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화단 / 김영경
화단 / 김영경 튤립은 부러져 누워 있었다 할 말이 개미 떼처럼 새까맣게 달라붙었다 서둘러 머릴 내밀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심성 없이 마구 달린 운동화 때문이라고 했다 제 역할을 못 한 울타리 때문이라고도 했고 개미도 무당벌레도 지렁이도 할 말이 많았다 넘어진 튤립 옆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댔다 얘기 꽃이 피었다 화단이 환해졌다 "다정하고 이해심 많은 동시야, 앞으로도 잘 부탁해!" 부엉이바위 아래 누워있을 때, 어두운 복도를 헤매고 다닐 때, 밝은 곳으로 가볍게 한 걸음만 가보자고 일으켜 세워 주던 동시가 이렇게 반짝이는 자리에 날 데려다 놓습니다. 가만히 손을 내밉니다. 잡고 일어섭니다. 걷습니다. 노래합니다. 다시 달려봅니다. 물론, 앞으로도 휘청거리고 넘어지면서 낯설고 컴컴한 곳을 헤매겠지만 또,..