물통에 넣는다. 
 
 동생 배고파.
 언니 뭘 해줄까?
 동생 언니랑 늘 같이 먹던 것, 그거면 족해.
 
 언니는 반찬을 꺼내 식탁에 차린다. 동생은 천천히 오래 식사를 한다. 언니는 초조함에 계속해서 물을 마신다. 시간이 지나면서 언니의 행동이 눈에 띄게 느려진다. 언니는 비틀대며 가방을 챙기고 걸음을 떼다 문 앞에서 풀썩 쓰러진다. 간신히 뜬 눈으로 동생을 쳐다보는 언니. 동생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언니를 끌어 벽에 세운 후 고정시킨다. 언니의 옷을 활짝 펴자 나비의 날개처럼 보인다. 실제 나비를 박제하듯 날개가 활짝 펴지게 손가락 하나까지 고정시키는 동생. 방부제를 언니의 몸에 바른다. 멀찍이 서 언니의 모습을 바라보는 동생. 감탄의 소리가 새어나온다. 머리부터 손끝, 발끝까지 떨리는 손길로 쓰다듬는다. 라디오를 켜자 서글픈 곡조의 음악. 웃고 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전화벨 소리 울린다. 

 

 

 

 



[당선소감]“시대를 발언하는 작가의 모습으로 발전하도록 노력”

우선 당선작으로 선정해주신 경상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서울예대 극작과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작품이 지녀야 할 힘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신 극작가 김태수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단단하게 초석을 다지는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희곡을 쓴다는 개념을 다시금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작품 쓸 때마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이강백 교수님, 기쁜 소식을 가지고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극작가라는 직업과 희곡에 대해 더욱 구체적이고 큰 애정을 품게 해주셨습니다.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동생, 지인들. 고마움을 넘어서면 미안함이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이 기회를 빌어 마음을 전합니다.

인문학적으로 깊고 넓은 시선을 가진 극작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오래 쓰고 싶습니다. 

시대를 발언하는 작가의 모습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염지영 약력
- 1981년생
- 2003 경복대학 음악과 졸업
- 2009 서울예대 극작과 졸업
- 2012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인희곡상 당선


[심사평]“인물간의 갈등을 오브제를 통해 잘 녹여내”

올해 본선에 올라 온 작품은 모두 일곱 편이었다. 그중에서 <나비에 대한 두 가지 욕망>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흐르는 물을 붙잡고>가 수작이었다. 

<그림 같은 집을 짓고>는 노숙자 남녀의 결혼식을 통해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를 심화시켜 허황한 자본주의의를 넘어서는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리라 생각한다. 

<흐르는 물을 붙잡고>는 죽음의 애도과정을 처연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그러나 무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더 해보면 좋겠다.

<나비에 대한 두 가지 욕망>은 짜임새가 치밀하고 무대와 인물의 형상화가 역동적인 작품이다. 또한 나비를 포함한 오브제들과 다양한 극적 이미지 등은 희곡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만들뿐 아니라 무대화의 풍요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 자유, 사랑, 집착 같은 굵직한 테마를 인물간의 갈등과 오브제에 녹여내 구체적이고도 생생하게 형상화해낸 점도 훌륭하다. 그래서 이 작품을 올해 희곡부문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당선자가 좋은 무대를 많이 만나 재능을 꽃 피우고 우리 연극계의 발전에 힘이 되기를 기원한다. 

심사위원 이상란 약력
-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동대학원 졸업 
- 독일 보쿰대학교 연극학 박사
- (현)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및 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